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多韻字何呼覓(허다 운자하호멱)
김 삿갓은 날이 저물어 다시 산골의 한 서당을 찾아가서 하룻밤 유(留)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제법 덩그런 집에서 열여덟 살의 어린 애첩(愛妾)까지 데리고 산다는 70 고령의 노훈장(老訓長)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자네 글을 좀 읽었는가?"
"예, 많이는 못 읽었지만 조금은 배웠습니다."
"그러면 내가 운(韻) 자를 부를 것이니 시(詩)를 한 수 지어 보게, 잘 지으면 재워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고 가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게."
"예, 선생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 삿갓은 겨우 글방 사랑 윗목에 자리를 얻어 앉았고, 훈장은 거만하게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운(韻) 자를 한꺼번에 부르지 않고 한 구절을 지을 때마다 한 자씩 따로따로 불러 줄 테니 그리 알게.”하더니
첫 번째 운자(韻字)를 ‘찾을 멱(覓)’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멱(覓)이라는 글자는 시(詩)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僻字(피 자) 임에도 불구하고 김 삿갓을 골탕 먹여
내쫓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운자를 받은 김 삿갓은 멱(覓) 자를 본래의 뜻인 동사(動詞)
로 써서는 시를 지을 수 없음을 간파하고 명사(名詞)로 바꾸는 재치를 발휘하여 선뜻 이렇게 읊었다.
*僻 : 궁벽할 벽, 피할 피 자로 쓰임
허구많은 운자(운자) 중에서 하필이면 멱 자란 말이오.
許多韻字何呼覓(허다 운자하호멱)
피멱 첫 구절은 그것으로 시험을 통과한 셈이었다.
그런데 훈장은 또다시 ‘멱’하고 똑같은 글자를 두 번째 운자로 부르는 것이었다.
운자라는 것은 본시 같은 글자를 거듭 쓰는 것이 아니요, 훈장이 그 만한 법칙을 모를 리 없지만
기어이 골탕을 먹여 보려나 보다.
아까도 멱 자가 어려웠는데 또 멱 자란 말이오.
彼覓有難況此覓(피멱유난황차멱)
김 삿갓은 이번에도 동사(動詞)를 명사(名詞)로 바꾸어 간단히 처리했고, 그 기발한 발상과 재치에 놀란
훈장은 그래도 자기의 체면을 세워 보려고 운자가 필요치 않은 세 번째 구절에도 굳이 운자를 달라면서
다시 ‘멱’하고 부른다.
하룻밤 자는 것이 오직 멱 자에 달렸구나.
一夜宿寢懸於覓(일야숙침현어 멱)
이쯤 되면 훈장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하나 세 번을 내리 멱 자만 부른 마당에 이제 와서 어찌
하겠는가. 훈장은 또다시 멱 자를 불렀고 김 삿갓은 은근히 화가 나서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산골 훈장이 아는 글자는 오직 멱 자뿐이구나.
山村訓長但知覓(산촌훈장단지멱)
참으로 김 삿갓이 아니고서 는 해 낼 수 없는 놀라운 재주였다. 이에 놀란 훈장도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 김 삿갓의 손을 잡고 아랫목으로 내려와 시재(詩才)를 칭찬하면서 저녁에는 애첩에게 술상까지
보아 오게 하여 귀한 손님으로서의 대접을 극진히 하였다.
술을 마시면서도 김 삿갓은 젊은 여인의 숨겨진 아픔을 엿본 것만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70 고령의 영감님과 열여덟 살의 앳된 소실, 아무리 보아도 어울리는 남녀 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생각하면 여인의 불행은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재물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문득 醒睡稗說(성수패설)이라는 옛 책에 나오는 老郞幼婦(노랑유부)라는 시가 머리에 떠오른다.
어느 익살꾸러기 시인이 일흔두 살의 신랑과 열여섯 살의 신부를 배꽃과 해당화에 비유하면서 신방(新房)
풍경을 읊은 戱詩(희시)이다.
신부는 열여섯, 신랑은 일흔두 살
파뿌리 흰머리가 붉은 단장을 만났네.
어느 날 밤 홀연 봄바람이 일더니
배꽃이 날아와 해당화를 누르누나.
二八佳人八九節(이팔가인팔구절)
蕭蕭白髮對紅粧(소소백발대홍장)
忽然一夜春風起(홀연일야춘풍기)
吹送梨花壓海棠(취송이화압해당)
김 삿갓은 풍자와 해학의 달인답게 살아온 면모가 이 시에서도 나타나 있다.
<받은 메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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