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잤니, 데이비드. 좋은 아침이야.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구나. 그러고 보니 네 표정도 무척 밝은 것 같네. 밤새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눈부신 아침 햇살을 느끼며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티셔츠 하나 걸치고 내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숲 속으로 걸어 올라간다. 무수한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매끄러운 야자잎 위로 신선한 아침 공기가 머물러 있다. 시냇물이 맑은 소리를 내며 내게 인사를 건넨다. 이 순간만큼은 내 자신이 인간이라는 존재성 자체를 망각한 채 그저 자연의 작은 일부가 된다. 나무, 바람, 꽃, 시냇물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저 멀리 숲 속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친구 하나가 있다. 데이비드다.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아침을 맞이한다.
내가 데이비드를 처음 만난 건 1960년 여름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당시 야생 침팬지 연구를 위해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로 떠났고, 하루빨리 침팬지를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매일 산봉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세 개의 계곡을 힘겹게 올랐다. 하지만 침팬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좌절감과 허탈감으로 힘없이 계곡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순간 나는 어두운 형체와 희미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설마, 혹시.’ 40미터 정도 앞에 서 있는 물체는 바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침팬지였다. 내 생애 가장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침팬지는 조용히 혼자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풀줄기를 이용해 흰개미를 먹고 있었다. 아침식사 중이었던 것이다. 뺨에 독특한 흰 수염을 가지고 있어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고 지어주었다. 데이비드는 그 이후로 내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주는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데이비드는 조용하고 위엄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는 멋진 침팬지였다. 그래서 나에 대한 공포심을 빨리 버리고 친구로 받아들여주었다. 나는 데이비드의 멋진 회색빛 턱수염을 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데이비드를 통해 나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어깨털과 머리가 벗겨진 맥그리거, 그리고 그의 어린 딸 피피와 두 아들 파벤, 주먹코에다 귀가 찢어진 플로, 늘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윌리엄과 내성적인 올리, 그리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길카 등…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사회 속에서 애정을 가지고 서로를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껴안고 등을 두드리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고, 때론 너무나 슬픈 표정을 지으며 홀로 숲 속을 배회하기도 했다. 그들의 감정 표현은 인간의 그것과 굉장히 많이 닮아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곤 했다. 입맞추기, 껴안기, 손잡기, 간지럼 태우기, 주먹질하기, 발차기, 꼬집기 등은 정말이지 인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때때로 데이비드는 내가 그를 따라다니게 내버려두었다. 어느 날 나뭇가지를 타고 내려오는 데이비드를 보았다. 그는 땅으로 내려와 몇 발짝 내 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잠시 자기 털을 손질하더니 한 손을 머리 아래 베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그리고 파란 하늘을 응시했다. 선선한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고 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우린 그렇게 오랜 시간 숲 속에 누워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다.
“제인, 처음 너를 보았을 때는 너무 이상하게 생겨서 사실 두렵기도 했어. 하지만 네 눈을 보는 순간 두려움이 사라졌지. 이젠 알아.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고마워, 데이비드. 날 좋은 친구로 생각해줘서. 난 어릴 적 꿈이 타잔의 애인 제인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는 거였어. 무작정 이곳으로 왔을 때 나도 사실 많이 두렵고 무서웠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곳을 너무 사랑하게 되었어. 다 너의 넓은 마음 덕분이야.”
데이비드는 그 이후에도 종종 물가에 앉아 나를 기다리곤 했다. 나는 그의 눈을 통해 아름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맘은 어느새 고요한 바다처럼 되곤 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마음의 위로뿐 아니라 내게 경제적인 도움까지도 주었다. 풀줄기를 이용해 흰개미를 잡아먹는다거나 나뭇잎을 으깨어 나무의 움푹 팬 구멍에서 빗물을 빨아먹는다거나 혹은 도구로 이용할 수 있는 돌들을 고르는 모습 등은 ‘침팬지도 인간처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는데,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내게 더없이 좋은 친구였다.
데이비드는 나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오만함을 벗어던지고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라는. 그리고 인간만이 언어를 가지고 의사 소통을 하며 도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그래서 우리 주위에 살아 숨쉬는 수많은 동물들을 인간의 의지대로 죽이고, 연구 대상으로 이용하고, 좁은 우리에 가두어두는 그런 모습들을 버릴 수 있다면 이 세상이 더욱 행복해질 것이라는 그런 가르침을 말이다.
※ 위의 내용은 제인구달연구소(www.janegoodal.org)에 기재된 제인 구달의 에세이와 기사들을 발췌해 번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