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따라 떠난 여행
여름 내내 미루고 미루었던 여행 .가을 햇살에 푼다.
제천으로 가는 무궁화 호 열차 안 들뜬 마음 앉히고
창밖을 본다.
해운대역 지나 호수 같은 송정해변의 백사장
떠난 여름 아쉬운 듯 한가로운 갈매기 끼룩 끼룩
추억을 퍼 올리고 있다.
기장. 일광. 좌천과 월래를 지나 원자력 발전소가 시나브로
스쳐가고 동해안 해돋이로 유명한 서생 간절 곶 지나
내가 태어나 자란 남창이 눈에 어렴풋이 들어온다.
지금은 외척 몇 분만이 살고 있는 내 고향 마을
멀리 바라보이는 대운산 해발742m 숲이 울창한 산으로
원효대사의 마지막 수양지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산이다.
조선 후기에, 금위영과 어영청, 균역청에 딸린 창고. 주로
군량미를 저장하였다 하여 南倉아라 불렀다.
지금 옹기 골로 꽤 이름난 곳으로 옹기 박람회가
널리 알려져 있다.
고향 역사의 레일 위에 떨어지는 국화꽃 진한 추억에 잊혀
진 옛 시절이 그립다.
10시27분!!
뿌연 연기가 보이는 굴뚝, 공업도시 울산역을 미끄럼 타듯
열차가 빠져나가자 황금물결 출렁이는 호계 들녘이 눈에
들어온다.
고교 동창이 살았던 곳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친구가 그립다.
황금물결이 햇살에 반사되어 목에 두른 빨간 스카프에
툭 떨어지는 기분.
칙칙폭폭 열차는 문화의 도시 경주에 닿는다.
고풍스런 기와장이 신라시대의 화려함을 과시하는 듯 가로수를
뒤로 밀어 내더니 두렁에 억새꽃이 건들건들 춤을 추며
신 영역 근처 붉은 사과 주렁주렁 마치 수채화 같다.
12시30분 의성이다.
추수가 다되어 보리밭에는 새파란 싹들이 줄을 이었고
마늘이 유명한고장이라 밭마다 마늘 모종이 한창이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滿山紅葉
단풍치마 두른 산새가 우뚝 줄지어 즐거운 비명이다.
영주까지는 2시간가량 남은 듯싶다.
저만치 은빛 백사장 안동시, 안동 권 씨 일가들의 자존심을
보는 듯 정교한 시가지가 한 눈에 보인다.
저 백사장을 걸어볼 기회 있을까
옆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 영주가 친정이란다.
나이보다 10년은 젊게 보여 은근히 부러웠다. 갖가지
먹을거리를 안겨주는 통에 깔 닥 요기는 한 셈이다.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 나누는 동안 영주시로 접어들었다.
아주머니와 함께 여장을 챙기고 역사에서 잘 가란 말 나누고
돌아보니 홈에서 친구가 반갑게 맞이한다.
역전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먹고 친구는 제천으로 향했다.
창밖의 고속도로를 둘러친 산천은 가을이 한창이다.
구절초의 웃음에 노란 들국화의 화사한 미소며, 나부끼는
억새의 춤사위 바라보는 즐거움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다.
월악산을 돌아 제천 10경인 의림지, 박달재, 청풍호의 아름다움
그 외 금수산,용하구곡,송계계곡,옥수봉,탁사정,배론성지등
문화유적지가 많다는 친구는 가이드가 되었다.
市를 벗어난 차는 뒤뚱뒤뚱 개울 건너 골짝 을 지나니 별장이다.
친구 남편은 반갑게 맞이해 어색함 마저 접었다.
여장을 내려놓고 곧장 정원 원두막에 앉아 차가운 냉기에
투명한 하늘을 올려보니 별 하나 별 둘 별무리가 하늘을 수놓는다.
한참 후 친구는 저녁 먹자고 부른다. 난로에 장작을 가득 넣고
집안엔 온통 장작 타는 열기로 후끈하다.
저녁을 먹고 친구와 원두막에 앉아 막걸리 술잔 나누는
정담, 오랜만에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빛에 늘어놓았다.
은하수가 물결치듯 파란 창공에 출렁거리듯
구름은 돛단배 같다.
낙엽 서걱 이는 가을정취 풀벌레 소리 귓전에 맴돌고
밤은 깊어 잔디에 내려앉은 서리, 새벽을 재촉하는데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비몽사몽 창살에 비추는 햇살에 깜짝 놀라 일어나니 동창에
해님은 눈부시다.
숲속 새소리 청아하다. 아침 식사 후 밤 대추 모과 바구니 가득
채우고 따뜻한 햇볕이 마당 한가운데 초롬히 내려앉는다.
냉동실에 닭 한 마리 뜰에 걸어둔 솥에 장작 지피고 푹 삶아
올려놓고 셋이서 나누는 술잔. 지난 추억도 술상에 올려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 찰랑이는 술잔. 마시고 또 마신다.
400평 넓은 정원엔 가을꽃이 조용한 숲속을 꽉 채운 것 같아
잔디에 드러누워 뭉게구름 떠도는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 살아있어 이렇게 행복하구나,
그이도 살아있음 함께 나눌 수 있으려마,
무엇이 바빠 날 두고 가셨나.
투명한 밤하늘 달빛은 시리다 못해 아려온다.
3박4일 언제 지났는지 내일은 가야지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 없다.
친구와 함께 제천시로 가던 중 의림지를 돌아 골짝 경치가
아름답다는 친구의 안내로 개울물이 흐르는 골짝에서
헤어지는 아쉬움을 나누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제천 장을 구경하고 1시가 넘어서 간단한 요기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마중 나온 아들의 차에 짊을 싣고 감회에 젖어 뿌연 공해
그래도 달은 뜬다. 아주 희미하게
저녁 6시 울산 아들 집에 도착하니 올망졸망한 손자들이
할머니 하면서 와락 안겨든다.
긴 시간차에 시달린 피로는 눕자마자 잠이 찾아왔다.
여행이 주는 큰 즐거움 가족들이 반겨주는 소박한 행복,
저녁 식사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었다
때로는 여행이 안겨주는 기쁨은 인생에 있어 질퍽한 삶을
돌아보는 여유로움 아닐까한다.
2008년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