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타 3 - 야마가타성과 초대 번주 모가미 역사관을 보고는 전망대에 오르다!
7월 1일 동해 니가타 에서 기차를 타고 아이즈와카마쓰와 후쿠시마에 요네자와를
거쳐 야마가타 에 도착하여 호텔에 체크인 후에 이자카야 를 다녀와 1박 합니다.
7월 2일 아침 7시에 야마가타 역 서구에 있는 호텔을 나서 가조공원 에 도착해 해자에 놓인
다리를 건너서 야마가타성 으로 들어가서는 성벽과 혼마루 本丸(본환) 를 구경합니다.
“조몬의 여신 토기” 특별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걸려 있는 현립 박물관을
지나 히가시 오오테몬 안에 번주 모가미 요시아키 의 멋진 기마상을 봅니다.
혼슈 서북부 야마가타와 아키타는 데와국 인데 헤이안 시대에 키요하라 (淸原) 집안이
재정관인으로서 힘을 길렀던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에는 망하고 오슈 후지와라 씨
집안이 무쓰(아오모리, 모리오카, 센다이, 후쿠시마) 와 데와 양국의 지배자 가 됩니다.
오슈 후지와라씨를 멸망시키고 가마쿠라 막부 를 연 겐지 가문의 미나모토 요리토모 (源賴朝)
의 막부는 데와국 에 다치바나 등 고케닌 (御家人 어가인) 들을 지토 (地頭 지두) 로서
배치하였는데.... 가마쿠라 막부가 망한 남북조 시대에는 영주들 사이의 다툼이 빈번해 집니다.
쓰가루 지방에서 에조지(홋카이도) 를 거쳐온 안도 (安東) 가문과 모가미 가문 에 다테 가문 이 영지
를 차지했으며..... 이후 센고쿠(戰國) 시대에는 사타케(佐竹)ㆍ 이와키(岩城)ㆍ 로쿠고(六郷)ㆍ
사카이(酒井)ㆍ토자와(戶澤)ㆍ 우에스기(上杉)ㆍ 다테 伊達 등 다이묘가 영토 다툼 전쟁을 벌입니다.
모가미 요시아키 最上義光(최상의광) 는 11대 당주로 사타케 요시노부 대신에 야마가타번
초대 번주 가 되는데, 센다이번 초대 번주 다테 마사무네의 외삼촌 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무장이었는데, 히가시 오오테몬 안에 이런 멋진 동상 이 서 있는 것이네요?
날렵한 동상을 보노라니 십여년 전에 서울 광화문에 이순신동상 이 낡아 대청소를
위해 몇달간 다른 곳에 옮길 때..... 새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다.
먼저 수군 제독이 배도 없이 보병 처럼 그냥 서 있는 것도 그렇고, 또 이순신이 입은
갑옷 은 우리나라 조선식이 아니고 중국 당나라식 이며..... 게다가 이순신 장군이
왼쪽잡이도 아닌데 오른손에 칼집 을 들고 있으니..... 저건 항복한 자 의 모습이라?
러시아 전국일주여행시 모스크바에 강 복판에 범선 이 떠 있고, 그 위에 날렵하게 서 있던 페트르 대제
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수군 제독 이순신 상이면 판옥선 배 갑판 지휘대에 칼 을 치켜들고
서거나 북채라도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4방 대에는 한산도 대첩 거북선 을 조각하고.....
그 옆 숲에는 또 기념비가 있으니 보병 제32연대 라..... 뒤쪽 숲을 뒤져 다시 기념비를
발견하니 바로 시보가네요리 이니.... 광명사에 소장된 화상을 제작한 것이라나요?
문이 거의 온존한 형태로 남아있는 동문으로 야마가타성 을 빠져나가서는 다리를 걸어서
해자 를 건너는데 이 홍예교 형식의 나무 다리는 가운데가 높은지라 자전거 를 타고
멈추지 않고 바로 지나 가려면.... 상당히 숙달된 실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미기타성 해자 건너편은 나무가 우거진 숲인데 거기에 바위 배치가 멋진 연못을 갖춘
건물이 있으니..... 바로 번주인 모가미 요시아키 最上義光 (최상의광) 역사관 입니다.
모가미 요시아키 는 데와국 모가미 가문 출신으로 11대 당주가 되어 후일 사타케
요시노부 대신에 야마가타번 초대 번주 가 되었던 인물로.... 요시아키는
센고쿠(전국) 시대 말엽인 1571년에 아버지의 은거로 가독 을 물려 받았습니다.
하지만 4년후 가독 상속 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였던 동생 요시토키를 죽이고 자신에게
반항적인 가신단을 토벌하여 권력을 강화하였으나, 오슈에 등장한 강력한
패자 다테 마사무네 가 도요토미 에게 복속하자.... 모가미 요시아키 도 그 뒤를 따릅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황윤길등 조선 사신단 을 만나지도 않고 오다와라성 을 공격 하자
간토의 사타케및 우쓰노미야와 도쿠가와도 히데요시 편에 참전하는데, 오다와라의 동맹국
으로 오슈 66개군중 30개군 을 평정한 동북의 패자 센다이의 다테 마사무네 는 망설이게 됩니다.
오다와라의 호죠 가문 어머니 가 출진을 재촉하다가 아들의 독살 을 시도하니... 분이 치민
다테 마사무네는 어머니를 죽이지는 못하고 대신 어머니가 애지중지 아끼던 남동생
다테 코지로를 참살 하는데 이번에는 도요토미군의 아사노 나가마사가 출진을 재촉합니다.
다테 마사무네 는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아이즈를 떠나 요네자와를 거쳐 에치고와 시나노를
돌아 가이를 거쳐 오다와라 에 이르면서 정세 를 살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 를
비롯한 각지의 영주들이 대거 히데요시편에 참전한걸 확인하고는 히데요시군에 복속 합니다.
히데요시는 고심끝에 용서하고는 다테 마사무네가 점령한 영토 중에 아이즈 (후쿠시마
서부) 를 몰수 하고 나머지 영지는 인정해 주니 그래도 72만석 인데 그 과정에서
마사무네는 감금당한채 힐문하러 온 히데요시의 심복 마에다 도시이에 에게
"센노리큐에게 다도(茶道) 를 배우고 싶다" 라고 말해 히데요시를 감탄 시켰다고 합니다.
믿었던 동맹이던 다테 마사무네 가 히데요시에게 복속하면서 오다와라성의 호조 우지마사 는
결국 히데요시에게 항복했고 히데요시가 다테 마사무네의 거성 아이즈 까지 접수하니
비로소 123년간 지속되었던 전국시대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는 "일본 통일이 달성"
되는데 아버지 우지마사(北条氏政) 와 동생 우지테루가 할복을 하면서 남긴 절명시 입니다.
호죠 우지마사 : 吹きとふく風な恨みそ花の春 紅葉の残る秋あらばこそ
불고 또 부는 바람이여, 원통함은 봄날의 꽃과 같구나. 낙엽 흩날리는 가을은 오지 않으리니.
호죠 우지테루 : 天地の清き中より生れ来て もとのすみかにかえるべらなり)
천지간 맑은 가운데서 나왔으니, 원래의 살던 곳으로 돌아가리라.
1594년 히데요시에게 아들 이 태어나면서 후계자로 삼았던 조카 히데쓰구 에게 할복 명령을 내릴
때 히데쓰구의 첩이 요시아키의 딸 이어서 모가미씨는 딸을 용서해 줄 것을 탄원하는데, 1591년
히데요시의 동생 히데나가 와 아들 츠루마츠가 죽자 히데쓰구는 히데요시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히데쓰구는 히데요시의 누나인 낫슈니의 장남으로 간파쿠(관백) 까지 되었는데 히데요시의 아들이
태어나니 후환을 염려한 히데요시에 의해 죽는데 첩인 딸까지 죽다 모가미 요시아키 는 격분
하여 히데요시에게 등을 돌리고는, 에도의 야심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게 접근을 하게 됩니다.
임진왜란 중인 1598년에 히데요시가 죽고 조선에서 철수한 후인 1600년 세키가하라 20만등
전국에서 30만명 격돌한 전투 에서 모가미 요시아키는 다테가와 연합해 우에스기 군과
맞서 싸운 공적 으로 1601년에 도쿠가와씨에 의해 57만석의 야마가타번 다이묘 로 봉해집니다.
이시다 미쓰나리 는 아이즈번(후쿠시마) 의 우에스기 씨가 남하해 에도(도쿄) 의 도쿠가와
본국을 쳐 줄것을 애타는 심정으로 기대했는데.... 정작 우에스기군 은 서북쪽에
모가미군 과 동북쪽에 다테군 이 함께 배후를 위협하자 남쪽으로 움직이지 못한 것이지요?
모가미 요시아키 는 1603년에 자신에게 반항적이던 장남 요시야스를 할복 시키고
차남 이에치카 를 후계자 로 내세우니..... 그가 야마가타번을 계승 하게 됩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친척인 친번을 에도 근처에 배치하고 다음은 예전의 가신인 후다이들을 배치하며 변방에는
도자마 다이묘 들을 배치했으니 조슈번이나 사쓰마번 처럼 260여년 동안 번주 가문이 한번도 바뀌지
않는 번 도 있으나.... 모가미씨 후손은 내부 다툼으로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쫃겨 나니 주인이 자주 바뀝니다.
야마가타는 막부의 요직에서 밀려난 중진이 좌천 당하는 번 이 되어 메이지 유신 까지 12명의
신판(친번) 과 후다이 로 주인이 바뀌게 되니 아이즈번 보다 더한데.... 도쿠가와씨와
관련이 없는 후다이 다이묘가 문제를 일으키면 친척 마쓰다이라씨로 번주(친번) 가 바뀝니다.
야마가타번 은 1868년 조슈번, 사쓰마번, 히젠번과 도사번등 존왕양이파 들이 일왕을 등에 업고 도쿠가와
막부에 반란을 일으킨 메이지유신 보신전쟁 때는 무쓰나 에치고의 여러 번과 오우에쓰열번
동맹 (奥羽越列藩同盟) 을 맺고는 바쿠후(막부) 측을 도와 조슈나 사쓰마등 일왕파 신정부군 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아키타의 사타케 집안이 오우에쓰 동맹을 배반 하는데.... 사타케 씨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중립을 택한지라 히타치 50만석에서 구보타번(아키타) 20만석으로 쫃겨 갔었는데 신정부군
에 굴복하고는 다른 번들도 하나하나 격파되니 결국 패한지라 사카이ㆍ우에스기 등의 집안과
더불어 영지가 삭봉 되었지만...... 조상 대대로 가신과 사무라이는 그대로니 곤궁 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는 다시 동문 으로 되돌아 와서는 성 안으로 들어와 야구장을 끼고
성을 한바퀴 돌기로 하는데..... 북문 밖을 잠시 살펴보고는 성벽 을 따라 갑니다.
성을 둘러 보노라니 야마가타성 내에는 발굴 을 하는 곳이 있어 잠시 살펴
보고는..... 계속 걸어서 남문 으로 해서 야마가타 성을 빠져 나옵니다.
그러고는 호텔로 가서 배낭을 챙겨 야마가타역 으로 가는데 중학생을 대상
으로 하는 학원 이지 싶은데, 고교 합격생수 를 현수막에 적었으니....
고교 입시 에서 야마가타 동고 65명, 야마가타 남고 58명, 야마가타 서고 56명등
톱 3개교가 179명에 야마가타 북고 21명, 중앙고 20명등 숫자가 보입니다.
그러니 며칠전에 아침 일찍 도시에서 시골에 있는 고교로 등교 하던 학생들의 행열이 이제
이해되는 것이니..... 시내 학교는 그만큼 입학경쟁 이 치열한 것 인가 봅니다?
시내 학교 진학에 실패해서 시골학교로 가면 새벽부터 일어나 기차나 버스를 타야 한다는...
일본도 십수년 전에는 "유도리 교육" 이라고 해서 국영수 중심의 암기교육에 치중하는
대신에 학생들이 여유를 갖고 공부하도록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완전히 철폐 했네요?
야마가타역 에 도착해서는 키조 빌딩 상층부가 무료 전망대 라....
기차 시간도 있으니 올라가서 야마가타 시내 를 구경합니다.
시가지를 조망하고 기차역으로 가는 천장이 덮힌 다리를 지나니 스모 시합 이 보이는데
우리나라는 한번 지면 아쉽다고 해서 3판 양승제 가 기본이지만, 칼의 문화 일본
에서는 칼에 맞아 죽거나 중상이면 두번째 시합은 없는지라... 스모는 단 한판 뿐 입니다?
흔히 말하는 잇쇼켄메이 一生懸命(일생현명) 인 것인데.... 한가지 일을 매우 열심히 한다는 말로 원래는
"사무라이가 영지를 목숨을 바쳐서 지킨다" 는 말에서 유래했다는데 예전에 기성(棋聖), 명인(名人),
혼인보 (本因坊) 등 일본 바계를 제패한 조치훈이 바둑 한판을 목숨을 바쳐 둔다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기차 모형과 관광지 소개 등 다채로운 사진을 구경하는데 눈에 확 뛰는 특별한 사진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솥 이보이고 엄청 큰 기중기로 죽을 퍼는데 개미 처럼 보이는
군중이 둘러섰으니 마쓰리 의 하나로 무려 3만명 이 먹을 수 있다는 "토란탕 끓이기 축제" 인가요???
그 옆의 포스터는 신무월 장왕온천 대로천풍려 (神無月 藏王溫泉 大露天風呂)
라? 그럼 여기 야마가타 역에서 버스로 45분 걸린다는.....
자오온천 으로 겨울에는 스키장 으로 설질도 좋고 수빙이 볼만하다는 곳인가요?
또 다시 피어나는 망설임.... 여행 전 부터 오늘 아침 까지도 아키타 로 가기 전에
긴잔 온천 이나 자오 온천 중에 어디를 가야할지 계속 망설였으니.....
해서 급한 마음에 새벽에 일어나 6시반에 아침을 먹고 7시 에 호텔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야마가타성에서 쓸데없이 360도 한바퀴 를 돌고 또 전망대 도 보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 했으니.... 오늘 중으로 멀리 아키타 로 가서 시내 관광 까지 마치고 내일
새벽에는 아모모리 로 떠나는 기차를 타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라.... 아쉽지만 단념합니다.
야마가타 는 8월 초순 하나가사 축제 花笠まつり 가 열리는 하나가사 花笠 퍼레이드 로 자오
여름 마츠리의 이벤트 중 하나였으나 1965년 부터 단독으로 행해지게 되었으며 1970년
오사카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하나가사 춤을 선보였으니 일본의 대표적인 민속 예술입니다.
1993년 부터는 시민 참가형의 축제 로 변모하게 되었으며 8월 5, 6, 7일의 3일 동안에 야마가타의
여름 을 수놓는 동북지방을 대표하는 마츠리 로 1만명 이 춤을 추며 100만명이 참관 한다나요?
오후 6시 부터 3시간 동안 구호와 花笠太鼓 (화립태고, 꽃사깟쓴 여인과 큰북)
의 웅장한 음색과 화려하게 치장된 마츠리 山車(산차) 를
선두로 하여 화려한 의상과 花笠(화립) 를 손에든 무용수들이 군무 를 펼칩니다.
하나가사 음은 옛날 부터 전해 내려온 야마가타현 민요이며 "하나가사 오도리 우타" 라고 불리는
데, 1910년 무라야마 지방에서 흙을 두드려서 단단하게 하는 작업을 할때 노래인 "돈츠키
우타(土突き唄)" 였다고 하며..... 쉽게 출수 있는 안무 "세이초 하나가사 춤 " 이 만들어졌습니다.
또 야마가타는 국제영화제 가 열리는 도시로... 교외에 쇼나이 영화 마을 은 13인의 자객,
자토이치 더 라스트, 오쿠리비토(굿바이), 스윙걸즈 , 스노우 프린스가 촬영 되었습니다.
또 쇼나이 영화 마을 에 가면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 유명한 연속극
“오싱” 을 촬영한 구청산본저 (舊靑山本邸) 가 한번은 볼만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