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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불의와 국가적 위기를 당했을 때, 처신하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불의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나 싸우는 거의론(擧義論)이요,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물러나 은둔하며 도(道)를 지키는 거수론(去守論)이요, 마지막 하나는 목숨을 바쳐 불의에 저항하는 치명론(致命論)이다. 한말 국가 존망의 위기 속에서 거의론은 의병항쟁으로, 거수론은 전통 한학의 전수를 통한 민족교육운동으로, 치명론은 의열투쟁으로 나타났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특히 의열투쟁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침략자와 그 앞잡이를 처단하거나, 침략 행위에 대해 항거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독립운동 방략을 말한다. 국망의 위기 속에 경술국치 직후 일제의 한국 병탄에 반대하여 자결 순국한 홍범식, 황현, 김도현, 이만도, 김석진, 송병순, 그리고 장태수(張泰秀, 1841. 12. 24~1910. 11. 27)선생의 의열투쟁도 그러한 것이었다. 이들은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하였고, 그럼으로써 의열투쟁은 물론 구국운동의 물결은 더욱 고조되어 갔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