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기 의원님의 호칭보다는 “조춘기선생님!”이란 단어가 훨씬 더 어울립니다. 저도 우리 제자들이 다른 호칭보다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장로 집사보다 더 좋고 교장, 교감 선생님보다 더 좋고 듣기 좋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계시던 작은 섬에서 근무하셨던 그때 당시를 상상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첫 발령지가 완도군 약산면 득암초등학교 였거든요, 당시에도 점심으로 고구마를 싸오고 그것마저도 없어서 지금 생각하면, 참 하숙을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하숙집까지 항상 다녀왔기 때문엔 학생들 중에 점심을 싸오지 못한 학생을 모르고 며칠 다녔습니다.
바쁜 중에도 많이 헤어지고 오래된 차라리 이 섬이 없었다라면을 읽으면서 조충기 선생님이라는 섬마을 선생님을 다시 생각하며, 저도 좀 닮고 싶은데, 마음이 고와야 하는데, 그리 쉽지 않음을 봅니다.
저도 약간 오래 전에 조도의 섬에서 청등분교에서 근무하면서 조춘기 선생님 처럼 야간에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야간 공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 그때가 상상이 됩니다. 단 아쉬운 것은 좀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도 어느 섬에선 야간의 공부 방이 있을 줄로 압니다. 그때 그 시절 그 곳 그분 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그 시절로 다시 가본다면, 참 그립습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의 제자 책의 일부라도 카페에 선생님의 까페에 올리고 싶은데, 괜찮으실지 허락을 받고 싶습니다. 이유는 요즈음 사람들은 너무 풍요로와서 부족함을 모르고 살거든요, 저도 어렸을 때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 영화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주인공 정지훈인가 였는데, ......
사람은 풍요로와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은 사실은 좀 부족하고 어렵게 살아봐야 바르게 자라는 것 같아요. 요즘 교실에 떨어진 연필 줍지 않아요,
그런데, 박예자 학생은 그 당시 얼마나 어렵게 살았습니까! 그 당시의 부모님 대부분이 그리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서 자식은 부모에 대한 효를 배웠습니다. 그게 바로 살아있는 교육인데 말입니다. 시간이 바쁘니 이만 쓰겠습니다. 아무든 박예자 주인공이나 조춘기 선생님의 허락이 계시면 일부 카페에 올리고 싶고, 하다 못하면 조춘기 선생님의 앞글 소개서라도 올리고 싶으니 답을 주십시요, 제 책도 여러 사람이 읽으면서 기쁘게 읽어 주고 있어 보람이 있습니다. 이만 시간이 부족하여 줄입니다. 건강하십시오. 혹시나 너무 어렵게 사는 곳이라서 주인공에 대한 옛날의 마음 아픈 추억을 되새기고 싶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답변 주십시오 진도초등학교 바보 천사 석이를 쓴 걸음마 조규연 올림
첫댓글 조 선생님, 바쁘신 중에도 김예자 양의 일기집 '차라리 이 섬이 없었더라면'을 지금까지 보관하시고 또 다 읽으셨다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읽으실 수 있도록 카페에 소개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전문을 실었었는데 해커들의 칩입으로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다음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 선생님이 일일이 일기 내용을 치시기가 어려울텐데 어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