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한번 해보고 싶었던 홀대(홀로걷는 백두대간)
대간은 다 끝이나고 완주패까지 받았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빠지거나 도중하차한 구간을 땜방해야한다.
그 중 가장 짧은 코스는 추풍령에서 작점고개
4시간 산행에다 대간코스중 가장 낮은 고지라 이것부터 해보리라 마음먹고
여기저기 자료을 찾아본다.
젤로 걱정되는 것이 들머리 찾는 것과 들머리까지의 교통편과 소요시간, 산행중 길잃어버리 쉬운 지점등이다.
다른 사람들의 산행기를 읽어보고 사진 찾아보고 대간자료집에 지도까지 보고 또 본후
날씨 확인후 김천까지 버스표 예약
아침 6시에 길을 나선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7시 10분 버스를 타고 금강휴게소에서 15분 정차후 김천에 도착하니 10시경
추풍령까지 버스표는 1700원
안내판에 매시간 35분에 출발한다고 해서
대합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시간 보낸후 25분에 승강장에 나가 버스를 기다리는데 35분이 훨씬 지났는데도 차는 오지 않는다.
다시 매표소가서 물어보니 벌써 20분에 출발했단다. 35분은 시내버스란다.
다음차는 11시 35분에 있단다.
기도 차고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터미널앞 택시에 올라탄다.
택시 운전기사가 뭐라 하지 그랬냐고 한다.
말하면 뭐하나... 시간 아무리 많아도 승강장가서 기다려야하는데 안한 내가 잘못이요
출발시간을 직접 매표원에게 확인해야 하는데 안한것이 잘못이다.
도둑질 한놈보다 도둑질 당한놈이 더 나쁘다고 한 것처럼...
운전기사는 뭐가 그리 궁금한건지 자꾸 묻는다.
아마 여자 혼자 가는 것으니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해서 일게다.
사연은 무슨… 똥누고 밑 안 딱은 것 같아서 가는 것이지…
지도에서 본대로 왼쪽에 추풍령비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내리니 요금이 18000원
긴 거리를 온 것 같지 않은데 요금이 18000원이라니 메타기를 눌렀다는데...
뭔가 속은 기분이지만 어쩌라… 모든것이 다 내 불찰인 것을…
시외요금을 처음부터 적용시켰나보다.
추풍령비 맞은 편에 사진으로 보았던 모텔 카리브와 진입로가 보인다.
진입로를 따라가다보니 왼편 마을 민가 마당에 사납기로 명성이 자자한 발발이 3마리
한번 호대게 야단치니 깨갱. 바로 꼬리 내리고
농가가 끝나자마자 표지기가 주렁주렁 드디어 대간길 시작이다.
스틱을 꺼내들고 장비를 정비한후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길을 따라가는데 발밑에 도토리가 한 개 두 개씩 떨어져 있다.
그냥 지나치다 하도 실하여 줏어들기 시작했는데 마치 헨젤과 그레텔처럼 도토리가 대간길따라 주욱 떨어져 있다.
어느덧 금산과 사기점고개 갈림길에 다달았다.
여럿이 가면 당연 사기점고개쪽으로 막바로 갔을테지만
혼자이니 내맘대로라 금산을 들려 가기로 하고
금산으로 향하니 봉우리가 반이나 썩둑 잘려나간 정상이 보인다.
위험하다고 밧줄이 쳐져있다.
슬쩍 넘어가보니 발밑을 보니 낭떠러지.
채석작업이 다 끝났는지 조용하고 나름 정리가 되어 있는 상태다.
물론 정상석 같은 것은 없다.
길은 왼쪽으로 휘돌아 내려간다.
영동지방은 비가 온다고 했는데 여긴 등산 하기 딱 좋은, 바람도 살랑 살랑 시원한 날씨다.
길은 잊어버리고 자시고 할것도 없다.
표지기가 10미터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는 것 같다.
단체 산행할 때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표지기들…
그저 빠른속도로 지나치느라 주변 것들을 주위깊게 살필시간도 없이 지나쳤던 것들을 오늘은 하나 하나 살피며 온몸으로 느낀다
표지기들속에 내가 함께 했던 팀것도 있나 찬찬히 살피면서 간다.
표지기들을 읽어보기도 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는 표지기들한테 고마움을 표하며...
한여름도 아닌데 매미소리가 들린다.
이건 분명 한여름에 듣는 기운 찬 매미소리가 아니다.
가을에 운다는 늦털매미인 모양이다.
도토리 줍는 것은 금산이 지나면서 고만두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러다간 배낭이 천근만근이 될 것 같아서이다.
팀산행을 할때는 어떻게든 배낭을 가볍게 하려고 눈썹이라도 떼놓을 기세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날머리인 작점고개 전쯤에서 주워야지… 그곳에도 있다면 말이다.
선행자들의 산행기에서 읽었던 묘지를 지나간다.
첫번째,두번째,세번째,네번째,다섯번째…..
마지막 다섯번째 묘지는 하도 반가워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하시고 외롭지 않으시겠어요. 대간식구들이 찾아오니…"
그리고 하는 일 하나
쓰레기 줍기다.
늘 산은 내게 많을 것을 주었는데 나는 산에 해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기만 했었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배낭속에 비닐과 집게를 반드시 갖고 다닌다.
덜 미안하려고...
조금이나마 산에 보답하려고...
온전히 산이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맥주캔,소주병,플라스틱 물병,사탕봉지,초코렛봉지,도시락 까먹고 통째 버린것들 줏어담으면서
'어떤 사람들이 이런걸 버렸을까 양심도 없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생각보다 깨끗하다.
이러고 다니니 무서울것도 없고 심심할것도 없다.
함께 했던 팀이 이곳을 지날때는 무섭도록 더운 날씨였는데…
그때 내가 왔다면 지금처럼 여유로울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그러다 사진속에 보았던 낯익은 곳이 나오면 반가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정말이네 하고…
허기가 져온다.
그러고 보니 휴게소에서 떡볶이 조금 사먹은 것이 전부다.
적당한 곳 아무곳이나 앉아 복숭아 통조림과 양갱을 먹는다.
또 다시 길을 가다 한쪽에 서서 간식을 먹는데 주변에서 동물소리가 난다.
이건 분명 사람이 기르는 동물은 아니다.
교미를 하는 건지… 멧돼지 소리 같은 것이 한동안 나더니 조용해진다.
서울로 가기전 요기나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기점고개라고 비닐안내판을 나무에 묶어놓은 곳에 도착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었는데 내가 나를 몰라볼지경이다.
'뭔 사진이 이래…' 결국 나무에 배낭을 걸어놓고 사진을 찍는다.
시멘트 도로가 나타났다.
떠나기전 이 도로에서 왼쪽으로 가야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정확히 알수 없어서 무지 걱정했는데
맞은편을 바라보니 또 표지기가 주렁주렁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두말없이 그길로 올라선다.
산길을 휘돌아 다시 시멘트 도로로 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가나 고민할것도 없다.
주위깊게 살피면 표지기들이 하나 둘씩 진행방향쪽 나뭇가지에 매어있다.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다.
나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끔 지도와 대조해가면서 여기가 어디쯤 되나 확인만 하면 된다.
시멘트 도로를 한참 따라가다 보니 역한 냄새가 나며 돼지가 꿀꿀거리는 양돈장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관공서 같은 건물이 신애정신병원이란걸 알았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왼쪽으로 소로로 접어든다.
빈 밤송이들이 지천에 깔렸다.
배낭을 내려놓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일행이 있다면 밤나무에 올라가 한번 털어볼만 할텐데... ^^
왼쪽 가족묘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니 도토리가 지천이다.
이쯤이면 산행을 마칠시간이다 싶어 아예 배낭을 내려놓고 도토리를 줍기 시작한다.
산신령이 기특하다고 도토리밭을 선물하셨나…^^
반짝 반짝 윤기가 도는 밤색의 길쭉한 도토리가 마치 탄알같이 느껴진다.
아이처럼 티셔츠 앞자락에 수북히 줏어 담았다.
작점고개서 추풍령이나 김천까지 버스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히치를 해야할 듯 싶다.
아서라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다.
길을 따라가니 거짓말처럼 작점고개를 알리는 정자가 보인다.
아 다왔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정도다.
한사람도 만날수 없었던 대간길.
이상하게 외롭지 않고 편안하기까지 했던 대간길.
작점고개 표지석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다보니
자가용 한대가 와서 선다.
아이2명, 어른 3명.
추풍령까지 가시면 태워달라는 말에 자신들도 김천에서 바람쐬러 왔다고 하시면서 태워주시겠단다.
덕분에 김천역까지 단박에 올수 있었다.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역으로 들어가니 약 15분후면 출발하는 기차가 있단다.
야호~ 밥 한끼 제대로 못 먹었지만 이렇게 나만의 대간길은 끝이났다.
다음주엔 닭목재에서 대관령구간을 갈 예정이다.
첫댓글 現前智: 사경방에서의 사경뿐 아니라 백두대간 완주하시면서 생겼을 즐거웠던 추억담들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08.10.10 18:09 ->추억담이랄것도 없는데 하라하시니.... 이거라도... ^^
즐거운 발걸음이 눈에 선합니다.
재밌네요... 추억담이...^^* 글을 읽으며 들꽃님표정이 생각나 미소를 짓습니다.
의태어를 잘 구사하고 묘사가 상세하여 함께 길을 가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글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아 좋습니다. ^*^
세상에~~~~! (합장), 겁 상실하신거에요? 얼굴 안 보여주시는동안 뭔일 잇었나봐요,뵙고 싶으니까 혼자서 다니지 마시고 저도좀 델꾸 다녀 주시지요~~~! 얼굴뵙길 합장 합니다...().
참 희한한일이구먼......나도 이 구간을 혼자 걸었었는데 .. 무덤 하나 둘..하면서 ...것 봐라 닮은게 한두가지가 아닌데 어딜 가남~~ ;; ^^..이제 혼자 걷는 맛을 알았으니 못다한 정맥 한두개쯤은 같이 걸어봅시다..♡
닭목재~대관령은 약 13km...시간 맞으면 같이 걸어주고 싶은데 ^^
ㅎㅎ법우님 이번주 금요일날 밤차로 갑니다. 함께 하신다면 얼른 예약하지요. 청량리서 강릉까지.. 이번엔 홀대가 아닌 전에 불국정토 순례왔던 진여월과 함께 합니다.
시간이... 19~27일간 제주도 고행길 떠납니다 ^^
잘 다녀오세요. ^^
혼자 산행을 한지가 언제였더라 ~~~~~~~~~~
법우님의 글을 보면서 사진보는 느낌입니다..다음구간 조심해서 다녀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