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형기
나는 알고 있다
네가 거기
바로 거기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팔을 뻗어도
내 속은 네게 닿지 않는다
무슨 대단한 보물인가 어디
겨우 두세 번 긁어대면 그만인
가려움의 벌레 한 마리
고물대는 그것조차
어쩌지 못하는 아득한 거리여
그래도 사람들은 너와 내가 한 몸이라 하는구나
그래그래 한 몸
앞뒤가 어울려 짝이 된 한 몸
뒤돌아보면
이미 나의 등 뒤에 숨어 버린 나
대면할 길 없는 타자他者가
한 몸이 되어 함께 살고 있다
이승과 저승처럼
<시 읽기> 등/이형기
내 뒷모습의 표정
몇 년 전에 누군가가 찍어준 나의 뒷모습 사진을 보고 기분이 이상했던 적이 있다. 너무나 낯설게 느껴져 한참을 쳐다본 후에야, 그리고 이게 진짜 나인가를 몇 번 의심한 후에야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낯섦과 의심은 평소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그러기에 알지 못한 대상 앞에서 느낀 감정이었을 터, 그러고 보면 아무리 잘난 척을 해봐야 인간이란 동물도 자신의 뒷모습은 다른 사람이 사진을 찍어두든지 아니면 최소 두 개의 전신 거울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네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미셀 투르니에, 『뒷모습』(에두아르 부바 사진, 현대문학, 1999)
미셜 투루니에는 총 53장의 뒷모습 사진들로 이루어진 위의 책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뒤쪽이 진실이다!’라고
얼만 전 매사 자신감이 넘치고 유머러스한 선배의 뒷모습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그가 돌아서는데, 살짝 구부정한 그의 등과 처진 어깨가 이상하게도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럴 보고 나는 그가 말을 안 하지만 요즘 힘든 일이 있다. 아니면 원래부터 ‘외강내유’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하였다.
그나저나 수시로 들여다보는 내 앞모습과 ‘어쩌지 못하는 아득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내 뒷모습, ‘뒤돌아보면/이미 나의 등 뒤에 숨어 버린 나’ 혹은 ‘대면할 길 없는 타자他者’는 지금 이 순간 어떤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경민, 『시 읽기 좋은 날』, 쌤앤파커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