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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豊 柳 마 을 원문보기 글쓴이: 낙민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
黃 渭 周*15)
1. 머리말
2. 「士夫日課」의 자료적 성격
3. 선비의 하루 일과와 특징
4. 마무리
선비란 그 계층적 성격에 있어서, 위로 관료에 대해서는 언제나 준비
된 비판적 대안 세력으로, 아래로 서인에 대해서는 학문과 도덕을 솔선
하는 모범적 지성인으로, 대단히 중요한 關鍵的 자리에 있었다. 그런 만
큼 그들이 영위한 일상생활의 양상 또한 당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까지 이들의 하루 생활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
이었는지 관심 있게 주목해 본 연구가 없다. 본고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지금까지 학계에 소개된 적이 없는 「士夫日課」를 소개하고, 여기에 수록
된 사항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선비의 하루 일과를 구체적으로 검증해 보
고자 한 것이다. 결과, 「사부일과」가 퇴계의 후손이면서 이상정의 문인
이기도 한 어떤 인물이, 1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국내외 유학자들의 언
행을 널리 참고하여, 철저하게 유학적 입장에서 작성한, 흥미로운 선비
*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wzhwang@knu.ac.kr
국 문 초 록
退溪學論集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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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의 일과표임을 알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조선시대 선비의 일상적 삶의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선비의 하루 일상은
잠에서 처음 깨어나는 鷄鳴(01~03시)부터 다시 잠자리에 드는 人定
(21~23)과 夜半(23~01시)까지 대략 12시각으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각
시각별로 그때마다 수행해야 할 세부적인 사항을 배치함으로써 대단히
체계적인 양상을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①수면시간이 4시간 미만
일 정도로 근면하였다, ②일과의 핵심이 학자답게 講學 중심이었다, ③
매일 6회 이상 부모를 뵐 정도로 효의 실천에 투철하였다, ④경제활동을
포함한 집안 살림의 운영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⑤식사는 아침이 무겁고
저녁이 가벼운 朝飯夕鬻의 형태였다는 등 몇 가지가 특징적으로 보였다.
선비, 사부일과(士夫日課), 일과표(日課表), 일상생활, 강학(講學)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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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선비는 하루 생활을 어떻게 계획하고 실천하였을까? ‘독서하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고 관직에 종사하는 사람을 大夫라 한다.’1)는 말에 잘 드
러나듯, 선비란 현직 관료보다 학식과 덕망을 갖춘 재야 지식인을 주로
가리킨다. 그리고 독서와 講學을 주업으로 삼는 학자형 인물2)이란 점에
서 생산 노동이나 기술 유통 등에 종사한 일반 서민과 구분되며, 관료와
더불어 士大夫, 서민과 더불어 士庶人이라고도 하였다.
선비란 이처럼 그 계층적 성격에 있어서, 위로 관료에 대해서는 언제
나 준비된 비판적 대안 세력으로, 아래로 서인에 대해서는 학문과 도덕
을 솔선하는 모범적 지성인으로, 대단히 중요한 關鍵的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그들이 영위한 일상생활의 양상 또한 당연히 다른 모
습을 보여주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까지 이들의 하루 생활이 구체
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관심 있게 주목해 본 연구가 없다.
이런 점에서 「士夫日課」는 대단히 흥미로운 자료라 할 만하다. 제목 그
대로 士夫, 곧 선비의 하루 일과를 기록해놓은 희귀한 자료이기 때문이
다. 「士夫日課」는 아직까지 학계에 소개된 적이 없고, 다른 이본을 찾아
보기도 어려운 유일본이다.3) 따라서 여기에 수록된 내용과 특징을 세밀
하게 살펴본다면 그 동안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선비의 하루 생활에 대
하여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획득할 수 있을 듯하다.
본고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우선 「士夫日課」의 자료적 성격을 간단하
게 살펴본 다음, 여기에 수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선비의 하루
1) 朴趾源, 燕巖集 卷8, 別集, 放璚閣外傳, 「兩班傳」 , “讀書曰士 從政爲大夫”
2) 선비가 학식과 덕망을 갖춘 학자형 인물이란 점은 詩經, 邶風 「北門序」, “刺士
不得志也”란 구절 疏에 “士者 有德行者之稱”, 論語 「子張」 “士見危致命”에 대
한 皇疏에 “士者 知義理之名”, 國語「齊語」 “昔聖王之處士也” 주석에 “士 講學
道義者也”라 한 등에서 두루 확인할 수 있고, 中文大辭典에서는 이를 종합하
여 “有德行學識之人”이라 하였다.
3) 「士夫日課」는 2012년 필자가 청송군 박물관 유물 감정위원으로 참여하였다가
처음으로 발견하였으며, 이후 군청의 협조로 자료 내용을 정밀하게 검토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비러 귀한 자료를 열람시켜준 청송군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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➉ 人定. 亥
(21~23시)
본문 62자
➆ 日晡. 申
(15~17시)
본문 79자
➃ 禺中. 巳
(09~11시)
본문 88자
➀ 昧爽(寅)
( 03~05시)
본문 63자
⑪ 夜半. 子
( 23~01시)
본문 36자
➇ 日入. 酉
(17~19시)
본문 60자
➄ 日中. 午
(11~13시)
본문 80자
➁ 日出. 卯
(05~07시)
본문 62자
⑫ 鷄鳴. 丑
(01~03시)
본문 49자
➈ 黃昏. 戌
(19~21시)
본문 80자
➅ 日昳. 未
(13~15시)
본문 59자
➂ 食時. 辰
( 07~09시)
본분 73자
일상을 검증해보고자 한다. 이와 같은 작업은 특정 자료 중심의 제한적
논의란 점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특별히 유의하지 못하였던 선
비의 일상적 삶의 실체를 구체적 자료를 통해 근거 있게 해명해 볼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일정한 의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士夫日課」의 자료적 성격
「사부일과」는 가로70㎝×세로115㎝ 가량의 전지 1장을 가로4단, 세로
3단, 전체 12단락으로 접어서 구분한 다음, 각 단락별로 하루 12시각의
일과 내용을 구분해서 기록하였는데, 기록 형식을 먼저 간단히 정리해보
면 아래와 같다.
<士夫日課의 기록 형식>4)
위와 같이 「사부일과」는 전지 1장에 ①昧爽(03~05시)부터 ⑫鷄鳴(다
4) 이 표에서 ( )안의 시간 표기와 본문 글자 수는 필자가 조사해서 보충한 것이다.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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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날 01~03시)까지 하루 12시각의 일과를 우상에서 시작하여 좌하의
방향으로 세로쓰기 형태로 기록하였다. 각 단락 상단에는 먼저 ‘昧爽乃
興’ ‘盥櫛衣冠’ ‘適父母之所晨省’ ‘就書室靜坐讀書’ 등 시각별 주요 실천
사항 몇 가지를 큰 글자로 제시하였고, 개별 실천 사항 하단에는 그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참고할 가치가 있는 선현들의 언행이나 행적을 雙行
의 주석으로 제시하였으며, 각 단락 마지막 부분에는 다시 그 단락의 요
점이나 정신, 특별히 유의해야 할 사항 등을 1자 낮추어 기록하였다. 그
래서 본문이 790자, 주석이 3590자, 전체 4380자 정도 되는데, 외형상
으로는 낱장 문서 1장에 불과하지만, 실재 내용은 10행 20자의 목판으
로 계산할 경우 약 11면 22쪽에 달할 정도로 대단히 다양하고 풍부한
편이다.
이 글은 서문이나 발문이 따로 없어서 저자와 편찬 시기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록 내용 가운데 이를 개략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있다. 하나는 제1단락 매상(昧爽) “부모님 처소
에 가서 새벽 문안을 드린다”(適父母之所 晨省)고 한 부분의 주석에서
퇴계의 언행을 인용하면서 ‘선조 퇴계선생’(先祖退溪先生)이라고 한 표현
이다.5) 이 글을 작성한 주체가 퇴계를 선조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 곧
퇴계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
석 부분에 인용한 허다한 인물 현황이다. 먼저 이 글에서 인용한 인물
현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〇 중국 인물(〇 안은 단락, 밖은 인용 횟수)
朱 子(28회) : ①4 ②5 ③3 ④4 ⑤4 ⑥1 ⑦2 ⑨3 ⑩1 ⑫1
程 子(14회) : ②3 ③4 ④1 ⑤1 ⑦2 ⑨1 ⑩1 ⑪1
薛 瑄( 4회) : ④2 ⑩2
范祖禹( 2회) : ①1 ⑨1
기 타(각1회) : 周敦頤⑦, 張載②, 李侗⑫, 眞德秀⑨, 夙興夜寐箴(宋,
陳栢)⑫, 尹鍾濂⑪, 專文 正公⑫, 夏原吉④, 高攀龍③,
5) 「士夫日課」, 昧爽(寅) 주석, “先祖退溪先生 每鷄鳴 盥漱衣帶 以省大夫人 婉容愉
色 無或少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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〇 한국 인물
李象靖(18회) : ①3 ②1 ③1 ④4 ⑤2 ⑦1 ⑧3 ⑩2 ⑪1
李 滉( 8회) : ①2 ②1 ③2 ⑤1 ⑥1 ⑨1
李 珥( 5회) : ③1 ⑤1 ⑥1 ⑧1 ⑨1 (9) *⑥1은 擊蒙要訣
기 타(각1회) : 鄭汝昌⑨, 趙光祖①, 曹植①, 金長生③, 柳馨遠⑥,
李瀷⑧,
〇 경서, 기타
大學⑩, 中庸①⑨, 論語③, 孔子⑥, 顔淵①, 孟子③④⑥⑫, 詩經⑩2,
書傳⑫, 禮記②⑧, 國語⑨, 古詩⑨, 養生書⑦⑩
위에 제시한 인물 가운데 생몰연대가 가장 늦은 사람은, 중국의 경우
명나라 말기의 高攀龍(1562-1626)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후기의
李瀷(1681-1763)과 李象靖(1711-1781)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인물 가
운데 인용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은 李滉(8회) 李珥(5회) 李象靖
(18회) 등인데, 그 중에서도 李象靖의 언행을 인용한 것이 특별히 두드
러졌다. 하루 12시각 대부분의 단락에 인용하지 않은 예가 거의 없고,
전체 인용 횟수 또한 총 18회로, 李滉(8회)의 2배, 李珥(5회)의 3배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 글이 다른 누구보다 이상정의 언행을 특히
중요하게 참고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 글은
李象靖(1711-1781) 보다 다소 늦은 시기, 곧 1800년 전후의 어떤 시기
에 작성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며, 작성 주체 또한 이상정의 문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인용 인물 모두가 유학자 일색이란
점이다. 중국의 경우 孔子 顔子 孟子부터 주희의 스승 李侗과 朱熹, 程
子 張載 周敦頤 등 宋朝六賢 및 유가 經書類가 모두 그렇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趙光祖 鄭汝昌부터 李滉 李珥 曹植 金長生 李瀷 李象靖 등에 이
르기까지 유학으로 특별히 명망이 높은 인물 아닌 사람이 없다. 유학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는 ‘經書, 기타’부분에 제시한 國語(⑨) 古詩
(⑨) 養生書(⑦, ⑩) 정도를 들 수 있는데, 이마저도 전체 114회의 인용
가운데 고작 4회 3%에 불과하며, 내용 또한 유학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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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그리고 제6日昳(13~15시) 단락에서 禮 詩 書(글씨) 數(셈) 등 육
예(六藝)를 두루 공부하게 하면서도 “절대로 이단 문자에 눈을 두지 말
라”, “이단을 배척하고, 진실을 어지럽히는 문자는 보지 말라”고 연이어
강조하였는데6), 이를 통해 이 글이 철저하게 유학의 관점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사부일과」는 퇴계의 후손이면서 이상정의 문인이기도 한 어
떤 인물이, 1800년을 전후한 어떤 시기에, 국내외 유학자들의 언행을 널
리 참고하여, 철저하게 유학적 입장에서 작성한, 조선후기 선비의 일과
표라 할 수 있겠다.
3. 선비의 하루 일과와 특징
「사부일과」에 기록된 12시각은, 오늘날 시간 개념으로 보자면, ①昧爽
(03~05시)과 ②日出(05~07시)은 아침 식전 시간, ➂食時(07~09시)와
➃禺中(09~11시)은 오전, ➄日中(11~13시)과 ➅日昳(13~15시)은 오후,
➆日晡(15~17시) ➇日入(17~19시) ➈黃昏(19~21시)은 저녁, ➉人定
(21~23) ⑪夜半(23~01) ⑫鷄鳴(01~03)은 잠자리에 든 밤중 시간대라
할 만하다. 그리고 밤중 시간대에 포괄시켜놓은 ⑫鷄鳴은 이미 잠에서
깨어나 있는 시간이란 점을 감안하면 ①昧爽 앞에 배치하여도 무방할 듯
한데, 이때부터 선비가 실천한 일을 본문에 기록된 사항을 중심으로 검
토해 보겠다. 먼저 鷄鳴부터 日出까지 식전 시간대다.
6) 「士夫日課」 日昳(未) 마지막 부분에 “此時 藝業雖勤 切勿寓目於異端文字” “斥異
端 勿觀其亂眞文字”라 하였고, 그 주석에 논어의 “孔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와 맹자 의 “孟子曰 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
也 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란 구절을 인용하여 이단에 대한 배척의 논리를 거
듭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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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鷄鳴(丑. 01~03시)
- 잠에서 깨어나 마음을 잡아 일깨운다.
- 혹 이전의 허물을 반성하고,
- 혹 새로 깨우친 실마리를 풀어낸다.
- 근본이 서고 나서, 昧爽이 되면 곧 일어난다.
이 때 지혜와 생각이 트여 日新의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日新의 효과란 지혜가 더욱 밝고 덕이 더욱 증진됨이다.7)
① 昧爽(寅. 03~05시)
-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 세수하고 머리 빗고 衣冠을 갖추어,
- 부모님 처소에 가서 새벽 문안을 드린다.
- 집안사람들을 불러 사무를 정리한다.
- 서실로 가서 조용히 앉아 독서한다.
이 때 공부는 시작을 바르게 하며, 立志와 敬身에 전념한다.
立志는 성인이 되기를 스스로 기약해야 마땅하고,
敬身은 小學의 실천을 스스로 기약해야 마땅하다.8)
② 日出(卯, 05~07)
- 의관을 정제하고 다시 부모님 처소에 가서 인사드린다.
- 물러나 자제에게 그 날 공부할 서책을 가르친다.
- 연이어 식사 때까지 독서한다.
이때는 心氣가 淸明하니 讀書와 窮理 공부를 함이 마땅하다.
독서는 모름지기 익숙하게 읽고 정밀하게 생각함을 모범으로 삼
고, 궁리는 모름지기 분명히 따져 환하게 통함을 功으로 삼아야
한다.9)
위를 보면 먼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새벽 2시 전후였음을 알 수
7) 「士夫日課」, “鷄鳴(丑)而寤 提醒此心. 或省舊愆, 或紬新得. 本旣立矣 昧爽乃興.
此時 知思開發 可以驗日新之效 日新之效 知益明而德益進”
8) 「士夫日課」, “昧爽(寅) 乃興. 盥櫛衣冠, 適父母之所 晨省. 招家衆 整理事務. 就書
室 靜坐讀書. 此時工夫 造端正宜 專心於立志敬身之道. 立志當以聖人自期, 敬身
當以小學自期”
9) 「士夫日課」, “日出(卯) 整衣冠, 更進父母之所 拜謁. 退而課授子弟書. 乃終朝讀書.
此時 心氣淸明 宜從事於讀書窮理之學. 讀書須以熟讀精思爲法, 窮理 須以明辨融
通爲功”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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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그러나 이때는 눈만 뜨고 정신만 차릴 뿐, 바로 일어나지는 않았
다. 잠자리에서 그대로 옛 허물을 반성하고 새로 깨우친 실마리를 풀었
다. ‘옛 허물을 반성함’은 行의 측면에서 ‘지난 잘못을 살펴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함’10)이고, ‘새로 깨우친 실마리를 풀어냄’은 知의 측면
에서 ‘경전의 義理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 바르고 합당한 견해를 얻음’11)
이라 하였다. 그러니까 눈을 뜨며 시작하는 첫 일이 곧 지난 행동에 대
한 성찰과 불충분한 지식에 대한 사색을 병행하여 知와 行의 근본을 세
우는 일이었다 하겠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지식이 더욱 밝아지고 덕이
더욱 증진되는 日新의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재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각은 새벽 4시 전후인 昧爽이었다. 이 때
일어나서 하는 일은 대략 3가지였다. 세수하고 의관을 갖춘 다음 부모님
처소로 가서 문안을 드리는 일, 집안사람들을 불러 그날 해야 할 事務를
분담시키는 일, 서재로 가서 독서하는 일 등이었다. 이 가운데 세수하고
의관을 갖추는 것은 하루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행위로 보아 대단히 중
시하였고12), 부모님 처소로 가서 문안을 드리는 것은 문 밖에서 밤새
안녕하신지를 여쭙는 방식으로 하였다. 그리고 집안일은 마구(廐) 곳간
(庫) 부엌(庖廚) 논밭(田園) 등의 職種과 농사(耕) 베짜기(織) 상거래(交
易) 등의 業務를 두루 고려하여 분담시켰고13), 독서는 聖人이 되고자 하
는 立志와 小學을 실천하고자 하는 敬身에 전념하였다.
日出, 곧 새벽 6시 무렵이 되면 다시 의관을 정제하고 부모님 처소에
가서 인사를 드렸다. 이때는 문 밖에서 안부를 여쭙는데 그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이부자리를 치우고 방을 깨끗이 청소해드린 다음 모시고
앉아 이야기를 하고, 시키는 일이 있으면 거역하지 않고 받들어 실행하
였다14). 그리고 물러나서는 집안 자제들에게 그날 공부해야할 서책을
10) 「士夫日課」, 鷄鳴 주석 “思省平日病痛 求其矯救之術”
11) 「士夫日課」, 鷄鳴 주석, “紬繹經傳義理 得其正當之見”
12) 「士夫日課」, 昧爽 주석, “晨興而盥櫛衣冠 是日用工夫之權輿 世之惡拘檢者 囚首
喪面 自許淸直 是欲同人道於犬馬也”
13) 「士夫日課」, 昧爽 주석, “分之以職 授之以事(職如廐庫庖廚田園之類 事如耕織交
易之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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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쳤고, 곧 이어 아침 식사 때까지 그대로 독서하였다. 자제를 가르칠
때는 자신의 용모를 먼저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집중하여 정성껏 자세히
가르치려 노력하였다.15) 또 이 시간대에는 心氣가 모두 맑고 밝아서 讀
書와 窮理를 하기에 딱 알맞다고 보았다. 그래서 특히 시간을 아껴 공부
에 매진하고자 하였는데, 독서는 반드시 푹 익을 정도로 읽으면서 정밀
하게 생각하고, 窮理는 분명하게 따져 막힘없이 두루 통함을 표준으로
삼았다.
③ 食時(辰, 07~09시)
- 다시 부모님 처소에 가서 음식을 올린다.
- 집안 식구들과 더불어 나누어 앉아 식사하고,
- 물러나서 책을 본다.
- 자제에게 글씨 쓰기를 부과한다.
-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여 講論한다.
- 혹 출입하여 보고하고 알현한다.
이때는 일이 점점 많아지니 더욱 마땅히 存養省察에 유의해야
한다.
存養은 모름지기 動靜에 일관되어야 하나 靜을 주로하고,
省察은 모름지기 內外를 겸하여야 하나 幾微에 삼간다.16)
④ 禺中(巳, 09~11시)
- 자제의 독서를 단속하고, 자신도 굳게 앉아 독서하며, 外物에
굴하지 않는다.
- 사람이 혹 찾아오면 반드시 책을 정리해 덮고 더불어 이야기한
다.
- 손님이 있으면 예를 갖춰 맞이하여 접대하고,
- 일이 있으면 사리에 맞게 조치하며,
- 應接이 끝나면 곧 바로 책을 대한다.
14) 「士夫日課」, 日出 주석, “斂衾卷席 淨掃室中 侍坐陪話 有事則致敬服役(父母之
命 勿逆勿怠)”
15) 「士夫日課」, 日出 주석, “正容專心 誨諭諄悉”
16) 「士夫日課」, “食時(辰) 更進父母之所 饋饌. 與家衆 分坐而食. 退而看書. 課子弟
寫書. 有同志則會講. 或出入報謁. 此時 事物漸繁 尤當加意於存養省察. 存養須貫
動靜而主乎靜, 省察須兼內外而愼於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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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응접에 많아서 克己와 擴充의 일에 힘을 다하기 어렵다.
克治는 마땅히 사욕을 제거하는 어려움을 먼저 하고,
擴充은 마땅히 곡진하게 그 천성을 다해야 한다.17)
위는 ③食時(07~09시)와 ④禺中(巳, 09~11시), 곧 아침식사 이후 오
전 중의 일과를 기록한 것이다. 아침 식사는 대략 8시 전후에 하였다.
식사는 부모님 처소에 가서 먼저 음식을 올린 다음, 집안 식구들이 함께
모여 앉아서 하였다. 식사할 때는 음식은 균일하게 배식하는데 유의하였
고, 말소리 수저소리 씹는 소리 등이 들리지 않도록 하였으며, 배가 고
프다고 많이 먹지도 않았고, 배가 부르다고 안 먹지도 않았다.18)
식사 후에 하는 일은 대략 세 가지였다. 하나는 식전부터 하던 독서를
지속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제들에게 글씨 쓰기를 부과하고 독서
를 단속하는 일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업무 차 출타하거나 찾아오는
손님을 응접하는 일이었다. 이 세 가지는 시간을 따로 구획하지 않았다.
독서 중에 사람이 찾아오면 책을 접어놓고 예를 갖추어 응접하였고, 응
접이 끝나면 곧 바로 다시 책을 펼쳐 독서하였다. 그때마다 형편에 따라
서 적의 대처하였던 것이다. 다만 오전 중에는 일이 점차 많아지므로 存
養省察에 특별히 유의하고자 하였고, 모든 행동에 사욕을 버리고 天性을
확충하는 데 애쓰고자 하였다.
⑤ 日中(午, 11~13시)
- 다시 부모님 처소에 가서 살피고 문안드린다.
- 종들이 맡은 바 일을 검사해 보고,
- 자제가 독서한 바를 검사해 본다.
- 혹 벗을 만나 서로 어울려 충고하고,
17) 「士夫日課」, “禺中(巳) 勅子弟讀書, 己亦堅坐讀書, 不爲外物所勝. 人或來見 必整
捲冊子 與話. 有賓則以禮延接, 有事則以理措處. 應接纔了 旋卽對書. 此時應接旣
多 尤難致力於克己擴充之事. 克治要當先難祛私, 擴充要當致曲以盡其性.”
18) 「士夫日課」, 食時 주석, “飮食必均一 〇論語曰不患寡而患不均 〇必愼節 擧匙下
箸 毋得急遽 毋令咀嚼有聲 毋貪求多食 〇退溪 飮食之際 不聞言語匙箸之聲 〇
大山 羹飯匙箸 大約有定數 飢不頓加 厭不全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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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經史子集을 음미하여 읽으며,
- 혹 지인과 친구의 편지에 답장을 쓴다.
이때는 경전과 史書를 앞에 가득 두고, 博學文章 공부에 유념할
수도 있다.
博學은 모름지기 요체를 잡고서 널리 따져봐야 하며,
文章은 모름지기 표현이 통달하고 조리가 勝해야 한다.19)
⑥ 日昳(未, 13~15시)
- 오래 앉아 공부하여 정신과 기운이 피곤하니, 곧 조용히 앉아
涵養한다.
- 때때로 거닐며 자연을 감상하여 기분을 전환한다.
- 혹 禮儀를 講習하고,
- 혹 시를 암송하며,
- 혹 글자를 쓰고,
- 혹 셈을 익힌다.
이 때 六藝 공부는 비록 부지런히 하나, 절대로 異端文字에 눈을
두지 말라.
이단을 배척하여, 진실을 어지럽히는 문자를 보리 말라.20)
위는 ⑤日中(11~13시)과 ⑥日昳(13~15시), 곧 점심식사 이후 오후
시간대의 일과를 기록한 것이다. 점심 식사는 日中 조항의 “다시 부모님
처소에 가서 살피고 문안을 드린다.”고 한 부분의 주석에 부모님을 ‘모
시고 이야기를 하다가 점심을 드린다.’21)라고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
아 12시경에 한 듯하다. 그러나 본문에는 점심 식사에 대한 공식적 기록
이 없고, 주석에도 부모님에게 점심을 드린다는 기록 외에 자신을 포함
한 다른 식구들의 식사를 어떻게 한다고 한 언급이 전혀 없다. 아마 점
심식사를 하지 않았거나, 한다고 해도 제각각의 자리에서 간편하게 하고
19) 「士夫日課」, “日中(午) 更進父母之所 省候. 檢視僮僕所任事, 檢視子弟所讀書. 或
會友 相與規警 翫閱經史子集, 或修謝知舊書疏. 此時 經史滿前 亦可留念於博學
文章之業, 博學須要操約而辨博, 文章須要辭達而理勝”
20) 「士夫日課」, “日昳(未) 久坐讀書 神氣困乏 卽靜坐涵養. 有時遊翫陶暢. 或講禮,
或誦詩, 或寫字, 或習算. 此時 藝業雖勤 切勿寓目於異端文字. 斥異端 勿觀其亂
眞文字”
21) 「士夫日課」, 日中(午) 주석, “陪話 供點心” 〇父母有欲飮食之人 盡心接遇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107
말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
이후에는 하루 일을 중간 점검하였다. 昧爽(03~05시)에 종들에게 분
담시켰던 각종 집안 업무의 수행 상황을 점검하였고, 日出(05~07시)에
자제들에게 부과하였던 서책의 독서상황을 검사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종들이 업무처리를 잘못했을 경우엔 엄한 책망보다 너그럽게 용서하고
타일러서 가르쳐주려고 노력하였고, 자제들의 독서 상황을 검사할 때는
句讀를 바로잡아주고 그 義理를 다시 강론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공부를 지속하였는데, 이 때 공부는 그 내용이 식전
이나 오전과 차이가 있었다. 식전에는 立志敬身과 讀書窮理, 오전에는
存養省察과 克己擴充에 특히 유의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마음을 바로 잡
고 이치를 깊이 궁구하는 經書나 性理學 관련 공부를 주로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오후에는 經史子集을 두루 망라한 여러 종류의 글을
앞에 펼쳐 놓고 博學과 文章 공부를 주로 하였다. 시를 읊고 글씨를 익
히기도 하였고, 지인이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였으며, 조용히 쉬
거나 자연을 감상하며 기분 전환을 하기도 하였다. 聖經賢傳을 깊이 궁
리하고 성찰하는 무거운 공부보다, 역사와 문학작품을 두루 읽어서 지식
을 널리 확충하고, 필요한 글과 글씨를 짓고 쓰는 등 상대적으로 가볍고
실용적인 공부를 주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異端文字에
눈을 두지 말라” “진실을 어지럽히는 문자를 보리 말라”고 하여 이단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⑦ 日晡(申, 15~17시)
- 천천히 읽고 음미하여 충분하게 자득한다.
- 언제나 精力을 아끼고 길러 병나지 말도록 한다.
-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하거든 다시 부모님 처소에 가서 음식을
올리고, 식사를 다 하시면 물러난다.
- 잠시 후 자제에게 독서한 것을 연달아 암송케 하고, 자신도 옛
말씀과 행적을 암송한다.
이때는 정신과 기운이 조금 한가하니, 때때로 말없이 聖賢 氣象
을 생각한다.
退溪學論集 15호
108
성현을 봄에 모름지기 그 성인 덕망의 기상을 알아야 한다.22)
⑧ 日入(酉, 17~19시)
- 다시 부모님 처소에 가서 잠자리를 봐드리고,
- 인사를 올리고 물러난다.
- 집안사람들에게 그날 맡은 바 일을 물어본다.
- 자제들이 독서한 것 중에 의심나는 뜻을 강론한다.
이 때 온 집안사람이 단란하게 모이지 않음이 없으니, 더욱 마땅
히 집안을 바로잡는 법도를 조사해서 살펴야 한다.
正家는 모름지기 윤리를 바로잡고 은혜와 정이 도탑도록 해야
한다.23)
⑨ 黃昏(戌, 19~21시)
- 등불을 들고 나가 집안을 돌아본다.
- 등불을 밝히고 앉아 장부에 그날 일을 기록한다.
- 자제로 하여금 낮에 읽었던 것을 복습하게 하고, 자신도 읽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 독서를 마치고는 곧 고요하게 本原을 함양한다.
- 혹 가만히 의심스러운 뜻을 사색하고,
- 혹 다음날 할 일을 헤아려본다.
이 때 하루 일은 비록 마쳤지만, 마땅히 다시 處世의 방법을 강
구한다.
處世는 모름지기 義의 실천을 우선하고 일의 성과를 뒤로 한
다.24)
⑦日晡(15~17시)부터 ⑨黃昏(19~21시)까지의 일과 내용이다. 日晡
22) 「士夫日課」, “日晡(申) 徐讀翫味 優遊自得. 常須愛養精力 毋致疾患. 夕後告具
更進父母之所 饋饌食則退. 少頃 令子弟 連誦所讀書, 己亦誦念前言往行. 此時神
氣稍閒 有時黙想乎聖賢氣象. 觀聖賢 須識其聖德氣象”. 본문의 夕後告具의 ‘後’
는 문리로 보아 ‘食’의 오자로 생각된다.
23) 「士夫日課」, “日入(酉) 更進父母之所 昏定. 拜辭而退, 課問家衆所職事, 講論子弟
所讀疑義. 此時 一室之人 無不團會 尤宜檢察乎正家之法. 正家 須要正倫理而篤
恩誼”
24) 「士夫日課」, “黃昏(戌) 持燭而出 巡視家內. 明燈而坐 置簿記事. 令子弟 溫理晝讀
己亦誦習不倦. 讀書訖 卽靜養本原. 或潛思疑義, 或裁度事務. 此時 一日之事 雖
已了 當更宜講究乎處世之方. 處世 須要先行義而後事功”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109
(15~17시)란 해가 지기 전의 늦은 오후, 곧 저물 무렵을 가리킨다. 이
때는 오후에 하던 공부를 그대로 지속하다가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하면 부모님 처소에 가서 식사를 올렸다. 대략 4시 무렵에 저녁 식사를
하였던 셈이다. 저녁 식사는 ‘아침에 했던 것과 같다’는 주석이 있는 것
으로 보아25) 아침 식사와 유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養生書를 인
용하여 ‘저녁은 너무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고한 것으로 보아 아침 보다
가볍게 식사를 한 듯하며, ‘손님이 있으면 마음을 다해 음식을 대접한
다.’고 하여 접빈객에 특히 유의하였다.26)
저녁 식사 이후에도 독서를 지속하였는데, 진도를 더 나가지는 않았
다. 자제들에게는 낮 동안 공부한 것을 연달아 암송하게 하였고, 자신
또한 유의할만한 옛 말씀이나 행적을 암송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가
⑧日入, 곧 오후 6시경에 해가 지면 다시 부모님 처소에 가서 잠자리를
봐드렸고, 집안사람들을 모두 모아 그날 맡은 바 일의 수행 상황을 물어
보았으며, 자제들에게는 낮 동안 독서한 내용 가운데 의심나는 뜻을 질
문하도록 하여 講論을 해 주었다. 이 시각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단계로,
집안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때이므로 집안을 바로잡는 正家에 대단히 중
요한 시간대로 보았다. 그래서 집안을 다스리는 법도를 점검하여, 윤리
를 바로잡고 은혜와 정이 도탑게 하는데 특별히 유의하였다. 그 다음 ⑨
黃昏이 되면 하루 일과를 최종적으로 정리하였다. 등불을 들고 나가 먼
저 집안 곳곳을 살펴보았고, 장부에 그날 있었던 중요한 일을 간단하게
기록하였다. 자제들은 낮에 읽었던 내용을 마지막으로 복습을 하였고,
자신 또한 독서를 다 마친 다음 의심스러운 뜻을 생각해보거나 혹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헤아려보았다.
⑩ 人定(亥, 21~23시)
- 의관을 벗고 잠자리에 든다.
- 그날 행한 일을 두루 반성한다.
25) 「士夫日課」, 日晡 주석, “如朝儀”
26) 「士夫日課」, 日晡 주석, “有賓則盡心供饋 〇養生書曰 一日之忌 暮不大飽”
退溪學論集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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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감고 편안히 잔다.
- 혹 바람이 세고 번개가 치며 비가 심하면 반드시 일어나고,
- 혹 밖에서 급히 부르는 자가 있으면 천천히 일어나 대답한다.
이 때 비록 혹 다급할지라도 그 定力을 체험할 수 있다.
定力은 모름지기 평정심을 가지고 기운이 충만해야 한다.27)
⑪ 夜半(子. 23~01시)
- 편안히 잠들어 깊이 잔다.
- 혹 잠이 깨더라도 잡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때 공부의 얕고 깊음을 꿈에서 체험할 수 있다.
꿈에서 마음이 바르고 뜻이 전일한지를 알 수 있다.28)
⑩人定(21~23시)과 ⑪夜半(23~01시), 곧 잠자리에 든 시간이다. 잠자
리에는 10시 무렵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그날 있었던 일을 잠시
반성하였다. 그리고 새벽 2시 전후 鷄鳴 때까지 약 4시간가량 잠을 잤는
데, 이 시간대는 혹 잠이 깨더라도 잡생각을 하지 않았고, 가능한 푹 자
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바람이 세고 번개가 치며 비가 심하게 내리면
반드시 일어나서 의관을 정제하고 앉아 있었는데, 이는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고29), 밖에서 급하게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천천히
일어나서 답을 하였는데, 이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정신을 차리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 허둥대지 않기 위함이었다.30) 그리고 이때 꿈자리
를 통해 자신의 공부가 깊고 얕은 정도를 알 수 있다고도 하였는데, 마
음이 바르면 꿈이 어지럽지 않고, 뜻이 전일하면 꿈이 망령되지 않으며,
꿈자리가 뒤죽박죽인 것은 결국 心志가 불안정하고 操存 공부가 꿋꿋하
27) 「士夫日課」, “人定(亥) 解衣冠 就寢. 循省當日所行事. 閉目穩睡. 或値疾風迅雷甚
雨 則必興, 或有自外急呼者 徐徐起答. 此時 雖或急遽 可以驗其定力. 定力 須持
心定而氣充”
28) 「士夫日課」, “夜半(子) 安寢牢睡. 或有覺時 不作妄念. 此時 工夫淺深 可以驗諸夢
寐. 夢寐可見正心而志專”
29) 「士夫日課」, 人定 주석, “衣服冠而坐 無敢晏然在寢 〇詩曰 畏天之威 于時保之 〇又曰 敬天之怒 無敢戱豫”
30) 「士夫日課」, 人定 주석, “收神省念後應之 〇大山 雖當倉卒憂懼 心常和易而有裕
未嘗有疾言遽色”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111
지 못한 소치이기 때문이라 하였다.31)
「士夫日課」에 기록된 이와 같은 선비의 하루 일과를 유의해 보면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하루 중 잠자는 시
간이 4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대단히 짧았다는 점이다. 선비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밤 10시 전후인 人定(21-23시)이었고, 잠에서 깨어나는 시
간은 새벽 2시 전후인 鷄鳴(01-03시)이었다. 잠자리에서 실재 일어나는
시간은 새벽 4시 전후인 昧爽(03-05시)이었지만, 鷄鳴에 이미 잠에서
깨어 ‘지난 행동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
고,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경전의 의리를 골똘히 생각하여 바르고 합당한
견해를 얻는’ 사색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처음 잠자리에 들어서도 한 동
안 그날 일을 반성하였고, 비바람이 치거나 급히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일어났으며, 낮 동안에 낮잠을 자는 시간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니,
실재 잠자는 시간은 4시간이 채 안되었던 것이다. 일상생활이 대단히 부
지런하고 성실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글 읽는 사람을 선비라고 한다(讀書曰士)’는 말 그대로, 하루
일과의 핵심이 바로 자신의 공부와 자제의 교육, 곧 講學에 있었다는 점
이다. 새벽 2시 무렵인 鷄鳴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경전의 합당한 실마리를 찾아 사색하는’
데서 공부를 시작하였고, 昧爽(03~05시)에 일어나 부모님 처소에 문안
을 드리고 집안 사무를 정리한 다음에는 곧장 ‘서재로 가서 조용히 앉아
독서를 한다.’고 하였다. 이후 日出(05~07시)부터 잠자리에 드는 人定
(21~23시) 때까지 “자제에게 그날 공부할 서책을 가르친다.‘(日出), ’연
이어 식사 때까지 독서한다.‘(日出), ’물러나서 책을 본다.‘(食時), ’ 자제
에게 글씨 쓰기를 부과한다.‘(食時),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여
講論한다‘(食時), ’자제의 독서를 단속하고 자신도 굳게 앉아 독서한다.
‘(禺中), ’應接이 끝나면 곧바로 책을 대한다‘(禺中), ’經史子集을 음미하
고 博學文章 공부를 한다‘(日中), ’혹 禮儀를 講習하고 혹 시를 암송한다
31) 「士夫日課」, 夜半 주석, “心正則夢不紛撓 志專則夢不邪妄 〇程子曰 人於夢寐間
亦可卜自家所學之淺深 如夢寐顚倒 卽是心志不定 操存不固”
退溪學論集 15호
112
‘(日昳), ’자제에게 그날 독서한 것을 연달아 암송하게 하고, 자신도 옛
말씀과 성현의 행적을 암송한다‘(日晡), ’자제들이 독서한 것 중에 의심
나는 뜻을 강론한다‘(日入), ’자제들로 하여금 낮에 읽었던 것을 복습하
게 하고, 자신도 읽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黃昏)는 등 어느 한
시각도 독서나 강학과 무관할 때가 없었다. 하루 일상이 철저하게 독서
와 강학을 중심으로 편성된 전형적인 학자형 삶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셋째는 부모에 대한 효의 실천에 투철하였다는 점이다. 부모를 찾아뵙
는 것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昧爽(03~05시)부터 시작하였다. 이 때 일
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부모님 처소에 가서 새벽 문안을 드렸고, 日出
(05~07)에 다시 의관을 정제하고 처소로 가서 인사를 드렸는데, 이 때는
문 밖에서 안부만 여쭙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서 이부자리를 치우고 청소
를 해드린 다음 모시고 앉아 이야기를 하고 지시하는 일을 받들어 시행하
였다. 그리고 食時(07~09시)에 아침, 日中(11~13)에 점심, 日晡(15~17)
에 저녁 식사를 할 때면 그 때마다 처소에 가서 음식을 올렸고, 日入
(17~19시)에 마지막으로 다시 찾아가 잠자리를 봐드렸다. 昧爽의 晨省부
터 日入의 昏定까지 하루 평균 6차례를 찾아뵙고 문안을 드리며 봉양하
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주석에 “새벽 문안 절차는 인정상 그만
둘 수 없는 것이니, 혹 타성에 젖어 그만두게 되면 이는 어버이를 잊는
것이다”32), “마음과 생각이 모두 어버이 봉양에 있으면 맛 나는 음식을
또한 반드시 얻을 수 있다”33), “어버이를 봉양함에 드시는 밥숟가락 수
의 많고 적음을 묵묵히 헤아려 걱정하기도 기뻐하기도 한다.”34), “부모가
먹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을 다해 접대한다.”35) “평소에
숨 한번 쉴 사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은 이후에라야 효자라고 할 수 있
32) 「士夫日課」, 昧爽, “適父母之所 晨省” 주석, “晨省之節 寔人至情所不容已者 有
或狃習惰 至於廢闕 是忘其親也”
33) 「士夫日課」, 食時, “更進父母之所 饋饌” 주석, “李栗谷曰 人若心心念念 在於養
親 則珍味亦必可得矣”
34) 「士夫日課」, 食時, “更進父母之所 饋饌” 주석, “金沙溪曰 奉親 默數飯匙多少 以
憂以喜”
35) 「士夫日課」 日中, “更進父母之所 省候” 주석 “父母有欲飮食之人 盡心接遇”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113
다.”36) 는 등 참고할 가치가 있는 선현들의 언행을 다양하게 인용하여 효
의 실천에 마음을 다해야 함을 거듭 강조하였던 것이다.
넷째는 경제활동을 포함한 집안 살림 운영에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는 점이다. 선비가 昧爽(03~05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처음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집안사람들을 불러 그날 해야 할 각자의 업무를 분담
시키는 것이었다. 업무는 마구간(廐) 곳간(庫) 부엌(庖廚) 논밭(田園) 등
의 職種과 농사(耕) 베짜기(織) 상거래(交易) 등의 職務를 두루 합당하게
고려하여 분담시켰고37), 日中(11~13시)이 되면 僮僕들이 맡은 바 일 처
리의 상황을 중간 점검 하였으며, 日入(17~19)에 다시 이들을 불러 모
아 그날 맡은 바 일 처리의 상황을 두루 검증하여 부지런하고 나태함의
정도를 평가하였다. 그리고 黃昏(19~21)에는 장부에다 그날 있었던 주
요 일과를 기록하여 정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본문의 주
석에 “주자가 말하기를 ‘수북이 쌓인 집안 업무는 실제 애써야 할 점이
니, 매사에 방법을 살펴내고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李大
山은 집이 가난하여 비루한 일을 꺼리지 않고 왕왕 직접 하였으며, 경서
를 읽고 외우기를 또한 이와 병행하여 그만두지 않았다”38), “僮僕에게
일을 맡기되 늘 그 성과를 검사해야 마땅하다”39), “내일 할 일을 오늘
반드시 알아야 차질이 생기지 않으니, 그냥 내일만 기다리고 있으면 곧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40)는 등 선현들의 참고할만한 언행을 널리 인용
하였다. 그래서 집안 살림을 합리적으로 안정되게 경영하는 것이 齊家의
근본이므로, 이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부단히 강조하였다.
36) 「士夫日課」 日中, “更進父母之所 省候” 주석, “栗谷曰 日用之間 雖一息之頃 不
忘父母 然後乃名爲孝”
37) 「士夫日課」, 昧爽 “招家衆 整理事務” 주석, “分之以職 授之以事(職如廐庫庖廚
田園之類 事如耕織交易之類)”
38) 「士夫日課」, 昧爽, “招家衆 整理事務” 주석, “朱子曰 家務叢委 便是用功實地 每
事看得道理 不令容易放過 〇大山家貧 不憚鄙事 往往躬自爲之 而誦經念書 盖亦
幷行而不廢”
39) 「士夫日課」, 日中, “檢視僮僕所任事” 주석, “僮僕任事 宜時常檢課”
40) 「士夫日課」, 日入, “課問家衆所職事” 주석, “大山曰 須於今日 了得明日事 方是
不跲 姑待明日 便不濟事”
退溪學論集 15호
114
마지막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식사 문제이다. 식사는 하루 세
끼 중 아침식사를 가장 중시하였다. 아침 식사 때만 유독 그 시각 이름
을 ‘食時’, 곧 ‘밥 먹는 시각’이라고 명명하였고, ‘부모님 처소에 가서 음
식을 올린다(進父母之所 饋饌)“ ”집안사람들과 더불어 나누어 앉아 식사
를 한다(與家衆 分坐而食)’고 하여 부모와 집안사람의 식사 문제를 모두
본문의 한 조항으로 따로 구별해서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日中
(11~13시)의 점심에는 식사 문제 자체를 본문에서 거론도 하지 않았다.
다만 ‘부모님 처소에 가서 안부를 묻는다.’고 한 조항의 주석에 ‘모시고
이야기 하다가 點心을 드린다(陪話 供點心)’고 하였을 뿐이다. 이 표현을
보면 부모님도 점심식사를 늘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늘 했다
면 당연히 본문의 한 조항으로 이를 기술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면 나머지 집안사람은 당연히 점심식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을
듯하며, 필요에 따라 하거나 말거나 하여 아예 따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
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녁은 아침과 점심의 중간 정도였다. 이때는 “저
녁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하거든 다시 부모님 처소에 가서 음식을 올리
고, 식사를 마치면 물러난다(夕食告具 更進父母之所 饋饌 食則退)”고 하
였다. 본문에서 식사 문제를 언급한 점은 아침과 동일하지만, 부모님 식
사만 언급했을 뿐 점심과 마찬가지로 여타 사람의 식사를 언급하지 않은
차이가 있다. 다만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하거든(夕食告具)’이란 표
현이나, 그 주석에 ‘저녁은 배불리 먹지 않는다(暮不大飽)’고 한 것으로
보아 집안사람이 다들 저녁식사를 한 것은 분명한 듯한데, 아침보다는
훨씬 가볍고 간단히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선비들이 하루 식
사는 아침은 모두 모여 제대로 하고, 점심은 하는 둥 마는 둥 지나갔으
며, 저녁은 준비하되 아침보다 훨씬 가벼운 朝飯夕鬻의 형태였던 것이다.
4. 마무리
본고는 지금까지 학계에 소개된 적이 없는 「士夫日課」의 자료적 성격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115
을 간단하게 살펴 본 다음, 여기에 수록된 사항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선
비의 하루 일과를 구체적으로 검증해 보았다. 결과, 「사부일과」가 퇴계의
후손이면서 이상정의 문인이기도 한 어떤 인물이, 1800년을 전후한 시기
에, 국내외 유학자들의 언행을 널리 참고하여, 철저하게 유학적 입장에서
작성한, 흥미로운 선비의 일과표임을 알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조선시
대 선비의 일상적인 삶의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선비의 하루 일상은 잠에서 처음 깨어나는 鷄鳴(01~03시)부
터 다시 잠자리에 든 人定(21~23)과 夜半(23~01시)까지 대략 12시각으
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각 시각별로 그때마다 수행해야 할 세부적인 사
항을 배치함으로써 대단히 체계적인 양상을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①수면시간이 4시간 미만일 정도로 근면하였다, ②일과의 핵심이 학자답
게 講學 중심이었다, ③매일 6회 이상 부모를 뵐 정도로 효의 실천에 투
철하였다, ④경제활동을 포함한 집안 살림의 운영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⑤식사는 아침이 무겁고 저녁이 가벼운 朝飯夕鬻의 형태였다는 등 몇 가
지가 특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본고는 「士夫日課」 라는 특정 한 가지 자료만 근거로 삼았을
뿐, 시기와 지역별로 다양한 일기를 비롯한 여타 자료의 기록 내용을 종
합적으로 반영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일상적 삶이 아닌 특별한 상황, 예
컨대 관혼상제 등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경우, 과거응시나 여행 등
특정 목적을 위해 집을 떠나 있을 경우 등을 함께 고려하지도 못하였는
데, 이런 문제에 대한 보완은 후고로 미룰 수밖에 없다.
※ 이 논문은 2014년 11월 04일에 투고 완료되어,
2014년 12월 03일부터 12월 13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4년 12월 16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退溪學論集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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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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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 선비정신에서 찾는 교사의 길, 한웅이엔피, 2011
____________, 선비정신에서 찾는 기업인의 길, 한웅이엔피, 2011
「士夫日課」를 통해 본 선비의 하루 日常(黃渭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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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Scholars' Daily Work Seen from Sabuilgwa
(士夫日課. Nobility's Daily Work)
Hwang, Wee-zoo
This examines Joseon scholars' daily work through Sabuilgwa
(士夫日課). Sabuilgwa was an interesting daily schedule of scholars
which was written about the daily activities of domestic and
overseas Confucians in around 1800. This offered a view of Joseon
scholars' daily life. Joseon scholars' daily schedule was divided into
waking up (01~03 a.m.), going to bed (21:00~23:00) and the
middle-night activity (23:00~01 a.m.) by roughly 12 hours. And
according to such time divisions, they had detailed tasks to do. Of
them, notably, ①they were so diligent that they had only under 4
hours of sleep, ② they as scholars focused on academic study, ③
they were filially pious such that they visited their parents over
6 times a day, ④ they did not neglect housework including
economic activities, and ⑤ they had a good breakfast and a light
supper.
keywords : scholar(선비), Sabuilgwa(士夫日課), daily schedule, daily
첫댓글 잘 봤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