도풍산(道風山)
홍콩 신계지의 중심인 샤틴에 위치한 산.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산이 있는데 그 중에 과거 큰 사찰과 불교 신도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도풍사라는 사원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곳은 기독교의 성지가 되어 있다. 영국의 여왕이 이 산 전체를 라이헬트 선교사(1877-1952)를 기념하며 기독교 선교를 위해 스칸디나비아 미션에 기증했다고 한다.
이 산에는 루터란 신학교가 있다. 이 신학교는 동남아 불교권과 이슬람권 선교지에서 온 수많은 신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도풍산의 불교 사원이 기독교 성지로 바뀌는 중심에는 노르웨이 출신의 루터란 선교사 칼 라이헬트가 있다. 그는 1904년 중국 하남성에 선교사로 파견된 이래 1930년에 홍콩으로 사역지를 옮긴 그는 도풍산을 근거로 해서 그곳에서 승려들과 같이 생활했다. 그는 불교 승려의 복장을 하고 그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경전을 배우고 또 성경에 대해서 가르치는 일과를 시작했다. 우여곡절이 있고 난 뒤 도풍사 내의 70여명의 승려들이 개종하고 세례를 받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1926년에서 36년까지 그가 세례를 준 숫자는 총 82명이었다고 한다.
도하(Doha, 아랍어: الدوحة 아드다우하, ad-Dawhah, ドーハ)
아라비아 반도의 동부 카타르반도 동안에 있는 카타르의 수도.
카타르의 수도이며, 페르시아만(灣)에 면하는 접한 지방 자치체로 상업도시이자 무역항이다.
오랫동안 페르시아 만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의 중심지였으나
-알비다 (Al-Bida)라는 이름으로 1825년 설립되었는데, "도하"는 "큰 나무"를 뜻하는 아랍어 앗다우하(ad-dawha)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카타르 반도의 동쪽 해안 상에 초기 어업을 하는 마을에 있었던 큰 나무를 부르던 것으로 보인다.
-1867년 바레인과 카타르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파괴되어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다음 해 오스만 제국이 셰이크 타니 빈 무하마드를 도하의 하킴으로 만들었다.
-다음 해 영국 정부가 도하의 토후인 무하마드 이븐 타니 알 타니를 카타르 총리로 임명했다.
-1882년 알라이안 (Al Rayyan)이 도하 남쪽에 알 와즈바(Al Wajbah) 요새를 세웠다. 다음해 셰이크 카심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도록 카타르의 군대를 이끌었다.
-1916년 카타르가 영국 보호령이 된 뒤 카타르의 수도가 되었으며, 영국 정부 관련 기관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1917년 셰이크 압둘라 빈 카심 알타니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알쿠트 요새를 세웠다.
-1971년 말에 독립한 카타르의 수도가 되었다. 카타르 정부 소재지로 카타르의 국왕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면적은 132km², 인구는 796,947명(2010년 기준)이다.
도하는 카타르 전체 인구의 약 80% 가량이 거주하는 카타르 최대 도시이며, 카타르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도하는 교육도시의 본고장이며 지역은 연구와 교육에 헌신적이다.
20세기 초 카타르 경제의 상당이 어업과 진주채취에 의존하였으며 도하는 대략 350 척의 진주채취선이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일본이 세련된 양식 진주를 개발, 소개한 이후, 도하 마을을 포함하는 전체 지역이 큰 불경기를 겪었고 1929년의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받아 카타르는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이 현상은 석유가 발견된 193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진주채집·어업·금속세공업이 성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카타르에서 큰 유전이 발견되면서 카타르는 부유한 나라가 되었고, 도하는 완전히 현대식 도시로 바뀌었다. 오늘날 전체적으로 카타르는 하루 800,000배럴 이상의 석유를 생산한다. 특히 1970년 도하와 남쪽 사르와를 연결하는 연장 100km의 도로가 개통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알후푸프와 연결되어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항만설비와 국제공항의 확장도 이루어졌다. 시의 남동쪽 지점에는 도하 국제공항이 있다.
2001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 제4차 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이른바 도하개발라운드의 최초 정부 수준의 만남을 했던 장소로, 도하 라운드가 채택된 도시이다. 2006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도시이기도 하다.
1969년에 오늘날 카타르의 가장 두드러진 랜드마크로 간주되는 정부 관저(Government House)가 공개되었다. 1973년 카타르대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75년에는 원래 1912년에 통치자의 궁이었던 곳에 카타르 국립박물관이 열렸다. 1996년에 알자지라 아랍어 위성방송 뉴스 채널이 도하에 사령부와 방송 센터를 두고 방송을 시작하였다.
인구분포는 외국에서 온 노동자가 많다. 레반트 지역과 북 아프리카에서 온 노동자들도 많다. 현재 카타르의 시민권을 갖지 않아도, 도하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인구가 급증하고 매달 1만명을 훌쩍 넘는 인구 증가가 일어나고 있어, 주택 부족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도하 도시권은 수년 내에 인구 100만명을 돌파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과 시차는 6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