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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독서평설] 2006.08.01
[심영섭의 넓고 깊게 보는 영화] 초인 영웅의 변모담 <수퍼맨 리턴즈>
슈퍼맨, 고독한 아웃사이더 되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8년에 만화 주인공으로 탄생한 슈퍼맨. 사람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그의 카리스마에 열광하면서 대공황과 전쟁의 암울함을 떨쳐 버리려 했다. 그 뒤 슈퍼맨은 1978년 영화 시리즈로 만들어졌고, 1980년대 말에 냉전 체제가 끝나면서 화려한 전성기를 맞았다. 할리우드는 슈퍼맨이 지구를 구하듯, 세상의 운명은 이제 '초강대국' 미국의 손에 달려 있다고 선언했다. 2004년 '원조 슈퍼맨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의 사망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졌나 싶었던 슈퍼맨은 올해 6월, '슈퍼맨 리턴즈'라는 제목 그대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향수에 젖었지만, '돌아온 슈퍼맨'의 달라진 모습은 우리를 '살짝' 놀라게 했다. 이번 시간에는 슈퍼맨의 쓸쓸한 귀환을 그린 <수퍼맨 리턴즈>를 보며, 우리 시대에 영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자.
지구는 내게 맡겨라!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그리고 원더우먼. 전부 브라운관에 한 번씩은 얼굴을 내밀었고, 이미 영화화되었거나 장차 영화화될 초인 영웅들이다. 그러고 보면 미국만큼 초인 영웅 시리즈에 집착하는 나라도 드물다. 울퉁불퉁한 이두박근 삼두박근을 자랑하는 근육질의 초인 영웅들은 뉴욕의 하늘을 날고, 고단 시영화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범죄와 탐욕의 도시의 땅을 가른다. 중국 영웅의 뿌리가 검객이고, 사무라이에서 일본 영웅이 태어났다면, 미국 영웅의 모델은 바로 초인이다.
미국인들은 절제와는 다소 거리가 먼, 무한대의 강인함을 지닌 영웅을 원한다. 그에게 검도나 내공, 초식超式, 무예·검술의 기본 동작인 세(勢)가 2개 이상 이어져 만들어지는 기술같은 형식미 따위는 애초부터 필요 없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고 힘을 합쳐야 비로소 살아나는 '독수리 5형제' 류의 동양적(특히 일본적) 영웅들과는 달리, 미국판 초인 영웅은 철저하게 '스스로 잘난' 존재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추구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의 본질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종과 계급이 뒤섞여 사는 미국에 정말 필요한 인물은, 그 모든 혼돈을 훌쩍 뛰어넘어 '힘' 하나만 가지고도 사람들의 경배존경하여 공손히 절함를 이끌어 내는 누군가였다.
1938년 'DC 코믹스'에서 나온 만화로 출발하여, 1978년 마침내 스크린에 첫선을 보인 슈퍼맨은 그 당시 미국이 희구希求, 바라고 구함하던 초인 영웅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색 배합부터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어색한 차란 쫄쫄이 옷과 빨간 팬티 차림에, 가슴팍에는 커다란 S자를 써 붙인 크리스토퍼 리브(1952~2004)는 뻣뻣하고 매력 없는 '평범 맨' 과 자동차도 번쩍 들어 올리는 경이로운 힘을 지닌 '슈퍼맨'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힘의 화신' 이라는 슈퍼맨의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측면들이 강조되어야 했다. 예를 들어 출생지도 '시시한' 지구가 아니라 머나먼 외계의 크립톤 행성으로 설정되었고, 어디까지나 지구 평화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위해서만 초능력을 쓰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끝에 가서는 늘 승리자가 되었다. 슈퍼맨의 이러한 범상치 않은 태생과 능력, 낙천주의야말로, 만화 슈퍼맨이 크게 성공을 거둔 1950, 1960년대 미국의 패권주의와 낙관주의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자신이 슈퍼맨임을 숨긴 채, 평범한 소시민 클라크 켄트는 '슈퍼맨이 지구를 구할 것' 이라고 말해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곤 한다. 사실, 슈퍼맨은 밤낮이 완전 뒤바뀐 상태로 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아무런 회의도 품지 않는, 참으로 이상한 영웅이다. 기자이며 연인인 로이스 레인 말고는 누구와도 정서적 유대를 맺지 못하는 슈퍼맨. 그는 '신의 아들' 예수처럼 비범한 능력과, 어린아이와도 같이 순진하고 어수룩한 면을 한 몸에 지닌 '기형적' 이미지로 묘사된다.
'돌아온 슈퍼맨'의 비애
<수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1는 <엑스맨(X-Man)>(2000)과 <엑스맨 2(X2)>(2003)의 브라이언 싱어(1966~) 감독이 <엑스맨:최후의 전쟁(X-Man:The Last Stand)> 연출 제의를 물리치고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라 더더욱 흥미롭다. 어려서부터 초인 영웅담의 열혈 팬이엇던 그는 기존의 슈퍼맨 시리즈들이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훨씬 강력해진 초인 영웅의 세계를 눈앞에 그려 낸다. 추락하는 비행기보다 더 빨리 날 수 있고, 바로 앞에서 날아오는 총알도 순식간에 잡아채 통조림 캔처럼 찌그러뜨리는 슈퍼맨의 초능력.
그런데 한 발 물러나 생각하면, 브라이언 싱어는 이전의 슈퍼맨 영화들이 보여준 낙관주의와 영웅의 강인한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듯 보인다. 전작 <슈퍼맨 4:최강의 적(Superman IV:The Quest For Peace)>(1987, 감독 시드니J.퓨리)의 결말 부분에서 외계로 훌쩍 떠나 버렸던 슈퍼맨(브랜든 라우스 분)은 5년 만에 지구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를 지구에 묶어 둔 유일한 '정서적인 끈' 이었던 로이스(케이트 보스워스 분)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게다가 그녀는「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슈퍼맨이 필요 없는가」라는 기사를 써서 퓰리처상미국의 언론인 퓰리처의 유산으로 1917년 제정되어, 매년 신문·잡지·문학 부문의 우수자에게 주어지는 권위 있는 상까지 탄다. 설사아가상으로 악당 렉스 루터(케빈 스페이시 분)마저 감옥에서 나와 활개를 치고 있다. 이처럼 경천동지驚天動地, 세상을 몹시 놀라게 함할 사실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더 이상 슈퍼맨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기보다 그를 하나의 가십거리로 취급한다.
그렇다. 브라이언 싱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세상이란 슈퍼맨의 무지막지한 힘과 순진한 이상만으로는 구원도리 수 없는 복잡다단한 곳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외계 출신이라는 출생의 비밀은 1978년 영화를 비롯한 전작들에서는 카리스마의 근원이 될 만큼 슈퍼맨의 비범함을 강조해 주었다. 하지만 2006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일종의 우주 괴물 내지 외계에서 온 타자(他者), 고독한 이방인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이러한 변모는 기존의 수퍼맨 이미지에 균열을 불러일으킨다. 이 같은 전략은 브라이언 싱어가 엑스맨 시리즈에서 보여 준, 초인 영웅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것이다.
엑스맨. 고뇌하는 반(反)영웅
2000년 개봉한 <엑스맨>은 그 당시 초인 영웅 신화의 신기원을 이룬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그 까닭은, 뒤집어 보면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전체주의와 사회적 편견이 빚어낸 희생양에 관한 거대한 우화이기 때문이다. 첫 장면에서, 소년 에릭 랜셔는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holocaust, 대학살의 현장에서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초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뒷날 사상 최강의 변종 인간이자 악당인 매그니토(이안 매캘런 분)로 변모하는 그의 모습에서, 감독은 사회적 만행의 희생양이 된 인물과 유전자 변이로 돌연변이가 된 엑스맨의 처지를 나란히 대비시킨다.
올해 6월에 개봉한 브렛 라트너 감독의 <엑스맨:최후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엑스맨들은 매우 인간적일 뿐 아니라,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곱씹으며 고뇌한다. 예컨대 울버린(휴 잭맨 분)은 손등에서 칼날이 나올 때 아프냐는 질문에 "늘 그렇지."라며 담담하게 답한다.
이렇듯 엑스맨들은 슈퍼맨 같은 절대 권력자라기보다는 우리 안에 감추어진 어떤 심성이 극대화된 영웅들이다. 로그(안나 파킨 분)는 만지기만 해도 상대방의 기억과 능력을 흡수해 버리는 놀라운 힘을 지녔지만, 그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와 손을 맞잡을 수조차 없다. 능력을 얻은 대가로 애정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여성성의 비극적 측면을 상징한다. 원하는 대상의 모습과 음성, 지문까지 자유자재로 모방하는 미스틱(레베카 로미즌 분) 역시 남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할 만큼 '유연한' 여성성을 지닌, 팜므 파탈(Femme Fatale)2의 변종쯤 되는 악역이다.
한편 울버린과 털북숭이에 송곳니가 날카로운 세이버투스(타일러 메인 분)가 상징하는 극단적인 공격성과 야수성은 여성성과 대조를 이룬다. 외보는 야수 같지만 신비한 치유 능력을 지닌 울버린 덕분에 로그가 치유된다는 설정은 엑스맨 시리즈가,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데 남의 도움을 빌려야하는 '나약하고 인간적인'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임을 입증한다. 따라서 엑스맨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어쩌면 악당 매그니토, 곧 반 평생을 게이로 지냈고 셰익스피어 극 연기의 최고 권위자이기도 한 이안 매켈런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엑스맨' 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엑스맨은 슈퍼맨이나 배트맨과는 다르다. 그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위장하지 않는다. 자신을 속이고 무리에 섞여서 살기보다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배어 있다. 액스맨들의 고민이 내면에서 비롯되었으며 '과년한'여기서는 '어느 한도보다 나이를 더 먹어 버린'의 뜻임 10대처럼 아직도 정체성 문제 때문에 방황한다는 사실, 그들이 슈퍼맨이나 배트맨과는 달리 유전자 변이로 돌연변이가 되었다는 사실은 여차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섬뜩한 운명을 공유하게 한다.
그리하여 엑스맨은 초인 영웅으로 산다는 것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만큼이나 어렵다는 진실을 일깨워 준다. 완벽한 인간에 대한 향수와 이상이 슈퍼맨을 만들어 냈지만, 그렇게 탄생한 초인 영웅도 괴물이나 귀신과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의 편견과 공포 때문에 일상 저 너머로 밀려나는 타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 솔직한 자화상
사실, 강인한 초인 영웅의 이미지에 이렇듯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슈퍼맨>의 뒤를 이어 10여 년 만에 등장한 <배트맨(Batman)<(1989, 감독 팀 버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슈퍼맨과 차별되는, '위장도니 흑인 또는 흑기사' 라 할 만하다. 정체성이 모호해서 자아분열을 연상시키고 음습하기 짝이 없는 박주의 형상이 암시하듯, 배트맨의 신화는 빛의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어두운 인간 내면에 도사린 그림자에서 나온다.
'배트맨' 브루스 웨인(마이클 키튼 분)은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수비게 헤어나지 못한다. "창백한 달빛아래서 악마와 춤을 추어 봤니?" 라는 악당 조커(잭 니콜슨 분)의 대사는 브루스에게는 저주스러운 악몽의 비밀을 푸는 암호와도 같다. 왜냐하면 이것은 길거리에서 부모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어린 브루스가 그 자리에서 들은 마지막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조커의 대결은 과연 배트맨이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것인지,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 몹시 분하여 이를 갈며 속상해함하는 것뿐이지 그 진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3같은 자본주의의 마천루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건물속에서 배트맨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비열한 영웅의 면모를 감추고 있다. 그는 사적(私的) 복수라는 충동적인 욕구를 공적(公的) 영웅의 이미지로 교묘하게 조작한다. 보수적인 그에 비하면, 웃는 얼굴로 <모나리자>에 낙서하는 포스트모던한여기서는 '귄위에 도전하는',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특이한'의 뜻임 기질의 소유자 조커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다운 발랄함을 보인다.
이렇게 초인 영웅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무의식에 깊숙이 자리 잡은 바람에서 태어나서, 시대와 함께 변모에 변모를 거듭해 왔다. 슈퍼맨이 '강한 미국' 의 이상을 등에 업고 1960년대 미국의 도덕성 상실과 베트남전에서 패배를 지나칠 만큼 보상해 준 영웅이었다면, 배트맨은 느와르noir, 필름 느와르 범죄와 폭력의 세계를 다룬 영화적 요소가 배어 있는 영웅담, 더 나아가 1980년대의 레이거니즘(Reaganism)4과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로까지 읽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마침내 인간의 모습을 한 돌연변이 초인, 곧 떠받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척당하는 타자인 '엑스맨' 그리고 '돌아온 슈퍼맨'이 나타난 것이다. 절처한 장사꾼이 동시에, 인류에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 같은 매력도 함께 지닌 렉스 루터처럼, 악당들 역시 더 이상 천편일률적인 악의 화신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들은 영웅과 악당의 두 얼굴, 곧 선과 악이 우리 내면에서 하나로 뒤엉켜 있음을 암시한다.
설령「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슈퍼맨이 필요 없는가」라는 기사가 실제로 나오게 될지라도, 우리는 알고있다. 우리는 늘 슈퍼맨을 필요로 한다. 서부를 지나 우주로 영토를 확장해 가는 우주 전쟁의 시대, 미국의 초인 영웅들은 미국의 역사를 반영하는 우주의 카우보이들일 뿐 아니라, 나날이 인간의 모습을 더 닮아 가는 신의 아들들이다.
월드컵이 끝난 지금, 영웅을 갈망하다가 축구 스타에 열광하던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괴물' 아니면 '영웅', 그 두 갈래 선택의 갈림길에서 영원히 망설일 우리의 모습을, 슈퍼맨은 저 너머 우주에서 팔짱을 낀 채 유유히 지켜보고 있지나 않을는지.
주
1. 이전 영화의 표기나 외래어 표기법상 '슈퍼맨'이 옳다. 이 글에서는 이 영화 제목에서만 '수퍼맨'이라 표기한다.
2. 팜므 파탈 - 프랑스 어로 '숙명의 여인' 을 뜻하는 사회 심리학 용어다. 19세기 낭만주의 문학 작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래 미술·연극·영화 등 장르로 확산되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남성을 죽음 ·고통 등의 치명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악녀나 요부' 를 뜻하는말로 쓰이고 있다.
3. 소돔과 고모라 -『구약성서』에서, 성적·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이유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유황 비를 맞아 멸망한 두 도시를 가리킨다.
4. 레이거니즘 - 1980년 미국의 제 40세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R. 레이건의 보수적 정책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국 수상 M. 대처의 이름을 딴 대처리즘과 함께 신보수주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레이건 행정부는 복지 정책에서의 정부 개입 축소와 시장 기국 부활, 시민권 제한을 강조하며, 사회·종교·도덕적 보수주의에 기초한 질서·권위의 확립, '강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을 꾀했다. 1960년대에 급격히 진행된 사회적 평등과 진보주의, 배트남전 패배로 인한 미국의 대외적 지위 약화로 기득권 유지에 불안을 느낀 보수적 백인 중산층에게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 심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