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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1564년~1616년)
그의 생애가 안개 속에 덮여 있는 부분이 많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잉글랜드 중부의 시골 마을 에이번 출신으로, 아버지는 사인이고, 토지 관리인으로, 중산층 가정 출신이다. 고전어의 기본 교육은 받았다
런던으로 이주하고서 본격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일약 명성을 얻었고, 생전에 '영국 최고의 극작가'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동 시대의 극작가 벤 존슨은 어학 실력이 젬병이랬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교육보다 타고난 능력이 특출했다.
18세에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3자녀를 두었다.
1590년 전후에 런던에 와서 활동했다. 이때 런던은 농촌 인구로 도시로 몰려오던 때이다. 한편으로 대중의 여흥을 위한 연극이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1599년 템스강 남쪽에 신축한 글로브 극장에서 연극을 많이 발표했다. 1603냔 제임스 1세가 즉위했다. 이 극단에서 조연급 배우로도 활동했으나 극작에 더 주력하였다.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활동한 기간은 1590년~1613년까지 대략 24년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희·비극 포함하여 총 38편을 발표하였다.
그가 죽고(1616)난 후 1623년 경에 벤 존슨은 극찬했다.
말년과 죽음
셰익스피어는 1616년에 고향에 돌아와서 세상을 떠났다. 맏딸 수재나는 내과의사 존 홀과 1607년에 결혼하였으며, 작은딸 주디스는 셰익스피어가 죽기 두 달 전에 포도주 제조 업자 토머스 퀴니와 결혼하였다. 딸들도 마지막으로 1670년에 자녀를 남기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면서 셰익스피어의 직계는 대가 끊기게 되었다.
작품들
*셰익스피어는 각본을 총 36편, 14행시(소네트)를 총 154편 썼다.
25년 동안 37편을 발표했다.
(이때까지는 문장에 운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산문에도 운(리듬)율이 있었다.)
초기 작품 -- 주로 영국 역사에서 소재를(백년 전쟁, 장미 전쟁 등에서)
리처드 2세. 3세, 헨리 2세, 4세, 5세, 6세,
베로나의 두 신사. 한 여름 밤의 꿈, 말괄량이 길 들이기.
로미와 줄리엣
후기 작품 -- 낭만적인 희극을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
십이야, 줄리어서 시저,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세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막베드 (이 작품이 대표작이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1609년판
1609년에 출간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출판한 책 중에서 연극적이지 않은 작품을 담은 마지막 책이었다.
세익스피어(윌리엄 세익스피어 1564 - 1616)
세익스피어는 1564년에 영국 중부의 작은 전원마을인 스트렛피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피혁가공공장을 하는 소상공인으로서 부유한 지방유지로 읍장까지 했다. 8남매의 셋째이나 아들로서는 장남이었다.
비교적 풍족한 유년을 보냈으나 1577년에 가세가 기울면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이후로는 독학으로 공부하다시피 했다. 고향에서 초등과 중등의 교육까지는 받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하여 당시의 극작가나 비평가로부터 무시를 당하였다. 그러나 학교에 다닐때까지는 성서, 고전을 공부했고, 11세 때 입학한 문법학교에서는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공부했다. 그는 학교와 관계없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18세인 1682년에 26세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큰 딸 수잔나를 낳았고(1583) 1585년에는 쌍둥이 아들 햄릿과 주디스를 낳았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한 것 같지는 않았다.
1585년 이후로는 7-8년 동안 행적이 뚜렷하지는 않으나 고향을 떠돌아 다니면서 보냈으리라고 한다.
당시의 런던은 엘리자베스 1세 치하로, 시골의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서 인구가 늘어나면서 시끌벅적했다. 도시로서 문제점도 많이 안고 있었다. 런던에서 궁내부 극단이 있고, 제임스 1세(1603년 즉위) 이후로는 왕립 극단이 되었다. 런던에서 극단 및 기타 예술활동이 활발하게 전게되고 있었다.
세익스피어도 1590년 쯤에 런던으로 와서 배우, 극작가로, 나중에는 극장의 주주로 활동하였다. 1600년 대의 초반에 발표한 헨리 6세가 대히트를 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면서 세익스피어를 대학도 나오지 못한 무식쟁이이며, 그가 쓴 희극은 도시의 하층민이나 즐기는 품위 없는 것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벤 존슨)
세익스피어가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1600년 초기이다. 헨리 6세, 리차드 3세, 리처드 2세, 베로나의 두 신사, 한 여름 밤의 꿈, 말괄량이 길들이기,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두 이 시기에 쓰여졌다. 1608년 이후로 작품활등이 뜸했다. 1611년 이후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작품이 성공하자 그는 신사라는 칭호를 받았고, 가문의 문장도 공인받았다.
1597년에는 고향 스트렛퍼드에 대 저택을 샀다.
1599년에는 런던의 템즈강 남쪽에 글로브 극장을 지었다. 이 극장에서 십이야, 헨리 3세, 헨리 4세, 줄리어서 시저,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등을 공연했다. 또 4대 비극이라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배스 도 이 극장에서 공연했다.
세익스피어 자녀들도 자녀를 성인으로 키워내지 못함으로, 세익스피어 후손은 손자대에서 끊어졌다.
말년에는 고향 스트렛퍼드로 돌아왔으나,. 런던을 자주 방문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616년에 고향에서 죽었고, 고향의 성 트리니티 교회에 묻혔다.
즉 1613년에 헨리 8세를 공연하던 중에 글로브 극장에 큰 불이 나서 전소해버리자, 고향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극장을 곧 새로 지었지만 세익스피어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지 1613년 이후로는 작품 발표가 한 편도 없다.
세익스피에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으므로, 후세의 연구가들이 세익스피어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도 하였다. 세익스피어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어서, 그의 작품은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여러 세익스피어가 썼으리라는 사람도 있다. 즉 작품을 만드는 극작가 조합 같은 것을 만들어서, 공통으로 세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지 않았나 라는 추측이다.
세익스피어는 25년 동안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37편의 작 품을 발표했다. 영국 역사극과 낭만성이 강한 희극을 많이 썼다. 후반부에 가서 비극을 많이 발표했다. 초기에 세익스피어가 대중적 인기를 얻게 해준 작품은 대개가 로맨스 희극들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세익스피어를 세계적 작가로 만들었고, 문학사에서도 금자탑을 여기는 작품은 역시 세익스피어 4대 비극이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시대
셰익스피어가 활동을 시작했던 16세기 후반의 영국은 엘리자베스1세를 거치는 전환기였다. 이 기간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던 분명한 전환기였다. 봉건 체제에서 근대국가 체제로 바뀌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와 유럽 열강으로의 편입, 상업주의의 부상, 다양한 문화 산업의 번성 등이다. 그 저변에 젠더(성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인종 문제의 부상, 사회의 유동화에 따른 계층의 와해 조짐 등 이념적 변동 양상이 흐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라는 것은 이러한 사회변동 양상을 선구자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가 극장가에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에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의 극작가들이 많이 활동하였는데 이들 중 극작가 로버트 그린은 셰익스피어를 향한 질투심에서 그의 학식이 낮은 사실을 이용하여 "라틴어는 조금밖에 모르고 그리스어는 더욱 모르는 촌놈이 극장가를 뒤흔든다"고 은근히 비꼬았다. 그러나 후대인은 로버트 그린은 그냥 작가이고, 세익스피어를 ‘大家’라고 부른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논란들
저작자 논란
37개의 작품 전부가 세익스피어 작품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세익스피어의 지적 수준을 넘어서는 작품이라는 평도 있다 그러나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
작품
1. 막베스
맥베스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와 벤쿠오는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돌아가던 중 세 마녀를 만나게 된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장차 왕이 되실 분이라 예언을 하고 사라진다. 이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왕권을 향한 야심에 사로 잡히게 되고 편지를 통해 이 사실을 부인에게 알린다.
야심에 사로잡힌 맥베스는 부부는 왕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던컨왕을 보고 맥베스는 양심과 야심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하지만 맥베스 부인의 충동으로 인하여 맥베스는 잠든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던컨 왕이 살해했다. 예언대로 왕위를 차지하게 된 맥베스는 권력을 누리기는커녕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함께 예언을 들은 벤쿠오를 살려 둘 수 없어 벤쿠오마저도 살해를 하고 죽은 벤쿠오의 환영을 보며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한편 던컨왕을 죽인 후유증으로 몽유병에 시달리던 맥베스 부인은 숨을 거두게 된다. 결국 맥베스는 맥더프와 싸우게 되고 절망에 빠진 맥베스는 결국 맥더프의 손에 죽게 되고 맬컴(벤쿠오의 아들)이 왕좌에 오르게 된다.
주제는 인간의 야심과 양심을 다루었다. 인간이 자기의 분수를 넘어서면 파멸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 마녀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라고 읽는다.)
세익스피어 비극은 ‘인과응보’를 다룬다.
유명한 시 구
(자기 부인이 죽었을 때의 독백이다.)
그녀가 이 다음에 죽었어야 했는데.
그런 소식을 언젠가 한 번은 들었어야겠지.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내일도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하루하루 더딘 걸음으로 기어가는 거지.
우리의 어제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보여주지
우리 모두가 죽어 먼지로 돌아감을.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며 돌아다니지만
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불행한 배우일 뿐.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 의미도 없도다.
2.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햄릿)
1599년에서 1601년 사이에 쓰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다. 덴마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클라우디우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보여준다.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가장 긴 작품으로 영어로 된 문학 작품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발표 당시에도 인기가 대단했다. 햄릿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누군가에 의해 공연되고 있다.“
4대 비극의 주인공은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햄릿은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한 비극이다. 참고로, 작품속 주인공의 이름 Hamlet은 중세 스칸디나비아 전설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이라고 한다.
'햄릿'의 배경은 12세기 덴마크 왕가이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인이다. 이 작품에 인간 본성과 복수 윤리에 대한 당대의 사고가 드러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시대에만 한정될 수 없는 보편성과 심미적 가치를 또한 지니고 있다. '햄릿'에 재현된 한 왕가의 갈등은 현재 어떤 계층의 집안과 어느 집단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문제라 할 수 있으며, 햄릿의 경험은 우리들 중 어느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경험을 이 작품에 투사하여 해석한다. 지성인의 전형으로 보이며, 그의 주저함은 이항대립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렇게 하지도 저렇게 하지도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한다.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선의 희생이 두려워 악의 제거를 주저하는데서 온다.
-->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자신이나, 그 어떤 것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햄릿 극의 특징 중의 하나는 독백이다. 독백은 등장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제공함으로, 관람자가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해준다. 대표적인 독백이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가 있다. 단순히 삶과 죽음을 넘어서 그 어떤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고 한다.
햄릿이 쓰여진 그때는 ‘복수’는 가장 인기 있는 장르였다. 주인공이 복수를 망스리게 함으로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하도록 한다.
햄릿의 시대나 지금이나 정의와 불의, 실체와 허구, 이성과 격정, 사랑과 미움은 항상 서로 대립하고, 질서를 유린하는 힘은 항상 존재하며, 삶에 있어서의 불균형은 심각하다. 그러나 극은 희생과 상실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깨어진 질서는 언젠가는 다시 복구된다는 믿음이 있고, 삶의 균형은 다시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존재한다. 이는 모든 비극이 담고 있는 낙관성의 토대이다.
(*현대인은 모두가 햄릿이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3.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의 비극=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로, 4대 비극은 주인공들이 어떤 성격적 결함을 갖고 있다. 오셀로는 질투로 인하여 일어나는 비극이다.
베니스의 장군(將軍)인 무어인(人) 오셀로는 원로원(元老院) 의원의 딸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받아 그를 아내로 맞는다. 캐시오를 부관(副官)으로 삼자 기수(旗手) 이아고는 불만을 품고 우선 캐시오를 실각시킨다. 캐시오는 그를 복직시카자는 구실로 데스데모나에게 접근한다. 접근은 아주 무서운 흉계였다. 오셀로에게 데스데모나의 부정(不貞)을 저지른다고 무고하여 믿도록 만든다. 의혹과 질투에 사로잡힌 오셀로는 드디어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침실에서 교살(絞殺)한다. 그 직후 이아고의 간계는 폭로되지만 이미 때가 늦어 오셀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작품의 흥미는 정직의 가면을 쓴 악(惡)의 천재 이아고의 활약에 있으며 그의 행동의 동기에 대하여는 여러 차례 비평가들 사이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오셀로는 지나치게 단순한 주인공이라고 보이기 쉬우나 그가 자기의 가슴에 검(劍)을 박는 최후의 장면에서 참회하는 그의 심정과 다시금 데스데모나의 진실을 확신하게 된 그의 기쁨을 읽어볼 때에 대개는 이 작품의 주제를 이해할 수 있다.
오델로는 자신의 윤리의식에 자신감이 넘쳐난다.(이동민도 그렇다.) 전쟁에서도 어느 남자보다도 용감무쌍했다.(이건 나와 다르다) 그러나 상상력으로 의심을 만들면서 스스로 무저지는 것을 보여준다. 과도한 정의감과 자신에 대한 신뢰감으로 무너지면서(스스로 무너지면서) 비극으로 치닫는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주인공의 성격 결함이 만들어낸다. 오델로도 그렇다. 질투심이 이 작품의 중심이다.
악의 존재인 이아고는 정직의 탈을 쓰고 있다. 그의 행동 동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논쟁이 많다. 오델로는 여자를 찌르는 심리(질투)와 자신을 찌르는 심리(침회)가 엉켜 있다.(이렇게 보면 햄릿과도 닮았다.) 어쨌거나 이 작품의 주제는 의심과 질투가 필멸로 이끌었다.
작품을 연구한 것들을 보면
오델로와 이아고가 너무나 극적인 대립을 이룬다. 그러나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관점보다는 남녀간의 사랑에서 오는 갈등으로 다루는 연구자도 있다.
재미 있는 것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고, 그냥 남자와 여자의 문제로 본다. 오델로는 여자의 나쁜 이야기를 듣고 아내에게 확인하지 않고 믿어버린다. 그리고 행동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남, 녀 대립에서 남자가 나쁘다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평이 있다는 것은 독자인 우리도 우리 나름으로 평해도 된다는 것이니, 선생님께서도 한 말씀씩 하십시오.
==> 이런저런 것 다 떠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사람 사이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4.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이다. 로마 침략 이전 영국을 배경으로 한 레이르왕 전설에 바탕하여 1605년에 셰익스피어가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 브리튼 왕국의 리어왕은 나이가 들자 세 딸에게 효심 고백 대결을 시켜 왕국을 나눠주고 자신은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그러나 가장 멋진 고백을 하리라 예상했던 막내딸 코딜리어는 입을 다물어 리어왕의 기대를 저버리고 가장 감동적으로 효심 고백을 한 두 딸은 아버지를 배신한다.
두 딸의 배신으로 리어 왕은 모든 것을 잃고 실성한 채 광야를 헤매게 된다. 마침내 자신이 매몰차게 내쫓았던 막 내딸과 재회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지만 이내 막내딸의 주검 앞에서 울부짖으며 리어왕도 생을 마감한다.
리어 왕 이야기는 왕가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개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야기는 아첨에서 시작한다. 아첨을 믿는 리어왕의 교만함이 성격의 결함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보자면, 만약에 리어 왕이 첫째와 둘째의 아첨을 간파하고, 셋째에게 모든 영토와 권력을 물려주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첫째와 둘째가 연합하여 셋째를 공격할 가능성이 충분하고 넘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현명한 판단과 결정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5.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곡이다. 서로 원수인 가문에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하게 되고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가문을 화해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이태에서 전해오는 설화가 있었다. 연극 공연에 인기가 대단했다.
셰익스피어는 조연의 개성을 부각시키고 부수적인 플롯을 추가하여 극적 구성을 극대화하였다. 등장인물은 서로 다른 운문 형식을 빌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운명적인 사랑과 죽음을 맞이하는 로미오의 대사는 소네트로 표현된다.
대중의 인기가 아주 높아서 연극, 뮤지컬,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다. 명작으로 분류된 영화도 있다.
6. 말괄량이 길들이기
세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으로, 페트루키오라는 남성이 케이트라는 말괄량이 여성을 길들인다는 내용의 ‘유쾌한’ 희극이다.
패듀어의 부자 밥티스타의 맏딸 카트리나는 이름난 말괄량이였다. 성질이 어찌나 사납고 수다스러운지 ‘말괄량이 카트리나’라고 하면 패듀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카트리나에게 결혼 신청을 하지 않았다. 페트루치오는 카트리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이런저런 웃기는 짓을 해서)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카트리나의 거만한 기는 완전히 꺾이고 무슨 말이든지 고분고분 따르게 되었다. 루센쇼와 호텐쇼, 그리고 밥티스터는 페트루치오가 카트리니와 결혼한 것을 비웃었다. 그래서 페트루치오는 누구의 아내가 가장 얌전한지 각자 세 사람이 아내들을 부를 때 남편의 부름을 먼저 받고 맨 먼저 달려오는 아내의 남편이 돈을 갖기로 했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루센쇼와 호텐쇼의 아내들은 오지 않고 카트리나가 가장 먼저 왔다. 그리하여 카트리나는 패듀어에서 제일 얌전하고 훌륭한 부인으로서 다시 한 번 유명해졌다.
7. 한 여름 밤의 꿈
세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으로 세익스피어의 5대 희극의 하나이다.
연인들의 사랑과 갈등을 초자연적인 힘으로(요정이 등장하는 등 환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내는 내용이다.
즉 부모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초자연의 힘을 빌려 이루어낸다.
여기에 나오는 시구의 일부를 소개하면
아무리 천하고 천하여 멸시만 하는 것이라도
사랑은 훌륭하고, 품위 있는 것으로 바꾸어 주리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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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네트(Sonnet)는 (세익스피어 소네트 154편)
유럽의 정형시의 한 가지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작은 노래'라는 뜻이다. 13세기경까지 엄격한 형태와 특정 구조를 갖춘 14줄로 구성된 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소네트는 엄격히 각운이 맞추어지는 형식이며,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으나, 잉글랜드로 전해져, 영국 시를 대표하는 시 형식의 한 가지가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소네트 작가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로, 154개의 소네트를 남겼다.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 소네트에서 벗어난 파격에 있다. 페트라르카(Petrarch) 이후 거의 모든 소네트에 등장하는 인물은 시인과 그가 시를 바치는 이상화된 여인이었다. 그녀는 물론 빼어난 미인이고 신분이 시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높은 귀부인이었다. 그러므로 시인의 사랑은 인간의 약점을 뛰어 넘어 신을 바라볼 정도로 시인을 고양시켜 준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소네트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젊은 귀족에 대한 사랑을 이상할 정도로 모호하고 고통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남성을 찬미하기 때문에 심지어 동성연애자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소네트의 운율을 매기는 법은, 8개의 줄을 한 묶음으로 놓는 방식과, 네 줄씩 세번이 나온 후 두 줄이 추가되는 방식이 있다. (14행이 된다.)
소네트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페트라르카, 셰익스피어, 존 밀턴, 워즈워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