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집행유예 기간 중에 구속 기소까지 된 사건을 선임하여 1년 6개월 이상 노력한 결과 여러 우여곡절 끝에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필자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기에 2심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는데 당사자인 피고인은 달랐던 모양이다. 피고인은 결심과 재기가 반복되며 오래 끌었던 1심에서 보다도 더 2심 선고 결과에 기뻐하는 눈치였고 필자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계속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에 피고인으로부터 전화로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검사가 상고를 한 것 같다. 피고인은 필자가 1심과 2심에 걸쳐서 변론을 하였기에 사건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상고심에서도 꼭 선임하고 싶은데 어느 변호사가 상고심에는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 이름을 올려야 안심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자신을 선임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궁리 끝에 답변서 제출 등 실제 일은 필자가 맡아주고 다만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으로 답변서를 제출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선임료를 나누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에 필자가 상고심에서 파기될 가능성은 거의 없기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하였으나 피고인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하였다.
순간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필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못내 미안해하는 피고인에게 필자가 오히려 더 부끄러웠다. 피고인이 ‘사법불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피고인에게 비친 대법원은 그냥 막아내야 할 장벽에 불가한 초라한 모습일 뿐이었다.
필자가 변호사 업무를 6년 가까이 해오면서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상고심에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대법원에서 제대로 관심있게 봐주지 않는다는 말을 정말 많이도 들었다. 지난해에 상고심에서의 대법관 출신 변호사선임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과의 차별이 크게 논의가 되었으며 이것이 언론에 비치게 되어 이를 알게 된 의뢰인들은 마음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더욱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필자가 정말 열심히 상고이유서를 작성하여 대법원에 제출하였으나 불과 반 페이지 정도의 상고기각 판결문을 보고 절망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의뢰인이 필자를 찾아와서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알겠는데 상고심이라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도저히 불안하다고 하여 할 수없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을 빌리기도 하였고 실제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로 중형을 선고받거나 패소하였다가 상고심에서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 이름으로 상고하여 파기판결을 받은 예를 드물지 않게 보았다. 우연의 일치라고 무시하려면 대법원에서 정확한 통계로 반박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실 대법관 출신 변호사 선임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에 따라 얼마나 결과에 차이가 있느냐 보다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가 문제이며, 이를 교묘히 악용하는 풍토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최근 어느 대법관께서 퇴임 후에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모교의 교수로 임명될 예정이란 너무나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대법관 출신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강단에 서는 최초 선례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 대법관께서 앞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후학을 가르치시는데 전념하신다면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 되겠는가.
솔직히 대법관까지 역임하신 분들은 대부분 60세를 넘기셨고 현역에서 30년 이상 활동하셨기에 굳이 변호사 개업을 하실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본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신 것과 같이 한편으론 나라로부터 받은 큰 은혜를 이제 되돌려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연금도 적지 않게 받으시기 때문에 생활에 그다지 어려움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 그리고 헌법재판관을 역임하신 분들도 그동안의 풍부한 경륜과 지식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도 사회에 봉사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것으로 본다. 얼마 전에 장관직을 물러난 참여정부의 첫 법무부장관께서는 향후 계획에 대해 장관 이전에 근무하였던 법무법인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변호사 업무를 볼 것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였다고 한다. 그 법무법인은 엄청난 광고가 되었을 것이고 아마 앞으로 한동안 법무부장관의 후광으로 많은 사건이 몰려들 것으로 보여진다. 물러난 장관이 아직 나이가 많지 않고 빚도 많다고 하니 변호사 개업을 하지 말도록 권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직을 이용하지는 않으리라 믿고 싶지만 좋은 결과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의뢰인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는 차기 대법원장 후보군에 들어가 있기에 언제든지 대법원장이 될 수도 있어 현직 법관들에 대한 잠재적인 인사권자가 되기도 하며, 수십년간의 법관 생활을 통해 자신의 배석판사였던 분들만 따져보아도 많은 수의 법관이 현직 재판장으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변호사 업무를 본다는 것 자체가 한국적 상황에서 명백히 공정한 게임이 되지 못한다고 하겠다. 소위 말하는 전관예우의 뿌리는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대법관을 역임하시고 굳이 변호사 개업을 희망하시는 경우에라도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직접 뛰셔야지 절대로 이름만을 파는 짓은 하지 말기를 머리 숙여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매춘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에 거의 대다수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들이 임기만료로 교체될 것이라고 한다. 그분들이 법조계의 원로로서 후배 법조인들뿐만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을 받았으면 좋겠다. 대법관을 역임하신 분들 중에 일부는 고문변호사로 법인 등에 소속은 두고 있으나 사실상 변호사 업무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엄연히 법인 소속으로 되어 있다면 법인의 대외 홍보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아닌가. 이제 이름 하나 빌려주고 실제 일을 한 변호사보다 훨씬 많은 선임료나 챙기는 악덕변호사는 없어져야 하겠다.
피고인에게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한 필자는 또다시 의뢰인을 위해 OEM(주문자표시생산)방식을 따라야할지 고민을 하다가 피고인을 다시 설득하고 훌훌 털어버리기로 하였다. 정말 언제나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을 빌릴 필요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