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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주석/일반자료 ‘나는 스스로 있는 자’ NO, ‘나는 너와 함께 하는 자’ YES출애굽기 3장 14절 번역에 대한 새로운 제언 제기…‘관심’
주의검을보내사 추천 0 조회 251 22.11.14 23:05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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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11.14 23:39

    첫댓글 이태훈 교수가 재밌는 사람이네요. 그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제기된 겁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마 현대성서주석에도 저 설명이 실려 있을 겁니다. 저도 이미 20년 전부터 그렇게 교인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죠.

  • 작성자 22.11.15 00:37

     ‘I will be who I will be: 나는 되고자 하는 대로 될 나일 것이다’ 로 직역해서 가르치신다는 말씀인지요? 저는 이런 번역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엄청난 관심과 흥분에 설레고 있습니다. 물론 이 번역도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를 다 옮기지 못한다는 건 덤으로 짜릿하고요. 역시 신의 이름을 인간 언어로 담지 못해야 정상이 아닌가요. 이름이라기보다는 존재적 속성이라 해야 맞는다고 합니다.

  • 22.11.15 00:04

    @주의검을보내사 이 내용을 공부한지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걸 전제로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 나는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는 자이다.
    =나는 내 백성과 함께 있는 자이다. 내가 있고 싶은 곳은 내 백성들이다.

    이 정도로 기억이 나네요. 결국 하나님은 자기가 택한 백성과 함께 하기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존재라는 뜻일 겁니다.

  • 작성자 22.11.15 00:05

    @삼번국도 이 기사가 2007년 것이니 이태훈 교수가 그전 학계의 설왕설래를 집적해서 논문을 낸 모양이에요.

  • 22.11.15 00:12

    @주의검을보내사 [현대성서주석]은 [interpretation commentary]를 번역한 책입니다. 이 책이 어느 정도 오래됐는지는 모르겠군요. 번역본인 현대주석이 2001년이니 그보다 많이 앞섰겠지요.

  • 작성자 22.11.15 00:38

    @삼번국도 저는 I will be who I will be 라는 번역이 더 맘에 들어요.

    ㅡㅡㅡㅡㅡㅡ

    분명히 하자.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일찍이 히브리인들이 ‘바람’ 또는 ‘숨결’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로 불렀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무한하고 무규정적 실체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다고 묘사한 신은 그 어떤 형체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모든 형체가 있는 것들의 근원이 된다. 물론 신은 전능하므로 그가 어떤 형체를 갖고 나타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구약성서에서 아브라함에게 그랬듯이 신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창세기 18~19 등) 모세와는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출애굽기 33:11, 민수기 12:6~8 등) 하지만 이것은 신이 자기를 나타내는 한 방법일 뿐 신이 가진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당연히 신약성서에서도 신은 “어느 때나 하느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요한일서 4:12), 또는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디모데전서 6:16)로 표현되었다.
     

  • 작성자 22.11.15 00:39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기독교 신학에 나타난 신의 모습은 우주의 근원을 탐색하는 현대 물리학자들이 ‘퍼텐셜’이라고 부르는 것과 오히려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아무런 형체가 없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도 인지할 수는 없지만 우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이 그것에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소립자장’을 퍼텐셜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뮌헨의 막스플랑크연구소 소장 한스 페터 뒤르는 물리학자들이 퍼텐셜이라 부르는 것을 신학자들은 ‘신의 숨결’이라 부른다고도 했다.

    하지만 ‘퍼텐셜’이 우리가 앞서 말했던 ‘존재’나 기독교에서 섬기는 신은 아니다. 왜냐하면 퍼텐셜이 모든 물질의 근원이라 해도 그것은 여전히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퍼텐셜을 신이라고 하면 신도 세계의 일부가 된다. 그러면 기독교의 신이 가진 중요한 속성인 신의 절대적 독립성, 곧 신의 세계 초월성이 훼손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퍼텐셜을 가능케 하고 또한 포괄하지만 퍼텐셜을 초월한다. 신의 크기가 모든 물리적 공간의 크기를 가능하게 하지만 그것을 초월하고, 신의 영원성이 모든 물리적 시간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것을 초월한다.
     

  • 작성자 22.11.1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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