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일 법회날
계수씨와 옥신이가 애들 데리고 간 후 2일날 올 때 소 비든지 약도 사오고 아부지 하의도 한 벌 사오시라 하였다.
3일 날은 영양목재사 숙부님께 전화로 고추 건조 상자 10조 장갈대 30개 사과상자 50짝 각기목 30개 판자 4푼5장 등을 준문 내일 장차로 부쳐 달라 했떠니..
4일 장차로 준문한 것이 왔다. 장차운임 4000원 주고 상명 아빠 경운기로 싣고 와서 운임 2000원 주었다 오후부터 있던 것 뜯어내고 일을 했다
5일 문을 짜는데 금화가 도와서 함께 짜고 아부지 천장을 바르고 문틀 해넣었으며 층대를 하다가 소꼴베로 가셨다.
6일 하다 남은일 모두하고 오후 5시부터 오준이 경운기로 연탄 1천장을 다 실어 들였다.
밤 해숙이 옥신이 거들고 다 치워다 오늘부터 한달기도 주간이 시작되는 날이다
86년 8월7일. 금화친구 대구에서 2명이 온다고 안동까지 마중을 나갔다.
오후4시경 최재교 아가씨 22세와 최하숙 23세 아가씨가 통닭 한수 사가지고 함께 찾아왔다
오국엄마 숙모와 오탁종제가 왔다. 이런 저런 얘기 2시간 하다가고 저녁에는 큰집 종형수 놀러 와서 얘기하고 한시 데서 갔다. 오늘은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기도 하고 일과 을 마치고 잤다.
8일 금화는 친우들하고 놀러간다며 태곡으로 가버렸다. 아버지는 안골 고추 밭에 비료주고 풀을 뽑았다. 옥신이가 와서 설거지 하고 점심 차려주고 저녁 차려주고 했다. 금화 놀러갔다 오지 않았다. 친우들은 밤12시가 넘어 모두 들와서 잔 모양이다
9일 여동생 친구 하숙 재교 차려준 아침을 먹었다
금화 정산에서 자고 나물씨앗 등을 사가지고 12시경 넘어왔다. 오늘 아침은 간밤에 무슨 일로 나가서 집에 친구들이 와있음에도 오지않아 하숙이 재교가 해서 차려주는 것을 먹었다 아가씨들은 상을 치우고 갈 준비를 해가지고 떠나갔다. 잘 가라하고 오후 고추밭에 잡초 제거 하로 가셨다. 밤에 무슨 일이 있어나 걱정 했는데 별 큰일은 없는 모양이다.
86년8월10일 오늘은 선예네 식구 모두 황지 외가댁에 인사차 피서를 떠났다.
금화는 집터 아부지하고 나물 갈려고 잡초를 메네다 오후 갈아놓았다.
비가 와서 씨앗은 넣지 못했다.
밤11시부터 금화 옥신 해숙이 하고 한 시간 기도 하고 잤다.
11일 금화 정산 오락실 보로 갔다. 비가 와서 아부지는 고추상자 곤치고 나는 기도하고 점심은 옥신이가 차려주었다. 황지서 동생이 하루 더 놀다온다고 전화가 왔다. 금화도 못 넘어 온다하여 해숙이가 넘어가고 옥신이가 와서 설거지하고 찌게 아침에 먹을 것을 해놓고 갔다.
12일 선예네 식구가 집으로 왔다. 올 때 선주 병하함께 놀러 왔다. 청자 한 보루 선물 사가지고 금화하고 넘어왔다. 고란에 고추를 처음으로 따고 과수원에 사과 따다먹고 했다.
13일 오전 금화 웅동생도 오고 선주 병하 해숙 함께 안골에 고추 따로 갔다.
10시부터 비가 내린다 비를 맞으며 애들하고 다 따 가지고 왔다.
상자에 담아서 건조실로 다 넣었다. 애들이 수고 했다.
외사촌 남매가 고모집이라고 놀러왔다가 이렇게 수고를 하다니 정말 고맙다. 오후에는 비가 계속 내리무로 문도 달고 상자도 짜다둔 것을 짜고 아부지 소먹이로 가시고 나는 책을 보고 기도하고 독경도 하고 언제나 맨날 같은 일을 반복하며 지내고 있다.
변화가 있을 수 없다.
14. 맑음 고추 방에 연탄불을 피운다.
오늘은 고추건조실 한방 되서 금화는 연탄 불을 피우고 병화와 선주는 정산 장에 놀러 가는데 돈이 없어서 천원을 줘서 가서놀다 점심은 선예 집에서 먹고 오라하고 보냈다
나는 아부지 철관 놓은 자리 더 파내고 놓았으며 오후부터 철관을 달구었다 아부지는 과원에 약 칠 물을 퍼 담고 오셔다. 고추건조 상자를 두개 더 짜놓고 꼴 베 오셔다
금화는 소먹이로 가고 나는 기도하고 인내하며 살고는 있지만 오늘은 왠지 짜증스럽고 답답하고 괴로워다 나의인생 하루일과가 오늘만 그런 것도 아니고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하다니 생각하면 슬프다. 그러나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 보려고 노력한다.
저녁에 금화는 돈 벌로 진작 나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워 하지만 가정형편이 집을 나가고 안되므로 있었지 그러치 안았으면 집에 뭐 하로 잡아 놔쓸까 하니 이제까지 해먹고 들일 해 쓰니 3백만 원 달라고 한다.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이제까지 고생했으니까 가정을 위해 애쓴 보상을 누구한태 받을까 해도 해도 빗만 자꾸 늘어가고 이와 같은 가정을 이끌며 병마와 싸우며 살아가는 나는 오직 부처님 가피력만 기원하면서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려고 노력 한다.
8월15일 광복절 금화는 집안을 치우고 오전 과원에 약을 치고 남은 것 병하와 정산동생 아부지하고 가서 다치고 왔다. 금화 선주 숙모 함께 고란에 고추 따던 것 모두 다 땄다. 시목 으네 돈 빌려 준 것 우선 2만원 받아가지고 금화 구인사 본산 가는데 주기로 했다.
깨를 묶을 짚이 없어 다섯 집에 알아봐도 없어는데 재종형님 짚을 12단이나 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길수 어른께서 짚을 좋은 것 한 동치 낮은 것 한 동치를 주셨다.
정말 고마우셨다.
16일 금화 해동사가서 청년회원과 함께 정산동생도 가고 본산 상월 원각 대조사기 배구대회를 하로 떠났다. 아부지는 고란 밭에 병하 선주와 참깨 베다 금화는 정산으로 가고 제수씨 3시경 아이들 데리고 넘어오시고 저녁은 큰집에 가서먹었다. 나는 기도하고 집안을 치우고 닦고 머리 감고 이렇게 하루를 보내다
17일 백모생신날
고추가 건조 데어 모두 꺼내고 비가 올 것 같아서 넣고 밖에 치우고 하느라 8시가 넘어서 나가셨다 나는 언제나 그래 듯이 제수씨 차려다 주는 것을 집에서 받아먹고 있다.
옥신이 병화 선주 셋이 도산서원구경을 갔다 온다고 나섰다. 놀러 가는데 돈을 한 푼도 못주니 마음이 아푸다 애들 낮 배로 왔다. 장날 돈 천원 준 것으로 집에 전화 3통하였다 한다. 저녁에 승민이 한태서 전화가 왔다. 경우 사형이 왔다고 동만이도 왔다. 숙모 무식한 잔소리에 더 이상 참고 견딜 수 없으니까 어쩌면 데게냐고 형이 판단 좀 해 달라고 한다.
금년농사나 마무리 짖고 가야지 어쩌나하며 달래고 기도하고 오늘 하루 이런 저런 일로 보내다
18일 오늘은 안동 오종 사촌 결혼을 한 후 큰집을 알린다고 내외하고 숙모가 와있으므로 우리도 집을 알린다고 아침을 했다.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 한편 기쁘고 한편은 슬프고 또 한편은 괴롭다. 제수씨 알리기 실타고 안한다면 그만이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잘하시니까
종제 내외 숙모 백모 이렇게 나왔다. 백모께서 인사를 식힐까 하는 것을 몰라 알아서 하라니까 인사 식히는데 집 절로 하면 된다. 숙모는 한복을 두고 안 입고 나왔다고 말했다
종수씨는 첫인상이 좋았다. 나는 앉은 자세로 합장하고 이렇게 보십시다.
하고 허리를 굽혔다 아주 공손히 절을 하고 일어섯을 때 나는 몸이 불편하여 이렇습니다
하니 종수씨는 말 대신 미소로 답하였다.
아무 반응이 없는 것보다 부풀림으로 말하는 것보다 애교와 재치 있는 답례였다. 벌써 무거운 몸이였다. 아침을 먹고 8시반경 모두 떠났다. 저근숙모도 왔다 외사촌이 간다 하여 사과와 고추3근 정도 넣어서 여비는 5천원 주어서 모두 떠나보내고 금화 점심 먹다니까 왔다 금화는 골이 텅 빈 것 같다며 잠을 잤다. 정말 보는 내가 답답하였다.
고추 골린 것 담아놓고 저녁 먹고 밤10시 50분 부터 금화 옥신 해숙 나 길수모 함께 기도하고 잤다.
19일 오늘 장날 오환에게 석유 일 두 사오라고 씩혀떠니 사다주어 고마웠다. 경우사형이 왔다. 화독이 삭아서 사야하는데 생각 끝에 식용유기름 통으로 만들기로 하고 고추 골리다 사형을 식혀서 만들었다. 고추다 골라 넣고 사형과 고추상자를 짰다. 뚝닥 뚝닥 잘했다.
오후 금화 혜숙 경우 고추를 따와서 넣었다 참 잘했다.
20일 경주 사돈댁에 초상이 났다.
제수씨 아이들 데리고 경우사형 함께 넘어와서 고추를 따로 갔는데 금화는 아이들 대리고 집에서 빨래를 했다. 그런대 낮에 경주 사돈댁 초상이 났다고 경우사형과 제수씨를 빨리 좀 보내달라고 전화가 왔다. 문종이18장 초 향 돈5천원 넣어서 여비 만원 줘서 오환이 경운기 태워서 보냈다. 오후 참깨 베로 갔다. 저녁 때 비가 왔다 고추는 방에다 넣었다
21일 정산서 전화 왔다
사가에서 3일 장이니 별도 부고 못한다고 집안 어른들께 알려서 올수 있으면 오시라고 예기 드리라한다. 아부지는 못가시고 백부님이 다녀 오시기로하고 동생과 다녀오시고 오후 깨를 베로 간는데 비가 와서 못하고 왔다
22일 금화는 백부대신 큰집에 깨 베주로 백모와 안골에 가고 아부지는 고란에 메밀에 열 무씨를 혼합해서 갈았다 식전에는 치안 본부장 아부지 고종사촌 동생 강민창 진고종숙 어른께서 오신다고 비각 앞에 반민이 모여 길 보수 한다고 나갔다가 오후에 오셨다
비각 앞에서 대기하고 반민이 모여 있다가 삼촌과 아부지 장애인으로 열심히 살라고 격려금을 십만원씩 든 봉투 하나씩 얻었다고 너무 좋하라 하셨다.
이리 저리 가사에 빌려 쓴 돈을 모두 갚고 아부지 옷 한 벌 사드리고 하였다.
동생이 경주서 왔다. 소족 두개와 전 육 2근 소등 뼈 을 싸 주었다며 가지고 왔다. 사돈댁에서 많이도 염려해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보답도 못한다. 오늘은 돈이 생기고 육류가생기고 과일도 생기고 앞집에서 복숭아를 한 바구니 주고 혜숙이 생일이라고 수박 옥수수 등을 가지고와서 잘 먹었다. 살다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구나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이시여 강민창 치안본부장님은 86년 아시아게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치루는 큰 행사에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습니다. 무사히 잘 치루도록 부처님이 가호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동생에 처 종조모님 왕생극락을 기원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23일 동생 아침 먹고 넘어가고 아부지 금화 참깨 베던 것 종일 베고 나는 집을 쓸고 치우고
고추도 골리고 기도하고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24일 식전 사과 2상자 삼촌 리어카에 실어 보내고 오전 참깨 베던 것 마치고 나물씨 60일 배추를 사다 갈았다 요즘 기도 하면 잠이 와서 기도가 잘 안 된다. 길수 형 지환이 한태 편지한 얘기와 영봉 길수 여러 동생 친우들이 놀다갔다. 내가 너무 말이 많은 것 같다.
앞으로 좀 덜 직겨야지 정신 수양에 힘쓰며 근육 환우들을 위하여 부처님 지혜를 기원하오며 기도 한다.
27일 태풍 배라호가 전국에 몰아 닥쳐다.
오늘은 전국에 많은 비바람을 동반 하고 태풍이 서해남부지방을 스쳐 대전을 거처 서울 강릉으로 빠져나갔다 는 일기 예보가 있다.
28일 태풍으로 다른 일은 못하고 집에서 아부지하고 금화는 고추를 골랐다. 나는 물가에 심은 벼 때문에 부처님이시여 영동 지방 영남지방에는 많은 비가오지 않게 해 주소서 일직 되는 깨를 심으려다 용계아제네가 묘판을 하려고 물을 데는 바람에 우리는 어쩔수 업시 모를 심어는데 중생종을 심어서 여물지도 안았다 댐에 물이 들어버리면 서로 원망이 되며 자연에 섭리를 따르기로 부처님께 모두 막기고 기도 해떠니 다행히 비가 적게 와서 물이 들지 않고 잘 먹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86년8월30일 근육병 환우들에 설문지 온 것을 자세히 답을 써놓고 근육환우들의 병 실태 알고 있는 데로 강성관 회장님께 편지 써 놓고 외삼촌 보낸 편지도 함께 동봉해서 보냈다 고추 탄저병이 심해서 동생 농약을 사와서 치고 계수씨도 나 생일이라고 오셨다가 가계보로 가시고 백부님이 오셔서 금화결혼 문제 얘기하시고 나가셨다.
31일 오전에는 고추마른 것을 골리고 나는 집을 쓸고 닦았다. 기도 2시간하고 오후 나물 밭을 메다둔 것 내가 마저 멨다. 계화 조모 비름나물 좀 뽑자하여 뽑아 가시라 해더니 많은 기심과 비름을 뽑아주고 가셨다. 일하기 쉬웠다 시목엄마도 함께 뽑고 우리나물 다듬어 둘 집 먹었다. 고추 골리고 저녁하로 갔다. 오전 아버지와 금화 웅 동생 고추 따로 갔다.
오후에는 참깨 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