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서 나의 하루를 반성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씻고, 물 한 잔 마시는데 - 10분. 제일 싫어하는 과목 공부하고 - 1시간. 먹고 - 10분.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고, 걸어가면서 아침에 공부한 내용 생각하고 - 5분.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국어 교과서 외우고 - 30분.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아침에 공부한 내용 다시 보고 -20분
아침조회 시간에 영어 단어 외우고 - 30분. 1교시, 수업 내용 스스로 외워가면서 공부하고,
이 때, 수업내용 중 모르는 내용있으면 선생님 설명 듣고 이해하며 - 50분.
학교 수업을 다른 시간에 공부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해서,
예습도, 복습도 한 번도 하지 않는 대신에 그 수업시간 동안 있는 힘을 다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단어면, 단어, 공식이면 공식, 생물이면 생물, 쉬는 시간마다 수업시간에 공부한 내용 복습 - 10분,
2교시, 3,4교시를 1교시처럼.
점심시간, 점심 빨리먹고 - 10분. 남은 점심시간 1,2, 3, 4교시 복습 -40분, 5,6,7,8교시, 1교시와 마찬가지로.
수업 끝난 뒤, 실컷, 집중적으로 놀고, 저녁식사 - 60분, 씻는 시간 - 10분.
다시 책상에 앉아서 5,6,7,8교시 복습-1시간. 계획했던 공부 - 4시간.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오늘 외운 공식 다시 상기하고 - 30분. 집에 책상에 앉아서 하고 싶은 공부 - 2시간.
이렇게 매일 18시간 이상을 공부에 매진했다.
잠자리에 들면서 나는 그 날 내가 한 것을 반성했지만, 내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은
'시험 점수가 얼마나 오를 것이냐'는 아니었다.
'오늘, 나는나의 청춘을 제대로 살았는가?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중에, 그냥 무의미하게, 무의식의 상태로 쓰레기처럼 버려진 시간은 몇 분이나 되는가?
오늘의 모든 시간이 정녕 나의 의식과 함께 했는가? 모든 시간의 주인이 진정 <나>였는가?'
나는 나 '한석원'으로 오늘을 살았는가라는 질문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다.
매일 냉정하게 반성을 해도 버려진 나의 시간은 언제나 한 시간 이내였다.
나의 고3 시절은 인생에 있어 그 어떤 시절보다 내 자신에게 충실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시절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전 세계의 수험생 중에서 누구도 그 때의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 수 는 없다!
더 하는 인간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자부심이지만, 이것은 지금도 나에게 큰 힘이 되는 자기 확신 같은 것으로 남아 있다.
나는 모범생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3이 되었을 때, 다른 수험생처럼 큰 숙제를 떠안은 듯 걱정이 많았다.
그때까지 하고 싶은 것만 열심히 했던 나쁜 습관 때문에 수학과 물리를 제외하면
제대로 공부해 본 과목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대학은 한 과목만 보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피할 데가 없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수학과 물리를 제외한 전과목을 정면 돌파하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할줄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어차피 실제 시험에서도 좋은 문제만 출제되지는않으니까.
좋은책 골라 공부하겠다고 생각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여겼다.
나는 무조건 책을 한 권 골라잡았다. 그렇게 한 권을 붙잡으면 싸우고 또 싸웠다.
그책에서 모르는 내용이 단 한줄도 남아 있지않을 때까지 복습에 또 복습을 했다.
그렇게 전 과목을 한 권씩 독파하고 나니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남들은 이미 몇 권씩 문제집을 푼 상태였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개념조차 없으니 풀 수 없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5개월이 지난 뒤에야, 이제 완벽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전 과목 참고서를 또 한 권씩 샀다.
이때는 처음 봤던 책을 옆에 놓고, 그 때 공부할 때 메모해 두었던 요점을 읽어 보며 문제를 풀었다.
두 번째 책을 보는 방법도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전 과목에 걸쳐 단한줄도 모르는 부분이 없어질 때까지 독파.이번에는 두 달이 걸렸다.
세번째 책을 사서 맨 처음봤던 책을 옆에 놓고 메모를 보면서 전 과목을 보는 데 한 달.
네 번째 책을 사서 다 보는데 2주, 다섯 번째 책 사서 다 보는데 1주...여번째 책 사서 다 보는데 4일.
이렇게 하고 나자 이제는 서점에 가 봐도 더 이상 볼 책이 없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에서 모르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시간은 한 달이나 남아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대해 쓰려 했는데 몇 줄에 끝이 나 버렸다.
너무 단순한 방법이라서 수험생들이 쉽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몇 줄의 방법대로 공부하느라 나는 손가락 근육에는 문제가 생겼다.
학원에서 나를 본 학생들은 알겠지만, 나는 연필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연필을 잡는 것 처럼잡으면 힘의 균형이 무너져 버려, 글씨를 제대로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제가 연필로 문제를 푸는 걸 처음보는 학생은 매우 당황해 한다.
이상하게 손가락을 꼬아 가며 연필을 잡는 모습이 낯설다고 여기는 것 같다.
보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일이지만 내게는 내 인생의 치열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자랑스러운 불편'이다.
나는 이만큼 치열하게 공부하면 뇌의 구조가 바뀐다고 확신한다.
아무리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만큼 노력한 사람이라면 생각의 질서가 바뀌게 되어 있다.
생각의 질서가 바뀌고 생각의 폭과 깊이가 바뀐 사람은 문제를 읽고 파악하고 해결하는 능력과 속도가 바뀐다.
그래서 성적도 바뀐다.
점수 몇 점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바뀐다.
전교 500명 중에 300등이었던 사람이 전국의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점수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그래서 원하는 대학은 어디든 갈 수 있을 만큼 바뀐다. 필연적으로.
필연의 길을 따라 집요하게, 이것이 바로 승리하는 길이다. 도망가면 승리할 수 없다.
- 깊은생각 한석원선생님의 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