咄咄逼人
중국 동진(東晋)시대 학자 고개지(顧愷之·348~409)가 어느 날 벗 은중감(殷仲堪)의 집을 찾았다. 마침 항현(恒玄)이라는 사람이 머물고 있었다. 셋은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글자 놀이를 했다. 한 단어를 뽑아들면 그에 걸맞은 해석을 하는 게임이다.
위태롭다는 뜻의 ‘위(危)’가 뽑혔다. 각자 한마디씩 한다. ‘방패 머리로 쌀을 일고 칼 끝으로 밥을 짓는 것(矛頭淅米劍頭炊·전쟁을 일삼는다는 뜻)’ ‘백 세 노인이 썩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형국(百歲老翁攀枯枝)’ ‘우물의 도르레에 어린아이가 누워 있는 꼴(井上轆轤臥嬰兒)’ 등 모두 위험천만한 상황을 얘기했다.
그때 은중감의 부하가 기세등등하게 달려와 사람을 밀치며(咄咄逼人) 말하길, “장님이 눈 먼 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우물에 다다른 상황(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세 명의 선비들은 박수를 치며 ‘그것이 적격이로세’라고 화답했다. 고개지의 일화집에 전하는 말이다.
‘기세등등하게 힘으로 몰아친다’는 뜻을 가진 돌돌핍인(咄咄逼人)의 출처다. ‘돌(咄)’은 원래 ‘남을 윽박지르는 소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였다. 일종의 의성어였던 셈이다. 중국에서 ‘돌돌(咄咄)’은 지금도 ‘남을 꾸짖다’ 라는 의미로 쓰인다. ‘기세흉흉(氣勢洶洶)’이 돌돌핍인과 같은 말이다. 기세의 강성함을 물결이 솟구치는 것(洶洶)에 비유했다.
‘돌돌핍인’이 꼭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중국 언론은 ‘일본 전자제품이 돌돌핍인의 기세로 중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한여름 더위가 돌돌핍인의 기세로 베이징을 엄습하고 있다’는 등 사물이나 자연현상에도 이 말을 쓴다.
이 단어가 국내 언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최근 벌어진 댜오위다오(釣魚島) 충돌 사건 이후다. 중국이 대외적으로 ‘힘의 외교’를 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면서 이를 형용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실력을 감추고 힘을 기름) 전략에서 벗어나 힘으로 상대국을 몰아붙이는 돌돌핍인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이 그동안 어둠 속에서 벼른 칼을 국제무대로 들고 나와 휘두른다면, 그 또한 ‘위(危)’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