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이후
부활 이후에도
부활이 필요하다
부활 이후에도
당시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시든 꽃들은 다시 시들고
참회 나무는
참회의 기도를 중단하고
마른 강물은 다시 마르고
죽은 별들은
다시 죽기 시작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도 전에
질리늘 잃고 쓰러졌으므로
부활 이후에도 당신은
십자가에
다시 못 박혀야 한다
당신을 넘어 당신에게로
가기 위해서는
부활 이후에도 부활의 새벽이
찾아와야 한다
맹인의 촛불
춘천 우두동에 있는 공병부대에서 군종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남이 보기에 내가 무슨 대단한 신앙이 있어서 군종사병으로 복부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매주 군목이 설교하는 동안만이라도 마음 놓고 잠이라도 좀 자려고, 또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찬송가를 부르면 왠지 어머니가 내 곁에 늘 계시는 것 같아서 군인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간 것이 인연이 되어 군종사병이 되었을 뿐이다.
군종사병으로 복무하는 3년 동안 해마다 봄이면 부활절 예배를 보았다. 당시 부활절 예배는 꼭 군민 합동으로 춘천시청 광장에서 새벽 촛불 예배로 보았는데, 나는 아직도 처음 촛불 예배를 보았던 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날 내부반에서 일어난 것은 새벽 4시였다. 단 일초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군인교회 가자 부지런한 병사들이 벌써 앞마당에 모여 있었다. 나는 병사들에게 미리 준비해두었던 초를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군목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사열종대로 줄을 맞추어 춘천 시내를 구보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공병부대는 소양강 건너편에 있었으므로 춘천시청으로 가려면 소양교를 건어 삼십여 분간 구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군대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병사들은 구보하기를 얼마나 싫어하는가. 그러나 그날의 새벽 구보는 참으로 신선했다. 싫기는커녕 새벽달을 안고 길이 끝나는 곳까지 한없이 달리고 싶었다. 아무리 달려도 힘이 용솟음칠 것 같았다.
그것은 손에 쥔 초 한 자루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들 손에 소중한 초 한 자루씩 쥔 채 달리고 있었다. 다들 평소와 달리 진지하고 경건한 표정이었다. 봄날의 새벽, 어둠 속에서 초 한 자루를 손에 쥐고, 무엇 때문에 어지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춘천 시내를 씩씩하게 달렸다.
시청 광장에는 부활절 예배를 보러 온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부대에서 온 군인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우리는 민간인들 틈에 섞여 예배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예배는 먼저 촛불을 밝히는 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촛불은 단상에서 처음 붙여져 맨 앞자리 사람의 초로 옮겨졌다. 그리고 곧바로 그 뒷 사람에게 옮겨졌다. 촛불이 옮겨질 때마다 어둠이 조금씩 옷을 벗고 사라져갔다.
나는 줄 한가운데 서서 긴장된 마음으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게 불을 붙여준 사람은 어느 주름투성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돌아서자마자 내게 밝은 미소를 보냈다. 그리 고 꺼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촛불을 감싸면서 가만히 내 손을 쥐었다. 순간 마음이 떨렸다. 할머니의 빛이 내 어두운 가슴속을 환히 밝히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할머니와 나의 손은 촛불이 다 옮겨붙을 때까지 한동안 그렇게 맞닿아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촛불을 옮겨줄 차례였다. 내 뒤에는 중학교 모자를 쓴 소년이 서 있었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 처럼 나도 소년에게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가만히 촛불을 감싸면서 내 손을 거머쥔 것처럼 나도 소년의 손을 거머쥐고 불을 붙여주었다.
시청 광장은 어느새 촛불의 광장이 되어 있었다. 어둠속에 묻혀 있던 시청 광장은 마치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가슴께까지 촛불을 들고 예수의 부활을 기뻐하고 있었다. 나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부활의 빛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까 그 소년은 또 누구에게 불을 붙여주고 있을까 하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소년은 검은 안경을 쓴 맹인의 초에 불을 댕겨주고 있었다.한 손엔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엔 초를 든 맹인이 두손을 모아 소년의 불을 옮겨 받고 있었다. 순간, 내 가슴은 심하게 뛰었다. 맹인의 손에도 촛불은 켜져 있었다. 빛을 볼 수 없는 그의 손에도 촛불은 어둠을 밝히며 타오르고 있었다. 맹인의 손에 들린 부활의 촛불! 그것은 바로 새 생명의 촛불이 아니였을까.
지금도 봄이 오면 맹인의 초에 불을 붙여주던 소년과,비록 볼 수는 없지만 촛불을 들고 부활절 예배를 보던 맹인이 떠오른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춥듯이 나는 늘 봄이 오기 전이 왠지 춥고 두렵다. 그러나 맹인의 촛불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봄을 기다른 일도 부활을 기다는 일도 두렵지 않다.
나는 봄이 오고 다시 꽃이 피는 데서 부활에 대한 믿음을 지닌다. 혹한의 겨울을 견딘 꽃나무들이 잎을 틔우고 꼿을 피우는 것이야말로 바로 부활이다. 어느 날 문득 거리에 연노란 산수유가 피고, 거무튀튀한 나뭇가지에 우아한 목련이 피고, 산 아래 붉은 진달래가 피어난 그 눈부신 아름다움이야말로 바로 부활의 아름다움이다.
이렇게 나는 자연을 통해 부활의 정신을 이해하고 믿는다. 그러나 신과 인간을 통해 부활을 이해하고 믿음을 지니기는 어렵다. 천주교인으로서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데 내가 그렇다. 예수가 죽은 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부활하고, 우리 또한 죽으면 〈사도신경〉있는 것처럼 육신이 부활한다고 믿어야 하는데, 나는 부모님의 육신이 완전히 흙이 된 것을 보고 육신의 부활을 믿기 어렵다. 화장한 부모님의 유해를 친환경 유골함, 즉 녹말로 만든 유골함에 모셨다. 녹말로 만들었기 때문에 땅에 묻은 지 한 달만 되면 유골함이 놀아버린다. 그 속에 담긴 유해도 곧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곁에 묻으면서 찾아보았으나 아버지의 유해는 이미 흙이 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인간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지닌다. 오늘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며 존재하고 있는 까닭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힘 때문이다. 어머니는 흙이 돼 그 존재가 사라졌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던 사랑은 죽지 않고 살아 아들인 내 가슴에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 아니고 무엇일까, 부활절 날, 서로의 촛불과 촛불이 사랑을 밝히듯 내 어머니의 사랑도 하나의 부활의 촛불이 되어 내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는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