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캐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잎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시 읽기> 자화상/서정주
솔직한 고백의 한계와 힘
미용실에 가면 읽게 되는 책이 있다. 한 손으로론 들기도 어려울 정도 엄청난 두께와 무게를 자랑하는 일명 ‘여성지’라 불리는 잡지. 그런 잡지들의 겉표지를 보면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고백’이다. 고백도 그냥 고백이 아니라 ‘충격 고백’, ‘눈물 고백’, ‘8시간의 고백’ 등등 아주 다양하다. 뭐 굳이 여성지로 한정할 필요도 없다. 신문, 인터넷, TV, 토크쇼, 예능 프로그램까지 지금 이 시대는 각종 고백들로 넘쳐난다 가히 ’고백의 홍수‘라 할 만한데, 이런 걸 보면 우리는 누군가의 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상업적으로 꽤 매력적인 아이템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도 누군가의 사적인 고백에 관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그 고백에서 진정성 같은 것이 느껴지는 순간(물론 이런 순간이 아주 찾아오지는 않지만), 흔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 고백의 주인공이 행한 어지간한 과오는 충분히 이해해줄 만한 것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의문 하나, ‘사람이 자신에 대해 100퍼센트 솔직할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솔직함이 과연 완전한 진실에 부합할까?’ 이러한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작정하고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도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입장과 인식의 한계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살면서 종종 ‘A를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A를 인식할 능력이 없어서’ B를 말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즉 어떤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아무리 정직하게 고백한다고 해도 진실의 전모를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흔히 나에게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확신하지만, 과연 그럴까/살다 보면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도대체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포문을 여는 고백이라니! 만일 이 고백의 내용이 여성지에 인터뷰 기사로 실린다면 제목으로 써도 될 만큼 충분히 자극적인 문구다. 게다가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니! 당장이라도 ‘나를 키운 것 팔할이 ○○이다’라며 따라 해보고 싶게 만드는 구절이다. ‘바람’에서 느껴지는 얼마간의 황량함과 낭만성이 ‘죄인’, ‘천치’, ‘병든 수캐’ 등의 자기 비하와 합해지니 오히려 강한 의지와 당당함의 표현이 되어버리는 마법이 이루어졌다.
시인은 이 시를 쓰고 몇 년 후에 우리나라 청년들을 태평양전쟁으로 내모는 친일적인 선동시를 썼다. 또한 환갑이 넘어서는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쿠데타를 통해 권좌에 오른 독재자에게 낯 뜨거운 생일 축하시를 썼다. 혹시 그가 말년에 다시 한 번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다면 어땠을까. 살짝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 시로 인해 시인이 살면서 저지른 과오들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고백은 어디까지나 고백일 뿐, 그것이 있던 것을 없던 것으로(혹은 없던 것을 있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하니까.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는 자기 고백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시인의 과오가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이 시에서 받았던 감동을 훼손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이렇게 솔직한 데다가 에지 충만한 고백은 분명 힘이 있다.
―김경민, 『시 읽기 좋은 날』, 쌤앤파커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