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위가 있으면 권위적일 필요가 없어요
왜 우리는 ‘친구 같은 부모’에 열광하고, ‘권위 있는 부모’ 되기를 두려워할까. 자람가족학교 이성아 대표가 부모 자신도 모르는 속마음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들려주었다. 친구 같은 부모의 허상을 걷어내고 나니, 우리가 모르던 ‘권위 있는 부모’의 진가가 드러났다.
‘친구 같은 부모’에 숨겨진 속사정
아이가 부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이가 부모의 삶을 보며 안도감을 느낀다. 아이가 부모의 말을 경청하고 신뢰하고 따른다. 부모와 의견이 다른 점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다른 의견도 존중한다. 이는 어쩌면 모든 부모가 바라는 건강한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 위의 부모는 친구 같은 부모일까, 권위 있는 부모일까? 정답은 ‘권위 있는 부모’다.
“부모들과 상담할 때 ‘어떤 부모가 되고 싶나요?’라고 물어봐요. 그림으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나무, 의자, 바다, 하늘, 솜사탕 등 다양한 부모상이 나옵니다.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친구’예요. 언젠가부터 부모들이 원하는 부모상 1순위가 ‘친구 같은 부모’가 됐어요. 그러면 ‘친구 같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친구 같다’의 속성을 제대로 알아야 해요.
아이에게 친구 같은 부모가 되면 아이도 부모를 친구라고 여길까요? 아이가 부모를 친구처럼 여기는 것이 과연 옳은 현상일까요?” 생각해보자.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에게 ‘친구 같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많은 부모들이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사이, 어려울 때 내 편이 되어주는 사이, 오래 만나는 친밀한 사이를 ‘친구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친구는 어떤가. 친구는 나와 일상을 공유하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24시간 나를 보호해주지도 않고 나를 책임지지도 않는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로서의 권위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과연 친구 같은 부모를 원할까?
"부모와 자식간의 역할 전도는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권위주의자가 아니라 권위를 나타내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깊고 넓은 사랑과 함께 단호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아이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다." - 프레데릭 코크만(프랑스 아동 정신의학자)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은 부모의 진짜 속마음
첫째,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친밀’해지고 싶은 것이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과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내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이다.
둘째, 배우자와 친밀하지 않을 때 자녀와의 친밀함에 더 몰입한다. 대부분 배우자와 친밀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에게 더 많은 친밀함을 요구한다. 배우자에게서 얻지 못하는 친밀감을 자녀를 통해 충족시키려는 보상심리다.
셋째, 나이 들어감에 대한 반발 심리다. 부모와 같은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것에 대한 반발심, 자신의 노화와 나이듦을 부정하는 심리다.
이성아 대표는 자람가족학교 대표이자 세 아이의 엄마다. 부모 역할과 가족 관계 등을 상담하는 가족 상담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친밀감 결핍’에 시달리는 어른들
“딸이 짜증을 심하게 낸다며 상담을 요청한 가족이 있었어요. 가족의 일상을 관찰해보니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안방을 사용하고, 네 살 남동생이 작은방을, 부부는 거실에서 생활하고 있었죠. 엄마는 딸에게 공부를 가르치며 ‘엄마는 몰라, 네가 가르쳐줘’라고 했고 그때마다 딸은 한숨을 쉬며 짜증을 냈어요. 동생이 방해하는데 엄마가 야단치면 꿈쩍 안 해요. 그런데 누나가 ‘가!’ 한마디하니까 바로 행동을 멈추더군요.
딸아이에게 짜증 내는 이유를 물었어요. 아이는 ‘엄마에게 영어도 가르쳐야 하고 동생도 혼내야 하고 너무 바빠요’라고 답하더군요.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었던 엄마가 자신의 책임을 여덟 살 딸에게 미루고 있는 겁니다. 가장 먼저 내린 처방전은 부모가 안방을 되찾고 딸은 작은방을 사용하는 것이었어요. 안방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아이는 홀가분해했고 짜증이 한결 줄었어요.”
부모가 자신의 권리를 찾으면 아이들은 마음의 부담을 덜고 홀가분해한다. 부모와 친구가 되는 것은 아이에게도 커다란 부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이든 부모의 부모 노릇을 하며 느끼는 부담과 고충을 생각하면 쉽다. “친구 같은 부모에 대한 환상은 지금 어린아이를 키우는 우리 세대가 기성세대에 가진 반작용의 하나예요. 내가 갖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삶에 대한 로망이죠. 나와 함께 놀아주고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친밀한 부모를 우리 세대는 원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친밀감을 표현하는 것에 서툰 세대예요. ‘어린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100년이 채 되지 않으니까요.
부모들은 우리를 본능적으로 예뻐하며 키웠어요. 자식의 몸에 밥을 채워주기 위해 바쁘게 살았지만 따뜻한 정서의 밥을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었죠. 우리는 친밀감에 대한 결핍이 있어요. 동시에 아버지의 무뚝뚝하고 엄한 모습, 엄격한 통제에 대한 원망이 있고요. 그래서 ‘권위’라는 말에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반발심을 느껴요. 권위 있는 것을 권위적인 것으로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교육 심리학자 요세프 크라우스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친밀함도 필요하지만 권위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엄마는 딸의 베스트 프렌드가, 아빠는 아들의 절친이 될 수는 있지만 부모는 부모 역할에 가장 충실해야 한다는 것. 아이에게는 정서적, 도덕적, 지적 성장에는 반드시 믿고 따를 수 있는 권위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문제는 권위가 부모 역할 중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이라는 점이다.
권위는 동사다
권위란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을 뜻한다. 상대를 닮고 싶고 상대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권위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우리 모습이다. 이성아 대표는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들의 고민 1순위가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부모들이 친구 같은 부모가 되기를 꿈꾸면서도 속마음으로는 아이가 자신을 믿고 따르기를 바라는 ‘권위’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부분 권위 있는 부모가 되기를 주저한다. 이 대표는 “친구 같은 부모는 좀 더 가볍게 살아도 될 것 같지만 권위는 오랜 시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니 힘들 것 같아 회피하려는 심리”라고 지적한다. “진실한 것은 드러나고 증명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권위가 그렇죠. 부모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관, 양육관을 애써 꾸준히 실천할 때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 권위니까요. 권위는 있는 척 가장할 수도 없어요. 꾸며낼 때 ‘권위적인’ 것이 되어버리니까요. 빠르게 변하는 우리 사회는 느리고 잘 드러나지 않는 것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아요. 그래서 이 시대 부모들에게는 마치 권위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권위란, 어른이 어른 노릇을 하는 것이다. 요즘 부모는 어쩌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한다. 처방전이 급하다. 어떻게 해야 권위 있는 어른으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을까?
부모의 권위를 찾기 위한 조건
이성아 대표는 부부의 권위부터 바로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아이 앞에서 부부 존재에 대한 고마움이나 존중을 표현하는 말과 행동이 부모의 권위를 찾아준다.
✓ 아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라
평소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을 따르고 신뢰할까?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믿고 듣고 따른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따르고 싶어진다. 권위 있는 부모가 되는 첫째 조건은 아이를 무한 사랑하는 것이다.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발달 과정에서 실수를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욱하는 마음을 참고 다스리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힘들어도 그런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권위의 시작은 사랑이다.
✓ 권위 있는 부부는 사이가 좋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유기농 달걀과 A++ 쇠고기를 남편에게 주자. 부부가 친밀하게 사는 것, 서로 의견이 달라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부드럽게 표현하며 서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도 부모의 권위를 느낀다. 진짜 권위를 배우는 것이다. 실제로 권위 있는 부모는 대부분 부부 사이가 좋다.
✓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 권위의 핵심이다
부부가 서로의 권위를 세워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배우자가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아이들 앞에서 아빠를 직설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아빠 입장이 돼서 설명해주자. 남편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을 때는 “아빠가 뭔가 이유가 있었을 텐데, 왜 그러실까?”라거나 “아빠가 왜 그러시지?”라고 해도 된다. 아이가 아빠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면 “그랬어?” “아빠가 왜 그랬을까?” 하고 끝내도 되고, 아빠가 그러는 이유를 알면 대신 설명해주자. “아빠는 이런 점이 걱정돼서 그러신 것 같아. 그런데 그건 엄마도 좀 서운하네” 하고 부부 사이의 의견이 다른 점도 부드럽게,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상대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어른에게서 아이들은 권위를 실감한다.
"바람직한 권위는 아이를 사랑하고 곁에 있어주고 보호해주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좌절도 맛보게 하고 통제도 해야 한다. 아이의 균형 있는 성장 발달을 위해서는 사랑과 좌절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 디디에 플뢰(프랑스 아동발달심리학 박사)
check list
나는 권위 있는 부모일까?
□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듣는다.
□ 아이에게 부모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게 한다.
□ 부모가 잘못한 이유를 설명하면 아이도 수긍한다.
□ 같은 일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칭찬하거나 야단친다.
□ 아이가 다른 어른들과도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 아이에게 중요하게 가르치는 덕목이 있다.
□ 아이가 잘못하면 화내거나 때리기보다 말로 엄하게 타이른다.
□ 아이가 자기 고민을 부모에게 자주 말하고 해결 방법에 대해 조언을 얻는다.
□ 부모 목표는 아이 스스로 자기 문제를 처리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이에게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한다.
□ 아이 연령에 적합한 행동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 아이가 쓸데없이 고집을 피울 때 굴복하지 않는다.
□ 아이 의견을 듣고 집안 규율이나 부모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
□ 아이가 평소에 부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 아이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하게 말로 전달한다.
□ 사소한 일로 부모에게 화내지 않는다.
□ 아이가 부모 말을 끝까지 듣는다.
□ 평소에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 자기 행동에 대한 부모 판단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 아이에게 부모가 정한 집안 규칙을 꼭 지키게 한다.
★ 체크리스트 결과 : 체크한 항목 수가 많을수록 권위 있는 부모다. 출처 :
참고도서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창비), (지식채널), <프랑스 부모들은 권위적으로 양육한다>(맑은숲),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한국경제신문사) | 의상협조 갭키즈, 난다베베, 미미씨엘, 베베드피노, 빔보빔바, 슈하이, 스웨번, 우트, 일루, 젤리멜로, 허그베이비 | 모델 제레미 (만 3세), 홍아인(만 5세) | 패션 스타일링 유민희 | 헤어·메이크업박성미 | 사진 송상섭, 어시스트 김은지 | 글 한미영·김경민·윤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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