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의 노래
삼복더위에 민어회나 민어 매운탕으로 더위를 이기는 것은 매우 돈이 많이 드는 보신 음식이다. 유통과 배달이 발달 된 요즘도 그러할진 데 옛날에 민어회를 먹는다는 것은 대단한 사치일 것이다. 민어회 1킬로를 노량진에서 사면 20~25만 원이 넘는다니 이건 회 한 점에 2만 원꼴이다. 대단한 가격에 놀란다. 그런데도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잘 해동된 선동 민어라도 친구와 맛을 봐야겠다. 모처럼 시집을 한 권 집어 들었다. 필자는 ‘시의 배를 채우는 요리사 시인’으로 목포에서 고등학교 시절은 파란만장했다. 섬에서 이름난 주먹으로 목포에 왔으니, 고1에 유력 폭력조직에 스카우트 당해 조폭이 됐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습작 시를 썼던 필자 ‘김옥종’은 고등학생 때 한 여학생을 만난다. 연애 시를 썼지만, 그는 폭력조직 행동대원이었다. 그 여인은 깡패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정신이 퍼뜩 든 그는 조직에서 탈퇴했다. 대학 졸업 후 건축기사로 일했다가 곧 그만두고 킼 복싱 선수가 됐다. 이종격투기 ‘K-1 프로모터’에게 발탁되어 일본 가라데 선수와 대전에서 1회 KO패 당하고 은퇴하여, 바다낚시를 자주 다녔다. 그리고 잡은 생선으로 요리를 하고 싶어졌다. 시인의 모친은 광주에서 ‘아코’식당을 운영한다. 아코는 아기 코끼리의 약칭으로 어릴 적 시인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회를 뜨는 요리사가 된 것으로 시인은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진눈깨비 거저구없이 내리는 날
어깨 넓은 친구에게 전화해서
세한의 맹목 숭어가 찰지더라며
묵은지 찢어 감아 먹고
새벽별이 단물처럼 쏟아질 때까지
흘러간 유행가나 부르자고 했다.
어느 생이 있어 이보다 더 꼬습겠는가. -맹목2 전문
맹목은 눈이 멀었다는 뜻이다. 숭어의 눈에는 지방질 눈꺼풀이 있는데 겨울에는 이것이 지나치게 발달해 눈의 흰 막을 덮어버린다. 눈먼 숭어가 되는 것이다. 겨울에는 숭어회로 여름에는 ‘복달임’에 일품인 민어회로 그의 고향 섬 ‘지도’와 ‘임자도’ 앞바다는 최고의 민어 어장이었다.
추렴하여 내온 병쓰매에 네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
목살은 묵은지에 감아 먹고 늙은 오이짠지는 볼 살에 얹어 먹고
고추 참기름 장에는 부레와 갯무래기 뱃살을 적셔 먹고
갈비뼈와 등지느러미 살은 잘게 조사서
가는 소금으로 엮어내는 뼈다짐으로 먹어도 좋고
내장과 간은 데쳐서 젓새우 고추장에 볶아내고
쓸개는 어혈이 많아 어깨가 처진 친구에게 내어주고
아래턱 위에 붙어있는 입술 살은 두 점밖에 안 나오니
내가 먹어도 될 성싶은 -<민어의 노래>에서
함경도 삼수갑산 산골에서는 영양 부족으로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의사가 아니라 겨울을 기다렸다. 명태가 돌아오는 겨울이면 바닷가 마을을 찾아가 겨우 내내 명태의 간을 구해 끓여 먹으면 봄이 되면 멀쩡하게 눈을 떴다. 어린 시절 시인도 자주 귀앓이를 했다. 그러면 시인의 어머니는 병원 대신 갯벌에 나가 무덤 낙지를 잡아서 찹쌀을 넣어 끓여 먹이면 아들의 귀앓이는 씻은 듯이 나았다. 어린 아들은 낙지가 먹고 싶을 때마다 귀가 아픈 척했고 어머니는 모르는 척 갯벌에 나가 낙지를 잡아 아들을 먹여 키웠다.
어매는 낙지가 파놓은 한쪽 구덩이 붕분처럼
쌓아 올리놓고 물때를 기다린다.
낙지 끓인 수증기를 귀에 쏘이면 귓병에 좋다고 들었던 나는
낙지 먹고 싶은 날은 언제나 귀가 아팠다. -<무덤 낙지>에서
첫사랑의 뜨거웠던 볼기짝같이 매콤한 낙지볶음이라니! 대체 세상에 그런 마법 같은 요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시인만 허황한 것이 아니라 요리사도 허황하다. 그래도 그 허황된 시가 됐든 요리가 됐든 다시 첫사랑의 아련함을 맛볼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애절했던 첫사랑도 이제는 전생처럼 아득하니 그저 우리는 시인이 요리한 낙지볶음을 안주로 아침부터 취해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것이다.
시인의 대표 시 민어의 노래를 감상해 보자.
고사리 장마가 지나고 난 바닷길
깊게 패인 여울물 소리에 새우떼의 선잠을 깨우는
밴댕이와 알 품은 병어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전장포 앞바다에서는
서남쪽 흑산해에서 진달래꽃 피기를 기다렸다가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움을 아가미로 훑는다
마늘 뽑고 양파 캐어 말리던 늦은 오후,
구년은 자랐을 법한 일 미터의 십 키로짜리 숫치를 토방에 눕히고
추렴하여 내온 ⁎병쓰메에 네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
목살은 묵은지에 감아 먹고 늙은 오이짠지는 볼살에 얹어 먹고
고추 참기름 장에는 부레와 갯무래기 뱃살을 적셔 먹고
갈비뼈와 등지느러미 살은 잘게 조사서
가는 소금으로 엮어내는 뼈다짐으로 먹어도 좋고
내장과 간은 데쳐서 젓새우 고추장에 볶아내고
쓸개는 어혈이 많아 어깨가 쳐진 친구에게 내어주고
아래턱 위에 붙어있는 입술 살은 두 점밖에 안 나오니
내가 먹어도 될 성싶은
깊은 고랑 주름살에도 꼬리뼈 살을 긁적거리고 있노라면
⁎붕굴수리잡 옆의 대실 복숭아는 제법 엉덩이가 빨갛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우 놀던 모래밭을 파헤쳐
집 지을 때부터 플랑크톤이 없던 모래밭에
새끼를 품어내지 못한 오젓, 육젓이 밴댕이를 울리고
깡다리를 울리고
병어를 울리고
네 입맛 다실 갯지렁이도 없는 바다에 올라 칼끝에 노래하던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을 다시 볼 수 없으리라.
⁎병쓰매; 2홉짜리 작은 소주, 일본말 병즈메에서 온 말
⁎봉굴수리잡; 봉굴저수지 옆에 있던 수리조합의 준말
다음은 아주 짧은 세 줄짜리, 시인의 시를 감상해 보자
봄밤
벗은 늦고
술은 달고
별은 지네
2024.07.25.
민어의 노래 시집
김 옥종 지음
2021 세종도서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