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일출과 일출을 바라보는 관광객들 모습. |
2013년 한해가 지나고 2014년 새해가 밝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지나온 1년을 ‘다사다난했던 한해’라고 말하지만,
이미 억겁(億劫)을 지나온 무한한 흐름 속에서 1년 혹은 12달이란 숫자는 한순간 찰나(刹那)에 불과하고, 인간 스스로 만든 올가미에
불과하다.
그런 새해의 첫 번째 달인 1월은 원월(元月) 혹은 인월(寅月)이라고도 하는데, 근래에는 정월(正月)이란 말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정월이란 중국 고대인 하(夏)→은(殷)→주(周)와 같이 역성혁명으로 왕조가 바뀌던 때 신왕조에 맞춰서 역법(曆法)을 새로 고친 데서
유래한 단어이어서 그다지 좋은 용어는 아니다.
또, 1월(January)이란 영어 단어는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문을 지키는 신(神) 야누스(Janus)에서 유래하는데, 야누스는 앞뒤로 바라볼 수 있는 두 얼굴을 가졌다고 해서 흔히 이중인격자 혹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문은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동시에 안쪽에서 바라보면 출구가 되는 이중성을 갖고 있어서 앞뒤에 눈을 갖고 있는 신 야누스가 최적격으로 하늘의 문 파수병이 된 것이다.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해의 끝이자 한해가 시작되는 1월을 야누스라고 이름 붙인 서구인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정동진 모래사장. |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국제화 시대를 맞아서 연말연시에 해외로 떠나는 젊은이들도 많지만, 산과 들을 찾아서 기차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많다.
강원도 동해
바닷가인 정동진(正東津)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정동 쪽에 있는 나루터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서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은 포구였으나,
1995년 S-TV 인기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소개된 이후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호기심 많은 젊은이들은 극중 긴 생머리를 바람결에
날리는 여주인공이 겨울해변을 거닐고, 찬바람을 맞으며 애타게 기차를 기다리는 강한 인상을 가슴에 안고서 드라마 속의 주인공과 같은 낭만을
즐기려고 정동진을 찾는 것이다.
넓고 고운 백사장과 잔잔한 파도와 얕은 수심의 바다와 맞닿아 있으며, 뒤로는 울창한 송림과 이어진
정동진은 매년 1월 1일이 아니더라도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서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이른
새벽에 정동진에 도착하는 여행코스를 즐기는데, 청량리역에서 밤 11시15분에 출발하여 새벽 4시26분에 도착하는 무궁화 정규열차가 매일 운행하고
있다.
주말인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출발하는 정규 열차는 언제나 일찍 마감되어서 일반여행사에서 운영하는 관광열차가 서울역에서 밤 10시30분 출발하는 기차여행상품이 상시 판매되고 있을 정도이고, 부산역, 동대구역, 대전역, 광주역에서도 정동진행 열차가 있다. 그밖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릉까지는 물론 동서울터미널에서도 강릉까지 고속버스가 다니고, 강릉에 도착하면 비교적 가까운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정동진까지는 매시간 시내버스가 다닌다.
강릉시에서는 드라마 모래시계가 끝난 1998년 1월 1일 처음 해돋이 행사를 개최한 이래 매년 12월 31일부터 1월 1일까지 해돋이
행사를 하는데, 올해는 3주 이상 계속된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특별열차가 운행되지 않아서 크게 울상을 지었다. 서울에서는 울산과 포항의 호미곶을
찾기도 하고, 정반대쪽인 충청도 서해안인 당진 왜목마을과 서천 마량포구 등이 반사이익을 얻기도 했지만, 극성스런 젊은이들은 서울에서 5시간이
넘는 고속도로와 국도를 거쳐서 정동진을 달려가기도 했다.
그런데, 정동진역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있는데,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도 한다.
정동진 바다(왼쪽)과 정동진역. |
시골 간이역인 정동진역은 광장이라고 할 만한 공간도 없고, 또 주변에는 변변한 음식점이 없을 정도로 옹색하다.
젊은이들은 역 구내의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철썩이는 푸른 바다를 감상하거나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철도며, 해풍에 비스듬히 누워버린 소나무들, 그리고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1960년대로 돌아간 듯한 허름한 간이역에서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푸른 바다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또 사랑하는 연인과 손을 붙잡고 산책을
즐긴다.
정동진역에서 오른쪽으로 약100m쯤 떨어진 곳에는 2000년 국가지정 밀레니엄 해돋이 축전을 치렀던 모래시계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강릉시가 1999년 새천년을 기념하여 삼성전자와 함께 정동진을 상징하는 거대한 모래시계를 만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모래시계는 허리가
잘록한 호리병 모양의 유리그릇에 담긴 모래가 중력에 의해서 떨어지는 모래의 부피로 시간의 경과를 재는 장치로서 8세기경 프랑스의 성직자
리우트프랑이 최초로 고안한 것이지만, 정동진의 모래시계는 지름 8.06m, 폭 3.20m, 무게 40톤의 둥근 원판으로서 모래 무게만 8톤이나
된다. 언제나 세계 최고, 세계 최대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성답게 정동진 모래시계는 세계 최대의 모래시계라고 한다.
모래시계에는 쥐(子),
소(丑), 호랑이(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등 12짐승을
나타내는 12지상이 있고, 시계 속에 담긴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데 꼭 1년이 걸린다고 하지만, 1년 단위로 8t 무게의 모래시계가
움직인다는 위압감, 그리고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거대한 크기는 많은 비판이 되고 있다.
모래시계공원의 모래시계. |
정동진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은 계절에 따라서 해 뜨는 방향이 조금씩 다른데,
1월 1일 전후에는 맨 오른쪽의 높은 절벽위에 지은 선박 모양의 썬 크루즈리조트 쪽에서 솟아오른다. 리조트 측에서는 일출보기 알맞은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서 해돋이를 구경하려는 이들에게 입장료를 받는데, 그 입장료가 다소 비싼데도 불구하고 항상 만원이다. 그래서 전망대에 입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리조트 앞 횟집 앞에서 일출을 보려고 붐빈다.
물론, 전망대에서 일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고 해도 정동진만의 독특한
장소적 특색을 담아낼 수 없는 아쉬움이 있고, 오히려 모래시계 공원 앞의 백사장이나 정동진 기차역 앞에서 선 크루즈 리조트와 횟집이며, 정동진의
랜드 마크인 대형 선박 모습을 담는 것이 더 좋다.
정동진은 드라마 촬영지로서 갑자기 유명해진 관광지가 되어 새해 해돋이를 보려는 젊은이들에게 추억을 남기는 곳이 되었지만,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지 못한 신세대가 점점 늘어나면서 정동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또 정동진 주변의 볼거리를 개발해내지 못하면서 정동진의 매력이 줄어들자 경포호 주변과 오죽헌 등을 연계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강릉시의 새로운 고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