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이나 회식 자리에서 자주 듣는 말 중에 "십팔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번"도 아니고 하필이면 왜 십팔번인지 여러분도 의심스러운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일본의 대중 연극인 가부키에서 유래한 말이랍니다.
여러 장(場)으로 구성되어 있는 가부키에서는 장(場)이 바뀔 때마다 막간극을 공연했다고 합니다.
17세기 무렵 "이치가와 단주로"라는 가부키 배우가 막간극 중에 크게 성공한 18가지 기예(技藝)를 정리했는데, 18가지 기예 중에 18번째 기예가 가장 재미있다고 하여 "십팔번"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유래를 지닌 "십팔번"이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가부키의 "가"자도 모르는 언중에 의해 주로 "애창곡"의 뜻으로 쓰이고 있으니, 전후 사정을 알고 보면 참 씁쓸합니다.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집>(1995)에서는 이 말 대신 "단골 노래"란 말을 쓰도록 권하고 있는데, 이 말이 주로 노래 부를 때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창곡"이라는 말로 쓰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남들이 다 쓰니까 덮어놓고 나도 쓰는 일,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싶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유래한 말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고 대체로 강제로 사용하게 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끈질기게도 우기는 나라, 식민지 처녀들을 납치해다가 부대로 편성하여 다른 나라 침략 전쟁 때 끌고 다니면서 유린한 나라, 한 여자가 하루에 이백명을 상대하도록 한 나라,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자 모조리 죽이는 것도 모자라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버린 나라,
몇몇 천운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돈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 짓이면서 이제 와서 뭘 그러느냐고 우기는 나라, 한국 침략은 한국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다고, 각료들마다 심심찮게 한 마디씩 하는 나라,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세계 일등국민임을 자처하는 나라...
그 일본이 일년에 몇 센티씩 가라앉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요, 그 침강이 왜 좀더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지 그것이 못마땅합니다. 일본인들 반성할 때까지만 좀 더 빠르게 진행되었으면 싶습니다. 제가 좀 철이 없나요.....?
이런 점을 생각할 때 민족 정서상 꺼림칙하지 않을 수 없는 "십팔번"이라는 말, 이제 제발 그만 썼으면 싶습니다.
전국이 봄비에 촉촉이 젖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덩달아 젖고 싶은 그런 날.....
오늘도 우울한 이야기, 죄송하고요, 저야 그러거나 말거나 즐겁게 보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