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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정년퇴임 나에게도 정년퇴임이 있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마냥 남의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보아왔던 정년퇴임이었는데, 나에게도 다가온 것이다. 정년이라면 멈추어 서는 해라는 말이니, 정년퇴임은 하던 일에서 물러나 멈추어 서는 것을 의미한다. 내게 하던 일이란 가르치며 배우는 일이었고 교육의 길을 바르게 나아가자는 뜻을 펴는 일이 전부였다. 이제는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야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친우들의 정년을 맞을 때마다 정년퇴임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으면 얼마나 서운할까. 도대체 축하한다 말이 어울리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였던 터라 나의 정년퇴임에 축하를 받으면 서운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요새 나의 심경은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이다. 이 나이에 아프지 않고 성한 몸으로 퇴임하는 것도 행복이요, 정신적으로 건강하여 격물치지하는 것도 행복이요, 더구나 동료 친지로부터 아쉬운 작별의 인사와 격려를 받는 일도 행복이다. 이렇게 말하면 간혹 가식적인 상투어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서운하면서도 외면적으로만 그러하지 않은 체 하는 게 아닌가. 아니다. 결코 가식이 아니라 퇴임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미처 몰랐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가! 내가 행복하다는 어휘를 구사한 데는 몇몇 행복거리가 이를 입증해 줄 것이라 믿기에 지난 반년 간의 나의 행복노트를 살펴보기로 한다. 南谷閑室 입주 3월 31일 친지의 소개로 퇴임 후에 드나들 조그만 방을 계약하였다. 작은 빌딩 7층 옥상을 개조하면 방이 될 수 있다기에 건물주와 상의 끝에 입주 계약을 맺었다. 10일간의 공사로 완성된 가건물이지만 나의 공간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며 10평정도 되니까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기는 괜찮다. 4월 15일에 입주는 하였으나, 새집증후군 관계로 4월 25일에 정식으로 가족에게 공개하였다. 이름 하여 ‘남곡한실’. 퇴임기념 한물회원 대학초청 4월 24일, 개교기념일 다음 날, 오랜 우정을 꽃피우고 있는 학문의 동지들인 ‘한물회원’ 20중 중 17명이 대학에 모였다. 동강기념관, 도서관 멀티실 실연, 동강박물관, 철쭉으로 물든 동산 산책, 유쾌한 점심식사로 나의 퇴임 인사를 가름하였다. 마지막 스승의 날 유아교육과 학생들은 남달리 선생님에 대한 정표가 깊다. 수업 중에 노래하고 꽃을 달아주고, 사진도 찍고. 저녁엔 거나하게 만찬까지 대접 받았다. 요새 학생 사회에서 보면 19세기 풍습이지만, 우리 학과의 독특한 사은행사이다. 퇴임 전의 융숭한 대접에 고마움을 표했다. 아름다운 종강 6월 10일, 종강이었다. 교직에서의 마지막 강의. 내겐 뜻있는 시간이라 특별히 시간을 내어 ‘아름다운 교단’이라는 주제로 나의 교직생활과 교육신조, 제자들에게 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를 녹화해 두었다. 학생들의 울먹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행복한 교단임을 확인하였다. 정년을 앞둔 내게 안겨준 해외연수 2년 전부터 해외연수 기회를 주었지만, 1차 연수경로와 동일한 곳이어서 차 순위 교수님들께 양보해 버렸는데, 금년에는 연수지역을 변경하면서 의향을 물어왔기에 수락은 하였으나, 이 또한 딱한 일이었다. 정년을 낼모레 앞 둔 사람이 해외연수에 참여한다면 이 또한 모습이 아름답지 못해서 망설였지만 권면에 따라 아내와 함께 동유럽을 답사하게 되었다. 다녀온 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대학은 퇴임을 앞 둔 이 사람에게도 해외연수를 시켜준 대학이라고 말한다. 모두들 좋은 대학이라고 말해 주었다. 내 삶의 H, 선생님 출간 5년 전 회갑을 맞이하여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꺼림직 하여 ‘내 인생의 작은 삶’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이를 근간으로 하여 이번 나의 정년이 너무나도 행복일색이어서 마무리 책자를 내기로 한 것이다. 이름 하여 ‘내 삶의 H, 선생님’이다. 글은 내가 썼지만 큰사위와 큰 딸이 편집을 맡아 가족 판이 완성되었고 이를 출판사에 의뢰하여 예쁘게 500부 출간되었다. 나의 모임회원들과 동문제자들, 가족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공교로운 날 8월 12일 1943년 7월 12일(음)이 나의 탄생일. 되짚어 보니 그 날이 양력 8월 12일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금년 8월 12일이 음력 7월 12일인 것이다. 퇴임을 축하하려는 일인가 보다. 아내는 이 날을 특별일로 선포하여 온 가족이 모여 축하해 주었다. 동강대학 교수-학습 가이드북과 대학교재 공동 집필 출간 동강대학에는 교수-학습방법 개발위원회가 있다. 교수-학습 방법개발 분과, 교수-학습 방법 보급분과, 교수-학습 방법 지원분과 등으로 조직하여 총 10분의 교수가 연구에 임하고 있다. 금년도 과제로서 문기정 교수 퇴임 전에 ‘동강대학 교수-학습 가이드북’을 발간하자는 사업 계획이 확정되었었다. 지난 8월 25일 전체 교수회의에서 각 교수님들에게 배부되었고, 한 권을 남겨 8월 27일 저녁 그들과의 만찬장에서 퇴임 송축시와 더불어 헌정 받았다. 또한 동료 박형신 교수와 함께 대학 교재로 쓰일 ‘실기교육방법론’을 지난 8월 25일 출간하게 된 것도 나의 퇴임과 무관하지 않다. 정년축하회가 된 푸름회 오대산 나들이 푸름회는 형제의 정을 나누는 모임이다. 금년에는 날을 좀 늦게 잡아서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오대산 호랩 휴양지에다 숙소를 두고 동해안을 오가며 피서하였다. 이 기간 중 3일째 내가 발간한 책을 한권씩 봉정하고 그들의 정년축배를 받았다. 집 아이들이 마련한 송축회 7월 17일 경, 집 아이들이 모인다기에 그저 일상 모임으로 보았었는데 아빠의 정년을 송축하는 모임을 마련해 보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자식들이지만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렇게 해서 마련된 송축회가 8월 22일(금) 저녁에 이루어졌다. 초대 대상을 최대한 축소했다. 모임 위주로 모시고, 평소에 왕래가 있어 온 분들로 100여분을 초청대상으로 삼았다. 8월 초에 초청장이 배달되어 이 날 초청 인사 몇 분만 궐석이었고 모두 참석하여 송축 건배와 음식을 나누었다. 이름 하여 ‘문기정 교수 정년퇴임 송축회’ 우정 어린 동료들과의 점심 약속 정년을 앞두고 방학 전부터 방학기간 내내 바쁜 일정이 되고 말았다. 모임도 많았고, 동료들의 초청도 스케줄에 넣느라 분주한 나날이었다. 만남, 그 분들의 우정과 진실을 읽어냈다. 동료 연구회원들의 정성 담긴 만찬, 그리고 두터운 정표 증정 ‘8월 27일 오후 5시 30분에 가족회관으로 나와 주세요.’ 쿨 메신저와 메시지로 전달된 내용. 이날 우리는 진하게 만났다. 우선 걸개로 ‘송축 문기정 교수님, 47년 교육외길. 교수학습개발원 교수일동’이라고 붙여두었다. 이어지는 기념품 전달(가이드 북 헌정, 행운의 열쇠, 각자 준비한 선물-헌정시, 추사에게 미치다 책자, 신양호텔 부부사우나, 숙박권, 최신 음악, 클래식 음악 CD와 편지, 고급 와이셔츠와 넥타이와 편지-이 넥타이를 정년퇴임식 때 메었더니 모두 우아하다고 했다. 교수님 아버님의 축의금, 축하 케익, 한줄 메모 축하카드 전달 등등), 2차는 내 작은 공간인 남곡한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음주환담, 이어지는 노래방-여기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황홀한 밤이었다. 대학주최 정중한 정년퇴임식 8월 28일 11시, 김필식 이사장님, 김홍 교수님, 임종명 교수님과 나의 정년퇴임식. 학술정보원 멀티미디어실에서 이사장님, 상무님, 학장님, 보직 교수님 동료 교수님, 우리 유아교육과 제자들이 모인 가운데 정중하게 식이 진행되었다. 40년 이상 교직에 종사한 내겐 황조근정훈장이 수여되었고, 축사와 답사로 진행되었다. 이 때 찍은 사진들은 나의 영원한 기록이 될 것이다. 퇴임교수 초청 정찬에 상무님, 학장님, 보직 교수님들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식이 끝나고 김용근 교수실에서 박형신 교수, 장영혜 교수와 환담 후 귀가. 저녁에는 우아하게 신양파크호텔로 향했다. 쾌적하고 전망 좋은 방에서 둘이 마주한 오붓한 밤이었다. 우리 제자들의 정년퇴임 송축연 8월 30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유아교육과 동문회가 열리고, 이어서 11시에 송축회에 참석했다. 정년퇴임 송축이라는 영상이 뜨고 교수들의 그간의 모습들을 영상으로 펼쳤다. 송축식 개회, 참석 교수 전현성, 김충곤, 임종명, 문기정, 김경란, 박형신, 이주석학장, 오만록 교수가 소개 되었다. 영상편지, 회장의 송축사, 나의 정중한 인사, 제자들의 플롯연주, 스승의 날 노래, 사진촬영, 집행부 임원과 열성 제자들이 모인 정찬으로 이어졌다. 이 날 100여명의 제자들에게 이번에 출간한 자서전을 나누어주었다.(입장 시 포장하여 몰래 배부) 멀리서 가까이서 평소 나에게 애정을 보내 준 많은 제자들이 눈에 띄었다. 친구가 올려준 잡지사의 글 나는 은둔자이다. 그런데도 47년을 한결같이 교직에 임한 친구가 몇이 되겠느냐며 잡지에 나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지난 8월 4일, 내 閑室을 찾아왔다. 사진 몇 장 찍고 나의 자서전 하나를 가져가더니, 8월 30일 오후에 잡지가 도착했다. ‘참스승 동강대 문기정 교수’라는 표제였다. 내가 준 책을 죄다 읽고 사진을 곁들여 두 페이지에 소개했는데, 내 자랑이 된 것 같아 쑥스럽기만 하다. 정년이 되는 날(8월 31일) 저녁 오붓한 저녁 회식, 손자들의 재롱 8월 31일(일요일), 아내가 인근 자식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저녁을 약속한 모양이다. 손 자녀를 만나는 기쁨과 내 교직의 마지막 날임을 기념하기 위한 아름다운 마음에 고마움을 드린다. 그래. 이날이 마지막 교직기념일이야. 새로운 날 9월 1일을 기다리는 밤 8월 31일 밤, 내일은 새 희망이 샘솟는 밝은 날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붙이며 고요를 찾았다. 정년 이후지만 학과 형편(?)으로 수업을 해야 할 판. 뒷모습이 부끄럽지만 너무 사양해도 안 될 것 같아서 수락했다. 머지않아 나만의 시간이 이루어지도록 할 예정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찾느라 비망록을 들추어 보니 나의 정년퇴임과 맞물려 안겨준 행복소재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행복한 퇴임 후에 다가오는 새로운 인생이란 그리 큰 사건이 아니다. 그간 꽉 찬 일상에서 빨리 벗어나는 일, 차분하게 진행하지 못했던 자잘한 일들에 무게 중심을 두는 일,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하루라도 빨리 찾는 일, 부모님에게 보답하는 숭상 사업에 나서는 일,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맘 쓰는 일, 동료 후배들에게 추하지 않게 보이는 일, 친구를 섬기고 동정하는 일, 남에게 대접받기를 즐겼던 오만한 심사에서 물러서는 일, 아내와 나의 즐거운 일상을 만들어 가는 일 등이 새로운 인생으로 출발하는 나의 첫걸음, 첫 각오가 되는 일이다. 그리하여 오늘, 9월 1일에 새로운 의미를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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