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투(花鬪)와 기러기
추석 명절에 더러는 모여 앉아서 화투 놀이를 한다. 치매예방에도 좋다하니 나이드신 분들에게는 시간보내기에 좋은놀이다.
○ 고창지방 화투민요
정월송악에 백학이울고 이월매조에 꾀꼬리운다. 삼월사구라 북치는소리 천지백파에 다날아든다. 사월흙사리 못믿어서 오월난초가 만발했네 유월목단에 나비청해 칠월홍싸리 멧되(멧돼지)뛰고 팔월공산에 달이밝어 구월국진에 국화주요. 시월단풍에 사슴이놀고 오동복판 거문고는 줄만골라도 빙글뱅글 우중에 햇님이 양산을 받고 동네방네에 유람갈까 다돌았네 다돌았네 이백사십으로 다돌았네
한국 사람 셋 이상 모이면 가장 즐겨 한다는 화투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즐기는 게임이 바로 화투 아닐까?
화투는 조선말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일제 강점기때 널리 보급됐다. 원래 포르투갈의 ‘카르타(Carta)’란 일종의 딱지놀이가 일본으로 전해져 ‘하나 후다(花札 화찰)’라는 놀이로 변형된 것이다.
화투가 대중적인 인기를 끈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화투에는 무엇보다 세상 이치가 담겨있다. 경쟁과 물신주의(物神主義)를 화투 규칙으로 담아낸 것이다.
상대방의 패를 눈치 빠르게 짐작하여 게임을 운용하는 고도의 심리전 또 피(홑껍데기)만 가지고도 많은 점수를 내어 광을 이기는 반전의 미학까지 갖췄다.
용어 또한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정말 재밌는 용어가 많다.
쪽, 뻑, 쌌다, 나가리, 흔들기, 피박 등등··· 팍팍한 삶은 이런 용어와 함께 용해되다보니 너도 나도 노름 박사 ‘타짜’에 ‘화투 공화국’ 대한민국은 이렇게 시작됐다.
화투 놀이 중 고스톱을 ‘고도리’라고 하는데 일본 말로 고도리란 ‘다섯 마리 새’를 의미하나 고스톱에서는 세마리 새면 충분하다.
2월의 새는 휘파람새인데 봄의 전령사로 일본에서는 2월이면 따뜻해 보통 휘파람새 울음소리가 들리면 봄이 왔다는 것을 느끼므로
'매화나무의 휘파람새(우구이스)’란 말이 있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는 휘파람새 사육이 많았다.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은 인간의 욕망 때문이었다.
4월 문양을 보고 보통 흑싸리라 하는데 흑싸리가 아니라 등나무 꽃이다. 대개 흑싸리로 알고 있지만 흑싸리는 존재하지 않는 나무다. 빗자루 재료로 활용되는 싸리나무는 녹색이다. 4월의 새는 종달새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일본에서 대중적인 새는 두견새다.
그리고 세마리 새중 마지막으로 8월의 억새 위로 날아가는 3마리 새는 바로 기러기다. 그래서 2월 휘바람새와 4월의 종달새(두견새) 8월의 기러기를 '고도리'라 한다.
화투장에는 이 밖에도 다양한 동식물이 있다.
1월 소나무와 학(두루미)/2월 매조와 꾀꼬리(휘파람새)/3월 벚꽃/4월 등나무꽃과 종달새(두견새)/5월 문양은 난이 아니라 붓꽃(창포) 난은 습지와는 상극 관계로 붓꽃은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6월 모란/7월 홍싸리와 멧돼지/8월 둥근달과 기러기/9월 국화/10월 단풍과 사슴/11월 오동나무와 봉황/12월 버드나무와 제비, 개구리가 등장한다.
그런데 기러기는 겨울철새인데
어찌하여 8월에 나타났을까?
8월공산(八月空山)에 기러기라
그 내력을 살펴보면 사실 음력 8월 추석 한가위 즈음이면 선발대 기러기들이 움직인다. 제비와 같은 여름 철새들은 강남으로 내려가고, 겨울 철새들이 북쪽으로 날아간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부터 지속된 자연의 섭리다. 기러기는 신라 문무왕이 축조한 안압지(雁鴨池)란 이름에도 기러기 안(雁)자와 오리 압(鴨)자 그리고 못 지(池)자를 쓰는데 안압지는 기러기와 오리가 드나드는 연못이란 뜻이다.
날아가던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혔다는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 조선 태종의 최애(最愛)의 취미는 매사냥이었다.
주로 고니나 기러기 같은 대물만을 잡아 왕궁 제사에 쓰기도 했다. 태종때는 나라에 산 기러기를 잡아 바치는 일을 맡아 보던 ‘생안간’(進上 生雁干)이라는 별정직 관리까지 있었다.
기러기는 쇠기러기 큰기러기 흰기러기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기러기는 주둥이가 넙죽하고 물갈퀴가 달린 것은 오리와 비슷하나 목이 길고, 덩치는 오리보다 배 이상 크다. 큰 기러기는 시베리아의 습지에서 봄에서 여름을 나고 9월께 기온이 내려가면 남하하기 시작한다. 두 다리를 바짝 뒤로 모으고 높은 하늘을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행렬은 언제나 낭만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일본에서도 음력 8월은 ‘오츠키미(달맞이)’의 계절이다. 음력 8월에 기러기를 기억하는 것은 처음 찾아오는 첫 겨울 철새이기 때문이다. 백로(白露)에 기러기가 내려오고, 우수(雨水)에 북으로 다시 올라간다고 한다.
매화도 처음 피는 매화꽃이 신문과 방송에 나오듯 눈도 첫눈을 기다리듯이 겨울철새 선발대도 늘 반갑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많이 불렀던 일본 동요 속에도 기러기가 나온다. ‘쎄쎄쎄~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엄마 계신 곳에 엽서 한 장 써 주세요.’ 이 노래 속 기러기도 한 겨울보다는 가을철 이동 시기 기러기를 노래한 것이다.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서도 기러기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사이먼&가펑클의 불멸의 팝송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는 남미 페루 민요에 가사를 붙였다.
우리나라 3대 겨울철새 절경을 꼽으라면 금강 하구의 가창오리 떼, 철원과 순천의 두루미 떼, 서산 천수만 기러기 떼라 한다. 이곳에서 전 세계 탐조인(探鳥人)이 꼭 보고 싶어 하는 절대지존의 철새 군무를 볼수 있다.
한 마리, 한 마리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는 것도 즐거움이고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군무를 펼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장관이다.
기러기는 전통 혼례에도 등장한다.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장가갈 때 기러기 한 쌍을 앞장세워 가지고 간다. 이것을 목안(木雁)이라 한다.
신랑이 신부집에 기러기를 가지고 가는 의식은 왕실에서 행한 풍습이었다. 전통 혼례 때 사용되는 기러기를 원앙이라고도 하는데 원앙은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다.
암컷은 수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갈아치우니 수컷은 나름의 지조를 지키고 있으나 암컷은 다르다. 수컷이 있는데도 간간이 멋진 숫컷을 만나 외도를 하는것이 암컷이다. 즉 더 훌륭하고 힘센 수컷이 있으면 더 나은 새끼를 얻기 위해 언제든지 짝을 버리는 것이 원앙의 습성이다.
그래서 원앙은 기러기처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지는 못한다. 우리 속담에 혼자된 사람을 ‘짝 잃은 외기러기’라 한다. 기러기는 한번 짝이 되면, 평생 그 짝과 지낸다. 만약 수컷이나 암컷 중 한 마리가 죽게 되면 남은 기러기는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간다고 한다.
이러한 기러기의 습성 때문에 혼인에 기러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평생 동안 변치 말고 함께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기러기가 가면, 제비가 온다’는 속담처럼 기러기는 일정한 계절에 맞춰 이동을 한다. '춘향전'같은 옛 문학 작품에서도 춘향은 곧잘 기러기를 빗대어 한양 간 이몽룡 소식을 전해 달라곤 했다.
이 때문에 기러기는 이별이나 쓸쓸함의 상징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엄마와 함께 유학 간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혼자 남은 ‘기러기 아빠’들은 고독과 싸운다.
이른 추석에 더위까지 아직 소슬한 바람도 없고 가을도 느껴지지 않지만 추석날 왠지모를 쓸쓸함과 함께 기러기 생각이 나는것은 왜 일까?
추석명절 안전운행 하시고 즐겁게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