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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근원
서예에서 찾을 수 있는 입체감 - 중봉
우선 영화를 보세요
위 사이틀를 검색하면 영화 영웅의 마지막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calligrapy and swordplay share the same source and principle.
서예와 검술은 같은 근원과 원리, 원칙을 나눠가지고 있다.
양조위 대사
正道와 뿌리가 같은 붓과 칼의 도리를 깨우쳐가면서
이 영화를 보면 안 보였던 부분들을 다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ntuitively grasped
직관적으로 움켜잡듯이 통제해야한다.
양조위 대사
서법과 검법은 근원이 같습니다.
둘 다 직관으로 잡은 후 스스로 수 없는 반복의 학습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고행의 과정을 통해서 단순화시켜 자신만의 표현으로
만들어져야만 진정한 법이 탄생합니다.
이 고행의 과정은 단순한 육체적 실기수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적 수련이다.
정신적 수련에서 의경意境이 중요합니다.
의경이란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표현된 경지,경계를 뜻하는 말로
정취,정서, 분위기, 무드를 의미합니다.
이런 의경중 제일 최고로 꼽는 정취는 바로 逸韻입니다.
逸은 작품의 최고의 경지인 일품,
韻은 사혁의 6법중 최고로 꼽는 기운생동 입니다.
people from ZHAO are particularly strong in spirit.
정신적으로 각별히 강했다.
이연걸의 대사
진이 조나라를 정벌하러 갔을 때의 일을 회상하며 진시황에게 한 말이다.
수십만대군이 화살을 쏘는 마지막 순간
서예스승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예수련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이 모습에 모든 학생들도 제 자리로 돌아와 선생님을 따른다.
진시황은 묻는다. 정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는가?
이 장면에서 진정한 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this calligrapy contains the mystery of swordplay
이 서예작품에 검술이 비밀이 있다
수만대군의 화살에 맞서
이연걸은 밖에서 칼로 화살을 부러뜨리며 맞섰고,
양조위는 실내에서 붓으로 화살을 피하면서
붉은 먹으로 전서(소전)체인 검劍 을 썼습니다.
그 후 이연걸과 양조위의 대화입니다.
멋진 칼솜씨요. (양조위)
훌륭한 서예작품이군요. (이연걸)
어찌 내가 칼 뽑는 것도 보지 않고 그런 말을 하시오.
그대의 칼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요.
마치 이연걸을 칭찬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반어법입니다.
그대가 칼로 화살을 부러뜨리는 동안
나는 화살을 피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진시황 왕좌 뒤에 걸려집니다.
붓이 강한가 칼이 강한가?
the brush and the sword are fundamentally connected
붓과 칼은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
He lost to you deliberately.
그가 고의로 져준 것이다.
양조위는 진시황을 죽일 수 있었으나 계획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장만옥과 사이가 멀어지게 됩니다.
서예의 진리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 죽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양조위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도, 복수도, 암살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근본을 바로 잡고자 했습니다.
"나는 서예를 통해서 깨우쳤다, 그대는 진시황 암살계획을 포기하라"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이연걸에게 권고하는 양조위의 대사
여기에서는 근원, 뿌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개인적 복수심 만을 가진 이연걸에게 조언하는
양조위는 마지막으로 모래 위에 검으로 두 글자를 쓰고 이렇게 말합니다.
"쯔통워신왕니산쓰 字同我心 望汝三四"
"이 두 글자가 내마음을 담고 있으니 제발 신중히 생각해보시게"
그 두 글자는 바로 천하天下 였습니다.
이 천하라는 말은 백성을 뜻합니다.
백성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심은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고 이연걸에게 충고한 것입니다.
근본이란 무엇일까요
맹자집주에 나오는 말을 인용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混原泉混,不舍晝夜,盈科而后進,放乎四海."
근본의 중요함을 되새기며 화선지에 붓으로 새겨본 작품 2006년 청재 민승준 작
내용해설
근원이 깊은 샘물은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다.
웅덩이에 가득찬 후에야 비로서
넘쳐 흘러 큰 바다로 나아간다.
(근원이 없이 서툴게 큰 바다로 나아가지 않는다.)
근본이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근원이 깊은 샘물)에서 취한 것이다.
맹자 제 8 권 離婁章句리루장구下하편에서는
徐子가 孟子에게 질문을 합니다.
徐子曰:“孔子多次贊頌水,說道 ‘水,水!’
對于水,孔子取水的nar一点?”
공자께서 물이여 물이여 하시며 여러번 물을 칭송하셨습니다. 공자는 물에 대해 어떤 점을 취하신 것입니까?
孟子曰:“原泉混混,不舍晝夜。盈科而后進,
放乎四海,有本者如是,是之取爾。
원천은 용솟아나와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다.
웅덩이에 가득찬 후에야 비로서 큰 바다로 나아간다.
근본이라는 것은 이와 같으니 이것을 취한것이다.
주석
朱熹《孟子集注》의 제 8 권 離婁章句리루장구下 하편
原泉원천은 근원이 되는 물이다.
混混혼혼은 용솟아 나오는 모양이다.
舍는 放의 의미이다 그래서 不舍는 놓지 않고 꾸준히 하다.
즉 不舍晝夜불사주야는 쉼 없이 해나가는 것이다.
盈만은 가득차다는 말이다.
科과는 웅덩이이다.
서예의 근본
-중봉이 잘 갖춰진 대전-
중국에 서예를 배우러 와서 근본의 중요함을 깨달았고,
한국서예가들이 어려워 잘 다루지 않는 고대전서를 선택했습니다.
고대중국문자의 근원이라면 아시다시피 갑골문입니다.
하지만, 갑골문은 중봉으로 깊이있는 획의 맛을 중시하는
제 관점에서는 큰 매력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청동기 시대 기물에 주조되어진 글자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자들을 금문, 종정문이라고 합니다.
이들 문자에서 다이나믹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중봉의 깊이있는 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쪼거나 새긴 다음 주물을 부어 주조되어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금문, 종정문 탁본 우리는 서예를 쓴다는 개념만 가지고 있는데
전각을 연구한 후 서예에 임하게 되면
칼로 돌에 새기는 느낌으로 화선지에 붓으로 써야 함을 느끼게 됩니다.
서예이론 중에 추획사錐劃沙라는 말이 있답니다.
송곳으로 모래에 쓴 획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이 주연한 영화 영웅에
양조위가 모래에 글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추획사를 의미하는 장면입니다.
모래위에 써지는 맛으로 화선지에 붓으로 써야합니다.
화전지에 붓으로 쓸때는 부드러워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미끄러지면 쉽게 정도를 거스르게 됩니다.
돌에 새기거나 모래에 쓸 때는 껄끄러워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 원리를 생각하며 화선지에 붓을 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글씨를 씀에 있어서 근본은 바로 중봉입니다.
중봉이란 붓봉우리의 정도, 근원,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양조위가 우려한 것은 바로
새로 잡힌 정도正道가 다시 무너지고
더욱 혼란한 상황에 빠져 백성들만 더 힘들어 지는 것이었을 겁니다.
이처럼 서예작품에서도 정도正道인 중봉中鋒으로 만들어진 획들이
주축이 되지 않게 되면 산만해져 작품성을 잃게됩니다.
양조위가 서예에서 배웠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추획사=정도=중봉
요즘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이 떠들썩합니다.
정치인 자신의 명예나 이익보다 백성의 행복을 먼저 헤아리는
양조위 같은 영웅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는 여기에 미술적 요소인 입체감을 더하고 싶습니다.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입체적 효과를 줍니다.
추획사=정도=중봉=입체감
송곳으로 모래에 글씨를 쓰고 난 후
흔적을 보면 양쪽이 볼록하게 나옴으로 인해 입체감이 드러납니다.
이는 마치 주조되어진 청동기물의 문자에서 보여지는 입체감과 같습니다.
왜냐면 쪼고 새겨서 오목해진 부분에 주물이 들어가
완성된 청동기물의 문자(금문, 종정문)는 양각으로 표현되어지므로
그 중봉의 맛, 입체적인 느낌이 더욱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주조재료와 모형을 포함하는 주형틀
용융금속이 굳으면 모형과 동일한 금속물체가 된다.
이 맛에 매료되어
청동기 기물위에 양각으로 드러나는 문자는
이 중봉(입체감)이 제일 잘 표현된 것이 대전(금문, 종정문)입니다.
전서는 크게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으로 나뉘어집니다.
춘추전국시대까지의 다양했던 전서들을 대전이라 부르고,
진나라가 6국을 통일한 후 이 다양한 대전들을 사용금지시키고
문자를 통일해 이루어진 서체를 소전이라고 합니다.
영화 영웅에 나오는 글씨들이 모두 소전입니다.
저는 상나라 갑골문 이후부터 진나라 통일 이전의
대전大篆인 금문, 종정문과 돌에 새긴 예술인 전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석사연구논문의 주제가 바로
중국 전국시대의 고새와 청동기명문의 예술미 비교연구 였습니다.
이 논문을 통해 실기에서 돌에 새기는 느낌으로 화선지에 글을 쓰고,
화선지에 글을 쓰는 기분을 전각을 할 때 반영해 보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입체감이 담겨지게 되어 보고 또 봐도 새로움을 줄 수 있는
예술미 넘치는 작품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뜻을 함축한 것으로 화선지에 붓으로 새긴 작품이라고 한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워낙 글쓰는 재주가 없어서
이해하실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마음을 비워야하는데 자꾸 욕심만 부리고 있는 청재 올림
제 호가 淸齋 입니다.
맑은 집 인데 여기서 맑다는 의미는
虛心 즉 욕망을 버린 텅빈 마음을 의미합니다.
맑게 개인 하늘처럼 마음을 비운 집을 만들기를 바라면서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거죠
근데 자꾸 욕심만 부리고 있네요.
2007 9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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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원문보기 글쓴이: 뿌다오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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