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은 사람의 행동이 남긴 물리적 흔적(유적과 인공 및 자연유물)을 통해서 그것을 남긴 사람들의 문화, 역사를 밝히는 학문이다. 고고학이 역사학의 한 分科이면서 독립적,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료의 특수성에 의한 것이며, 같은 역사과학이면서 기록만을 자료로 하는 좁은 의미의 역사학과는 그 연구 방법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金元龍선생님의 {韓國考古學槪說} 序言에서
Ⅰ. 고고학이 뭐예요?
考古學은 다른 학문과 같이 하나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특성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자연현상 및 자연현상 사이의 상호관계를 다루며,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증거를 요구하며, 그러한 증거를 통하여 자연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考古學은 어휘에서 한자로 옛(古)을 생각한다(考)는 두 문자의 결합에서 유적, 유물을 통하여 과거를 연구함을 뜻합니다.
영어로는 archaeology라고 하는데 고대 희랍어에서 과거, 고대 등 옛날과 관계되는 뜻의 archaeos라는 말과 논리체계, 학문 등을 의미하는 logos라는 말을 어간으로 하는 합성어입니다. 과거 인류들이 남긴 물질적인 자료(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당시의 문화, 즉 행위, 사회적조직, 이념 등을 복원하고, 그들의 문화가 어떻게 그리고 왜 변화되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죠.
보통 일반 사람들에게 '고고학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하고 물어 보면 인디애나 존스를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합니다. 그럼 영화 속에 등장인물인 인디애나 존스는 누구일까요?
인디애나 존스는 빅토리아 시대(1832∼1901년까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했던 영국의 번영기) 고고학자들의 여러 특성을 조합하여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고고학은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낭만과 모험이 있는 학문이 아니라 과학적인 학문입니다. 총을 차고 채찍을 들고 산과 들로 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치고 골동품을 찾는 것이 아니죠. 그러한 모습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호리꾼(도굴꾼)이면 몰라도…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고학에 관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고고학하면 '발굴(發掘)'이라는 등식을 떠올린다는 점입니다. 고고학하면 발굴을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죠. 물론 발굴이 고고학에 있어 중요한 부분에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고고학이란 학문에서는 발굴뿐만 아니라 유물의 보존, 유적의 관리, 발굴 보고서의 작성, 발굴자료에 대한 연구 등과 같은 것도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이러한 보여지지 않는 부분에는 관심이 없고,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최초, 최고, 최대의 발굴과 유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최대, 최초, 최고가 나뿐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에 왕들만 살았던 것이 아니죠. 관리, 군인, 일반 서민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고고학을 통한 역사의 복원에는 경주의 천마총이나 황남대총, 공주의 무령왕릉 같은 대형이며 유물도 많은 무덤들도 중요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는지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최대·최초·최고만을 찾는 데에는 언론사들의 영향이 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종이 중요하니까요. 일례로 몇 년전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를 발굴하는데 ㅈㅅ 신문사에서 몰래 촬영해서 신문기사를 실었습니다. 제목이 [한국 최초의 청동기시대 집자리 발굴]입니다. 그것도 일면에 실었어요. 기가 막히죠. 최소한의 상식도 없이 기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유물을 보여 드리면 '이건 얼마나 나가나요' 하는 질문을 많이 하시죠. 이것도 방송에서 유물하면 가격이 얼만가 하는 것부터 생각하게 하는 상식을 만들었지요. 모든 유물에는 돈으로 가격을 정하여 이건 중요한 것이고 이건 값이 싸니까 중요하지 않다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사금파리 같은 깨진 토기조각, 산과 들을 굴러다니는 기와조각 하나도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고고학을 공부하는 마음에는 모든 유물에 가치에 있어 경중이 없으며 사소하게 보이는, 일반 사람들이 사금파리라고 하는 자기조각 하나에도 모든 정성과 노력을 기울어야 합니다.
고고학에는 매우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분야에 관계없이 모든 고고학자는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과거의 인간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자는 원시 시대를 연구하든 근세를 연구하든, 다음과 같은 고고학의 3대 목표를 추구합니다.
▶ 고고학 유적지와 발견물을 시간과 공간의 맥락 속에서 연구하고, 오랜 기간에 걸친 인간 문화의 순서를 저술한다.
▶ 과거의 생활방식을 재구성하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추론한다.
▶ 인간의 각 문화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변화한 이유, 또는 변화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고고학은 인간 사회들이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변화해 온 과정, 또는 변화하지 않은 과정을 연구하고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인 것입니다.
고고학자의 기본적인 연구활동은 우선 발굴을 통해서 얻어진 자료를 수집하여 관찰합니다. 다음은 발굴자료를 시간과 공간 속에 적용시켜 여기에서 나오는 자료를 동일한 자료와 비교하여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 정리한 다음 기록합니다. 마지막으로 통합된 문화대 속에서 이들 유형의 설명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찾아내어 그 유형을 해석합니다.
고고학자들이 갖고 있는 발굴의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장래의 고고학를 위한 발굴 유적의 보존
2. 발굴시의 세심한 주의와 발굴된 모든 유물의 채집 및 기록
3. 정확한 도면작성
4. 조속한 시일내의 보고서 완간
고고학의 종류는 크게 선사고고학과 역사고고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사고고학은 문자가 없던 시대를 연구하는 분야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고고학은 문자기록이 있는 시대를 연구하는 분야로 근세고고학, 중세고고학, 고전고고학, 종교고고학 등이 있으며 종교고고학으로는 유럽의 성서고고학과 일본의 불교고고학이 하나의 예가 되겠습니다. 주제별로는 환경고고학, 동물고고학, 식물고고학, 실험고고학, 민족고고학, 수중고고학 등이 있습니다.
Ⅱ. 어떻게 알고 파나요?
발굴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자주 나오는 간단한 용어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적·유구·유물이 있는데요, 유적은 인간 활동이 토지와 분리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른바 부동산적인 것을 의미하죠. 주거지유적, 분묘유적, 패총유적 등 가장 큰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유구는 유적 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무덤이면 무덤 하나하나를 칭하죠. 물론 주거지(집자리) 하나하나도 되고요. 유물은 동산적인 것을 말합니다. 운반이 가능 한 것으로 돌도끼, 토기, 철기, 자기 등이 되겠죠. 이 용어를 공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적(遺蹟) ⊃ 유구(遺構) ⊃ 유물(遺物)
1. 지표조사
발굴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어떻게 이곳에 집자리나 무덤이 있는지 알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고고학자가 신이거나 타임머쉰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다녀온 것이 아닌 이상 한번에 어느 곳에 유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는 없는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고고학자는 많은 시간을 지표조사를 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표조사는 여러 가지 장비(자. 지도, 나침반, 꽃삽, 유물봉투, 카메라 등)를 배낭에 넣고 산과 들로 다니지요. 지형을 관찰하고 유물을 수습하고 지도에 표시하고 간단한 기록과 사진을 찍으면서... (과거에는 간첩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행동과 복장이 비슷하니까요.) 자료를 수집합니다. 최근에는 항공사진이나 인공위성사진 등 보다 발달한 장비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건물을 세운다, 공단을 만든다, 다리나 도로를 만든다 하면 그곳에 이러이러한 성격의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조사를 해야합니다 하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죠.
2. 시굴조사
그러나 지표조사만으로 유적(또는 유구)이 있을 확률을 100%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지표면에 유물이 노출되는 것은 유구가 어느 정도 교란(파괴)되어서 지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전혀 교란이 안되거나 그밖에 요인으로 유물을 한점도 수습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시굴조사라는 것을 합니다. 유구나 유물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기 위해 땅을 길게 파서 확인하는 것이죠. 시굴조사를 하게 되면 유적과 유구가 있다 없다를 거의 100%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말씀드리면 충남 보령에 관창리라고 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서해안의 대천해수욕장에서 가까운 곳이죠. 이곳에 어느 기업에서 공단을 만든다고 준비를 했지요. 그래서 의뢰를 받고 지표조사를 했더니 유적이 존재한다고 확인할 수 있는 토기편이나 그밖에 유물을 한 점도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지형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정말로 유적이 위치하고 있기 좋은 곳이었거든요. 현재 여러분이 살기 좋은 곳은 과거에도 사람이 살거나 무덤자리로 사용하기 좋은 곳이거든요. 그래서 일단 시굴조사를 해사 확실한 결과를 얻기로 했죠. 시굴조사 결과 유구가 확인되어 본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발굴 결과 선사시대 주거지(집자리) 170여기, 토기제작장소와 주구묘(周溝墓)라는 매우 중요한 무덤자리 100여기가 조사되었습니다. 당시에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되었어요. 지표조사 결과만 가지고 유적이 없다고 하여 공사를 시작했다면 중요한 유적이 조사도 못해보고 사라질 뻔했지요. 땅속에 있는 유구가 어느 정도는 파괴가 되어(과수나무를 심거나 그 밖의 형질변경에 의해서) 하나도 파괴가 안되어 있으면 유물이 지표면에 노출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시굴조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3. 발굴조사(본 조사)
발굴은 크게 학술발굴과 구제발굴로 나뉘어집니다. 학술발굴은 고고학의 학문적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서 시행하는 발굴입니다. 고대문화의 편년체계나 문화와 문화 사이의 층위 관계의 확립, 유적 성격의 확인, 문화진화와 생태적 변화관계 등의 규명을 목적으로 합니다. 구제발굴은 유적의 파괴에 앞서 실시하게 되는 발굴입니다. 도로나 댐 건설과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에 앞서 실시하게 되지요.
발굴이라는 행위는 규모 크거나 작거나 어떠한 것이라 해도 신중하게 실행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발굴도 문화유적을 파괴하는 행위의 일종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공주 송산리고분군의 무령왕릉을 아실 것입니다. 1500년 가까운 세월동안 땅 속에 묻혀 있을 때는 어느 정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발굴을 통하여 노출된 후에는 급속하게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지요. 유리로 막는다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지 않는다 해도 많은 부분이 훼손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현재보다 발달한 장비와 기술 그리고 연구를 통하여 축적된 자료를 가지고 발굴을 하는 것이 지금 당장 발굴하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발굴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렇지만 공사에 의해 형질이 변경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발굴을 해야겠지요. 공사에 의해 파괴되는 것보다 발굴을 통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나은 것은 자명한 것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발굴이 많은 부분에서 외과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와서 어디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무조건 메스를 들고 배부터 째지는 않지 않습니까. 이 환자의 어느 부위가 아파서 수술을 하여야 하고 수술할 부위는 어느 곳이고, 집도는 누가하며, 스텝의 구성 등의 계획이 수립된 다음에 수술을 시작하지요. 발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유적의 성격은 어떠한 것이며, 시기는 언제이고, 발굴단의 구성은 어떻게 하며, 발굴 방법은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발굴에 임하게 됩니다.
Ⅲ. 그럼 어떻게 파나요?
시작하며
기본적으로 발굴방법에는 크게 도랑파기법(trench method), 격자법(grid method), 사분법(quadrat method)과 전면발굴방법 등이 있습니다. 유적의 성격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지요.
자 이제부터 발굴(집자리를 예로 들어)을 시작하겠습니다.
발굴 대상지가 선정되면 우선 발굴 전 사진을 멀리서(원경사진)도 찍고 가까이에서(근경사진)도 찍습니다. 그리고 등고선 측량 등 전체 지형 측량을 하지요. 발굴을 시작하기 전의 지형을 자료로 남기는 작업이 됩니다. 그리고 층위(흙이 쌓이는 데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지층누증의 법칙 등으로 부르는데 새로운 지층은 오래된 지층 위로 겹쳐져 간다는 원칙입니다)에 따라 조심스럽게 흙을 제거해 나아갑니다. 이 때 문화층(유구·유물 포함층)이 확인이 되면 경우에 따라 제토작업에 장비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유구 찾기
문화층이 노출되면 유구를 확인하게 됩니다. 집자리의 외곽선을 찾는 것이죠. 이게 조금 어렵습니다. 인공적으로 땅을 파고 집을 짖는 수혈식 주거지는 땅을 파고 지붕을 세우게 됩니다. 사람이 살다가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가면 주거지가 폐기되고 세월이 흘러 다른 흙으로 덮이기도 하고, 나무고 자라고 풀도 자라고 또는 흙이 쓸려 나가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번 판 다음에 채워진 주거지 내부의 흙과 그렇지 않은 그 옆의 흙(생토라고 합니다)은 색과 조직 등에서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그러한 차이를 통해서 주거지의 윤곽선을 찾는 것이죠. 이 윤곽선을 다른 말로는 굴광선, 또는 어깨선이라고도 하는데, 이걸 찾는 작업이 그렇게 수월하지가 않습니다. 2∼3천년전에 만들어지고 또 많은 시간에 걸쳐 변화가 이루어진 흔적을 찾는 것이니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죠. 꽃삽과 호미로 수도 없이 긁어 보고, 멀리서 관찰하기도 하고 사다리를 세워 올라가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맛을 보기도 합니다. 우습지요 흙을 맛보다니. 하지만 얼마나 답답하면 맛까지 보겠습니까. 트롤(trowell)이라고 하는 강철로 된 꽃삽이 세 개는 닳아서 못쓰게 될 정도는 땅을 긁어야 조금씩 어깨선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이 유구의 어깨선을 찾는 부분이 발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내부조사
어깨선을 찾으면 유구의 내부 조사를 시작합니다. 와! 집자리를 찾았으니까 이제부터는 파자. 그래서 유물도 찾고... 하며 무조건 파는 것이 아니라 사분법으로 토층을 남겨 놓고 조사를 시작합니다. 토층을 확인해야 이 집자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매몰되었는가 하는 자료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 유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돌로 된 화살촉, 돌도끼, 돌칼 깨진 토기편 등이 나옵니다. 이때부터 작은 대나무 칼이나 솔 등과 같은 것으로 조심스럽게 파고 유물에서 흙을 털어내기도 합니다. 아! 이때의 감동은 뭐라 표현할 수 없죠. 아주 오래 전에 이곳에 사셨던 이름도 알 수 없는 먼 조상들과의 만남 이니까요, 주거지내부의 조사는 계속 진행됩니다. 유물을 찾고 집을 짖기 위해 땅을 팠으면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었겠죠. 이렇게 지붕을 세웠던 기둥자리 등도 찾습니다. 이 기둥자리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었을까 하는 것을 밝혀줄 수 있는 자료이니까요.
유구 사진찍기
이렇게 내부조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주거지주변과 기둥자리 등에 하얗게 선을 그리고 사진을 찍습니다. 선을 그려야 사진에 자세하게 나오니까요. 이번 사진 역시 가까이에서도 찍고, 멀리서도 찍고, 사다리를 세우고도 찍고, 기구를 이용해서도 찍습니다. 많은 자료를 남겨야 하니까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높이 올라가서 찍습니다. 그래야 유구의 모습이 정확하게 표현 되니까요. 보통 슬라이드 필름과 칼라 필름, 그리고 흑백필름으로도 찍습니다.
실측하기
사진촬영이 끝나면 실측을 합니다. 유구의 규모에 따라 1/10, 1/20 등의 축척을 사용하여 방안지(모눈종이)에 실물 그대로를 그립니다. 트렌짖이라는 장비를 사용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네모나게 실을 띄우고 줄자를 사용하여 그리지요. 그리고 견통도 또는 측면도라고 하는 옆에서 보는 모습도 그립니다. 여기에는 레벨이라는 장비를 사용합니다. 도면에는 유구의 실측뿐만 아니라 특징, 축적, 작성자, 날짜, 방위표시 등 많은 자료를 기입합니다.
측량하기
사진을 찍고 유구실측이 끝나면 유적 전체를 측량합니다. 어느 위치에 어느 유구 있는가 하는 유구 배치도이지요. 한 장의 도면에 모든 유구를 그려서 전체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합니다. 평판 측량이라고도 합니다.
사진찍기와 실측이 끝나면 유물을 수습합니다. 유적명, 유구번호 출토된 층위, 수습한 날짜 등을 기록한 유물상자 및 유물봉투에 담아 보관과 이동을 하게 됩니다.
유적 사진찍기
모든 유구의 조사가 완료되면 전체 사진을 촬영합니다. 이때에는 근처의 높은 산에 올라가서 찍기도하고 기구나 모형 헬기, 또는 경비행기 등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모든 유구가 일목요연하게 한 장의 사진에 나와야 하니까요.
현장 설명회
어느 정도 발굴이 진행되면 관련 전문학자와 언론, 그리고 관심 있는 여러분들을 모시고 현장을 공개합니다. 이곳이 이러이러한 유적이고 유구는 이러며 출토된 유물들은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고 설명하는 것이죠. 그래서 조언도 듣고 발굴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또한 그곳 주민들에게 여러분이 사시는 곳에 이러한 좋은 유적이 있습니다 하고 알리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Ⅳ. 이러면 발굴이 끝나나요?
아니죠. 지금까지는 현장에서의 작업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실내에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유물세척
발굴하여 수습한 유물들을 깨끗이 닦아내는 작업입니다. 무조건 물에 담궈 솔로 벅벅 닦는 것이 아니라 우선 세척하기전의 상태를 점검합니다. 예를 들면 자료의 단서가 될만한 내외 표면에 무슨 흔적은 없나, 무엇이 붙어 있지는 않나, 이 토기의 용도는 무엇이었으며 왜, 어떻게 부서졌나, 또 어떻게 긴 세월동안 남아 있나 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것을 기록하고 검토합니다. 그리고 유물의 종류에 따라 조심스럽게 세척을 하지요. 같은 시대의 토기라 하더라도 토기를 구울 때의 온도에 따라 굳기가 달라집니다. 높은 온도에서 구우면 딱딱하고 약한 온도에서 구우면 약한 경우도 있지요. 약한 토기를 강한 토기와 같이 닦으면 안도죠. 이 작업 역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척이 끝난 유물은 그늘지고 안전한 장소에서 건조를 합니다.
유물에 이름적기
세척과 건조가 끝난 유물은 유물에 직접 유적명과 유구번호를 적는 작업을 합니다. 아주 가는 붓을 사용하여 유물에 기록을 하는 것이죠. 그래야 나중에 자료로서 가치가 있게 됩니다. 출토된 유적과 유구를 알 수 없는 유물은 그만큼 고고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반감하기 때문이지요.
접합 및 복원
유물에 이름적기가 끝난 유물은 같은 유구에서 출토된 순서로 모으고, 비슷한 형태로 색 등으로 분류를 합니다. 그리고 원형대로의 복원을 실시합니다. 접합에는 아주 섬세한 손놀림과 꼼꼼한 성격을 필요로 하지요. 그리고 많은 참을성을 요구합니다. 토기를 접합하는데는 특수한 접착제가 사용됩니다. 이 접착제를 사용하여 비슷한 태토와 무늬를 가진 토기편들로 분류된 유물을 맞추면서 퍼즐과 같은 접합을 시작합니다. 완전하게 복원이 되지 않는 유물은 특수한 복원약품이나 석고를 사용하여 부족한 부분을 복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원이 아무렇게나 비워진 곳을 때우는 것은 아니고 복원도 작성 등 많은 고찰과 분석이 이루어진 이후에 실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복원한 부분에 아크릴물감 등을 사용하여 표면채색을 하기도 합니다. 박물관에 가서 전시되어 있는 선사시대 토기들을 보면 모두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데 진열장 앞에서 까치발을 하고 토기의 안쪽을 살펴보면 색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지요. 이것은 이러한 복원 작업을 거쳐 전시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유물실측하기
유물의 복원이 끝나면 실측을 합니다. 유물을 있는 그대로 내면, 외면, 단면, 문양, 제작기법 그리고 특징적인 부분을 그리는 것이죠.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만들어지고 토기의 표면은 어떻게 다듬었으며 혹시 볍씨의 흔적 같은 것이 있나 하고 관찰하고 그림을 통하여 표현해주지요. 이 작업은 사진을 통하여 보여줄 수 없는 많은 부분을 그림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작업을 통하여 많은 자료를 축적하고 공유하게 됩니다. 유물을 매우 자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하게 되니까요. 유물실측도에는 가능하면 많은 것을 기록하게 됩니다. 작성일(作成日), 축적(scale), 작성자(作成者), 유적명(遺蹟名), 유구번호(遺構番號), 유물번호(遺物番號), 태토(胎土, 어떠한 흙으로 제작되었나를 기록합니다), 색조(色調, 유물의 색을 기록합니다), 소성(燒成, 어느정도의 온도에서 구워졌는가를 기록합니다), 보존(保存, 현재유물의 잔존상태 및 명칭 등을 기록합니다), 기고(器高, 유물의 높이를 기록합니다), 구경(口徑, 유물의 아가리 직경을 기록합니다), 저경(底俓, 유물의 바닥 직경을 기록합니다), 동최대경(胴最大俓, 유물의 중앙에 최대직경을 기록합니다), 대각고(臺脚高, 굽이 있는 경우 높이를 기록합니다), 기벽(器壁, 유물의 두께를 기록합니다)두께, 특징(特徵, 실측도면을 통하여 표현하지 못하는 특징을 기록합니다) 등을 기록하지요. 사용하는 장비는 방안삼각자, 연필, 지우개, 방안지, 제도틀, 캘리퍼스, 디바이더, 자 등이 있습니다.
탁본하기
유물실측을 통해서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은 탁본(拓本)을 하게 됩니다. 탁본은 탑본(榻本), 탑본(搭本), 사출(寫出)이라고도 하는데 금석문(金石文)·암각화(岩刻畵)·조각(彫刻) 등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 문양 등을 종이에 대고 먹 등으로 찍어 박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탁본의 종류에는 습탁, 건탁, 유탁 등이 있지요. 유물의 표면에 한지를 대고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다음 천을 대고 작은 솔이나 칫솔 등을 사용하여 두드려 줍니다. 그리고 작은 먹방망이를 사용하여 먹을 찍는 것이죠. 이때 중요한 것은 유물에 먹이 묻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유물 사진찍기
실측과 탁본이 끝난 유물은 사진을 촬영합니다. 조명을 설치한 실내에서 촬영하기도 하고, 자연광 그대로 촬영하기도 하죠. 될 수 있으면 자연스러우면서도 그대로의 색을 살리며 그림자가 없게, 그러면서도 특징을 살려서 촬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지요.
이외에도 많은 작업이 있습니다. 실측한 도면을 편집하여 트레이싱작업과 레트링작업을 하여야 하며, 유적, 유구, 유물에 대하여 도면과 사진을 통하여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을 설명하여야 하고, 유적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변의 자연환경을 설명하고, 철기 등의 유물은 보존처리작업과 분석 등을 합니다. 또한 채취한 시료를 가지고 여러 가지 분석을 합니다. 방사선연대측정, 포타슘-아르곤연대측정, 고지자기측정, 나이테연대측정, 발열광연대측정 등과 인산분석, 식물규산체분석, 지방산분석, 태토분석 등을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작업과 분석을 통하여 보고서가 만들어지며 자료를 공유하여 많은 연구자가 시간적인 분석과 공간적인 분석, 그리고 고환경 및 생활상, 사회상의 복원 등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 발굴은 지하에 매몰된 상황에서 단순히 존재함에 지나지 않는 고고자료에 대한 철저한 방법을 통해서 검출하고, 고고학적으로 유의한 데이터로 기록하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이 행위에 의해 비로소 고고자료는 학문적으로 이용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이후 많은 고고학자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게 되지요. 발굴은 정확하게 고고자료를 세상에 들어 내놓는 일임에 틀림없고,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하여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이 일반인에게 공개가 되는 것입니다.
고고학이란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학문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야외에서의 발굴은 짧은 기간에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몇 달이나 아니면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내에 돌아와 반복되는 작업들은 지루함마저도 느끼게 하지요. 그러나 군대에서 힘든 훈련을 마치고 한대의 담배를 피울 때나 산에 오르는 힘든 과정을 마치고 정상에서 느껴지는 기쁨을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현장과 실내에서 얻어지는 성취감과 감동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매일 만나는 조상들의 삶의 흔적과 예상하지 못했던 유물들은 발견은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합니다.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비교가 될 까요. 또한 아름다운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많은 여행을 하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요. 어려운 만큼 얻는 것도 많습니다. 이러한 기쁨들이 오늘도 한 여름의 태양 빛이 작렬하는, 한 겨울의 꽁꽁 얼어 있는 현장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