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입산통제 기간이 끝나는 3월 초하루,1년만의 5차 트레킹이다.
개인적으로는 구례산동에서 남원초입주천코스(19)를 걸어야 완주가 되는 상황이나,서울에서 새벽같이 출발하더라도 오후 반나절에 산길 17km는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하여, 함양동강-금계11km(4코스)를 시작으로,남원으로 진입하는 역코스를 선택하였다.
엄천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6개의 산중마을과, 척박한 산촌마을 다랭이 논들의 아름다운 곡선을 감상하면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유흥을 즐겼던 용유담에 이른다. 아홉 마리의 용이
놀던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곳으로, 마적도사도 함께 살았다고 전해 지는데, 어느 날 마적도사가 용들이 다투는 소리에, 아끼는 나귀가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장기를 두다가 장기판을 던져 용들을 쫓아냈다고 한다. 이때 던진 장기판 조각들이, 올라가는 계곡의 주변 바위가 됐다고 한다. 용유담의 전설을 알려주는 마적도사전설 탐방로가 조성돼 있었으나, 끝나는 부분에서 발견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리산의 맑은 계류에, 억겁의 세월동안 흐르며, 반석같이 깍고 다듬어서 빚은 오목하고 볼록한 하얀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백무동, 칠선계곡이 합쳐서 산청 경호강으로 흐르는 엄천강 상류에 속해 있다.
용유담에서 금계마을로 가는 짧은 코스를 택하는 바람에,판소리 변강쇠전의 무대였고,, 한국전쟁당시 빨치산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벽송사 구경을 놓치는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의중마을 입구의 농가에서, 지나가는 산중 손님을 그냥 보내지 않고,때마침 배달된 막걸리와, 코다리 구이, 배추소로 대접받으면서 또 박사가 된 딸자랑도 들어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다소 시간 여유도 있던 터라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한국 3대 계곡의 하나인 칠선계곡을 찾았다. 지리산의 원시림에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가 18km에 걸쳐 이어지나,입구 언저리만 주마간산격으로 구경한 후 삼겹살에 각종 산나물 등으로 푸짐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내일의 강행군에 대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함양은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펼쳐지고, 오도재 고개, 지리산의 대표적 절경지인 용유담, 100년 이상된 고옥들로 이뤄진 대표적인 선비마을이며,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개평한옥마을 등 핫한 여행지로 뜨고 있다.
부자집 맏 며느리인 민박집 여주인이 비상용 점심으로 비닐로 싸준 주먹밥과 김치를 나눠갖고, 함양금계에서 남원인월로 가는 3코스 (20.5km, 난이도:상)를 출발하였다. 창원마을 사람들이 인월 5일장을 보러가는 길이며, 거북이의 등을 닮아 “등구재”라고 하는 고개를 넘어 운좋게도 남원 산내면 상황마을의 “등구령 쉼터”를 만나, 막걸리로 목만 축이려다 파전을 곁들여 이른 점심을 먹었는데. 덤으로 나온 청국장과 무우전이 고마워, 지나가는 산행객 7팀을 유치한 실력을 인정 받아 일약 영업부장으로 특진시켜준 주막집 여사장의 여유와 유머 덕분에 실컷 웃고 어울리는 한 때를 가졌다. 친구가 흰머리 핑계로 열 살이나 위로 소개 하는 바람에 70세 노인이 기가 죽은 해프닝도 있었고, 이날따라 마주 오는 산행객이 제법 많았으며, 일일이 등구령 쉼터를 소개한 덕분에 많은 손님이 찾아 주었다고 한다.
트래킹 중에는 사람이랑 마주칠 때 반갑게 인사하는게 지리산 순례의 원칙이고, 길을 걷는 여행이 주는 묘미와 즐거움에 더해 주막집 정보까지 제공하느라 바빴으니 이래저래 기분 좋은 산길이다. 운봉이 호수일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배너미재와, 수자원으로도 음용될 만큼 물이 맑고 깨끗한 수성대를 지나 9시간 여 만에 인월 민박집에 도착하였다.
적선지가를 자랑하면서도, 수건 한 장이 원칙임을 강조하는, 융통성이 다소 부족한 주인 탓에 다소 상한 기분도 전환할 겸 생맥주로 입가심을 한 후 다음날 아침 식당 예약까지 마쳤다. 3일째인 오늘은 인월에서 운봉(2코스 9.9km)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 때문에 30분 먼저 문을 연 마을입구의 “두꺼비집” 어탕은 추어탕 맛도 풍기는 우리 모두가 극찬을 한 메뉴였다. 나중에 덕종 친구가 추천문자까지 보내왔고, 귀경 후 문의 결과 택배도 가능하단다. 만족한 기분으로 각자 벌꿀까지 택배로 주문한 후 바래봉과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면서 들어선 숲길, 임도, 제방길은 폭도 넓어 여럿이 함께 걷기에 좋은 평지였다. 흥부골 자연휴양림 언저리에서 만난 74세의 할머니는 화신마을에서 인월 5일장을 보러 가던 중 우리 일행을 만나 독실한 불교신자로서의 모습과 부디 건강하라는 덕담까지 건네주었다. 옥계저수지를 지나 조선후기 동편제의 중시조로 불리는 가왕 송흥록과, 수중가 보유자인 국창 박초월 생가를 들러본 후,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물리쳐 중요한 시대 인물로 부상하게 되는 황산대첩비지를 거쳐 제방갈을 제법 걸은 후 마지막 목적지인 운봉에 도착하였다.
그 동안의 경험과 최정예 팀웍(민성,탁중,희국,태용)덕분에 장승모양의 이정목 (리본이나 바닥 이정표는 보기 힘들었다)위주로 길 한번 잘못 들지 않고, 40여km를 무사히 걸었다. 고개만 들면 가고자하는 방향에 리본이 보였던 규슈 올레길과는 다소 대비되는 모양이었다.
버스로 남원에 도착하여 택시기사의 소개로 찾아간 유명한 추어탕 집은, 열무시래기를 잔뜩 넣은 추어탕 맛도 일품이었고, 추가로 주는 시래기와 국물 등 서비스도 만점이었다. 식사 후 인근에 있는 광한루로 이동하여 경로우대 때문에 신분증을 다 내보이고도, 모자까지 벗어야하는 절차도 감수하고 생전 처음으로 광한루를 둘러보았다.
광한루는 춘향전의 배경이지만, 그 역사는 황희정승시대로 올라가며, 평양부벽루, 진주촉석루, 밀양영남루와 함께 4대 누각으로 불러지며, 그중 으뜸이 광한루라고 한다. 후세에 세워진 춘향사당, 완월정, 1년에 한번만 밟으면 부부간의 금슬이 좋아진다는 오작교, 월매집, 춘향관 등을 구경하는 멋진 경험이었다. 초라하게 보존되고 있는 경북 봉화의 계서당 (이몽룡의 본명인 성이성의 생가)도 광한루와 연계시켜 활성화하는 방안도 있을 듯 하다.
센트랄시티 터미널에서 가끼아게 우동과 생맥주로 여독을 다소나마 푼 3일간의 숨가뿐 일정이었다. 설악산을 남자 산, 지리산을 여자 산으로 표현하는 글도 봤지만, 둘레길을 걸으면서 지리산이 얼마나 크고 웅장한 산인지,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고, 그 일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안식과 터전을 주고 있는지 몸으로 느끼는 트래킹이었다.
총 17일간의 둘레길 트레킹동안 원 없이 걸었고, 둘레길이 주는 행복감에 취하기도 했으며, 일상에서 벗어나 한 껏 웃을 수 있어 좋았고, 특히나 지역별 다양한 막걸리로, 그것도 아주 시원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두발로, 몸으로 나아가는 여행을 통해 주변을 둘러보고, 새삼 내 주위의 것들에 대한 소중함,평범한 행복감, 삶의 작은 성취감도 느껴보는 그런 과정인 듯 싶다.사람은 다리가 튼튼하면 병 없이 오래살 수 있고 ,다리를 단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 답이라는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둘레길 이었다..
힘들어 보이는 산길을 가다보면 경사가 완만하면 길이 멀고, 돌아가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니 힘들어 보이는 길이라도 정면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며, 우리네 인생 또한 그러하다는 노산행객의 좋은 말씀을 음미하며, 다음을 기약해 본다.
훈훈한 산골인심속에
광한루를 배경으로
한껏 여유를!
당산 소나무와 함께
등구령 쉼터, 이번 둘레길의 하이라이트
첫댓글 여행기 잘 읽었소. 글을 읽으니 함께 걸으며 신나게 웃던 그 당시가 파노라마처럼 기억이 나는구료. 산행대장으로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멋지게 수고해준 친구 태용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오.
지리산둘레길
현장감있는 글솜씨가 엄청고수
냄새나고,
사진올리는
솜씨또한 월척 ! 굿
온~통 먹고 마시는 이야기와 주막집 할매 이야기뿐이네, 어째던 글 쓴다고 고생했네, 근데 글씨 크기를 조금 크게 했으면 좋으련만~ 최정예 팀웍 화이팅!!!
하모~하모~
사진 월척등등은 철권글인데
오해하면 일ㄷ느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