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할 수 있는데2001년 10월21일 성경 : 왕하20:1-7, 눅11:5-10 제목 : 기도 할 수 있는데 1998년도에 한국 갤럽이 기독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여러 항목 중에 "하루에 기도를 얼마나 하느냐" 라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응답은, 먼저 남성을 보면 43.1%가 기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17.3%가 10분 이하, 그리고 27.3%가 10분에서 30분까지 한다고 답했고, 1시간 이상 하는 사람은 전체의 4.5%였습니다. 여자성도는 어떠냐 하면 27.7%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10분 이하가 23.2%, 10분에서 30분 정도하는 사람이 32%, 30분 이상이 9.9%, 한 시간 이상 하는 사람은 7.2 % 라고 답했습니다. 여자 성도가 조금 더 기도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는데 전체적인 추이를 보면, 전체의 절반 이상이 기도를 전혀 하지 않고, 기도를 하는 사람도 그다지 오랫동안 기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 통계를 들으시면서 내가 어디쯤에 속하나 생각하셨을텐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치고 기도에 부담을 갖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이나 저나 왜 기도생활다운 기도생활을 못할까요? 거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중요한 원인은 우리들의 조급함 때문일지 모릅니다. 현대의 문화가 자꾸만 우리를 급하게 하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컴퓨터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직접 다루든 안 다루든 우리는 생활 전반에서 컴퓨터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은행이나 철도나 관공서에서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전쟁같은 난리를 치루게 될 겁니다. 늘 인터넷을 하다가 하루 이틀만 못하게 되면 굉장히 답답하지요? 그 컴퓨터 세대의 특징이 뭐냐? 한 마디로, 클릭하면 바로 떠야 되는 겁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거기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잘 기다리질 못합니다. 오죽하면 컴퓨터 주기도문이 나왔을까요? 여러분 들어보셨어요? 소개해 드리죠. "하드디스크에 계신 우리 프로그램이시여. 패스워드를 거룩하게 하옵시고 운영체계에 임하옵시며 명령이 키보드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모니터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데이터를 주옵시고 우리가 프로그램의 오류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오타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바이러스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다만 불시의 정전에서 구하옵소서. 엔터. 이런 시대적 경향에다가 그 흐름이, 은연 중 기도에 대한 오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치 컴퓨터의 클릭처럼, 기도란 것도 내가 딱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응답이 와야 하는데 기도해 보아도 응답이 없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걸까? 기도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이런, 기도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급해지는, 컴퓨터 클릭시대의 영향이 우리 기도생활에 적잖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컴퓨터와는 다릅니다. 컴퓨터에서는 정보만 얻으면 됩니다. 그러나 기도는 인격의 대화입니다. 기도하는 자신과 그 기도하는 대상이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도 가운데 즉각, 응답하는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화는 기다림의 과정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깊어지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계속 얘기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통해서 나와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더해지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기도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아마도 여러분 중에 기도를 많이 하시지 못하는 분들은 상당한 부담감과 어쩌면 죄책감을 가지고 이 시간을 대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먼저 여러분께 권합니다. 그런 마음 갖지 마시고 오늘부터라도 새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마귀들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는 최고의 작전이 뭐냐하면 바로 이 부담감과 죄책감을 주는 겁니다. "나같이 기도도 못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게 무슨 신자야? 평소에는 몰라라 하면서 어려울 때만 기도하는 게 얼마나 치사한 짓이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 생각이 바로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우리 주님은 기도 안 한 것 때문에 우리를 버리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1:18) 그래서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의 부담감과 죄책감을 자극하는 마귀의 작전에 말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어느 때 기도를 시작하더라도 그건 늦은 게 아닙니다. 그러면, 기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정말 들어주시나요? 먼저 오늘 말씀의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반드시, 꼭 들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유명한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치적을 기록해 놓은 열왕기 상하를 읽어보면 정말 괜찮았던 왕은 손가락을 꼽기도 어렵습니다. 하나같이 하나님과 백성들을 우습게 알고 악행을 저지른 왕들의 이야기로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히스기야 왕은 그 많은 악한 왕들 중에서 보석같이 빛나는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히스기야 왕에게 큰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죽게 될 테니까 일찌감치 집 정리를 하고 죽을 준비를 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사람은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 계획에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겐들 안 그렇겠습니까만은 히스기야왕에겐 이 소식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치고 좀 안정이 되어갈 때였는데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고보니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히스기야왕은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자기의 생명도 생명이지만,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보니,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이대로 죽자니 너무나 애닯았습니다. 그래서 벽을 향해 돌아서서 통곡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구하기를, 자기가 과거에 하나님 앞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을 보시고 살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히스기야가 기도하는 것은 하찮은 자기 생명 하나 때문에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강국인 앗수르가 유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죽게 되면 여러 가지 정황을 봐서 분명히 나라는 멸망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되니까 그걸 어떻게 해서든 면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가운데 히스기야 같이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미 경험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아직 그런 일이 없으셨다면 앞으로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술문명의 효율에 젖어있는 우리들에게 기도는 어쩌면 대단히 느리고 비효율적인 방법일지 모릅니다. 기도하는 대신 다른 대안을 찾는 게 더 빠를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도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 세계에 이미 다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찾으면 찾아집니다. 빨리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경우가 옵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오직 기도 밖에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고난을 주시기도 하신다는 겁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주시고 병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한신대 신학과 교수님 중에 오영석 교수님이 있습니다. 원래 그 분이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는데 너무 가난해서 다른 친구들은 다 중학교에 가는데 자기는 중학교도 못가고 날마다 풀이나 베러 다니고 지게 지고 나무나 하러 다녔습니다. 하루는 자기 신세가 하도 처량해서 나무하러 갔다 오면서 이런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도 중학교에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때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를 올려라." 이 분이 이런 감동을 받고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써서 봉투에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 라고 쓰고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우체부가 우편물 분리를 하는데 주소도 없이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라고 써 있는 편지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망설이다가 '그래 하나님 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목사밖에 없으니까 목사한테 갖다 주자' 해서 그때 당시에 해남읍 교회에 계시던 이준묵 목사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그 목사님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서 그 소년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불러다가 그 목사님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같이 지내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를 시켰습니다. 한신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해서 한신대학을 졸업하고 나중에는 유학을 가려고 유학 준비를 하는데 나라에서 어떻게 조치를 취했는지 여권이 안나오는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이 분이 유신 정권 때 유신 반대 데모를 하다가 요주의 인물로 찍혔거든요. 아무리 여권 신청을 해도 여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신시대 때 가장 데모를 많이 했던 학교가 고대와 한국신학대학이었습니다. 그래서 갈 길이 막막해서 유학가는 것을 잠시 접어두고 경기도 어느 시골에 있는 교회에 가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교회 근처에 있는 골프장에 경찰 제2국장이 골프를 치러 왔습니다. 그래서 경찰 국장과 친분이 있는 그 교회 장로님이 경찰 국장에게 "우리 전도사가 외국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여권이 안나와서 유학을 못가고 있으니 여권 좀 나오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경찰 국장이 장로님의 부탁을 받고 여권을 받게 해주려고 알아봤더니 요주의 인물로 붉은 줄이 쳐 있더랍니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장로님에게 전화를 해서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아예 갈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전했습니다. 실망한 이분이 어느 날 수유리 언덕을 넘어오는데 동쪽에서 빛이 비취는데 너무 찬란하게 비쳐서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성령의 감동이 오더랍니다.그래서 눈밭에 엎드리고는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내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이 밝은 햇살같이 내 앞길도 밝아지게 하옵소서." 하고 눈물 뿌려 기도했답니다. 그날 밤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지프차를 타고 와서는 문을 열고 "영석군 나와" 하더니 지프차를 타고 중앙정보부로 데리고 들어가더랍니다. 들어가면서 철커덩 하고 문이 닫히는데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진짜로 중앙정보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영석씨입니까?" "예, 그런데요?" "빨리 와서 여권받아 가시오."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그분이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교수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그 분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요주의 인물에서 해제되고 여권이 나왔는지 모른답니다. 이 얘기는 한신대 교수님들이 신입생 채플시간에 꼭 들려주시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때, 사방팔방이 다 막혀 있을 때, 방법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제가 군복무할 때, 한 번 사단장 표창을 받으러 사단 본부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들어가기 전에 우리 사수가 얼마나 치장을 시키는지요, 군화를 며칠을 광내고, 손이 베이도록 군복 - 물론 방위복이죠. 그 옷에 다림질을 해서 줄을 세우고, 모자하고 계급장도 다 새 걸로 달으라고 하고... 하여튼 며칠 동안 시집살이 하느라고 혼났습니다. 그래서 그때 생각에 "이거 사단장 한 번 보는 것도 이렇게 치장을 시키는데 참모총장이나 대통령을 본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 해야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러 갈 때 우리 하나님 앞에는 아무 치장이 필요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나가시면 됩니다. 죄가 있으면 죄가 있는대로, 괴로와 죽겠으면 죽겠는대로, 그대로 나가시면 됩니다. 오늘 히스기야의 모습을 보십시오. 왕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 그대롭니다. 체면도 차리지 않고 벽을 향해서 무릎을 끓고 통곡합니다. 왕의 체통을 지키면서 점쟎게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린애처럼 떼쓰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이 설득 당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변경시킵니다. 히스기야를 그만 살게 하려고 했는데, 그 계획을 바꾸시고 십오년을 더 살게 해 주시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말씀을 드릴 때 우리 하나님은 부성과 모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부성과 모성 둘 다 합한 속성의 가장 큰 특징이 뭐냐하면, 눈물에 약하다는 겁니다. 그 통곡 앞에서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손드셨습니다. 간절한 소원에는 약하시다는 겁니다. 결국 들어주고 마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대하는 엄마나 아빠와 똑같습니다. 누가 우리들 아이 중에서 "존경하는 부모님! 기체후 일향만강하옵신지요? 바라옵건데 소녀의 필통을 하나 사주시면 망극하겠나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아이가 있습니까? 만약 이렇게 얘기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 놈이 돈거 아냐? 너 정신분석 좀 해보자" 그럴겁니다. 다급할 때는 아무런 수사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자식도 여럿 두다보면 그 중에 더 예쁘고 덜 예쁜 자식이 있나봐요. 저희 어머니는 8남매를 두셨는데 어머니가 좀 거치세요. 그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이눔들아 너희 중에 누구 하나 죽어 봐라 내가 눈 하나 깜짝하나" 그러시면서도 그 중에 더 이뻐하는 형님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보면 평소에 그 형님이 어머니한테 잘 하세요. 잘 하니까 맘이 더 가시는 모양이예요. 아무래도 당신한테 잘 하는 자식이 더 예쁠 겁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인격체십니다.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평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는 더 잘 들어주십니다. 아마도 히스기야왕이 다른 왕들처럼 바알을 섬기고 타락해서 하나님 떠난 삶을 살았다면, 아무리 통곡을 하고 야단법석을 떨어도 하나님의 마음은 요동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왕은 다른 왕들과 달랐습니다. 분열왕국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의 암흑기였습니다. 일어나는 왕들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온나라에 우상을 들여와서 백성들을 타락시키는 일들을 왕들이 도맡아 했어요. 그런데 히스기야왕은, 왕이 되는 즉시로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나라안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철폐했습니다. 여러 산당들을 때려부수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고, 놋뱀을 다 부숴 버렸습니다. 그리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통치했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위기 때에, 바로 이것을 자신의 히든카드로 사용했던 것이었습니다. . 기억하십시다. 우리 신앙의 삶이 바르지 못하다면 그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하나님앞에 바르고 정직히 행하고, 신앙의 바른 모습을 보여야 하나님은 그 눈물을 통해서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평소의 신앙입니다. 평소실력이 진짜 실력인 것처럼, 평소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내 놓을 수 있는 히든카드인 겁니다.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소에 믿음생활을 잘 안하게 되니까 기도하지 않게 되고, 기도하지 않으니까 믿음생활도 잘 안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위기가 올 때도 감히 기도할 엄두를 못내게 되는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사는 겁니다. 그때야 여러분의 기도는 힘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해하지 마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럼 평소에 제대로 살지 못하면 우리의 기도를 안들어 주시냐? 그건 또 아닙니다. 또 자식과 부모 사이를 생각하면 됩니다. 부모는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줍니다. 하나님께서도 모처럼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는 잘 들어 주십니다. 또 부모는 어린 자식의 부탁은 차마 거절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믿음이 연약한 사람의 기도는 또 거절 못하십니다. 교회 다닌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기도는 꼭 들어 주십니다. 또 부모는 장남들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 줍니다. 집의 대들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믿음생활 오래 한 사람들, 이런 분들의 기도는 거절 못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부모는 이래저래 거절 못하고 자녀들의 부탁을 다 들어 줍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 자녀들의 기도를 결국은 다 들어 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 일과 방법을 예수님께서 직접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집에 친구가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식사 때가 훨씬 지나서 왔습니다. 보니까 밥도 못 먹은 거 같습니다. 대접을 해야 할 텐데 대접할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간을 보니 자정이 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할 수 없이 친구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친구가 자다가 목소리를 들어보니 누구라고 하지 않아도 알만한 친굽니다. 친구 좋아해도 그런 시간에 찾아오면 누가 반기겠습니까? 하지만 반갑지는 않아도 소리치는 것을 듣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여보게, 갑자기 친구가 지금 찾아왔는데 구워 놓은 빵 있으면 세 덩이만 빌려주게!'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칩니다. 계속 소리치니까 대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자는 척하고 누워만 있을 수가 없어요. "귀찮게 하지 말게, 문은 이미 닫아걸었고 아이들은 나와 함께 이불 펴고 누웠으니 일어나 도와줄 수가 없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2000년 전 형편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때 주거 환경은 요즘과 달랐습니다. 조그만 방 하나에 온 식구들이 다 누워 잠을 자던 시절입니다. 한 50 년, 100년만 해도 방들이 아주 작았습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공통입니다. 그러니까 자다가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면 누울 자리가 없어져 버립니다. 형편이나 기분을 가지고 말하면 친구고 뭐고 청을 들을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뒀다가는 온 식구 잠을 다 깨우고 말 것입니다. 그 날밤 잠 농사는 다 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빨리 요청을 들어주고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 예화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결론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세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보십시오. 체면이고 예의고 집어 던져 놓고 바깥에서 소리치는데 어쩌라는 겁니까? 옛날 사회는 그랬습니다. 찾아오는 손님을 홀대하면 그것은 사람 축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 전체가 망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중대사입니다. 그래서 계속 두들깁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매달립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여서가 아니라 그 강청하는 것에 못 이겨서 결국 일어나 빵을 주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강청(强請)함! 달라고 떼쓰는 겁니다. 이것은 부끄럼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믿음 생활이 뭡니까? 부끄러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배드리러 나왔지만 흐뭇한 분이 얼마나 되십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요, 그것을 마귀는 이용합니다. "니가 지금 무슨 기도야? 너나 정신차려!" 그런 마음을 줍니다. 부끄러움은 우리의 가장 큰 적입니다. 부끄러움을 이겨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끄러움은 우리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그러나 기도는 부끄러움 없이 하는 것입니다. 자격은 없습니다. 옆집 두드리는 것처럼 미안하지요, "이런 모습을 가지고 왔는데 기도해도 됩니까?"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강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의 의미고 방법입니다. 저는 오늘 서두에서 우리가 기도하면 어떻게 되느냐?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입니다. 주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죠? "너희들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응답받아야 될 기도는 두 가지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와 평소의 문제가 있을때입니다. 히스기야처럼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눈물의 기도, 통곡의 기도, 간절한 기도를 해야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 죽음의 장막을 거둬 주십니다. 또한 산 넘어 산이라고, 문제 뒤에 또 다시 오는 문제들을 계속 응답받기 위해서는 평소에 기도해야 합니다. 안 들어 주시면 들어주실 때까지 끝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절대로 팽개쳐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 중의 하나가 로마서 8:26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없을 때 성령께서 친히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별 일없이 잘 되나가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은 직접 하는 게 가장 호소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말씀드릴 때 가장 효과가 큰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여러분과 직접 대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까지 남겨두실 지도 모릅니다. 성령님이 아무리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하신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성령님은 우리가 꼭 해야 될 기도는 생략하실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건 우리 몫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것을 이미 다 주셨습니다. 얻지 못한 것은 여러분이 아직도 찾지 않고, 구하지 않고 두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고 실망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일년 이년만 붙잡고 늘어지면 안 들어 주시는 일이 없는데 왜 기도 안하십니까? 결국은 기도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제가 우리 인터넷 카페 오늘의 묵상 란에 혜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처음 왔을 때, 한참 스쿠터가 유행했습니다. 그걸 본 우리 혜수가 그게 무척 타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걸 사달라고 조르길래 알아봤더니 1000실링 쯤 되야 쓸만한 걸 살 수 있었습니다. 그때 형편으로는 사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혜수한테 제가 말하길 "알았어 돈 생기면 사줄께"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애매하게 얘기한 건 사실은 안 사줄려고 그랬던 겁니다. 사 달라고 하면 "돈이 아직 안 생겼어!" 그렇게 대답하면 간단하니까요. 그런데 얘가 잊어버릴 만 하면 또 말을 합니다. "아빠 돈 생기면 사 주는거야" 시간이 지나가면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애의 믿음은 약해지기는 커녕 점점 더 강해지더라구요.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니까 혜수의 믿음이 저에겐 굉장한 부담으로 오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약속을 한지 6개월 만에 뜻밖의 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떼고, 제일 먼저 혜수의 스쿠터를 사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혜수의 끈질긴 요구와 아빠가 분명히 사주신다는 그 믿음이 제가 스쿠터를 사 준 요인이더라구요.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기도하는 걸 거절하실 만큼 강심장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우리 욕심따라 구하는 게 아닌, 마땅히 구할 걸 구하는 기도에는 하나님은 꼼짝 못하고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하나님, 그분이 우리보다 우리에게 더 주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핸디를 갖고 계시죠? 핸디는 어디서나 직통연결이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연결된 Heaven Phone 입니다. 하늘과 직통으로 연결됩니다. 수화기를 들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는 게 기도입니다. 여러분! 이 Heaven Phone을 드시고 하나님과 자주 통화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여러분이 구하지 않은 것까지 받은 사실을 아시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끊임없이 줄기차게 대화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데도 걱정하고 근심하며 살았습니다. 기도는 우리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인데 우리는 그것을 팽개쳐 버리고 있었습니다. 이시간 우리로 다시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즐거울 때나 기쁠 때나 언제든 주님과 기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연결된 이 끈을 절대로 놓치지 않게 하시고 이제는 기도하기를 즐거워하는 저희들로 훈련시켜 주옵소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그 모든 보화를 캐내어 가질 수 있는 저희들 다 되도록 우리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