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재하는가요? 내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제의 나는, 이미 오늘 다른 모습과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 다른 내가 되어 살고 있지요. 날마다 변하는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가 내 몸속에 있을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우리는 우리 몸을 가지고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 몸이 몸통과 같은 외각의 윤각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 누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지를 잘 보아야 합니다. 누가 나를 지배하고 내 몸안에 들어가 사는지를 잘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귀신들린 자들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군대 귀신들린자는 이미 다른 이가 그몸을 장악하여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전쟁은 눈에 보이는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터 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면서 하나님의 원수로 태어나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이를 믿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편에서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백성으로 살아 갈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교회에 나온다고 하여 그 당신의 신분이 금방 바꾸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사탄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기 전에는 말입니다. 절실히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지요.
구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일어날 일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애굽의 삶은 바로 하나님 없이 나로 살아가는 자연인 것입니다. 오직 나의 있음으로 살고 있지요. 여기에는 하나님이 등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를 믿기 전의 단계인 것이지요. 그 후에 하나님의 역사와 사건을 통하여 당신이 광야라는 곳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덧이 가나안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지시하는 땅에 들어가기 전의 단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가나안은 바로 구원이고 천국입니다. 광야는 천국전의 단계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삶이 어떤 삶인지를 당신은 알고 있어요? 아직 경험을 하지 않아서 모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천국을 죽어서만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살아서 임하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입니다. 잘못 생각을 하시는 분들은 물리적인 안락하고 평화의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이란 근본적인 필수 조건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들을 하나님의 없는 천국을 꿈꾸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고 싶겠지만 이런 것들은 속임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너무나 거리가 멀리 와 있다고 보면 됩니다.
다시 돌아가서 우리가 가나안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거쳐야 할 곳 광야 입니다. 이는 필수 불가피한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로 사는 곳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처럼 내가 더 이상 내 몸을 주장하며 살지 못하는 곳, 그가 내 몸을 주장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을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우리에게 광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애굽의 삶을 청산하는 곳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 애굽에서 무슨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이 모든 곳을 자신이 직접 청산을 하여야 할 일들 입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야 할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입니다.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곳 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그 동안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누구도 말해 주지 않은 내, 내가 스스로 찾아 가는 과정입니다.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 이겠지요. 이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되고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결국 자기의 죽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 하고 나도 그의 함께 그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를 깨닫게 되는 날입니다.
이 광야는 내 인생에 참으로 소중한 경험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 감당해 줄 수 없는 그날 그날들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내 존재가 무엇인지? 왜 하나님께서는 나로 살지 못하도록 하는지를 알게 되는 교육과정입니다. 이 처럼 광야는 해병대 훈련소 같은 빡세고 어려워 누구도 자원하여 지원을 하지 못할 곳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내가 하고 싶지않는 곳,생각하기 싫은 곳, 생각만 해도 버리가 아픈 곳입니다. 이런 곳이 바로 광야 입니다.
이곳을 지나지 않고, 당신이, “믿습니다! 아멘! ” 한다고 가는 천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나가야되는 감당해야하는 곳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교회는 추상적 사물이 되고 맙니다. 아무런 영향력 없는 분이 바로 “하나님 “ 입니다. 누구나 부르고 기도하는 하나님 인데, 당신은 지역교회라는 한 곳에서 제한적으로 믿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요. 고민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미래는 없습니다.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 입니까?
첫댓글 그럼 "내가 생각하니, 그러므로 생각하는 나가 존재한다!"
는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명제를,
갈라디아서 2:20절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질문이 생겼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그 옛 사람은 죽었기 때문에
생각하는 나도 없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서. “내”가 생각하고, 내 방식대로 살아왔는데..
"나"라는 존재가 사라졌다면,
이 만져지고 나타난 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나의 존재로가 아닌,
그의 존재가 이 몸을 통해 흘러나오고, 그의 존재가 이 신체(기계)를 통해 기동(Moving) 하는 거네요!
내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로 호흡하고…
“나” 라는 인생, 사람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 I AM)으로 사는것을
말하는 거네요!
이스라엘로, 이스라엘 나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거하는
I AM 으로 말하고,
I AM 으로 걷고,
그 I AM의 빛을 드러내기 위해,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그것을 다 보여 주었는데...
그들은 성경을 잘못 알아서, 오해 해서 “나”로, “이스라엘”로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망한거네요!
그것을 우리는 알아차리고, 경계로 보여 준것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