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방앞 '돼지국밥' 골목
푸짐하고 넘쳐나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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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지리한 장맛비가 사람들 가슴 속으로 눅눅하게 내려앉는다.
오락가락 내리는 비 탓에 사람들 마음도 오락가락 부산스럽다.
이럴 때 술꾼들은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따끈한 국물도 한 그릇 시원하게 들이켜고 싶다.
이렇듯 장맛비는 사람들에게 오래 묵은 옛 추억의 아련함이나,왠지 모를 애틋한 감상을 배달해 주는
우편배달부 역할을 한다.
세상 모두가 비에 젖고,마음마저 비에 젖을 때 사람들은 돼지국밥 골목으로 향하는 것이다.
평화시장 뒤 돼지국밥 골목.
10여 집의 돼지국밥집이 추적추적 비를 맞고 있다.
마침 점심 무렵이라 한창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집집마다의 가마솥에서는 진한 사골국물들이 펄펄 끓어 넘치고,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국밥 한 그릇의 기꺼움에 넘쳐나고 있다.
부산만큼 돼지국밥 천국이 따로 있을까?
전국 어디를 다녀 봐도 구수하게 진하면서도,시원한 뒷맛을 내는 돼지국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가히 부산을 '돼지국밥의 도시'라 별칭 해도 무리가 없을 것같다.
국밥 한 그릇에 고소한 돼지고기도 먹고,시원한 국물도 먹고,끼니도 설렁설렁 때우는 음식이 따로 없으니 말이다.
때문에 부산의 관문에는 약속이나 한 듯이 돼지국밥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사상시외버스 터미널 부근과 부산역 근처 초량 뒷골목이 그 대표적인 예다.
평화시장 돼지국밥집도 원래 그런 의미에서 형성된 곳이었다.
30여년 훌쩍 전에,이 곳에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일명 조방 앞 버스터미널. 이 곳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들에게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우는 돼지국밥은
최고의 끼니였다.
시외로 가는 이들에게는 든든함을,부산으로 오는 이들에게는 '깊고 구수한' 부산의 맛을 제공한 것이다.
이제 버스터미널은 이전하고 없지만,인근 자유시장,평화시장,중앙시장 등과 함께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조방 앞 돼지국밥 골목'인 것이다.
시장 상인들이 즐겨찾기에 국물은 깊고 시원하며,수육은 부드럽고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빗속을 휘휘 돌다 국밥집 한 곳에 들어선다.
제법 사람들이 많다.
비 때문인가? 점심 무렵인데도 '소주 일병'에 불콰해진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띈다.
그들의 목소리에 온 식당이 시끌벅적하니 '사람 사는 동네' 같다.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시킨다.
뚝배기에 슬슬 끓는 국밥이 옹골지다. 뜨끈한 국물 한 술 떠먹는다.
뜨거운 국물 탓에 속이 짜르르 하다.
하루 종일 고아서일까? 국물이 뽀얗게 진국이다.
떠먹을수록 입에 착착 감기는 것이 그저 그만이다.
연거푸 떠먹으며 속을 푼다.
소주 한 잔 탁 털어 넣고 수육 한 점 입에 넣는다.
삼겹살 부위를 사용해서인지 고기가 아주 고숩다.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좋아들 하겠다.
수육 한 점에 마늘 한 알 콩된장에 찍어 먹는다.
과연! 고기에는 마늘을 곁들여야 뒤 끝이 개운하다.
또 소주 한 잔에 수육과 함께 마늘,땡초를 곁들인다.
고소한 맛에 알싸함이 합일해서 입 안이 온통 알콩달콩 하다.
온 세상이 비에 젖고 마음에도 비가 내릴 때,무작정 돼지국밥집으로 가자.
따뜻한 국물이 치운 가슴을 감싸고,술 한 잔에 아릿한 옛 추억이 떠오르는 곳.
돼지국밥집 골목에는 마음에 비 맞은 사람들이,서로 서로 껴안아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남아있다.
그래서 푸짐하고 넘쳐나는 정이 국밥 한 그릇 가득인 것이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