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그 ‘처지(處地)’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그 운명도 달라진다.
‘처지’는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을 말한다.
옛사람들은 ‘처지’에 눈이 달린다고 하는 표현을 하였다.
눈이 이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발(立場)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라는 말은
‘처지’에 따라 그 생각도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상황에 처한
타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처지’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타자의 관점을 취하는 능력으로,
우리가 흔히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상태에 갇히지 않고
상대방의 상태에 나를 투영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능력,
이것이 있기에 인간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적 동물이 될 수 있는 거다.
또한, 그러한 능력의 정도가 사람의 사회성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능력이 부족해 상대방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병증이 ‘자폐(自閉)’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는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방의 감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할 때 사이코패스(psychopathy)가 된다.
사이코패스는, 반복적인 반사회적 행동과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충동성, 자기중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성격 장애 분류이다.
그리고 개인에게 있어서
그 ‘자리(位)’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된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리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일까?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 자리가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傷)하는 법이다.
고 신영복 교수는, “70%의 철학”을 말하였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는 거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 ‘30정도의 여유’는 ‘놀고 먹자’는 것이 아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