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 송찬호
맨드라미 머리에 한 됫박 피를 들이붓는 계관(鷄 冠)식 날이었다 폭풍우에 멀리 날아간 우산을 찾아 소년 무지개가 집을 떠나는 날ㄹ이었다 앵두나무 그늘에 버려진 하모니카도 썩은 어금니 로 환하게 웃는 날이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맨드라미 동문들이 찾아와 축 하를 해준 날이었다 봉숭아 금잔화 천일홍 등으로 구성된 장독대 악단 의 찬조 공연도 펼쳐진 날이었다 우리도 가만있을 순 없지, 일요회 소속 맨드라미파 화가들도 풍경화 몇 점 남긴 날이었다
이건 약소한데요, 인근 슈퍼에서 후원한 박카스도 한 병씩 돌리는 날이었다 오늘 참 이상한 날이네 웬 붉은 깍두기 머리들이 이리 많이 모였지? 땀 뻘뻘 흘리며 나비 검침원이 여기저기 찔러보고 날아다니는 긴긴 여름날이었다
나팔꽃 우체국 / 송찬호
요즈음 간절기라서 꽃의 집배가 좀 더디다 그래도 누구든 생일날 아침이면 꽃나팔 불어준다 어제는 여름 꽃 실리즈 우표가 새로 들어왔다 요즘 꽃들은 향기가 없어 주소 찾기 힘들다지만 너는 알지? 우리 꿀벌 통신들 언제나 부지런하다 는 걸
혹시 너와 나 사이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다 하더 라도 이 세계의 서사는 죽지 않으리라 믿는다 미래로 우리를 태우고 갈 꽃마차는 끝없이 갈라져 나가다가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와 같은 나팔꽃 이야기일 테니까
올부터 우리는 그리운 옛 꽃씨를 모으는 중이다 보내는 주소는, 조그만 종이봉투 나팔꽃 사서함 우리 동네 꽃동네 나팔꽃 우체국
백일홍 / 송찬호
담벼락 아래 옹기종기 모여 노는 대가리 부스럼투 성이 백일홍들 공기놀이하는 백일홍 물구나무서기하는 백일홍 양식 구하러 간 엄마 언제 오나 까치발 하여 멀리 동구 밖 내다보는 백일홍
놀다 허기지면 우물가에 내려가 한 바가지씩 물배 를 채우고 오뉴월 땡볕 똥글똥글 궁굴려 가는 쇠똥구리 백일홍 다섯 살 막내 졸졸 따라다니며 누런 코 핥아 먹는 강아지 백일홍
이담에 크면 우리 여기다 커다란 꽃밭을 만들자 그다음 여기 꽃밭에다 뽐뿌를 박고 촐랑촐랑 여기서 퍼올린 물로 분홍물 다홍물 장사를하자
그대 골목을 들어오시던 어머니, 일평생 그날 단 하루 신식 여성이셨던 우리 어머니 그날 친정 갔다 얻어 입고 온 허름한 비로드 양장 치마저고리 그때 처녀 적 수줍음처럼 어머니 가슴에서 반짝이 던 빠알간 백일홍 브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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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詩의 향기 / poem & photo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