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男子(선남자)야
선남자야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약유무량백천만억중생)이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受諸苦惱(수제고뇌)호대
여러 가지 고뇌를 받을 때에
聞是觀世音菩薩(문시관세음보살)하고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一心稱名(일심칭명)하면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이
관세음보살이
卽時(즉시)에 觀其音聲(관기음성)하야
즉시로 그 음성을 듣고
皆得解脫(개득해탈)케하나니라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법우 여러분 감사합니다 無量光明 합장
[부처님 말씀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至誠 寫經합니다]
4. 소망이 큰 것도 집착일까
① 행복을 비는 마음
또 만일 어떤 여인이 아들 낳기를 원하여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경하면
곧 복덕과 지혜가 있는 아들을 낳게 되고,
만일 딸 낳기를 원한다면 곧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딸을 낳게 되리니,
과거 세상에 덕의 근본을 잘 심었으므로
여러 사람의 사랑과 공경을 받으리라.
만일 또 중생이 관세음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면 복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으리니,
무진의야, 그러므로 중생은 모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들어야 하느니라.
당신은 왜 불교를 믿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
"참다운 나를 찾기 위해서" 라는
내용의 대답을 합니다.
"그것 뿐입니까?"
"정말 그것만을 위해서예요?"
이렇게 캐어물으면 다들 씩~웃으며 말합니다.
"아, 뭐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기본이죠."
어떻습니까?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까?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란
바로 행복을 비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을 비는 마음이지요.
그것도 내가 죽고 난 다음 세상의 행복이 아니라
바로 지금 2012년 8월의 행복을 비는 마음이지요.
사람은 행복해지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불행하다는 뜻이고,
불행하다는 것은 괴롭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을 좋아하는 이는
온 우주를 다 뒤져보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괴로움을 피하고
행복(즐거움)을 얻으려는 것은
목숨 있는 자의 본능이라 하겠습니다.
"복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으로,
마음으로 늘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면 복은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중아함 복경』)
행복해지고 싶은 것은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절에 복을 빌러
간다고 말하기가 좀 창피합니다.
불교가 고작 당신 집안이 잘 되기만을
빌어주는 '미신' 인 줄 아느냐며
남들이 손가락질 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옵니다.
우리 동네 상가에서 만난
한 보살님의 말이 자꾸 떠올라서요.
이 분은 신심 하나는 참 대단한 불자입니다.
이전부터 정신세계와 기 수련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고
그에 따른 수행도 열심히 한 데다 불자가 되고 나서는
큰스님 설법하는 날이면 그곳이 어디든지
그리고 관음재일 같은 날에는 아예 가게문을
닫아 걸고 절에 가는 열성신자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108배에는 아주 서툽니다.
몸도 약하니 더 그럴 터이지요.
평소 이 보살님은 "난 절 못하겠더라.
108배도 겨우 하는데
3000배 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이라고 말하거나 심지어는 "습이 배어
있지 않아서 절은 못해" 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보살님의 딸이
올해 수능시험을 보았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수험생의 어머니인 '죄(?)' 로
이 보살님 역시 차디찬 법당에 밤을 새며
수도 없이 엎드렸다 일어서는 고행을
감당해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요.
"거참 희한하데.....내 자식 일이 달려 있으니
700배 800배는 거뜬하게 채워지던 걸......."
그토록 간절히 소원을 빌었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봐도 기가 막히던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런 말을 저에게 하더군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보살님의 얼굴표정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 지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보살님의 하룻밤 경험담이 참 솔직하지 않습니까?
그 전에는 온갖 이유가 앞서고 논리가 지배했기에
엎드려 간절히 절을 할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빌어야 할 소망이 가슴에 담기는 순간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큰 소원을 가득 담은
납작한 접시가 되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제가 난데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바로 오늘 읽어갈『보문품』의 내용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외부에서 입게 되는 고통이나
내 마음 속에서 치열하게 일어나는 번민을
다스려주는 명의(名醫)로서의 관세음보살님을
만나왔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시는 전지전능하신
관세음보살님을 만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보문품』에서는 이렇게 예까지 들어
우리에게 소망을 품으라고 떡하니
가르쳐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들 낳기를 원하여.........
딸 낳기를 원한다면.........
아이가 없는 사람이
"아들이나 딸을 원한다면......"
이라는 내용에서는 남들이 세속적이라고
비난해도 좋으니 마음 속에
소망을 품으라는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들은 육근(六根)을 가진 중생입니다.
육근이란 눈, 귀, 코, 혀, 몸과 함께
마지막에 나오는 의지[意]를 합한 말입니다.
이 의지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지를 지닌 사람이
바람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지요.
그리고 마음 속에 간절한 바람을 품어보아야만
세상살이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홀로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바에야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서면서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거나
전혀 다른 바람들을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동병상련이지요.
아마 서로가 그 공통의 목표를 위해
아낌없이 힘을 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앙숙지간인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고 있는 것이 세상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옆 사람과
손을 잡고 머리를 빌리기도 하고
때로는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경쟁을 해서
쾌재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분하게 무릎을 끓기도 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나의 바람을 포기하기도 해야합니다.
무수한 시도와 노력을 통해 만나게 되는
실패와 작은 성공들을 통해 세상이 결코
녹록하게 나의 행복과 편의를 위해
두 팔을 벌리며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실감하면서 우리는 정신적으로
성숙해 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치 딸 아이의 대학입학을 위하여
밤새 절을 하면서 그간의 교만심이나
자존심을 버리는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 불편한 몸이심에도 오직 전법의 일념으로 부처님의 소명을 다 하고 계신
무비스님의 법체 강녕을 축원 드립니다. 스님 건강하십시오. 관세음보살 ▲
무비스님 염화실 인터넷 법문 관세음보살보문품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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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염화실 인터넷 법문 관세음보살보문품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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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라도 의심하지 말지니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
관세음 거룩한 성인은 관세음정성(觀世音淨聖)
고뇌와 죽음의 재앙에서 어고뇌사액(於故惱死厄)
능히 믿는 의지처가 되어준다네 능위작의호(能爲作依怙)
[법우님들 새로운 한 주도 건강 하소서 (18)편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행복한 공부' 無量光明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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