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 엄마의 편지(2019.4.28.)
1998년 안동시 정상동에 택지개발지구가 지정되었는데, 개발을 위해 주인 없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안동대 박물관이 지표 조사를 하기로 예정 되어 있었답니다. 그런데 안동 어느 문중에서 입향조의 무덤을 찾기 위해 무덤을 파다가 '철성 이씨(고성 이씨)'라 적힌 무덤을 우연히 발견하고 고성 이씨 문중에 알려 이씨 문중 입회 하에 발굴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무덤의 주인공은 발굴 당시 약 400여 년 전 죽은 고성 이씨 문중의 이응태(1556-1586)로 밝혀졌으며 그 무덤 속에는 미이라와 함께 그의 아내가 쓴 한글편지와 머리카락을 섞어 삼은 미투리(신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이 편지는 가로 58.5Cm, 세로 34Cm 크기의 한지에 한글 고어체로 쓰여 있었으며, 아내가 병환 중인 남편을 위하여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 줄기로 신발을 삼는 등 정성을 다하였으나, 31살의 남편이 어린 아들과 유복자를 두고 세상을 떠나자 안타까운 마음과 사모하는 정을 편지에 빼곡히 적어 놓은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 편지 속에 원이 엄마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으로 ‘자내(자네)’라는 말을 14번 사용하였는데, 이 당시 자네라는 말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여보, 당신’처럼 스스럼없이 평등하게 사용하던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원문 일부 내용을 살펴보시고 400여 년 전, 병환 중 31살 요절한 남편을 먼저 보낸
원이 엄마의 조선 판 ‘사랑과 영혼’을 함께 감상해 보시겠습니다.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당신 언제나 나에게 말하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둘이 머리 희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당신에게 말하고는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마음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는 것인가요?
아무러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러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첫댓글 아내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슬픈 편지네요.ㅠㅠ 간절히 원한 만큼 꿈속에서라도 꼭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