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네츠크주(州) 주도인 도네츠크시(市) 전역을 포 사정권 안에 둔 군사적 요새 지역인 아브데예프카(아우디우카)의 함락이 우크라이나와 서방 측에 준 충격은 예상보다 큰 것으로 전해졌다. 강력한 방어 진지가 의외로 손쉽게 러시아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서둘러 철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브데예프카에서 퇴각하는 우크라이나군 탱크/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9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뮌헨의 우울한 메아리'(Мрачное эхо Мюнхена) 코너에서 "어제(18일) 끝난 뮌헨 안보회의에 대해 서방 외신들이 다소 비관적으로 썼다"며 "러시아군의 승리 소식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망에 대한 세계 지도자들의 믿음을 흔들었다”는 파이낸셜 타임즈(FT)의 기사를 인용했다. FT는 지난해 안보회의 참가자들은 (2022년 가울의 우크라이나군 반격에 고무돼) 상당히 낙관적인 전망을 내보였으나, 올해는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 뮌헨 안보회의를 뒤흔든 아브데예프카 함락 급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 것은, 역시 안보회의 중에 '급보'(急報, 브레이킹 뉴스·breaking news)로 전해진 아브데예프카의 함락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러시아의 군사적 우위가 확연해지고, 미국 등 서방 측의 대(對)우크라 추가 지원이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가운데, 도네츠크주 중부 지역의 방어를 상징하다시피 한 아브데예프카가 맥없이 넘어간 게 컸다. 특히 9개월 전(2023년 5월) 격전지 '바흐무트'가 러시아 수중에 떨어진 과정과 비교하면, 그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스트라나.ua 등 현지 매체가 바흐무트와 아브데예프카의 방어 전투를 분석하고 대안 마련을 촉구한 이유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아브데예프카 함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병력과 무기 면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방어군을 압도했다는 게 가장 먼저 꼽힌다. 한 우크라이나 방어군 장교는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철수 명령을 받은 것이 맞다"며 "러시아군의 포위 위협이 가시화했을 때, 적의 군사력을 감안해 일찌감치 철수 명령을 내렸어야 하는데, 늦어지는 바람에 철군에 어려움을 겪고 큰 손실을 냈다"고 주장했다.
아브데예프카(아우디우카)로 가는 길, 표지판. 오른쪽. 위쪽으로 돌아나가면 젤라네19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전사(戰史)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공격하는 부대가 방어군보다 병력과 무기 등에서 3배 가량 우위에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익숙한 지형 지물을 이용할 수 있는 방어 작전이 그만큼 유리하다. 아브데예프카 전투에서는 러시아군의 군사력이 우크라이나군에 비해 약 4배 정도였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언젠가는 함락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 러시아 '에어 폭탄' 카브의 위력은?
이 매체가 주목한 것은, 빠른 승리를 가져온 러시아군의 작전및 전술이다. 아브데예프카 주둔 우크라이나군은 1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러시아군을 상대해야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우선, 적을 고립시키는 군사 작전을 완전히 체득했다고 했다. 아브데예프카에서도 정면 공격에 앞서, 군사 물자의 보급로를 먼저 차단했다. 날이 갈수록 우크라이나군은 필요한 지원군과 탄약을 제공받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방어가 허술해진 틈을 비집고 러시아군은 조금씩 밀고 들어왔다. 그 결과, 우크리아는 점차 방어력이 소진되고 물자가 고갈됐다.
물론, 이 작전 수행에도 적절한 무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첨차 위력을 더해가고 있는 러시아의 '에어 폭탄'(항공 폭탄, авиационная бомба)이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아브데예프카 함락 이후 "'에어 폭탄'의 위력을 확인했다"며 "에어 폭탄을 투하하는 항공기를 격추할 방공시스템이 각 전선에 시급하다"고 말했다. '에어 폭탄'은 항공기로 투하하지만, 좌표 설정이 가능하고 또 유도 기능을 지닌 개량형이다.
러시아 항공우주군(공군 격)은 현재 3가지 유형의 '에어 폭탄'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좌표 유도 에어 폭탄(управляемая планирующая авиационная бомба, УПАБ)과 좌표 조정 에어 폭탄(планирующая корректируемая авиационная бомба, КАБ), (단순) 고폭발성 에어 폭탄(неуправляемая фугасная авиационная бомба, ФАБ)이다. 러시아 일부 매체는 고폭발성 에어폭탄에도 유도 기기를 부착해 위력을 더욱 높였다고 전한다.
러시아군의 에어폭탄 '카브-1500'/사진출처:현지 매체 amalantra.ru
이중 우크라이나군이 두려워하는 것은, 좌표 조정 에어 폭탄 '카브'(КАБ, KAB)다. 러시아군은 정찰 드론이나 FPV 드론(사람이 직접 조정하는 드론/편집자)으로 우크라이나 방어시설을 살펴본 뒤, 에어 폭탄 '카브'를 투하해 폭파하기 때문이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러시아군이 목표물을 포착하면 곧바로 공격에 나서는 '속전속결' 작전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느려 터졌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지적이다. 이는 최전선에 배치된 러시아 각급 부대간에 통신망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뜻이다. 최근 폭로된 미국의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를 실제로 러시아군이 운용하고 있거나, 자체적으로 개발한 무선 통신 시스템이 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 바흐무트 격전의 학습효과
1년 전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바흐무트 공격과 이번 아브데예프카 공략 간의 작전 비교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당시 '바그나 그룹'은 소규모로 보병 부대를 편성해 끝없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다음 공격진이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도축용 가축이 끊임없이 들어가는 '공장', 즉 '도축 공장'에 비견될 정도로, 어리석은 작전이었다. 러시아군의 병력 손실도 엄청났다.
하지만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병력 손실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수감 중인 범죄자들을 '6개월 생존시 사면'이라는 조건으로 대거 전선으로 데려왔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바흐무트'를 점령해야 한다는 '정치적 야망'에 빠져 있었다는 게 이 매체의 진단이다.
2023년 5월 격전지 바흐무트를 점령한 '바그너 그룹'/사진출처:현지 매체 영상 캡처
프리고진은 또 막대한 자금력으로 군사 전문 텔레그램 채널들을 동원해 '바흐무트 공격 작전'을 홍보했고, 그 결과 강력한 적의 벙어를 뚫을 수 있는 새로운 '전술 중 하나'로 인식됐다. 우크라이나군도 지난해 여름철 대반격에서 선두에 선 기갑부대가 지뢰밭과 드론, 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이 작전을 차용했다. 이 작전으로 우크라이나군은 '바흐무트 전투'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반격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바흐무트 전투'에서 득실(得失)을 깨달은 러시아군은 이번엔 달랐다. 아브데예프카 전투에서는 '스톰 Z'와 '스톰 V' 부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군의 방어 약점을 파악한 뒤, 약한 고리를 집중으로 폭격하고 물고 늘어지는 전술을 구사했다. 또 지속적으로 주변 지역을 폭격해 우크라이나군의 방어선이 길게 늘어지도록 만들었고, 그 틈을 타 전방으로 침투하는 터널을 뚫어 기습 공격을 가하는 동시에 후방 물류망을 파괴하는 등 우크라이나 지휘부를 뒤흔들었다.
또 각급 부대간 통신을 통해 훨씬 더 빠르게 결정하고, 더 정확하게 적진을 촬영한 뒤 폭격을 가했다. 러시아군이 '바흐무트 전투'에 비해 병력 손실은 크게 줄이면서, 단기간에 아브데예프카를 점령한 것은 이같은 작전 덕분이었다는 평가다.
◇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에 속수무책?
아브데예프카 함락을 지켜본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앞으로도 러시아군의 공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2022년 여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군은 병력 면에서는 러시아군을 능가했는데, 그게 역전됐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2022년 9월) 이후, 양측의 병력 규모는 2023년 봄부터 팽팽한 균형을 이뤘으나, 그해 가을에는 러시아군의 우위로 넘어갔다. 우크라이나군이 여름철 반격 작전으로 예상보다 많은 병력 손실을 기록했고, 동원 문제까지 꼬이면서 신규 병력이 주요 전선에 거의 보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잘루즈니 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을 경질하기 전, 군부가 50만명의 동원을 요청했다고 공개한 게 우크라이나군이 처한 병력 부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러시아군이 며칠 사이에 우크라이나군의 주요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군은 아브데예프카를 공략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군의 힘을 점차적으로 뺀 뒤 진지를 하나씩 점령해 갈 것으로 스트라나.ua는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우선 공략 목표로 설정한 지역(도시 혹은 마을)을 향해 강력한 폭격과 '에어 폭탄'(카브)을 투하한다. 주 공격 목표는 우크라이나군의 주둔지와 주요 도로, 배후 지역, 방공망이다. 다수의 FPV 드론을 띄워 폭격 결과를 확인한 뒤, 공격부대는 장갑차를 타고 작전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어 소그룹으로 공격을 시도하면서 적 방어 진지의 약한 고리를 찾아낸다. 이때 가능하면 정면 공격은 피한다.
우크라이나군의 퇴각 이후 아브데예프카의 모습. 거의 완전히 파괴됐다
이같은 군사 작전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러시아군의 드론 보유량이 우크라이나군의 3배에 이르고, 포탄 사용량도 10배나 되기 때문이다. 제공권도 사실상 러시아 측에게 있으니, '에어 폭탄'의 항공기 투하는 수시로 이뤄진다. '에어 폭탄'은 적의 강력한 요새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군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아브데예프카 전투에서 러시아의 '에어 폭탄' 투하에 많은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기절하거나 절망적인 기분에 빠졌다는 전언이다.
사실, 러시아군은 개전 초기에 (형제나 다름없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목표 지역 공격에 앞서 사전 폭격을 자제했다. 중동전쟁 당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등 주요 도시를 무차별로 폭격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공격과 다른 점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작전은 우크라이나 측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고, 러시아군의 피해만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주요 공격 목표 지역(도시 혹은 마을)을 거의 폐허로 만든 뒤 진입하는 '무차별 작전'이야말로 러시아군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러시아군은 정찰 드론을 통해 적의 방어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때그때 공격 전술을 바꿔나가니, 상대로서는 죽을 맛이다.
◇우크라이나군의 대응전략은?
우크라이나군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병력, 더 많은 무기, 더 많은 드론이다. '에어 폭탄'의 투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최전방의 방공망 보강도 시급하다.
아브데예프카 방어에 나섰던 한 우크라이나군 장교는 스트라나.ua에 "적은 정찰 드론을 통해 우리의 위치가 어디이고, 또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철군 과정에서도 러시아군의 정찰 드론 때문에 대피용 수송 차량들이 아브데예프카로 들어올 수 없었다고 했다. 그나마 급히 투입된 제3 돌격여단이 엄호 작전에 나서준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 3돌격 여단이 조금 더 일찍 왔으면, 그만큼 병력 손실(희샘자및 포로)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아브데예프카를 떠난 우크라이나군이 서쪽에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상이 걸려 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지적이다. 아브데예프카가 그렇게 빨리, 2월 중순에 함락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전혀 함락 이후 대비가 안된 상태라는 뜻이다.
또 진지 구축을 위한 중장비 동원도 러시아에 비하면 느리고 열악하다. 러시아군은 새로운 영토에 중장비를 즉각 투입해 빠르게 강력한 요새를 만드는데, 우크라이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불만도 터져나온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