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이 말은 애초 2세기 무렵 로마의 법률가인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가
“이것은 진실로 지나치게 심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기록된 법이다”
라고 한 말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저작권자로 잘못 알려지게 된 데는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의 역할이 크다.
그는 1937년에 출간한 <법철학>에서 실정법주의를 강조하면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감옥에서 순순히 독배를 받은 것은
“국가의 실정법에 복종하는 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따라야 할 시민의 의무”
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군국주의 옹호론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해방 전 경성제대 법학부 교수를 지내며 한국인 제자들한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에서 이 말이 소크라테스 어록으로 더욱 굳어진 것은 군사정권의 득세와 무관하지 않다.
‘유신헌법은 국민 91.5%가 찬성해 만들어진 법이니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
든가,
‘유신헌법에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권이 명시돼 있으므로 긴급조치는 합헌이다’
라는 따위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소크라테스가 악용된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에 헌법과 관련된 초·중·고 교과서의 오류 수정을 요청하면서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이 준법정신 강조를 위한 사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 것은 음미할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또다시
‘악법도 법’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등이 대표적인 악법 조항으로 지적해 온 해직자 조합원 배제를 고집하며 정부가 전교조 노조 지위 박탈을 추진하는 논리도
“악법도 현행법이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직원을 수사하려면 국정원장에 통보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규정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내용의 정당성을 떠나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 판치는 모습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과거로 후진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서글픈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