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느 별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 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지구라는 작은 별아래서
〈우리가 어는 별에서〉는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시다. 이시는 내가 삼십 대 초반에 썼다. 이십 대를 지나 드디어 인생의 징검다리를 힘차게 내디뎠을 때 뜻하지 않게 만남의 징검다리에서 이별의 징검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만남의 징검다리를 딛고 청춘이라는 인생의 강을 건너가기도전에 이별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던 나는 이 한 편의 시로 청춘의 무늬를 그려보았다.
일찍이 한용운 시인께서는 '님의 침묵'에서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의 세계를 말씀 하셨지만, 그때는 만남과 이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시를 쓰면서 만남이 소중한 만큼 이별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별을 통해 만남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만남과 이별이라는 헝겊들을 이어 만든 조각보와 같았다. '헤어짐이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남이 있다'는, '이별도 만남을 위해 존재한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뜻]의 세계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만남과 이별의 관계 한가운데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님의 침묵'중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구절은그 두 가지 상황의 중심에 놓여 있는 절대가치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나는 만남과 이별의 징검다리 사이로 흐르는 강물 역시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없다면 만남도 이별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만남과 이별을 통한 사랑의 시다. 인생의 여러가지 가치 중에서 사랑의 가치야말로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노래한 시다.
이 시는 우리 시대의 노래꾼 안치환씨가 1993년에 노래로 만들었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어느 후배 시인의 결혼식장에서였다. 안치환 씨가 직접 기타를 치며 축가로 불러주었다. 그런데 그날 신부가 그 노래를 들으며 정성 들여 했을 눈 화장이 다 지워질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는가,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했기에 이토록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나"로 시작되는 이 축가는 멜로디에 맞추기 위해 가사가 조금 수정되었지만 처음 듣는 나로서는 감동이 컸다,고요하고 애잔한 멜로디가 서로 사랑하는 별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처럼 들려왔다.
신부가 왜 그 기쁜 날 우는지 알 수 없었다. 기쁨의 절정이 눈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결혼 과정에서 어떤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겠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는지도 몰라'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안치환 씨는 "이 노래를 결혼식 축가로 부를 때마다 신랑 신부가 우는 경험을 자주 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2008년에 안치환 씨가 "안치환, 정호승을 노래하다"라는 제목의 앨범을 우정의 선물로 만들어 내게 주었다. 그동안 불린 내 시 노래 중에서 10여 곡을 골라 편곡하고 새로운 노래도 작곡해 모두 안치환 씨의 목소리로 녹음한 음반이었다.
그 음반이 계기가 되어 나는 안치환 씨와 10여 년간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찾아 '안치환,정호승을 노래하다'라는 제목으로 '시 노래 콘서트'를 하게 되었다. '안치환과 자유' 밴드와 조명, 음향 등이 참여하는 라이브 콘서트로 그때마다 그는 '우리가 어느별에서'를 빼놓지 않고 불렀다. 그리고 노래를 부른 뒤에는 꼭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노래운동을 같이 하던 한 친구가 대학생 때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결혼이라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올리는 결혼식이었다. 결혼식 또한 예식장에서 하는 게 아니라 노래운동을 하던 어느 사무실에서 하게 되었다.
나 역시 가난한 대학생이라 돈도 없고 해서 친구 결혼 선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정호승의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에 곡을 붙여 결혼식 때 축가로 불러주었다. 그런데 그때 신부가 많이 울었다. 아마 가족들로부터 축복받지 못하고 오직 젊음 하나만 가지고 하는 결혼식이라 우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결혼식 축가로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종종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신부나 신랑 중 한 명은 꼭 눈물을 흘려, 이 노래가 과연 결혼식 축가로 합당한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결혼식 축가로서는 마땅치 않다고 생각되 누가 불러달라고 해도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그 뒤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 처음 축가를 불러주었던 친구한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친구는 그동안 통 소식 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 이혼했어,치환아.그리고 이제 다시 결혼해, 그때처럼 네가 와서 축가를 불러주면 좋겠다."
마침 공연 일정이 있어 그 친구의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그냥 축하의 마음만 전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 하자 "왜 안 갔니? 가서 축가를 불러줬어야지"하고 나무랐다.
"한번 불러준 노래를 이혼했는데 또 어떻게 불러?"
"왜 못 불러?
이렇게 부르면 돼!"
"어떻게?
"이렇게! 우리가 또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또 애타게 그리워 하는가. 우리가 또 어느 별에서 그리워했기에 이토록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나."
공연 중에 안치환 씨가 이 이야기를 하면 객석에서는 단박에 웃음이 터졌다. "그 친구는 아이들을 낳고 현재 잘 살고 있으며 누구의 인생에든 그런 고통의 그늘이 있을 수 있다" 고 마무리 멘트를 하면 웃음이 잦아들고, 이내 관객들은 안치환 씨가 부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귀를 기울였다. 나 또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귀를 귀울였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로 시작되는 안치환 씨의 노랫소리에 마음을 기울이며 내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별을 생각하곤 했다.
지금 우리는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살며 사랑한다. 나는 때때로 내가 어느 별에서 살다가 지금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나 만남과 이별의 삶을 사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어쩌면 나는, 만남은 지구에서 했지만 이별은 다른 별에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별이란 지구라는 별을 떠나 다른 별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미국의 영화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사랑은 온 우주가 한 사람으로 좁혀지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기대어 생각해보면 사랑을 하는 한, 나 자신이 바로 우주 즉 별이다. 따라서 별인 나 자신의 가슴속에 항상 가득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 정 호 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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