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3) 자아의 파쇄와 생명의 공급/ 우리의 영으로 상대방의 영을 적극적으로 만져야 한다.
<가장하는 것과 인위적인 것을 분별하라>
사람이 변화 또는 개선될 수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다만 그의 사상과 그의 태도를 개선할 수 있을 뿐이지 그 사람의 영은 개선할 수 없다. 사람이 가장하는 것은 영적인 가치가 조금도 없다. 경박하든 노련하든 다 옳지 않다. 어떤 외적인 장식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참으로 당신이 영적인 진보를 원한다면, 반드시 외적인 일체의 인위적인 겸손과 인위적인 조용함과 인위적인 경건들을 허물어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황량한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 가운데에서는 속일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영적인 가장을 원치 않는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일단 입을 열면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다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환경 가운데서 성령의 다루심으로 우리를 파쇄하실 때, 또한 우리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시고 우리의 완고한 의지를 파쇄하실 때만이, 우리는 온전케 함을 받을 수 있고, 사람의 영을 만질 수 있으며,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은 그들이 바로 영적인 것 위에 세워지지 않고 행위 위에 세워지는 데 있다. 이러한 외적인 것들은 어느 날 다 허물어질 것이다. 우리의 말이 거짓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행위 또한 거짓될 수 있다. 욥은 행위에서 정직했고 악한 일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의 의(義), 곧 자기 의로 인하여 회개해야 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하거나 조작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속사람(영)과 겉사람(혼)이 분리됨으로서 가능하다. 오직 속사람과 겉사람이 분리될 때만이 비로소 사람을 알 수 있다. 겉사람으로는 결코 사람을 아는 데에 이를 수 없다.
속사람과 겉사람이 분리된 이후에 우리는 사람의 말을 듣고 사람의 영을 만지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또한 사람이 가장한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인위적인 것과 가장된 것이 다 거짓된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곧 사람의 혼의 영역인 정신적 심리적인 지식으로는 사람을 알 수 없다. 오직 영으로만 사람의 참된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다루심의 손길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과 혼을 분리하는가? 우리는 영과 혼을 분리하기 위해 스스로 무엇을 할 필요가 없다. 영과 혼을 분리하는 일은 바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우리 스스로 영과 혼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 가운데서 우리 겉사람(혼)이 깨뜨려져서 우리의 영과 혼이 분리될 수 있도록 성령의 다루심(고난)을 안배하셨다. 이것이 바로 자아(겉사람, 혼)의 파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혹독한 시련을 경험했다. 부모님의 잦은 싸움, 아들과 아내의 아픔, 질병과 가난과 법적인 문제, 그밖에 좋지 않은 일들이 폭포수처럼 내게 임했는데, 이 고난들은 모두 나의 겉사람을 파쇄하기 위한 성령의 다루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만일 나에게 이 고난에 대한 수용과 인내와 겸손과 배움이 없었다면, 성령은 나의 몸에서 역사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성령은 날마다 기회를 잡아 우리를 파쇄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영적인 길이요 여정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기까지는 그것은 바로 죽음이요 고통이요 비난과 반항의 연속일 뿐이다. 신약에서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말씀 중의 하나는 바로 “하늘이 열리고”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영적인 원칙을 우리에게 열어주셨다.
오늘날은 결코 가려진 시대가 아니다. 오늘날은 열린 시대이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이 일하시는 영적인 원칙을 보았다면, 이 영적인 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다루심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불쌍하게 여기심의 구약적 표현)을 앙망해야 한다. 우리 온 존재가 하나님 앞에 깨뜨려져야 한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자신을 의지한다면, 좌로나 우로나 다 어려우며 그것이 무겁든지 가볍든지 다 옳지 않다. 영적인 길에서는 달음박질하는 자에게 유리한 것도 아니고, 원하는 자의 열심만도 아니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달려 있다. 사람의 지혜는 소용이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면 모든 것은 다 성취된다.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아주 정교하게 조화되어야 하지만, 우리 자신이 그것을 조화시킬 수는 없다. 주님이 한번 우리에게 타격을 가하시면, 그 느낌은 당신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하거나 혹은 하지 못하게 한다.
모든 것은 다 당신이 결심하지 않고 몸부림치지 않으며, 다만 하나님의 긍휼만을 앙망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맡기는 데 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뜻대로 당신의 몸에 역사하여 당신의 속사람이 겉사람과 분리되게 하실 것이다.
<사람의 영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사람의 영은 언제나 말을 통하여 흘러나온다. 그러므로 당신이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당신은 조용히 듣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 당신은 그가 말하는 것이 죄인지 아니면 거룩한 것인지 혹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혹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주의하지 말고, 그가 말하는 이야기의 세세한 사정을 알려 하지도 말고, 그의 영이 어떠한지를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할 때 사정은 옳을 수 있으나 영은 틀릴 수가 있다. 우리 믿는 이들이 사람을 섬기는 것은 일의 시비에 있지 않고, 누가 옳고 누가 그름에 있지도 않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섬길 때, 우리는 먼저 그 사람의 영이 옳은가 옳지 않는가를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의 한 일은 옳으나 영은 옳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사람의 영이 옳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틀린 것이다. 우리 믿는 이들은 형제들의 영을 도와주는 것이지, 형제들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영의 시비를 가리는 것이지 일의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언제나 영의 어떠함을 먼저 말씀하시고, 그런 다음에 일의 어떠함을 말씀하신다.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야고보와 요한이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즉시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4)”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말하자 즉시 그들의 영이 나왔다.
그들이 이렇게 행한 것은 바로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어떤 영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영은 틀린 것이다. 주님이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은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외적인 옳고 그름에 주의하지 않고, 사람의 영의 어떠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말이 한번 나오면 그의 영이 나온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해 낸다. 영이 틀리면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옳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일에서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즉시 회개해야 할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만일 회개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우리의 영의 어떠함을 보고 아신다. 영이 틀리면 모든 것이 다 틀린 것이다. 어떤 문제가 생긴 형제자매가 우리 앞에 올 때, 우리는 그들의 영이 옳은지를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다 뒤로 하고 조용히 들으며 그의 영이 나올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리의 영으로 상대방의 영을 적극적으로 만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영으로 상대방의 영을 적극적으로 만져야 한다. 사람들은 일을 대할 때, 언제나 옳고 그름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반드시 사람의 영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영을 따라야지 일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사람의 “영”에 대하여 조금은 이해하겠는가?
우리는 반드시 사람의 말을 자세히 들어야만 사람의 영을 만질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듣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는 사람의 영을 만지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사람의 말을 들음으로 그의 영을 만져야 한다. 예를 들면, 권투선수는 늘 상대방의 주먹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살핀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역시 이렇게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사람의 영을 만져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영이 어떠한지를 측량할 수 있어야 한다. 오직 사람의 영을 잘 측량할 수 있는 사람만이 주님의 좋은 종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영을 만지려면 반드시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조용히 말을 들으면서 상대방의 영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의 의도가 어떠하든, 수단이 어떠하든, 결국 그의 입으로 말해 내는 것은 바로 그의 마음에 가득한 것이다. 사람의 영이 어떠하면 그의 말도 반드시 그의 영을 노출시킨다. 그가 만일 교만한 사람이라면 교만한 영이 나올 것이다.
그가 만일 가식적인 사람이라면 가식된 영이 나올 것이다. 당신은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의 영을 만질 수 있다. 사람들은 늘 일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영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를 주의한다. 그러므로 한 면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의 영을 처리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또 한 면으로는 조용히 사람의 말을 듣기를 배워야만 한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것을 관심하고 배우지 않으면 영적인 사람은 물론 사역자가 될 수 없다. 오늘날 교회는 이것을 모르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사람의 영을 알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론과 이유와 시비를 말하지 말고, 사람의 영을 알고 사람의 영을 만지며 사람의 영을 배양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계속).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와우!!!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영으로 듣고 영을 느껴야함을♡♡♡
울 태열목사님이 바로 그리하심을 이제사 확실히 깨닫게 되네요!!!
감사감동기쁨충만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