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바다와 나비>(1939)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감각적(시각적), 묘사적, 주지적
◆ 표현
* 견고하고 명확한 시각적 이미지, 공감각적 이미지의 제시
* 색채 대비를 통한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제시(흰색과 푸른색의 대비)
* 대조적 심상(넓은 바다와 작은 나비의 대조, 공포스러운 바다와 연약한 나비의 대조)
◆ 중요시어 및 시구
* 수심 → 화자가 처한 현실과 추구하는 이상 사이의 차이
* 흰 나비 → 꿈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순수하고 가냘프고 연약한 존재로 이미지화됨.
근대 문명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순진하고 어리숙한 낭만주의자
시인 자신의 청년기적 자아 표상
* 바다 → 거칠고 냉혹한 현실 세계
근대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모험과 시련의 공간, 탐색과 동경의 공간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의 이미지)
* 청무우밭 → 나비가 동경하는 세계의 모습
* 공주 →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순진한 존재
* 삼월달 바다
→ 이른 봄(현실과 미래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대, 근대 문명의 수용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과도기적 시기)
* 새파란 초생달 → 좌절된 꿈
*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공감각적 심상(시각의 촉각화)
◆ 주제 ⇒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
순진한 낭만적 꿈의 좌절과 냉혹한 현실 인식
[시상의 흐름]
◆ 1연 : 바다의 무서움을 모르는 나비
(나비의 순진함, 바다에 대한 환상이 지니는 위험성 내포)
◆ 2연 : 바다로 날아가다 지쳐서 돌아온 나비
(거대한 문명의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는 나약한 존재의 모습)
◆ 3연 : 냉혹한 현실의 풍경
(정경의 찰나적 인상)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흔히 김기림은 1930년대 우리 모더니즘 이론의 기수로 불리워진다. 그의 이론적 바탕은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의 회화적 특성과 문명 비판적 성격이 이 작품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의 몰락을 예견하며 그것의 초극을 꿈꾸었던 김기림도 현실적 상황의 열악함 앞에서는 너무도 무기력한 한 마리의 지친 나비에 불과했다. 근대라는 엄청난 물결 앞에 자신의 무력함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던 30년대 후반 한국 모더니스트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다.
여기서 '나비'는 시인의 감정이 이입된 존재로 '낭만적인 꿈과 정열'을, '바다'는 가혹한 현실을 각각 의미한다. '나비'의 들뜬 낭만적 정열은 물론 바다를 건너는 모험을 감행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인(動因)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바다'의 수심도 모르면서, 또 자신의 역량도 모르면서 바다를 건너는 일의 무모함은 물결에 날개를 적신 채 지쳐서 돌아오는 '나비'의 모습을 통해 암시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바다와 나비의 시각적 심상만이 나타나고 있을 뿐 그에 대한 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개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김기림의 시는 어떤 사상적 깊이보다는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감각적 이미지만이 뚜렷하게 부각되는데, 이것은 모더니즘, 특히 이미지즘 계열의 시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읽을거리]
아무도 일러 주지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 세상이 그 얼마나 무서운가를. 그냥 알지도
모르고 태어나서 이냥 이대로 자랐을 뿐이다.
어미자락 붙들고 청(靑)무우밭 새로 폴폴 맴돌다 허리 굽은 장독 너머, 문득 먼 바다를 본다.
어느날 어미 잃고 청(靑)무우 대공 노랑머리 넘실대는 향기 멀리, 혼자 수심(水深) 모른
바다 위를 위태 위태 폴폴거리다 끝내 꿈을 접고서 젖은 날개에 공주(公主)처럼 지쳐
돌아오는 나비.
삼월(三月) 초승, 아랍의 비수(匕首) 같은 달빛이 새파랗게 겹질려 나비는 허리가 시리다.
끝끝내 바다가 가슴을 열지 않고,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가 그만 겨워 날개를
푸슬푸슬 접는다.
- 바다와 나비. 무한(無限)과 점의 공간 대비. 그러나 창해일속 그 좁쌀이 아닌 것이 여린
생명이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애잔하다가 이런 구도(構圖)인가? - 이 어찌 그 시절 그만의 청년기적 자아인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앗아간 삶의 흔적들. - 새삼스레 옛날의 그를 돌이키고서 물끄러미 그 아들을 바라보는 아비의 근심까지도. /김영환
[참고] : 1930년대 모더니즘의 특징
① 19세기적인 주정주의에 반기를 들고 지성을 중요시하는 20세기 문학 운동
② 병든 문명이 빚어낸 현대의 위기는 지성으로 구해내는 도리밖에 없다는 주장
③ 사상과 정서보다는 지성(이성)의 우세를 강조함.
④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적극적 비판성
⑤ 이미지 특히 시각적 이미지의 중시
[작가소개]
김기림[ 金起林 ]
<요약> 김기림은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특히 I. A. 리차즈의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정립했다.
출생 – 사망 : 1908. 5. 11. ~ 미상
출생지 : 국내 함경북도 성진
호 : 편석촌(片石村)
데뷔 : 1931. 시 「고대(苦待)」(1931), 「날개만 도치면」(1931)을 발표
1908년 5월 11일 함북 성진 출생. 1915년 임명(臨溟)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 상경해서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 중퇴한 후 1930년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를 지내다가 1931년 낙향하여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1939년 토호쿠제대(東北帝大) 영문과를 졸업한 후에는 다시 조선일보사 기자를 지냈다. 1942년 경성중학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다가 광복 후 상경해서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후 사망했다.
1931년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시 「고대(苦待)」(1931), 「날개만 도치면」(1931)을 발표한 후, 시 「어머니 어서 일어나요」(1932), 「오 어머니여」(1932), 「봄은 전보도 안치고」(1932) 등을 발표했다. 1933년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상(李箱)과 함께 당시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활약했다. 이양하‧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특히 I. A. 리차즈의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정립했다.
「현대시의 기술」(1935), 「현대시의 육체」(1935),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1939) 등 주지적 시론과 「바다의 향수」(1935), 「기상도」(1935) 등 중요한 시들을 계속 발표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시부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문학인의 정치 참여를 주장하기도 했다.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 수필집 『바다와 육체』(1948), 평론집 『문학개론』(1946), 『시론』(1947), 『시의 이해』(1949) 등이 있다. 1988년 심설당에서 『김기림 전집』이 출판되었다.
김기림의 문학적 활동은 창작과 평론 활동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초기의 그의 작품은 감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새로움의 추구로 요약된다. 그는 과거의 시들이 감상주의에 사로잡혀 허무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강하고 명랑한 ‘오전의 시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김기림이 근대화와 그에 따른 물질문명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써, 시에서 역시 밝고 건강한 시각적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초기의 김기림의 시들은 『태양의 풍속』에 수록되어 있다.
중기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불안사조의 유행과 근대화의 허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식인으로서의 자각을 보여준다. 김기림은 시각적 이미지 또는 회화성만을 추구하는 시는 또 하나의 순수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시는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때 시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산물인 인텔리겐챠로 파악되며, 대중에게 시대의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장시 「기상도」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후기의 작품은 광복을 전후한 시기로서, 이때 김기림은 문학의 사회 참여를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고 있다. 그가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고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글을 발표한 것은, 시대정신을 전달하는 것을 시의 목표로 설정했던 중기의 입장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광복기를 시인이 공동체 속에서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바다와 나비』에서 보였던 우울하고 개인적인 성향 대신 『새노래』에는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강하고 희망찬 의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정부 수립과 더불어 전향을 한 후에는 자신의 시론을 정리하고, 『문장론 신강』 등의 문학이론서를 내기도 했다.
<학력사항>
1915년 ~ 임명보통학교, 1921년 ~ 보성고등보통학교(중퇴), ~ 1930년 일본 니혼대학교 – 문학예술학, ~ 1939년 일본 토호쿠제국대학교 – 영어영문학,
<경력사항>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1931년 ~ 무곡원 과수원 경영, 1931년 ~ 조선일보 기자
1933년 ~ 구인회 동인 활동, 서울대학교 강의, 중앙대학교 강의, 연세대학교 강의
조선문학가동맹 시부 위원장, 조선문학가동맹 참여
<작품목록>
오후와 무명작가들, 시인과 시의 개념, 정조문제의 신 전개, 최근 해외문단 소식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프로필, ‘피에로’의 독백, 표절행위에 대한 ‘저날리즘’의 책임
시의 기술‧인식‧현실 등 제문제, 식전의 말, 우리의 문학, ‘인텔리’의 장래
상아탑에의 비극, ‘홍염’에 나타난 의식의 흐름, 문예시평, 1932년의 문단전망
네게 감화를 준 인물과 그 작품, 신민족주의 문학운동, 청중없는 음악회,
현문단의 부진과 전망, 김동환론, 신문소설 올림픽 시대, 써클을 선명히 하자
시작에 있어서의 주지적 태도, 비평의 재비판, 협전을 보고, 스타일리스트 이태준을 논함
‘무기와 인간’ 단평, ‘포에지’와 ‘모더니티’, 최근의 미국 평론단,
현대 예술의 원시에 대한 욕구, 문단시평, 모윤숙씨의 리리시즘-시집 ‘빛나는 지역’을 읽고
예술에 있어서의 ‘리알리티’, ‘모랄’문제, 1933년도 시단의 회고와 전망, 입춘 풍경
1934년을 임하여 문단에 대한 희망, 문예시평, 현대시의 발전, 문학상 조선주의의 제양자
신휴매니즘의 요구, 장래할 조선문학은, 신춘조선시단 전망, 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 반성과 발전, 현대시의 기술, 오전의, 시론, 현대시와 육체, 현대시의 난해성, 오전의 시론-기초편 속론, 객관에 대한 시의 ‘포즈’, 시대적 고민의 심각한 축도, 오전의 시론-기술편, 현대비평의 딜렘마, 사슴을 안고, 시인으로서 현실에 적극적 관심, 을해년의 시단, ‘정지용시집’을 읽고,
걸작에 대하야, 기상도, 과학과 , 비판과 시, 고(故) 이상의 추억, 오장환씨의 시집 ‘성벽’을 읽고, 여행, 현대와 시의 르네쌍스,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푸로이드와 현대시, ‘촛불’을 켜놓고, 시단의 동태, 태양의 풍속, 문학의 제문제, 언어의 복잡성, 조선문학에의 반성, 감각‧육체‧리듬, 과학으로서 시학, 문단불참기, 시인의 세대적 한계, 시와 과학과 회화, 이십세기의 서사시, 시의 장래, 과학과 인류[멘돌라 작], ‘동양’에 관한 단장(斷章), 우리 시의 방향, 건국과 지식계급-좌담회, 시단별견, 새로운 시의 생리, 민족문화의 성격, 바다와 나비, 문학개론, 전진하는 시정신, 민족과 문학의 융성에 필히 성공되기를 염원, 정치와 협동하는 문학, 민족문화의 수립, 시론, 문학의 전진, 새 문체의 확립을 위하야,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과 기술, 낭독시에 대하여, 분노의 미학, I. A. 리챠즈론, T. S. 엘리어트의 시, 바다와 육체, 기상도[재판], 새노래, 체험의 문학, 이상(李箱)문학의 한 모습, 민족문화의 성격, 시의 이해, 문화의 운명, 소설의 파격, 시조와 현대, 문장론 신강, 김기림 전집, 새나라 송(頌)
[네이버 지식백과] 김기림 [金起林]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
첫댓글 바다와 나비...멋진 시와 해설로 아침을 엽니다.
감사히 읽고 갑니다.
강산들꽃 님
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 건승,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