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R 미얀마 노동운동 단체가 현지 미얀마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권을 교육하는 장면. [출처: ALR(Action Labor Rights)] |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미얀마 노동자에 갑질을 하고 있다. 한국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1980년대 미얀마에 진출했다. 지난해 7월에 발표된 미얀마의 최저임금은 월 10만 8천 챠트(한화 약 10만 8천 원), 최저 시급은 450챠트(한화 약 450원)이다. 한국 기업이 소유한 의류·봉제 공장은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일하던 평화시장을 떠오르게 한다. 이곳 미얀마 노동자들은 하루 11~12시간 일한다. 75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용하는 화장실에 제대로 작동하는 변기는 없다. 아파서 양호실에 가면 “아픈 건 그냥 너의 상상”이라며 돌려보낸다.
미얀마의 노동운동 단체인 ‘Action Labor Rights (ALR)’에 따르면 1988년 이래 한국의 대 미얀마 투자는 2015년 3월 약 4조 원으로 전체 외국인 대 미얀마 투자의 약 7%에 달한다.
제조업 부문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미얀마의류제조업체연합(The Myanmar Garment Manufactures Association, MGMA)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얀마의 한국 의류·봉제 공장은 직원 규모에서 점유율(36%)이 가장 높다. 코트라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얀마 진출 한국 기업은 200여 개다. 이 중 의류·봉제 업체가 80~90개 사로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의류·봉제 공장당 평균 1,2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미얀마 의류 산업은 2020년까지 80억에서 1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미얀마 의류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리면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등 미얀마 노동자의 노동권은 의류 산업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중심에 미얀마 의류·봉제 산업 노동 시장을 장악한 한국 기업이 있다.
지난 3월 ALR은 미얀마 진출 한국 의류·봉제 기업의 인권 침해 실태에 대한 조사 보고서인 〈Under Pressure〉를 발간했다. 해당 조사는 2015년 4월부터 6월까지 39개 공장, 노동자 1,200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보고서는 영국에 기반을 둔 기업과 인권 연구소 (Institute for Human Rights and Business)와 덴마크 국가위원회(Danish Institute for Human Rights)가 공동으로 설립한 미얀마기업책임센터(Myanmar Center for Responsible Business)의 지원으로 제작됐다. 이 문제와 관련 없는 유럽 국가가 한국 기업을 겨냥한 보고서 제작에 힘을 보탠 것이다. 해외 노동운동 단체가 한국 기업만을 상대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 4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유엔 기업과 인권 아시아 지역 포럼’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뚜레인 아웅(Thurein Aung) 씨를 지난 5월 30일 서울 종로구 국제민주연대에서 만났다. 지난달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기업과 인권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NAP) 콘퍼런스’ 참석 차 방한한 그는 미얀마 내 한국 기업의 인권 침해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을 공식 방문하고 있는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 그룹’을 5월 25일 만나 미얀마 한국 기업 인권 실태를 설명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소유한 의류·봉제 업체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 시간과 임금은 어느 수준인가
ALR이 발간한 〈Under Pressure〉 보고서는 미얀마 최저임금 도입 전에 조사가 진행된 자료다. 따라서 지금은 개선됐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조사했을 당시 상황을 보면, 한국인 소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근무 시간은 11~12시간이 43%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이 10~11시간(21%), 12~13시간(13%) 순으로 많았다. 임금은 초과 근무 수당을 포함해 월 10만 챠트(한화 약 10만 원) 정도다. 노동자의 64%는 현재 받고 있는 임금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또 34%는 생활 임금 수준이라고 답했다.
한국 공장의 초과 근무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상당수의 한국 공장들이 초과 근무 관련해 특히 미얀마 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 미얀마 노동법상 초과 근무는 주 16시간까지 허용된다. 미얀마 노동자 37%가 주 10~15시간의 초과 근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5~20시간은 27%, 심지어 25~30시간까지 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미얀마 노동자의 64%가 공장 관리자의 초과 근무 요청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미얀마 노동부 장관은 주 20시간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법과 노동부 장관 고시에 차이가 있어 정부 관할 노동사무소(한국의 지방노동위원회 같은)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지만 답변은 없었다.
어떤 한국 공장은 토요일 아침 9시부터 밤 11~12시까지 일을 시킨다. 한국인 관리자는 “내일은 일요일이니 일을 더 할 수 있지 않냐”며 노동자를 압박한다. 또 초과 근무를 거부했을 때 일정 금액을 공제하는 이른바 ‘퇴근 공제(gate pass)’와 근무 기록부에 기재되지 않는 초과 근무인 ‘추가 작업(extra time)’ 등 불법적 임금 산정과 공제도 발생한다.
초과 근무 수당은 받나
받긴 받는다. 문제는 ‘어떤 것을 초과 근무로 볼 것이냐’다. 대부분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일일 할당량을 준다. 노동자들은 목표량을 달성할 때까지 일해야 한다. 노동 시간을 넘겼어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경우 이를 초과 근무로 보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 초과 근무 수당은 없다.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애로 사항은 무엇인가
여성 노동자 인권 침해가 가장 시급한 문제다. 현재는 여성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다시 조사가 진행 중이다. 미얀마 여성 노동자는 45일의 출산 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지만. 알고 있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일부의 경우 출산 휴가를 받지만 대부분 해고된다. 그래서 임신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출산 휴가를 다녀와 공장에 돌아와도 원래 자신이 일했던 자리로 복귀하지 못한다. 신규로 채용돼 임금도 월 2만 7천 챠트(한화 2만 7천 원) 정도를 받는다. 그래서 보통 가족들이 출산하고 공장으로 복귀할지 말지 결정한다.
〈Under Pressure〉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노동자의 22%만이 법적으로 보장된 병가 30일을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39%의 노동자들은 3일 이상 병가를 사용할 수 없고, 이를 초과할 경우 임금 삭감 또는 해고를 당할 수 있다고 답했다. 여성 응답자 7%는 성희롱을 직접 경험했거나 다른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을 들어 본 적 있다고 답했으며, 응답자 10%는 관리자에게 언어·신체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욕실과 화장실, 기숙사에 CCTV를 설치한 회사도 있다.
미얀마 노동자들은 한국 기업을 대체로 어떻게 생각하나
미얀마 노동자에게 한국 이미지는 매우 안 좋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우인터내셔널 때문이다. 대우인터는 미얀마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슈웨가스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대우인터가 2014년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미얀마 군부와 손을 잡았다. 군부와 결탁해 대우가 미얀마에 들어온 것이다.
한국 공장 경영진과 관리자들은 미얀마 문화를 무시한다. 일본과 영국인들은 노동자들을 대체로 존중한다. 한국인들은 물건을 옮기라며 발로 물건을 툭툭 건드리며 지시한다. 미얀마에서는 절대 발로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또 공장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인데 한국인들은 팬티 같은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 미얀마 남자들은 ‘롱지’라는 긴 치마를 입는데 한국 남성이 그런 차림으로 다니면 여성들이 놀라곤 한다. 또 한국인들은 미얀마 노동자들을 모욕적으로 대한다.
노사 협의체가 있는 공장은 어느 정도 비율인가. 없는 공장과 노동 환경이 많이 다른가
노사 협의체가 있는 공장은 14%에 불과하다. 2012년에 노사 분쟁이 많이 일어났다. 〈노사관계조정법〉이 생기고 모든 공장에 노사 협의체를 두도록 의무화했지만 아직 그 비율은 낮다. 노사 협의체가 있고 없고 차이는 물론 크다. 노사 협의체가 없는 공장에서 부당 해고, 실업 수당 등 문제가 생겼을 경우 노동사무소에 가야 한다. 정부 기구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은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노사 협의체가 있어도 회사 경영진이 협의체 위원을 뽑는다. 따라서 노사 협의체가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기능이 약하다. 어떤 한국 기업은 어용 노조를 세우고 바이어들에게 “우린 노동자를 존중하는 기업”이라고 선전하기도 한다.
2012년부터 미얀마 노동운동이 늘었다는데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시위도 있었나
많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작년에 일어난 이랜드 미얀마, 한세실업의 자회사인 코스텍인터내셔널 파업이다. 파업 이후 상황이 나아졌다. 내가 알기로는 이랜드 미얀마에 처음으로 탁아소가 생기고 노조 사무실도 마련됐다. 반면 코스텍인터내셔널은 파업 당시 해고된 약 100명의 노동자가 아직도 복직되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이랜드 미얀마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지 않고 쌀과 채소 등 생필품을 준다는 것이다. 서로 경쟁하는 한국 공장 중 한 곳이 임금을 인상하면 다른 곳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임금 인상 대신 현물을 지급한다. 군부 독재 시절인 1996~1997년에도 이런 행태가 있었다.
▲ 한국 정부가 미얀마 정부에게 노동자 시위를 중단시켜 달라고 요구했다는 미얀마 현지 신문의 보도, 2015년 3월 19일자 [출처: 〈미얀마타임스〉 화면 캡처] |
군부 독재 시절과 현재 아웅산 수치 집권 이후 다른 점이 있나
달라진 점은 없다. 이런 부분에서 미얀마의 활동가들이 민주국민연맹(NLD) 여당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여당이 임명한 노동부 장관은 구 정권 인사다. 인사에 대한 비판을 지속적으로 하는 중이다.
한국 기업과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나
한국은 OECD 회원국 아닌가. 이 지위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한국 경영진은 미얀마 법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를 악용해선 안 된다. 한국 기업이 실제로 미얀마에서 우리와 진정으로 협업하고 싶다면 노동 기준을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한다. 한국 의류·봉제업체연합(한국 기업인들의 모임)은 비밀주의를 고수하고 폐쇄적이다. 한국 정부는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운영을 감독해야 한다. (워커스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