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꽃님이
버려 야지 버려 야지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던 죽은 소나무 분재를 버렸다
10년 넘게 키운 소나무 분재 세 그루중 마지막 한 그루마저 죽어 너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놓아 두었는데 아무래도 보기 싫어 버리기로 한 것이다
아파트로 이사 온지 4년째 주택에 살 때는 그렇게도 좋았던 분재들이 하나둘
죽어가더니 이제는 철쭉 분재만 남았는데 그것도 시원 치 않은 것 같다
아파트 사는 친구들이 화분이 자꾸 죽는다고 말했을 때 나는 속으로
너희들은 화분 키우는 재주도 없고 기술도 없으니까 죽을 것이다 하고는 비웃었다
분재를 10 여년 배우러 다녔기 때문에 나도 몰래 오만이 자리 잡고 있었는가 보다
그런데 내 오만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일단은 칼라 유리 때문에
일조량이 부족하고 동향집이기 때문에 햇볕 받는 시간이 짧다
배란다의 화분은 마당 한가운데서 햇볕과 비를 맞으며 자란 화분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사 올 때 따로 차 한 대를 더 불러서 화분을 싣고 올 만큼 많았던 화분
그래서 기사가 꽃집이 이사 가요? 할 만큼 많고 예뻤던 화분이 일년은 괜찮다가
그 다음부터는 시름시름 아파왔다
줄기가 가늘어지고 잎이 약해지더니 삐들삐들 꼬이다가 어느 날 죽어버린 화분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 했던 것이다 특히 소나무 분재 세 그루는 그 자태하며
키운 정성이 다른 나무와는 비교가 안 된다 소나무 세 그루가 모든 화분을 더욱
품위 있게 올려주기 때문이다
철쭉이야 때 맞춰 물관리만 잘하면 웬만큼 잘 자란다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순도 집어주고 분갈이 하고 거름 주는 거야 다 마찬가지 이지만 소나무는
가끔 고기 씻은 물로 철분도 보충해야하고 잎 따기 순 자르기도 시기를 잘 맞춰
해 줘야 사철 좋은 나무를 감상 할 수 있는데, 아파트라는 곳이 고기 씻은
핏물을 줄줄 흘릴만한 곳도 아닐뿐더러 깻묵 썩힌 거름을 주고 난 후의 냄새와
물줄 때 튀어나오는 찌꺼기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다
때로 비를 맞고 햇볕 을 보라고 잠깐 밖에 내어 놓으면 누가 가져가는지 모두
집어가 버리고 없다 지켜 앉아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이제는 내놓지 않는 다
베란다 가득했던 화분이 삼분의 일로 줄었다 지금도 까딱 잘못하면 여지없이
죽어가는 화분이 생기는 것 보니까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래도 철쭉이 잘 자란다는 말들을 하는데 내가 봐도 아파트에서는
그 중 나은 게 철쭉인 것 같다 철쭉은 강한 편 이어서 물 관리만 잘 해주면
잘 사는 편이다
철쭉은 산꼭대기 추운 곳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어서 높은 산에서도 안개와 바람 때문에
큰 나무는 못 자라지만 철쭉은 잘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베란다에도
철쭉 분재 만 남아 있다 이 정도까지 되었으면 이 화분들을 뜰이 넓은 집으로
보내야 하는데 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잘해 볼 요량으로
끌어 않고 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시름시름 아파할 때 뜰이 넓은
시누이 댁으로 좀 가져다 놓을 걸 때 늦은 후회도 해 본다 시누이집에 가져다 놓은
몇 가지 대형 화분들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욕심을 부리고 게으름을 피운
내 처사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사람이 분수를 알고 취할 때와 버릴 때를 알아야 하는데 욕심이 앞서서 그러지를 못 한다
그리고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도 우리 분재처럼 제 있을 곳이
아닌 곳에 있어 자신은 낭패를 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제 분수만 안다 해도 이 사회는 훨씬 좋은 사회가 될 것 같다
2003 .11.5
첫댓글 분수만 알면 무슨문제가 될까..자기분수에 안맞는욕심 때문에 자기도 다치고 남도 상처주는일이 얼마나 많은가...그런데 꽃님이님 분재 10 년경력이면 우리 꽃짐 동업해 볼까요? 그냥 썩혀두기아깝네요 ㅎㅎ
ㅎㅎㅎㅎ그래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