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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터(院址) 원(院)이란 지금의 여관과 같았다. 화봉원에서 고려의 유희가 시를 읊는 것을 보아 고려 때부터 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권근의 기문(記文)에 의하면 나라의 들에는 10리 길에 여(廬-초막)가 있고 30리 숙(宿-여관)이 있었으며, 후세에는 10리에 장정(長亭-쉬는 집) 5리에 단정(短亭-쉬는 작은 정자) 하나씩이 있었는데 모두 나그네를 위한 것이었다. 나라에서 파발을 두어 사명(使命)을 전하고 원(院)을 두고 상인과 여행자에게 혜택을 주되 공과 사의 구별, 상과 하의 구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므로 파발에는 각각 관리가 있어 그 직책에 힘썼으나 원에는 다만 밭을 주고 사람을 모집하여 그것을 주관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평원이나 기름진 땅 안에 있는 원에도 주관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 가끔 있었다. 하물며 깊은 산골의 험하고 메마른 곳에 있는 원에는 주관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들에는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원(院)이 없어도 잘 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골짜기 외딴 곳에서 해는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고 사람과 말은 지치고 범이나 표범의 두려움, 도둑의 염려 등 길손의 걱정은 이에 더 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조령산성 안에 조령원(鳥嶺院)과 동화원(桐華院)이 있고 현의 서쪽 15리인 이화령 아래 요광원(要光院)이 있었다. 하늘재 밑에 관음원(觀音院)이 있고 현의 북쪽 4리에는 화봉원(華封院)이 있었다고 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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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이자 백두대간이 흐르는 문경새재(조령3관문)는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고 그에 따라 구구절절이
사연도 많고 애환도 따랐을 것이다. 문경새재를 넘나드는 길은 장원급제길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시대 관리등용문인 과거에는 영
남의 선비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높은 합격율을 보였고, 그로 인해 문경새재가 전라도의 선비들에게도 장원급제길로 입소
문이 나기도 했다. 서울을 오가는 큰 고개로는 죽령과 추풍령도 있었지만 죽령은 미끄러지는 길이고, 추풍령은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진다 하여 이 곳 문경새재로 돌아갔다고 한다
70년대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독 이 새재만은 ‘포장하지 말고 고즈넉한
멋을 살리라’고 지시해 남은 흙길. 새재의 정갈한 흙길은 눈과 귀와 마음을 열고 편안히 걷는 길이다.
*문경새재 물박달 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망이는 팔자좋아 큰애기 손 끝에 놀아논다
*문경새재 넘어 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문경은 새재야 참싸리 낭구 꼬깜아 꼬지로 다 나가네
*문경은 새재야 뿌억 싸리는 북어야 꼬지로 다 나가네
*고대광실 높은 집도 나는야 싫어 울퉁불퉁 멍석자리 얕은정 주세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주막(酒幕)
새재는 조선시대에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던 가장 큰 길로서, 이 주막은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길로 오르던 선비들, 거부의 꿈을 안고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등 여러 계층의 우리 선조들이 험준한 새재길을 오르다 피로에 지친 몸을 한잔의 술로 여독을 풀면서 서로의 정분을 나누며 쉬어가던 곳이다. 산수 경관이 수려한 곳에 자리잡은 이 주막을 1983년 11월 조국순례자연보도 사업의 일환으로 옛 형태대로 되살려 선조들의 숨결과 전통문화의 얼을 되새기고 있다.
현재의 방가로 형태의 숙소인것 같다.
문경 주막에서 월사 선생께 드리다
聞慶酒幕 奉寄月沙先生
幾年門下受恩私
主屹山前
馬時
西望長安千里遠
雪晴茅店自吟詩
문하에서 입은 은혜 몇몇 해입니까
주흘산 아래에서 풀 먹일 때지요.
서쪽으로 바라보는 서울이 아득하여
눈 개인 주막에서 혼자 읊조립니다.
고용후(高用厚)<1577년(선조10)~1652년(효종3)>
조선중기 문신, 본관 장흥(長興), 호 청사(晴沙), 남원부사 역임, 저서『청사집(晴沙 集)』등
교귀정(交龜亭)
문경읍 상초리 조곡관(鳥谷關)과 주흘관(主屹關)의 중간지점인 용연(龍淵-龍湫)위에 있다. 체임(遞任)하는 신구관찰사(新舊觀察使)의 교인처(交印處)로 성종조 신승명이 건립했다. 유지(遺址)와 김종직(金宗直)의 시(詩)가 전해 왔으며 1999년 10월 문경시가 중창하였다.
용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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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수량이 없어 큰물살은 없었고 계곡으로 내려가서 찍어야해서 시간이 촉박해 용추의 웅장한 모습을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다 |
조곡폭포(鳥谷瀑布)
산불됴심비에서 200m 위치에 있는 조곡폭포는 산수 수려한 주흘산 깊은 계곡에서 떨어지는 20m의 3단폭포이다
제 2 관문
1관문에서 3km 이고 주차장에서 걸어오면 4km남짓된다.부지런히 걸어 1시간여만에 오른다.
제 3관문
2관문에서 3.5km이다.이곳에서 넘어가면 조령산자연휴양림인 충청북도 연풍이며 고사리주차장까지는 30여분이면 내려간
다.하지만 오늘은 버스가 문경새재에 있어서 왕복을 해야하므로 15km를 걸어야한다.
조령약수(鳥嶺藥水)
이 약수는 조선 숙종 34년에 조령성을 구축 시 발견된 약수터이며 우리 조상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길을 넘나들 때 이
감로수(甘露水)로 갈증과 피로를 풀었으며 춘하추동 수온이 일정하여 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 백수영천(白壽靈泉)이다
조령샘은 지난 백두대간산행때 이화령~조령산구간때 하산하여 너무 맛나게 먹던 물인데 물맛이 너무 좋다.
3관문에서 하산을 시작하여 1관문에 다달을 즈음 탁족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아직도 물이 엄청 차거워 시원하긴 했지만
발을 오래 담그고 있을 수는 없었다,
3시간 50여분동안 뛰다시피 걸어서인지 발바닥이 얼얼했다.발을 씻고나니 피로가 한결 풀리는것 같았다.
*문경새재에서 1관문과 2관문을 거쳐 3관문에 오르려면 최소한 두시간이상이 걸린다 다시 하산하면(산은 아니지만 꾸준한 오름길도 있다)2시간 이며 톻합 4시간 걸리지만 조금 여유롭고 볼것을 다 보고 가노라면 시간은 더 걸려야한다.가는길에 라이브음악이 있는 숲속의 휴게소들이 있어 풍류를 즐기자면 하루종일도 짧을것 같다.
등산코스별 시간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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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문경새재도립공원 http://saejae.mg21.go.kr/
첫댓글 좋은곳에 다녀오셨네요언제 가봐도 아름다운 곳입니다감하고 갑니다
연전에 주부전문인클럽에서 단합대회 다녀온 문경새재 자상한 정보 주심에 국사, 지리공부까지 잘 했습니다. 흙길이 걷고싶어지니 어쩌지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때도 시간이 없어 주흘산 중간까지만 가다 말았는데..차라리 2관문까지 가는게 나은것 같습디다 담에 신랑과 함께 걸으시면 아주 분위기 일겁니다.라이브를 하는 휴게소도 있는데 동동주 한잔과 파전이 죽입니다
그옛날 가보았던 문경새제길 감회가 새롭네요!~다시걷고싶은 코스입니다 !~모르는 역사안내 탱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