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85]‘황금종이’가 대체 무엇이길레?
하루밤새 조정래 작가의 『황금종이』(2023년 11월 해냄출판사 발행) 1, 2권 626쪽을 통독했다. ‘황금종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황금종이’는 돈, 돈, 돈 할 때의 ‘돈’의 별칭으로는 훌륭한 작가의 조어라 하겠다. 돌고 돌는 게 돈이라도 하지만, 순식간에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돈, 그 돈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인가? 돈의 위력威力을 한번 생각해보자. 돈의 유무와 많고 적음이 행복과 불행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까? 작가는 갈수록 악화일로 중인 천민자본주의의 실상을 매스컴 등을 통해 접하면서 ‘돈이면 다 된다’는 뒤틀린 세상의 부조리에 화가 잔뜩 난 듯하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도 안되는 인사말을 일부러 퍼트리는 듯한 정부는 또 무엇인가?
인정人情은커녕 “돈이면 최고”라는 짐승보다 못한 심성心性으로 살아가는 졸부, 불효자, 파락호, 경상배, 검사, 정치인들의 얘기를 하나하나씩 예시한다.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럴 수 없는 일’조차 도덕 종교 양심 등 보다 몇 배 상위개념으로, 우선순위로 자리잡은 ‘돈의 위력’을 소설형식으로 고발하고 있다.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세상의 사실이지만, 전개되는 서사敍事로 재확인시켜주는 작가의 ‘글담’이 내내 씁쓸했다. 근현대사를 다룬 대하 장편소설로 신기록을 세운 작가는 여전히 이 사회에 할 말이 많은 듯하다. 16년만에 가석방된 ‘글의 교도소’로 다시 자청하여 들어가다니? 하여 잇달아 나온 그의 역작들이 <허수아비춤> <천년의 질문>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등이 아니었던가. 자칫하면 작가의 명성에 흠이 될 우려도 있지만, 그는 쉬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다시 한번, 작가의 믿기지 않은 에너지가 놀랍지만, 일등 독자로서는 작가를 존경하는 만큼 이제 좀 쉬셨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어느새 ‘원로 꼰대’가 되어버린 작가는 남북통일, 민족, 사회적 선진국, 이상기후와 저출산의 해법, 인구소멸 위기 등에 대한 관심을 하룬들 잊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이런 꼰대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그는 이번 총선에서 조국혁신당 후원회장이 되었다고 한다. 잘한 일이다), 언론(특히 신문과 방송)의 ‘프레임’에만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은 유튜브 세상이 된 지 오래이고, 수많은 대안언론들이 소위 레거시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젊은 세대들에 희망을 가져볼만도 하다. 어찌 어둠만 있겠는가. 작가가 발로 뛰며 얻는 정보도 이제는 다양해졌다. 시중의 흘러다니는 얘기들을 잘 버물려 엮는 것만으로 안되는 세계가 있는 듯하다. 그러기에 최근의 어느 작품은 대작가답지 않은 태작駄作이라고 생각된다. 아들과 손자세대들을 위한 원로꼰대님의 속깊은 염려와 걱정을 왜 모르겠는가. 존경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작금의 교육현실에 대한 개탄, 돈에 대한 무한욕망과 집착, 거기에서 파생되는 숱한 현상은, 작품 속 어느 교수의 “돈은 인간의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다”는 명제가 실감이 난다. 실존과 부조리 사이에서 우리의 고뇌가 깊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한없이 답답하지만, 다시 심호흡을 해본다. 조만간 작품 속에 나오는 ‘빛의 고향’광양 재첩국의 제맛을 보러 가고 싶다. 읽어서 나쁠 것은 전혀 없으므로(뒤죽박죽된 머리로 약간은 심란하지만), 도서관 등에서 빌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