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리영희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결국은... 가셨구나...
저도 모르게 창밖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날씨는 흐려도 춥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첫아이를 출산하는 날, 리영희 선생의 '대화'를 다 읽었습니다.
한 챕터 정도 남기고 통증이 시작됐는데
그냥 덮을 수가 없어서 분만실까지 들고 갔지요.
어차피 언제 나올 지도 모르는 일,
책이나 읽으며 기다리자 하고 들고 간 거였는데
의사가 분만실에 그렇게 두꺼운 책 들고 오는
산모는 첨봤다고 혀를 내두르더군요 ^^;;;
(사실, 겉만 두꺼울 뿐이지 술술 읽히는 책인디...
'대화'는 리영희 선생님의 책 중에서 가장 재밌고도 쉬운 책이랍니다.)
이 악물고 진땀 흘리며 읽느라
어떻게 결론을 맺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더 잘 살아야겠다는 결의도 생기고
태어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마음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 책 덕분에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첫 산고를 잘 넘겼습니다.
옆에서 졸고있던 남편보다 더 큰 힘이 되었지요.-,,-;;
80년대 말에 대학을 다녔고 언론학을 전공한 때문에
리영희 선생님의 책은 그때부터 열심히 읽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선생님은 책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상의 은사', '살아있는 투사'였지요
제가 학교 다닐 적에도 선생님은 감옥을 드나드셨는데
언젠가, 선생님이 재직하셨던 한양대 신방과 친구들과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기억이 나기도 하는군요
그러다가 2004년 봄에 가까이서 선생님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물현대사>를 찍기 위해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선생님은 병상에서 꽤 회복되어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군포 수리산 자락에 있는 아파트를 찾아가니
사모님과 두분이서 익살스런 농담도 주고받으며
참 재미나게 살고 계시더군요
손수 운전하시는 차에 저희를 태우고
근처의 유명한 민물매운탕 집에도 데려가 주셨는데
물빛 반짝이는 저수지가에 둘러앉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일종의 자서전 격인 '대화'를 퇴고하고 계셨습니다.
책과 자료로 빽빽히 둘러친 서재에 들어서니
선생님께서 손을 보시던 원고들이 책상위에 널려있더군요
의자에 앉아있기도 힘든 몸으로 하루에 몇 페이지씩
수정을 보았다는 그 원고뭉치를 보는 순간,
저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떨리는 필체로 깨알같이 덧붙여 적어놓은 빨간색 문장들은
저에게 '글은 이렇게 써야하는 거야'라고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 수병들은 잠수함에 들어갈 때 토끼를 데려갔다고 하죠
공기에 민감한 토끼가 산소부족에 따른 호흡곤란으로 죽게 되면
그것을 신호로 잠수함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라 산소를 공급했다고 합니다
세상의 불합리한 징후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존재,
리영희 선생님은 바로 그런 '잠수함의 토끼'같은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온몸으로 이 나라의, 현실의 부조리한 구조를 일깨워준 사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아.
나머지는 후배들의 몫이지. 나보다 더 잘 할 거야."
오래 오래 사셔서 모자란 우리를 이끌어주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선생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질 때마다
허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시곤 했지요.
첫댓글 두레 출판사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몇 일 전에 리영희 선생님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일요일에 돌아가셨다는 소식 뉴스로 접하니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04년도에 군 생활 할 때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를 통해 리영희 선생님을 알게 됐습니다.
그 후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반세기의 신화’, ‘대화’ 등의 저서를 읽고 언론인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제대 후 복학하고 학교를 다닐 때 리영희 선생님께서 심산상을 받으러 학교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수업을 땡땡이 치고 리영희 선생님이 상받는 모습 보러가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홋... 재민간사님도 꽝꽝? 어쩌면 마주칠 뻔했기도 ^^;; 리영희 선생님이 심산상을 받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맛세이' 심산선생님도 흐뭇하셨겠는데요 ㅎㅎ
낮에 맨발각시님 댓글보고 앗! 했네요. ^^;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맨발각시님 지난 글 몇 개 훑어봤네요ㅎㅎ
도서관에 '아깝다 학원비' 소책자 비치해놓은 사진 보고 감동했습니다!^^
‘지식인’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리영희 선생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맨발각시님 글 감사합니다.
리양희선생님의 '대화'를 읽다 식탁에 올려두고 아직 마지막장을 넘기지 못했네요.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다른 저서들도 읽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새겨봐야겠습니다.
리양희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습니다. 제 관심 분야가 아니라서요.
맨발각시님 글을 보니 그 분의 책들을 읽고 싶어지네요.
근데 출산하면서 책을 읽는다니 대단하네요. 새롭구요.
진통이 왔을 때 저는 뭘 했나 생각해 봅니다. -.-;;;;
한 번 읽어보지요. 그리고 기왕이면 독후감도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