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업 - 특별한 목적 없이 독서를 하는데, 괜찮을까요
질문
스님 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합니다. 그래서 독서를 하기는 하는데 뭔가 간절하지가 않습니다. 답을 찾고자 하는 바가 없어서인지 독서가 쓸모 없다고도 느껴집니다. 한 마디로 저는 무용한 독서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도 될까요?
무용한 독서
무용한 독서의 의미는 독서하는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결론을 말하면 일단 '목적, 목표'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책을 긁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목적이 조금 더 잡힐 것으로 판단됩니다.
독서의 목적은 '공부'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삶의 개선을 이끌어내는 행위입니다. 이것만으로 독서의 목적은 충분합니다. 개인적인 특별한 목적을 더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간의 두뇌는 기억하려는 목적이 없어도, 호기심을 가지고 정보를 입력하고, 그 속에서 감정을 느끼며, 비슷한 정보를 반복해서 읽으면 기억합니다. 내 의도와는 상관 없이.
정보가 기억되고 변형되며 강화되기를 반복하면 강력한 생각의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도 무용하게 독서를 지속하다보면, 지식화된 정보가 넘쳐 흐르기 시작합니다. 말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쓰는 단어가 달라지고, 문장의 뉘앙스가 개선됩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무용하게 독서하면, 행동도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침착해지고, 활기가 생기기도 하며, 여유로워지고, 교양이 생깁니다.
무용하게 식사를 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먹는데 뭐 특별하고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먹으면 흡수한 영양소가 몸 속에서 영향을 미칩니다. 무용하지만 계속 먹으면 변화가 몸 밖으로도 흘러 넘칩니다. 건강과 질병으로 드러나고, 심지어 정신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특별한 이유 없지만 지속적으로 먹으면? 삶에도 흘러갑니다. 학업과 수행 그리고 사업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무용하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저작권을 외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이것을 한다는 것. 이 저작권이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음식은 내가 먹지 않습니다. 몸이 먹죠. 독서는 내가 먹지 않습니다. 두뇌가 먹습니다. 두뇌가 독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요. 이 이유를 넘어서는 특별한 '나'의 목적은 필수가 아닙니다.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뇌가 읽는 것이 독서입니다"
선택적 촉매, 목적
"목적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인가요?"
중요합니다! 다만 독서하고 공부하는데 있어 필수적 요소가 아니라 선택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이를 필수라고 생각하면 쓸데 없이 걱정과 문제를 만들기 마련입니다. 독서는 식사이기에 목적 없이 먹어도 좋습니다. 무용한 독서도 훌륭합니다.
목적을 가지면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목적은 촉매입니다. 초점입니다. 두뇌에게 명료한 명령어를 내리는 것입니다. 돋보기가 명료한 초점 없이 태양광을 받아들이는 것과 초점을 맞추고 또 맞추고 또 맞춰내서 잡아낸 후 받아들이는 것은 극도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종이를 태우기도 못 태우기도 하는 차이를. 1도에서 99도까지의 열기는 차이가 있지만 한 가지 성질입니다. 반면 99도와 100도의 열기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것입니다. 99도는 끓지 못하지만 100도는 끓으니까요.
목적은 촉매입니다. 정보를 먹고, 이를 소화시킨 후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흐르는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두뇌에게 식사를 제공한다는 목적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 독서를 통해 나만의 목적을 가지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는 순간, 독서 100권이 필요했던 일이 독서 1권으로 해결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목적은 초점입니다. 두뇌에 정확한 명령어를 내리는 작업입니다. 이 책 중 어디에 주목해야 하고, 어떤 키워드를 찾아야 하며, 어떤 스토리를 발견해야 하는지를 반복해서 입력하면 두뇌라는 컴퓨터는 의도를 지닌 채 독서에 임하게 됩니다. 그럼 이에 따른 결과물을 내놓기 마련입니다.
목적은 동기입니다. 독서는 공부의 수단이고, 공부는 개선될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특히 수행자의 공부는 궁극의 개선인 열반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목적이 없다면 결국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멈출 것'이라는 점은 공통입니다. 하루 하고 멈추든, 1년 하고 포기하든, 100생을 하고 그만두든... 결국 파초와 같이 시들어버린 정진의 결과는 같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목적을 이룰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고 지속가능합니다.
목적 없는 독서도 좋습니다. 다만 그저 식사를 하는 것을 넘어, 전문가인 미식가의 길로 들어서려면 분명한 목적을 지니는 것이 유리합니다. 천일천독의 기간 동안 목적을 찾고 명문화하고 가다듬어 최적화하는 '목적'을 가져보는게 어떨까요? 취미를 넘어서 독서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선택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촉독의 메타분석
촉독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매일 한 권씩의 책을 읽습니다.
'책 한 권에는 1시간 이상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물론 만독의 마음가짐은 다릅니다. 교과서에 온 생의 시간을 전부 투자할 수도 있으니까요. 촉독은 왜 1시간에 한권, 다양한 책을 접촉할까요? 이는 정보에 대해 재차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출판된 도서는 정크푸드와는 다릅니다. 정보의 진실성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현 시대는 비교할 수 없이 쉽게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전자책도 종이책도 쏟아져 나오는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양서를 고르는 일은 그만큼 중요해졌습니다. 도서의 내용 중 훌륭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정보를 판별하는 힘이 없다면? 책을 읽지 말아야 할까요? 준비한 다음에 읽는 것으로 해야 하나요?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더기가 무섭기는 하기 때문에 촉독을 먼저 연습하기를 권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몇 가지 검증을 하게 됩니다.
촉독은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정보를 먹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천일동안 연습을 한다면 그 기간 동안 같은 키워드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입체적으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나선형 반복 구조로써 두뇌에 반복 입력되는 것입니다. 같은 의견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서 배우게 됩니다. 한 가지 근거가 아니라 다양한 근거를 접촉하게 됩니다. 정보를 판별하는 힘은 이 과정에서 생성됩니다. 다양한 정보를 접촉하고, 기억하며, 해석하고, 응용하여, 상호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정보를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이 질로 치환되는 과정입니다.
아무리 좋은 양서, 인생책을 발견하더라도 한 가지 의견에 사로잡히는 것은 독입니다. 이는 작가의 은혜에 배은망덕한 보답을 하는 것입니다. 정신을 성장시키는 보약을 독으로 썼으니 말입니다. 그렇기에 교과서조차도 한 권이 아닌 몇 권으로 정해야 합니다. 만독을 시작하더라도 촉독은 이어져야 합니다. 두뇌는 낯선 의견과 반대의 의견을 담은 정보를 입력함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정보는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입체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사람도 상대방의 변화에 따라 열 가지 백 가지 얼굴을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하나의 존재에 대한 평가가 만가지로 나뉘는 이유는 각자가 다른 면을 봤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체적인 면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촉독은 이런 지혜의 꽃을 피우는 생각길과 태도를 형성하는 훈련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무용한 독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개인의 의도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정보의 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선택적으로 촉매와 초점 그리고 지속가능한 동기가 필요하다면 목적을 정해야 합니다. 다만 목적에 매몰되지 않는 태도로 다양한 주제의 책을 열린 마음으로 접촉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출세간의 지혜로 꽃 피우는 결과를 내는 촉독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