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우포늪입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이죠
꼭 한 번은 다녀오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두 시간 반이면 습지를 한 바퀴 돌아올 수 있다고 듣고 출발을 했습니다.
출발 전 현지에 비치된 습지 지도를 챙겼어야 하는데 무슨 배짱이라고 차 안에 두고 갔습니다.
막상 진입을 하고 보니 갈래 길이 사방으로 나 있어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더군요.
정해진 코스가 따로 없었기에 그냥 무작정 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여느 저수지와 다를 바 없는 풍경 같은데 호수의 민낯이 아닌 온갖 수초로 뒤덮인 모습만 보였습니다.
어떤 곳은 습지인지 들판인지 분간이 어려운 곳도 있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수초 사이를 유유자적 이동하는 물새들을
코앞에서 보듯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동행하는 사람 하나 없이 오롯이 홀로 걸어가는 길이 지루할 만도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습지를 막아 뚝을 만든 제방길을 걸었습니다.
나지막한 구릉을 타고 가는 숲길도 지났습니다.
평평한 마을 길을 따라 키 큰 포풀라도 만났고 연잎이 가득한 습지도 지나갔습니다.
빽빽한 갈대 숲에서 개개비가 어찌나 요란하게 울어대는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습니다.
걷다가 지치면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습니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잠자리를 보았습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때면 포풀러 잎이 일제히 저를 환영하듯 춤을 추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더없이 아름다운 것은 뭉게구름을 배경 삼아 탁 트인 너른 습지의 광활함에 그만 탄성을 질러댔습니다.
두 시간 반이면 돌 수 있다는 코스를 전 거의 네 시간 가까이를 걸었습니다.
출발 시간이 오후 네 시 반이었는데 끝무렵엔 밤 여덟 시가 훌쩍 넘은 때였습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렸는데 아직 출구를 찾질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길의 향방을 찾지 못해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저 앞에 경고문이 보입니다.
멧돼지와 뱀 출몰이 잦은 곳이니 주의바람이란 문구였습니다.
머리가 쭈뼛 서고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솜털이 곤두설 때마다 살갗을 스치는 옷의 마찰이 이리도 강열하게 느껴지긴 처음입니다.
그만큼 온 몸의 신경이 예민해졌다는 뜻이겠지요.
뭔가가 부스럭하며 뛰는 소리가 뒷전에서 들렸습니다.
순간 다리가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고라니였습니다.
숲길을 걸어가는 중입니다.
사방이 점점 어둑해졌습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였습니다.
지금 보이는 것은 밝을 때와 다름없다 다만 지금은 어두움이 내려앉았을 뿐이다.
그러자 이내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개 짖는 소리가 이리도 반가운 적이 있었는가 싶더군요.
멀리 마을이 보이고 큰 길도 보입니다,
한 바퀴 돌았으면 처음 진입했던 곳으로 나와야 정상인데 그곳과 약 3km 정도 떨어진 어느 마을 입구로
나왔습니다. 사위는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일단 큰길로 나왔으니 핸드폰 길 찾기로 원점을 찾아냈습니다.
그걸 따라 걷고 또 걷고 드디어 제 차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습니다.
발바닥에 불이 났습니다.
발목에 통증을 느꼈습니다.
다음 여정지인 영남루로 가기 위해 내비를 켰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가까운 무인 호텔(여관)로 무작정 출발을 했습니다.
이미 식당가는 불이 모두 꺼졌습니다.
편의점에 들러 빵과 컵라면을 사서 숙소로 갔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만 원에 잘 수가 있는 곳이었고 내부도 깔끔하고 여관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는 곳이더군요
뜨거운 욕조에 물을 한가득 채워놓고 지친 몸을 풀었습니다.
드라마틱한 하루였습니다. 전 이런 즉흥적인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족과 함께 우포늪에 가고 싶습니다
우포늪 초입에 '우포 생태촌'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창녕군에서 직접 운영하는 펜션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깨끗해서 좋습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더운 여름철 우포늪은 해가 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 산책하듯 답사하길 권합니다.
모기 기피제는 필수이고 약간의 물과 음식을 준비해 가면 좋습니다.
중간에 취사는 일절 금지되므로 알아서 먹을 것을 챙겨야 합니다.
반드시 우포늪 안내 지도를 지참하시고 중간중간에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우포늪은 여러 개의 늪지가 나뉘어 사잇길이 많아 자칫 길을 잃을 염려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망원경을 챙겨 가시면 멀리 있는 새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으므로 좋습니다.
행복한 우포늪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