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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37 - 여자와 인간 2
S#1. 캠퍼스 주차장 근처 / 낮
주욱 자전거들이 늘어서있는 공간. 자전거들을 주욱 팬해서 끝에 서있는 예의 낡은 오토바이.
그 옆에는 오토바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대욱. 대욱, 후욱 한숨을 쉬더니 목발을 절뚝거리며 건물쪽으로 간다.
S#2. 강의실 앞 복도
조용하다가 앞문이 열리고 정교수가 나가고. 뒤이어 앞뒷문으로 학생들이 우루루 나온다.
대욱 이만치에서 고개를 기웃거리며 나오는 학생들을 보고 있다.
나중에 나서는 병석. 대욱, 얼른 병석의 앞으로 절뚝거려 나서며.
대욱 : 저기요. 추자현 선배 안에 있습니까?
병석 : 자현이? 오늘 안 들어왔어.
대욱 : 엥? 결석했단 말입니까?
병석 : 그래. 너 자현이 보면 말 좀 전해주라. 여기서 두 번만 더 결석하면 학점 받기 어렵다구. 꼭 전해줘. (가려는데)
대욱 : (얼른 잡으며) 근데 그거 어떻게 됐습니까? 미니 자동차 제작한 거. 자현 선배꺼 무사했어요?
병석 : 보기좋게 부서졌어. 5킬로가 기준인데 3킬로도 안되서 부서졌다구. 그 놈 자존심 엄청 상했을거야.
대욱 : 그럼.. 그 지원금은 누가 탔는데요?
병석 : (물끄러미 보다가) 우리 팀.
병석 먼저 가고.. 대욱이 심난하다.
S#3. 농구장
명환의 랩 식구들과 다른 학생들이 우루루 들어선다. 만수가 공을 까불며 떠들어대고 있다.
만수 : 오케이오케이. 대망의 탕수육 쟁탈전. 명환선배. 정신차리고 우리 랩의 명예를 걸고 잘 좀 하세요.
명환 : 너나 정신차려. 제발 공 끌어안고 세발짝 이상 좀 뛰지 마.
웃고 떠들며 들어서서 각자 윗도리를 벗거나 몸을 풀거나 하는 와중에, 민재 셔츠를 벗으며 옆의 정태에게.
민재 : 니 정신은 제자리에 있냐.
정태 : 내 정신이 뭐.
민재 : 저번처럼 정신을 딴데 빼놓고 경기하지 말라고.
정태 : 저번엔 임마.. (얘기하려다가 한곳을 본다) 저거 누구야.
민재도 돌아본다. 저만치 객석 중간에 퍼질러 누워있는 자현.
// 자현 가까운 샷. 눈 감고 있는 자현의 위로.
민재 : (E) 자냐?
자현 : (아주 귀찮은 듯 눈을 뜨고 본다)
민재와 정태가 옆으로 와서 들여다 보고 있다.
자현 : (할수없다는 듯 일어나 앉더니) 니들땜에 깼다.
정태 : 어째 아주 기가 죽어보이는데?
자현 : ...니들 말야. 역시 남자가 여자보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냐?
민재 : (정태와 마주보고) 갑자기 뭔 소리야.
자현 : 왜 바둑같은 거 봐도 그렇잖아.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다 남자잖어.
민재 : 그래서.. 역시 남자가 여자보다 머리가 좋다고 하면 어쩔건데.
자현 :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에 갈까 생각중이야.
정태 : 어이구. 집에 가면 뭐 할 거 있어?
자현 : 시집이나 갈까. 난 자동차를 잘 고치니까 좋다는 놈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
(심각하다) 난 공짜로 차 고쳐주고. 남편이란 놈은 돈 벌어오고.
민재 : (어이없어서) 야야 헛소리 고만하구 농구하는데 낄래? 랩끼리 붙은건데. 선수가 좀 모자라거든.
자현 : 서커스에 보면 재주 부리는 곰새끼 있지?
일어서더니 어슬렁거리며 가며..
자현 : 나 아무래도 웃기는 곰새끼가 된 기분이야.
정태와 민재, 말리지 못하고 보는데 저 아래서 명환과 만수가 소리쳐 부른다.
명환 : 이민재 김정태 뭣들 해.
만수 : 빨리 와 임마. 탕수육 먹어야지. 공짜 탕수육.
S#4. 동아리방
막 세수를 마치고 온 민재와 정태가 수건을 서로 뺏어가며 얼굴을 닦고 있고. 경진은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고.
대욱은 로봇 하나를 들고 만지는 척 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고.
정태 : 우리가 추자현을 알게 된 이래 그렇게 기죽은 모습은 처음 봐. 안 그러냐?
민재 : 기죽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자포자기한 거 같든데.
정태 : 맞어. 시집이나 가겠다 그랬지 아마. 그 정도면 자포자기지.
대욱 : (번쩍 고개돌려 보더니) 자현선배가 시집을 가요? 누가 델구 갑니까?
민재 : 자긴 자동차를 잘 고치니까 그거 좋아할 남자가 있을거라든데.
대욱 : 어느 미친놈이 그런 이유로 장가를 간대요? 남자는 자고로 여자랑 결혼을 하는겁니다. 자동차수리공하고 하는게 아니구요.
경진 : (아까부터 대욱을 보고 있다가) 강대욱 넌 로봇을 수리하는거냐. 분해하고 있는거냐?
대욱 : (그제야 자기 손에서 분해되어있는 로봇을 본다)
정태 : 어이 강대욱 너 자현이 좋아하지.
대욱 : (에그..해서 로봇을 떨어뜨리고 줍느라 당황하며) 무.무슨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정태 : 무슨 뜻은 임마. 좋아하면 가서 좀 도와주라는 말이지. 우린 지금 랩에 묶여서 아무 일도 못 해주잖아.
대욱 : 나도 바쁩니다. 이거 안보입니까. (자기 다리의 기브스를 가르키는)
정태 : 그건 왜 다친거야. 자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냐?
대욱 : 이건.. 비밀입니다.
정태 체 웃고 침대로 가서 늘어지는데.
민재 : 김정태. 너야말로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지 좀 마라.
정태 : 내가 언제.
경진 : 정태가 그래?
민재 : 그래. 그래서 내가 몇번 깼잖냐. 지진이라도 났나하고.
경진 : 그건 속에 쌓인게 많아서 그런거야.
민재 :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럴걸.
경진 : 그럴 땐 다 털어내야 되는데.
민재 : 그게 오래 쌓이면 곪아서 악성종양이 될지도 모르지.
경진 : 그래서 죽기도 할걸. 옛날 사람들이 홧병으로 죽는다고 그러잖아. 그게 다 같은 얘기야.
민재 : 도대체 무슨 문젠지는 모르겠지만 상대가 있다면 그 상대를 불러내서 대충 속에 말을 털어놓는 게 좋을거야.
오래 살고 싶다면 말이지.
경진 : 민재야.
민재 : 왜.
경진 : 반갑다. 너하구 나하구 한편일 때도 있네.
민재 뚱하니 경진을 보다가 의자를 끌어 자기 컴퓨터 앞으로 간다.
대욱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목발을 짚으며 나간다.
경진 : 어디 가.
대욱 : 속 터져 죽기 전에 고백하러 갑니다.
정태 침대에 말없이 앉아 있다가.
정태 : 니들 눈에 내가 그렇게 보이냐? 내가 여자 땜에 홧병으로 죽을 놈처럼 보여?
경진 : (민재를 보더니) 우리가 여자 문제라고 그랬니?
민재 : 아니.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을걸.
정태 벌떡 일어나더니 나가버린다. 문이 닫기자마자.
경진 : 아이구 재밌어 죽겠다. 난 정말 요즘 쟤들땜에 살 맛 나. 진짜야.
민재 : (설레설레) 아무래도 나야말로 요즘 점점 망가져가는 거 같어.
S#5. 여자 기숙사 앞 / 밤
자현이 하드를 먹으며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 그러다 보면 계단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대욱이 목발을 짚으며 어렵게 일어선다.
자현 : 너 거기서 뭐하냐.
대욱 : 선배 기다리고 있었지.
자현 : 할 말 있음 빨랑 하고 사라져라.
대욱 : 추자현.. 선배.
자현 : 뭐.
대욱 : 따라와.
대욱 앞서 간다. 자현 어쭈..해서 보다가 하드를 빨며 따라간다.
S#6. 캠퍼스 일각
대욱 먼저 자리잡아 앉으며.
대욱 : 앉아봐.
자현 : (옆에 앉으며) 앉았다.
대욱 : 저기 음. (헛기침을 하고) 자현 선배. 자동차 계속 만들거면 내가 도와줄게.
자현 : 너두냐? 너도 내가 혼자는 절대로 못할거라고 생각하는거야? (다 먹은 하드 막대를 옆의 쓰레기통으로 던진다)
대욱 : 그게 아니고..
자현 : 그래 나 혼자는 못한다. 그래서 아예 안하기로 했다. 됐냐? (벌떡 일어서는데)
대욱 :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실은 고백할 게 있어.
자현 : 고백? 그건 경찰서 취조실에서 쓰는 말이잖아.
대욱 : 내가 이 말을 하면 선배는 날 반 죽일려구 할거야. 난 다리가 이래서 도망도 못 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건데.
자현 : 아 짜식. 지금 리포트 쓰냐. 서론 빼구 본론만 말해.
대욱 : 선배의 미니 자동차...
자현 : 스톱. 그 말은 하지마라. 그 말만 하면 난 꼭지가 돌 거 같으니까.
대욱 : 그거 내가 부셔놓은거야.
자현 : (정지되서 보는)
대욱 :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정말 실수였는데.. 정말 그게 거기 있는지 몰랐거든.
그냥 이렇게 건드렸는데 그게 톡 떨어지더니 댕강 부러지는거야. 그래서 내가 본드로 붙여놨는데..
자현 : 지금 뭐라 그랬어.
대욱 : (슬슬 거리를 넓히며) 본드로 붙이긴 했다구. 근데 아무래도 그게.. 힘 받는 부분이어서 그게..
그니까 내가 머슴 일 할게. 뭐든지 하겠다구. 그러면 좀 화가 풀리겠어?
자현 : 그니까 내가 경기에 나가기 전에 니가 부셔놓은거라구? 내 미니 자동차를?
대욱 : (포기하고 목을 늘이더니) 그냥 패라 패. 손가락만 부러뜨리지 마. 숙제 해야 되니까.
그냥 이쪽 다리를 부러뜨릴래? 다린 괜찮어.
자현 성큼성큼 대욱에게 다가온다. 대욱 눈을 질끈 감는데. 자현 느닷없이 대욱을 얼싸안으며.
자현 : 아이구 자식아 그럼 진작 말하지이. 야 임마 난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줄 알았잖어.
대욱 : (어리둥절)
자현 : (대욱을 흔들고 여기저기 두들겨주며) 그러면 그렇지. 내가 만든 자동차가 그렇게 형편없을 수가 없지이.
아이구. 이 멍청한 놈아. 미리 말했으면 내가 이렇게 더러운 기분은 아니었잖어. 아이구 이놈아. (너무나 기분이 좋다)
대욱, 자현에게 흔들리면서 여전히 버엉하다.
S#7. 지원/ 경진의 방 / 밤
벽에 붙여진 별 사진 포스터. 그 앞에서 경진이 팔짱을 끼고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뒤에서는 지원이 화장품을 바르다가 경진을 보고.
지원 : 안잘거야?
경진 : 가만 있어봐.
지원 : 매일 밤마다 뭘 그렇게 보는거야?
경진 : 내 영토. 나의 제국.
지원 : (웃고 침대로 가는)
경진 : 역시 우주는 너무 넓어. 내가 아무리 우주제국함대를 강하게 키워놔도 구석 구석 다 다스리긴 어려울거야 그치?
지원 : 자기 전에 불 끄는 거 잊지 마. (이불로 들어가고 있다)
경진 : 우주함대보다는 역시 초능력을 강화하는 게 빠를까.
지원 : 우주보다는 먼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야 하는 거 아냐?
경진 : 구지원. 제발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라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절대 이 쪼끄만 지구가 아니야.
우린 이 넓은 우주에서 살고 있다고. 그런 뜻에서 지원아.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 볼래?
지원 : 그만 자는 게 어때. 나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가야 돼.
경진 : 그니까 내말은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냥 좋다고 말하면서 살어. 몇달 뒤, 몇년 뒤에 어떻게 될건지를 미리 걱정하지 말라구.
좋아하다가 깨지면 또 어떠냐.
지원 : (할 수 없다는 듯 일어나 앉는)
경진 : 지금 이 순간에도 저 하늘에선 수많은 별들이 사라지고.. 새로 탄생하고..
지원 : 넌 어때.
경진 : 나 뭐.
지원 : 너는 좋은 사람, 좋다고 말하면서 사니?
경진 : ..글세. 난 어떤가... 이 넓은 우주를 걱정하다보니까 나에 대해선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말이지.
지원 : 그렇게 시간 없는 애가 내 사생활에 대해선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거야?
경진 : 그러게.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럴까..
소리 : (거친 노크소리)
경진 : (반가와서) 어서 들어오세요. 빨리 들어오세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자현. 들어서며.
자현 : 니들 돈 얼마나 있냐?
경진 : 돈이야 언제나 없지. 왜.
자현 : 왜는 뭐가 왜야. 내 자동차를 만들려면 돈이 드니까 그렇지.
경진 : 너 그만둔 거 아냐? 다 때려치고 집에 갈거래매.
자현 : 내가 왜 그만 둬. 내가 누군데. 나 추자현이야. 그러니까 니들 이거 한 장씩 사라. (종이를 하나씩 나눠준다)
지원 : (받아보며) 이게 뭔데.
S#8. 이교수 랩 / 낮
명환, 중희, 민재 정태 만수 등이 역시 종이를 하나씩 들고 보고 있다. 그 앞에는 자현.
만수 : 일년간 자동차 무상수리권?
자현 : 바로 그겁니다. 어떤 자동차든 일년동안 무료로 수리해주겠다 이거죠. 그게 단돈 5만원. 물론 부속비는 제외하구요.
명환 : 어이. 이런 건 자동차 있는 사람한테 팔아야 되는 거 아냐?
자현 : 아아 걱정마십쇼. 이건 여러분이 자동차를 구입한 날부터 계산이 됩니다. 보험 드는 셈 치고 미리 사놓으시라 이거죠.
중희 : (민재에게) 내가 언젠가 내 자동차를 굴릴 날이 오긴 올까.
민재 : 나도 그게 궁금한데요.
정태 : (자현에게) 너 그만 둔거 아니었어? 다 그만두고 시집 간다구 했잖아.
자현 : 잠깐 스톱. 어이 김군. 자넨 여자를 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여자는 뭔가 하다가 막히면 시집이나 가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냐?
정태 : (어이없어 민재에게) 그건 지 입으로 했던 말 아니냐?
민재 : 노코멘트 할랜다.
만수 : 1년 무상 수리에 5만원이라. 근데 1년 뒤면 내가 미국에 있을 지도 모르잖아. 거기까지 와서 수리해줄거야?
이교수 : (E) 나도 한 장 살까.
모두 그제야 문가의 이교수를 보고 분분이 일어나 인사를 한다.
이교수 : 어디 봐.
자현 : (얼른 다가가 한 장을 넘겨주며) 교수님껜 특별히 두장도 판매 하는데요. 두장이면 할인해서 8만원. 2년간 무상수립니다.
(한장을 더 내민다)
이교수 : (받아들어 보다가) 추자현.
자현 : 예 교수님.
이교수 : 잠깐 나와볼래? (다른 아이들에게) 미팅 준비는 다 됐지?
아이들 부지런히 각자의 테이블로 자료를 가지러 흩어져 가는데 이교수 먼저 문을 나선다.
자현 어리둥절해서 따라나가고.
S#9. 랩 앞 복도
뒤따라 나온 자현이 교수를 쳐다보자.
이교수 : 문 닫아봐.
자현 : (얼른 문을 닫는다)
이교수 : 만수가 떠들어대서 니 얘기 들었어.
자현 : 제 ..얘기요?
이교수 : 자동차 자작대회에 출전할거라고?
자현 : 아. 예. 그래서 현재 경비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교수 : 근데 혼자서 한다고.
자현 : 그럴 생각입니다. 그리고 자신있습니다.
이교수 : 그게 여자라고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든데 맞니?
자현 : (망설이다가)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이교수 : 그럼 니 문제는 니가 자작자동차를 만들어 출전을 하고 우승을 해서 남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면 해결되는 거니?
자현 : (잘 이해가 안되지만) 우승만 할 수 있다면 좋죠. 지금 제가 만들어놓은 설계도대로라면 우승할 수 있을 거 같구요.
이교수 : (웃음기 없는 얼굴로 보기만)
자현 : (교수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이교수 : 그래. 뭔가 해줄 얘기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건 니가 스스로 겪어보고 깨닫는 게 낫겠다.
자현 : ...뭐가요.
이교수 : 이따 내 방으로 찾아와. (받은 종이 두장을 흔들어보이며) 이거 돈 받아가야지.
이교수 몸을 돌려 들어간다. 자현,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교수, 혼자 웃고 있다.
S#10. 산디과 사무실 앞 복도
대욱이 리포트를 들고 목발을 짚고 빠르게 걸어온다.
S#11. 과사무실 내부
조교가 리포트를 대충 훑어보며.
조교 : 벌써 갖고 오면 어뜩해. 너 기브스 한지 일주일밖에 안됐잖아.
대욱 : 어쨌든 리포트는 완성했습니다. 이틀밤을 꼬박 샌거니까 그냥 받아주심 안될까요.
조교 : 어이. 이번 과제는 장애인체험을 하면서 인간공학에 대해 연구를 하는거잖아. 겨우 일주일 목발 짚어보고 뭘알았다는거야?
대욱 : 솔직히 알아진 게 별로 없습니다.
조교 : 그럼 이건 뭘루 썼어.
대욱 :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썼습니다.
조교 : 뭐야?
대욱 : 정말로 나란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특히 인간의 고통이나 소외감에 대해서는 완전 제롭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아는 게 있습니다. 뭐냐. 인간은 인간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
조교 :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야?
대욱 : 현재 소외감과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 하나 있습니다. 난 지금부터 그 인간을 도우러 갈겁니다.
이 기브스를 하고는 도울 수가 없기 때문에 오늘부로 이 기브스를 떼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조교 : 그럼 너의 인간공학 리포트는 포기한다는거야?
대욱 : 가능하면 일주일 후에 한번 더 써오겠습니다. 뭔가 좀 더 알아진 게 있다면요. 그럼 안녕히 계십쇼.
꾸벅 인사를 하더니 목발을 어깨에 턱 메고 불안정한 걸음으로 씩씩하게 나간다.
S#12. 캠퍼스 일각
순찰차 옆에 선 백곰이 심각하게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앞에 선 자현에게.
백곰 : 3만원.
자현 : 3만원이면 일년이 아니고 7개월.
백곰 : 일년에 3만원.
자현 : 일년이면 5만원.
백곰 : 야 장사란 깍는 맛이지.
자현 : 정찰젭니다. 싫으면 주세요. (도로 뺏으려는데)
백곰 : (감추며) 가만 있어봐. 근데 이거 카드도 되냐.
자현 : 아저씨이.
S#13. 박교수 연구실
진수와 남희, 지원, 박교수가 보고 있는데 기브스를 푼 대욱이 문가에 서서 종이를 들어보이며.
대욱 : 이 무상수리권을 만든 추자현으로 말씀드리면, 미래의 한국 자동차를 이끌고 나갈 인재로서,
이 인간에게 자동차 수리를 맡긴다는 것은 영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년에 5만원이라는 것은
거저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럼 존경하는 교수님. 학우 여러분. 필요하신 분은 말씀해주십쇼.
박교수 : 남희양.
남희 : 네.
박교수 : 난 어쩐지 눈물이 날 거 같애. 이렇게 해서라도 연구를 하겠다는 자세. 그런 친구를 돕는 마음. 남희양도 한장 사지 그래.
남희 : 전 차가 없는데요. 면허증도 없구요.
박교수 : (대욱에게) 그거 몇장 더줘봐. 내가 다른 교수들한테 팔아줄게.
대욱 : 캄사합니다. 역시 박교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형님이십니다. (얼른 몇장을 건네고)
박교수 : (돈을 찾느라고 분주하고)
대욱 : 진수야. 넌 두장?
진수 : 생각해보고.
대욱 : 그럼 생각할 시간에 차열쇠 좀 빌려줄래?
진수 : 차열쇠는 왜.
대욱 : 애프터 서비스가 아니고. 프리서비스. 니 차가 이상없는지 미리 점검해줄려구.
S#14. 캠퍼스
진수의 차가 달려오고 있다. 운전석에는 자현이 타고 있고. 옆에는 대욱이 부속의 명단이 적힌 수첩을 보고 있다.
S#15. 철물공업사
자현과 대욱이 사각관, 원형관 등을 앞에 쌓아놓고 주인과 값을 흥정하고 있다.
주인이 안된다고 도로 뺏으려는데 자현은 악착같이 관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대욱이 열심히 주인을 설득중이다.
S#16. 캠퍼스 내 자전거 주차장
예의 고물 오토바이 앞에 자현이 커다란 종이를 붙이고 있다.
자현이 만족해서 가고, 남은 종이에는 커다란 글자로
[주인을 찾음. 7일까지 안나타나면 접수함. 고물값 협상 용의 있음. 연락처 3561번 추자현]이라고 적혀있다.
S#17. 폐차장
여기저기 쌓여있는 폐차들.. 대욱이 찡그리고 둘러보다가 한 곳을 보면..
주인과 자현이 거의 형체만 남은 폐차를 두들겨보고 있다.
주인 : 30만원 그 이하는 안돼.
자현 : (차의 밑으로 기어들어가며) 이거 너클은 성한가요? 로우어암이 좀 상했네.
주인 : (자기도 쭈그려 앉아 밑을 들여다보며) 로우어 뭐라고? 아 노가다이 말이야? 이 정도면 새거지.
// 시간경과
낡은 바퀴 두 개와 여러 가지 부품들이 쌓여있다.
자현 : 10만원이요.
주인 : 차 한 대를 거의 뜯어가면서 무슨 10만원?
자현 : 아저씨.
주인 : 글세 안돼.
자현 : (갑자기 땅에 넙죽 엎드려 절하면서) 복 많이 받으세요.
주인 : 뭐하는거야.
자현 : (고개 들며) 복받으시고 세배값 줬다 치고. 10만원. 예?
S#18. 폐차장 일각
진수의 차 뒤트렁크가 아예 열려진 상태로 온갖 부품들이 쌓여있다. 뒷좌석에도 바퀴 등이 잔뜩 들어가있다.
자현과 대욱 마지막 부품을 트렁크에 넣고는 둘이 마주본다.
흐흐흐 웃음이 나오더니 둘이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마주보고 막춤을 추고 오예 오예 소리를 질러가면서.
그러다가 문득 자현이 대욱의 다리를 본다.
자현 : 어이 강대욱.
대욱 : 왜.
자현 : 너 혹시 다리에 기브스 같은 거 하고 있지 않았냐?
대욱 : (어이없어 보다가 완전히 김새서 춤추던 거 그만두고 돌아선다)
S#19. 캠퍼스 주차장
자전거들 주욱 세워져있는 맨 끝자리. 낡은 오토바이가 있던 곳이 비어있다.
그 땅바닥에 자현이 붙여놓았던 종이만 떨어져있다.
S#20. 엔진 랩 옆의 천막
엔진랩에서 주욱 옆을 보면 천막이 쳐져있다. 안에서 작업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S#21. 천막 안
병석이 뭔가 도구를 하나 든 상태에서 돌아본다.
병석 : 뭘 빌려달라고?
자현 : 이 천막 안의 땅, 한평만 빌려달라고.
병석 : 뭐할라고.
자현 : 그냥 물건만 쌓아두면 돼. 작업은 그냥 밖에서 할게. 물건만 쌓아두면 돼. 야야 좀 봐주라. 작업실이 없어서 그래.
병석 :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보다가) 어떤 물건을 쌓아둘건데.
자현 : (무조건 병석의 손을 잡아 흔들며) 고맙다. 넌 정말 좋은 놈이야. 앞으로 좋은 여자한테 장가갈거다. 고마워.
(밖으로 달려나간다)
병석 : 야. 추자현.
급하게 부르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낡은 오토바이를 끌고 들어오는 대욱. 병석에게 꾸벅 절하며 웃어보인다.
그 뒤로 자현이 바퀴 등을 무겁게 들고 들어온다.
자현 : 어디 놓으면 되냐?
병석 : 그거 뿐이야?
대욱 : 이게 시작인데요.
S#22. 석학의 집
지민과 경진, 정태 민재 만수가 앉아있는데 그 옆에 선 미순이 연설 중이다.
미순 : 관포지교라는 말이 있어요. 관아무개와 포아무개가 서로 목숨을 걸고 도와줬다...는 얘기에서 나온 말인데.
목숨은 걸지 못한다 하더라도 친구 사이에 이렇게 모른 척 할 수가 있는거냐. 어?
만수 : 글세 목숨은 내줄 수가 있는데요. 돈은 내줄 수가 없잖아요. 왜냐.
목숨은 현재 내가 갖고 있지만 돈은 현재 내 주머니에 없으니까.
미순 : 그건 나도 그래. 나도 마이카라는 게 있었으면 버얼써 그 공짜 수리권인지 뭔지 사줬지.
근데 나야 버스보다 작은 차는 안 타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사람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는 말이 있어. 뭔 말이냐.
물로 도와줄 수가 없으면 심으로 도와준다. 그래서. 진영아.
진영 : (저만치에서 오며) 왜요.
미순 : 저기 엔진랩 옆에 천막이 있거든. 그 옆 땅바닥에서 작업을 하는 자현이한테 콜라 좀 배달해주고 와라.
진영 : 콜라를요?
마이클 : (앞치마 두르고 오며) 내가 갔다올게요. 콜라 얼마나 갖다줘요?
미순 : 한잔만 갖다주면 되지 뭘 얼마나야.
마이클 : 거기 대욱이 형도 있는데.
미순 : 옳지. 역시 대욱이가 의리가 있는 놈이야. 얼굴을 봐. 의리있게 생겼잖아. 오케오케. 두잔 갖다 줘.
지민 : 그게 아니구요. 대욱이 오빠는 자현이 언니를 좋아하니까 이게 기회다 이거죠 뭐.
미순 : 덱끼. 세상 일을 그렇게 남녀관계로 배배 꽈서 보는 게 아니다. 인간에겐 남녀관계를 넘어서는 뭔가가 있는 법이야.
그래서 인간이야. 아니면 그게 개돼지지.
진영 : 콜라보다 볶음밥 같은 거 배달해주는 게 어때요. 배고플텐데.
미순 : 아니 이것들이 내가 땅파서 볶음밥 만드는 줄 아나. 일루 와봐. 내가 챙겨줄게.
미순, 진영 마이클이 우루루 가고.
지민 : 나두 같이 가. (따라가고)
남은 민재 정태. 경진.
경진 : 음.. 어째 찔리네. 앉아서 의리없는 놈 된 기분이잖아.
민재 : 근데 그게 가능하냐? 다른 팀들은 벌써 두달 이상 자동차를 제작해왔다고 하든데.
정태 : 나두 물어봤는데. 자현이 말로는 벌써 설계도가 나왔다고 하든데. 작년부터 만들어왔든 거래.
경진 : 그래도 그게 납땜질부터 시작해서 막노동이 얼마나 많겠냐.
니들 스트레스 푼다고 농구한대매. 그 대신에 가서 용접이나 도와주지 그래.
민재 : 문제는 우릴 받아줄까 하는거지. 그 녀석, 혼자 힘으로 해보겠다고 그러는거잖아.
정태 : 그렇지. 남자는 옆에 오지 말라고 하든데?
경진 : 어이구. 머리는 달구 다니면서 엇다 쓰니. 나한테 맡겨. 내가 다 정리해줄게.
(뒤로 기대앉으며) 아아 우주에는 날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아.
민재 : (한심해 보다가) 어떻게.
경진 : 어떻게?
민재 : 니 작전이란 거 미리 좀 알자. 뒤통수 맞는 것도 이제 지겨우니까.
경진 : 에에.. 조용히 좀 해봐. 지금 생각 중이니까. 5분만 기다려보라구.
S#23. 천막 옆
자현이 그라인더로 쇠를 자르는 작업 중이다. 그 옆에 쭈그려 앉아서 보고 있는 대욱.
대욱 : 진짜 혼자 다할거야?
자현 : (대꾸없이 작업만)
대욱 : 그것만 내가 잘라줄게.
자현 : (멈추더니) 대욱아.
대욱 : 설계도 혼자 다 했잖아. 그러니까 그 정도는 남이 잘라줘도 누가 암말 안해.
자현 : 너 나 좋아하지?
대욱 : (당황) 내가? 선배를?
자현 : 그럼 제발 나 좀 냅두고 가라. 좀.
대욱 : ...
자현 : 그게 날 도와주는거야. 더 설명해줘야 되냐?
대욱 보다가 일어선다. 걸어가다가 돌아보면 자현은 이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대욱 몇걸음 더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자현을 향해 돌아서서 냅다 소리를 지른다.
대욱 : 야 추자현.
자현 : (안 들리는 듯 계속 일하는)
대욱 : 이 밴댕이 속알딱지야. 너같은 걸 친구라고 생각했으니 나도 참 불쌍한 놈이다.
자현 : (묵묵.. 일만)
대욱 : 니가 그 따위로 구니까 여자 별 수없단 소리 듣는거야. 무슨 말인지 알어?
대욱 혼자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가버리고.
잠시 후. 자현, 일손을 멈추더니 대욱이 간 쪽을 본다. 아무 표정이 없다.
S#24. 주차장 / 밤
박교수와 서교수가 나오고 있다.
박교수 : 한 장에 오만원. 두장 사면 팔만원으로 깍아준대. 두장이면 이년 무상수리야. 갖고 있는 차 고물이지? 고장 잘 나지?
그럼 이거 아주 좋은 거래라구.
서교수 : 아이구 알았어. 한 장만 줘봐.
박교수 : (들고있던 대여섯장 중에 한 장을 건네주며) 이왕이면 두장 사지 왜.
서교수 : 박교수. 그거 알어?
박교수 : 뭐.
서교수 : 애들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무조건 장단을 맞춰주는 거. 그게 꼭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박교수 : 알어.
서교수 : 아는 사람이 매번 애들보다 더 나서구 그래? 아이들한테는 그때그때 필요한 교육방식이 따로 있는거라구.
박교수 : (좀 심각해져서 멈추더니) 그걸 모르겠어. 과연 내가 교육이란 걸 할 수 있는 건지.
서교수 : 무슨 소리야. 교수 봉급을 받으면서.
박교수 : 글세. 퍼지이론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말하겠는데, 어떻게 살아라. 이건 나도 잘 모르겠는걸.
서교수 : (웃으며 박교수의 등을 밀어가며) 심각한 얼굴 하지 마. 안 어울려.
박교수 : 내가 십년쯤 더 교수를 하다보면 쫌 알게될까? 어떻게 생각해. 응? 응? 이십년쯤은 해야 되나? 그럼 내가 몇살이 되지?
S#25. 엔진 랩 내부 / 밤
학생들 몇이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정교수는 승준의 옆에서 작업일지를 들여다보고 있고.
승준 : 분사기 구동신호를 내보내는 소프트웨어 신호가 좀 이상합니다. 다시 점검해봐야 될 거 같은데요.
정교수 : 아무래도 우리가 처음 쓰는 장비니까 무난하진 않을거야. (옆의 다른 학생에게) 독일 쪽엔 연락해봤어?
학생 : 예 일단 문제 목록을 보내놓긴 했습니다.
정교수 : 답이 오는대로 다시 체크해보자구. (모두에게) 자 수고들했어. 오늘은 이쯤하고 이제 그만 자야지.
학생들 예 먼저 들어가십쇼. 등.. 인사하고..
S#26. 엔진 랩 앞 / 밤
승준이 나서다가 보면, 저만치에 정교수가 천막의 뒤쪽을 슬그머니 보고 있다.
용접을 하는 소리가 어둡고 조용한 밤에 들리고 있고. 승준도 정교수의 옆에 다가서며 그곳을 본다.
// 천막 저쪽. 야외 조명이 비추고 있는 곳. 자현이 혼자 앉아서 용접을 하고 있다.
자현은 주위의 모든 것을 잊은 채 열심히 작업에 매달려있다.
정교수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하고. 승준도 얼른 따른다.
S#27. 캠퍼스 다른 곳/ 밤
승준, 정교수의 옆을 따르며.
승준 : 저.. 자현이라는 학생이요.
정교수 : 왜.
승준 : 너무 몰아세우시는 거 아닙니까?
정교수 : 내가 몰아세운다?
승준 : 저에게는 언제나 격려를 해주셨잖아요. 넌 할 수 있어.. 해보라구.. 하시면서요.
정교수 : 자네의 문제는 간단했지. 자신감이 없다는 거.
승준 : 사실입니다. 한심했죠. (웃는데)
정교수 : 추자현이도 마찬가지야.
승준 : 자현이가요? ... 글세요. 제가 보기엔 자신감이 넘치는 거 같던데.
정교수 : 마찬가지야. 다만 자네하군 성격이 좀 다르지.
승준 : 예?
정교수 : 두고 보자구.
정교수 먼저 휘적휘적 가버린다. 승준 갈림길 정도에 멈춰선 채로 교수를 본다.
S#28. 기숙사 옆 주차장 / 밤
진수의 차가 와서 멈추고. 조수석에서 내리는 지원. 운전석에서 내리는 진수에게.
지원 : 번번이 고마워. 잘 타고 왔어.
먼저 걸어온다. 진수 그 옆으로 붙으며.
진수 : 고맙다는 말 좀 그만할 수 없어요? 그것도 굉장히 말하기 싫은 얼굴로 그러잖아요. 매번.
지원 : 사실 그래. 좀 불편해.
진수, 잠시 말없이 걷다가 문득 한걸음 앞서나가 지원의 진로를 막아서더니.
진수 : 너무 애쓰지 마요.
지원 : (보는)
진수 : 그거 알아요? 누나가 방어벽을 세우면 세울수록 난 더 투지가 생겨요.
지원 : (한숨을 쉬더니) 언제 한번 말을 해야되지 않나 생각했어. 너, 도대체 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지금 너, 나를 상대로 연애놀이같은 거 하고 있니?
진수 : 연애놀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원 : 그런 게 하고 싶으면 다른 여자를 찾아보는 게 어때. 그런 놀이는 서로 마음이 오고가야 재밌는 거 아냐?
진수 : 전 어려서부터 노는데 정신팔려 본 적은 없어요. 내가 재미있어 하는 건 목표를 세우고 계획에 따라서 도전해가는 거죠.
지원 : 그래서 나를 목표로 세웠다는거야? 니가 말하는 목표라는 게 뭔데.
진수 : 몰라서 묻는 거에요?
지원 : (보다가) 그만두자. 아무래도 이런 건 말을 할수록 이상해지는 거 같네.
진수 : 누난 이런 게 더 재밌어요? 남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서로 마음을 열어가고 위해주고 그러는 거 보다,
이렇게 매번 신경전을 벌이는 게 더 재밌냐구요. 그렇다면 말해요. 거기 맞춰줄게.
지원 : ..나 점점 너랑 있는 게 부담스러워져.
진수 : 그럼 좀 진도가 나간거네요. 아주 무시하는 거 보다.
지원 : 놀거면 너 혼자 놀아. 난 껴넣지 말고. (진수의 옆을 비켜서 가는데)
진수 : (돌아서 보며) 잘 자요. 밤 새지 말구요.
지원, 못 들은 척 간다. 진수도 그 뒤를 따라 걷다가 남사 쪽으로 올라가고..
그리고 그들이 가버린 장소 이만치 어둠 속. 경진과 민재가 나란히 숨어있다. 경진은 민재의 옷자락을 아직 움켜잡고 있다.
민재 : 이제 그만 이 손 놓지. 상황 끝났으니까.
경진 : 아. 하하. (손을 놓아주며) 너두 재밌었지? 내가 재빨리 끌고 숨지 않았으면 못 볼뻔 했지? (민재의 옷 주름을 털어주는)
민재 : 어째 도둑질을 한 기분이다.
경진 : 이상하지. 역사적인 현장엔 대개 내가 있게 된단 말이야.
민재 : 너 눈 좀 반짝반짝 굴리지 마라. 무섭다.
경진 : (갑자기 손뼉을 치며) 아이구아이구 아까워라. 이 순간에 정태가 있어야 되는데. 우리끼리 봐봤자 아무 도움이 안되잖어어.
민재 : 남의 일에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니가 연애를 하는 게 어때. 어떤 남자가 좋냐. 내가 찾아봐줄게.
경진 : 내가 바보냐. 남의 꺼 보는 게 훨씬 재밌는데 뭐하러 내가 직접, 그 고생을 해.
민재 : 어이구.
더 말하기 싫어서 움직여간다.
경진 : (따르며) 민재야.
민재 : 무서워. 부르지 마.
경진 :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되도록 지켜야 되겠지?
민재 : 그게 상식이지.
경진 : (민재를 잡아 세우며) 지원이가 나보고 약속을 하랬거덩.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일에 껴들지 마라.
특히 자기의 대인관계에 나서지 마라.
민재 : (보다가 그만 웃기 시작한다)
경진 : (애처롭게) 웃지마. 나 지금 온몸이 근질거려서 죽을 지경이라구.
손발 묶이고 입에 테이프 붙이고 앉아서 한일 축구전 보는 거 같단 말야.
민재 도무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S#29. 천막 옆 / 밤
자현, 무거운 부품 하나를 낑낑대며 옮기고 있다. 영차 겨우 옮겨놓고, 손목을 흔들어본다. 허리도 두들겨보고.
그리고 다시 자리를 잡고 앉는다.
S#30. 캠퍼스 / 아침
S#31. 천막 내부
병석과 두어명의 친구들이 같이 들어서고 있다. 병석, 하품을 하며 들어오다가 어..해서 선다.
병석이 보는 곳. 한구석에 자현이 웅크려서 잠바를 덮고 잠이 들어있다. 작업복은 기름때에 절어있다.
병석, 한심해서 보다가 그 앞에 쭈그려 앉더니.
병석 : 추자현.
자현 : (꿈쩍도 않고)
병석 : (흔들어서) 어이. 일어나. 너 어제도 여기서 밤샌거야?
자현 : (병석을 퍽 쳐서 뿌리치고 돌아눕는다)
병석 : 좀 있으면 정교수님 수업이야. 오늘도 빼먹으면 너 심각해.
자현 정지되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 앉는다.
자현 : (겨우 실눈을 뜨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데.
병석 : 수요일. (자기 시계를 보며) 20분 있음 수업 시작이야.
자현 : (버럭 화를 내며) 오늘이 어째서 수요일이야. 언제 수요일이 된거야. 너 거짓말이지?
S#32. 정교수 강의실
앞에 선 정교수.
정교수 : 추자현.
자현 : 네에.. (할수없이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직도 기름때에 절은 작업복을 입고 있다. 피곤에 절은 얼굴)
정교수 : 디젤의 고압연료분사가 왜 필요한지 말해볼까?
자현 : 짧은 시간에 충분한 양을 연소실에 공급하면서 미립화를 잘 시키기 위해섭니다.
정교수 : 다른 효과로는?
자현 : 다른 효과는.. 에.. 다른 효과도 있습니까?
정교수 : 한준태.
학생 : 미립화가 잘될 뿐 아니라 연료입자 크기의 분포가 균일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자현 : (슬그머니 앉는데)
정교수 : 추자현.
자현 : (다시 벌떡 서는)
정교수 : 생길수 있는 문제는?
자현 : 문제..요?
정교수 : 문제가 있어 없어.
자현 : 문제가.. 있긴 있겠죠. (에라 모르겠다) 잘 모르겠습니다.
정교수 : 양병석.
병석 : (일어서며) 연료공급계통의 밀봉문제가 있을수 있구요. 펌프 부하 증가도 문제가 될수 있읍니다.
정교수 : 추자현. 배기가스 문제는 없을까? 소음은?
자현 : 그야 뭐.. 미립화가 잘 되면 연소가 잘 되니까 매연도 줄어들고 소음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정교수 : 직접분사식 엔진의 연비는 어떻지?
병석 걱정스레 자현을 보며 자리에 앉고.
자현 : (머뭇거리다가) 별로 다를 거 없지않나요?
정교수 : 그렇다면 자네 말의 앞뒤가 맞질 않지. 연소가 잘되게 한다는 건 연비성능이 좋아진다는걸 의미하잖나.
더구나 직접분사식 디젤엔진은 제어만 잘 되면 아주 희박하게 연소가 이루어질수 있는 거 아닌가.
자현 : 예.
정교수 : 뭐가 예야. 내 말이 맞어 틀려.
자현, 입술만 깨물며 서있다. 정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S#33. 건물 앞
강의를 끝낸 학생들이 몰려나오고 있다.
그 중에 자현이 터덜터덜 걸어나온다. 뒤에 병석이 자현을 보고 뛰어와 옆으로 온다.
병석 : 아침 먹으러 가자. 너 어제 저녁은 먹었어?
자현 : (우뚝 선다. 폭발하기 직전의 얼굴)
병석 : 야야 진정해. 오늘 질문하신 거 지난 시간에 다 배운거야. 그러게 수업 좀 잘 들어오지.
자현 : 으으으으.. (변신하기 직전의 헐크같이 되어가더니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어대며) 정! 괴! 수!
(거의 응원하는 제스츄어로) 두고보자 정괴수. 기다려라 정괴수. 내가 간다 정괴수. 아자아아아!
뚝 그치더니 호흡을 가다듬는다. 주위를 지나던 학생들이 어이없어 보고. 웃기도 하는데.
자현 전혀 아랑곳없이 숨쉬기 운동으로 정리하고 병석을 돌아본다.
자현 : 이제 좀 살겠다. 가자. 아침 먹으러.
이쪽저쪽 목을 돌려보더니 씩씩하게 앞서 걷는다. 병석 어이없고.
S#34. 동아리방
만수가 들어오며.
만수 : 안녕 아그들아. 느들밖에 없니?
안에는 인상을 쓰고 앉아있는 대욱과 지갑에서 돈을 꺼내 세보는 지민.
지민 : 오빠 돈 좀 없어요?
만수 : (방어자세) 뭔 돈.
지민 : 자현언니 통닭이라도 좀 사다줄려구요.
만수 : 그래? 아 그렇지 자현이가 고생하고 있대지. (주머니를 뒤져 동전들을 몇 개 꺼내놓으며) 그럼 나도 좀 보태야지.
내가 누구냐. 후배 아끼기를 마누라같이 하는 정만수 아니냐.
지민 : (동전 받으며 한심해서) 으유 관둬요. (일어나 문으로 가며) 대욱이 오빠 같이 안갈래?
대욱 : (부욱 인상쓰며 보기만)
지민 : 갔다 올게. (나가는데)
만수 : 야야 나도 같이 가줄게. 이왕 도와주는 김에 먹는 거 까지 도와줘야지이.
그들 나가고 난 뒤, 대욱 더욱 인상쓰며 두 다리를 테이블에 올려놓다가 의자가 뒤로 넘어질 뻔 한다.
S#35. 천막 옆 // 낮.
자현이 작업을 하고 있다. 카울에 페인트 작업을 하는 중이다.
날리는 페인트를 피해서 저만치의 지민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만수가 닭을 먹으며 닭에 페인트가 튈새라 들고 피하고 있다.
// 시간경과. 밤
자현이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 조립단계다. (바퀴 정도를 달고 있다고 하고) 나사를 조이고 있고.
경진이 그 옆을 따라다니며 뭔가 종알대고 있는데, 자현은 들은 척도 않는다. 차를 돌아가다가 경진이 막히자 밀어낸다.
경진 할 수 없이 이쪽으로 나온다. 거기 기다리던 정태와 민재를 향해 경진이 두 손을 들어보인다.
정태, 할수 없다는 듯 들고 있던 음료수 봉지를 옆에 놓아주고 물러선다.
// 시간경과. 아침
햇볕에 반짝거리는 나뭇잎... 정도 보이고. 어느정도 모양새가 이루어진 자동차.
그 바퀴에서 세세한 부분을 스케치하다가 위로 올라가면, 좌석에 웅크려 앉아 잠이 들어있는 자현. 그 얼굴에 햇살이 내리고 있다.
S#36. 발표회장 앞
학생들과 교수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들 사이로 박교수가 처장을 끌다시피 모셔온다.
처장 : 좀 있다가 회의가 있는데요. 이게 시간이.. (시계를 보는)
박교수 : 그래도 이건 보셔야 됩니다. 오늘 발표회를 갖는 학생중에 우리가 투자한 학생이 있거든요.
그거 기억나시죠? 5만원짜리 자동차 일년 무상수리권. 바로 그 학생이 발표를 하니까요.
과연 우리의 투자가 잘 되었던 건지..확인도 하고 응원도 해줘야지요.
S#37. 발표회장
병석이 OHP를 이용해 발표를 하는 중이다.
병석 : 125cc DOHC 엔진을 채용하여 제한된 엔진규모중 최상의 출력을 낼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운전자와의 교신을 위한 무선통신 시스템을 갖추고, 엔진이 뒤쪽에 배치된 후륜구동 방식을 택했구요..
회전을 용이하게 하기위해 디퍼렌셜을 장착했습니다.
[자막]
DOHC엔진(Double Over-Head Camshaft engine) : 흡기밸브와 배기밸브를 다른 축으로 구동시키는 출력이 높은 다밸브 엔진.
디퍼렌셜(differentials) : 차동기어-두축의 회전속도를 바꾸는 기어장치로 자동차선회시 두 바퀴의 회전속도를 다르게 함.
병석이 발표하는 동안 [기계과 자작자동차 발표회] 플래캐드 보여지고..
정교수와 승준의 모습.. 엔진랩의 대학원생들 모습도 보이고, 처장과 나란히 앉은 박교수.
저 뒤에 이교수가 조용히 들어서고 있다.
[시간경과]
병석이 서있던 자리에 자현이 발표중이다. 자현의 자작자동차가 서있다.
자현 : (OHP를 이용해 스크린을 가리키며) 엔진은 110cc two-stroke(투 스트로우크)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스프링댐퍼(spring-damper)의 스트로우크(stroke)를 작게 하여 코너링 성능이 좋게 했습니다.
[자막]
투스트로우크 엔진(two stroke engine) : 2행정 기관.
좌석의 앞부분에 앉아 자료를 넘겨보며 자현의 얘기를 듣던 정교수가 질문을 한다.
정교수 : 왜 2행정을 썼지?
자현 : 아무래도 이론적으론 2행정 엔진이 출력이 높아서..
정교수 : 그런데 다른 차에 비해 최고출력이 떨어지잖아.
자현 : 그건 다른차의 DOHC엔진이 튜닝이 잘되서 그렇습니다.
정교수 : (고개를 흔들며) 전혀 공학적인 답변이 아니군. 엔진 사양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겠어.
어쨌든..코너링 성능을 좋게 할거라면 디퍼렌셜도 같이 써야하지 않나?
자현 : 디퍼렌셜을 쓰지 않는 편이 오프 로드(off road)에서는 무리가 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정교수 : 자네의 서스펜션은 오히려 온로드에 촛점을 맞추어 설계된 느낌인데?
자현 :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코너링 등의 성능에서는 우수한..
정교수 : 자네 차는 설계개념이 뒤죽박죽이군. 정체불명이라고, 아이덴티티가 없어.
민재네 아이들과 참가인들..다들 자현을 보고 있다.
자현 : (할말을 못찾고) ...
정교수 : 이래서 올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겠나?
저 뒤에 앉아있던 이교수가 앞의 자현을 보고 있다.
자현 : (말없이 정교수를 보고 있다가) 이론이 아닌 실전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저의 자동차는 이미 제작이 끝났구요.
아무때라도 시험 주행을 할 수 있습니다.
S#38. 박교수 랩
남희와 지원, 진수 등이 자료를 함께 보며 의논을 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마이클.
마이클 : 오우 예. 에브리 빨리 나와요. 빨리빨리. 자현이 누나 카가 나왔어. 지금 나타났어. 지금 달릴거야. 무브 무브.
S#39. 교내 운동장
주변에서 학생들이 하나둘 구경을 위해 모여든다.
그들 가운데 정교수와 병석의 일행. 승준. 만수, 민재, 정태, 경진, 지민, 마이클의 모습도 보인다.
그 뒤로 지원이 남희와 다가오고. 진수도 오고. 그들 두리번거리다가 일제히 한 곳을 본다.
//저멀리 자현의 자작자동차가 달려온다. 물론 자현이 운전중.
이만치 바닥에 흰 선이 그으져있고, 그 선 옆에서 백곰이 속도계를 보며 서있다.
백곰의 뒤에서는 대욱이 그 속도계를 넘겨다 보고 있다.
자현의 자동차가 흰 선을 넘는 순간. 백곰, 속도계를 누른다. 대욱이 그 옆에서 그 속도를 기록한다.
// 최고속도 테스트
// 운동장의 둥근 라인을 따라 달리는 자현의 자작자동차.
속도를 높이며 운동장을 한바퀴 돈 다음, 자동차가 직선부분을 지날때 서있던 백곰이 속도를 잰다.
속도계의 눈금(숫자)이 점점 올라간다. 차속도가 더이상 올라갈수 없을정도로 정체값을 보이는 순간!
대욱 : (외친다) **킬로!!
백곰, 그 속도에 놀라 저멀리 멀어지는 자작자동차를 벙해서 본다.
//제동거리 테스트
// 달려오던 자현의 자작자동차가 정해진 라인에서부터 브레이크를 밟는다. 끼익...차가 완전히 정지한다.
대욱과 백곰, 브레이크를 밟은 선부터 차가 정지한 곳까지의 거리를 잰다.
//s자 주행성능
// 운동장에 파일론을 20m간격으로 세워놓고 총 200m를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를 테스트 하는 것.
백곰의 출발신호에 맞춰 자현의 자작자동차가 파일론을 비껴가며 s자로 달린다.
s자 주행을 하는 중 중간쯤에서 갑자기 우당탕거리며 멈추어버리는 자현의 자동차.
당황해하고 있는 운전석의 자현. 대욱과 백곰이 그쪽을 향해 달려간다. 백곰, 빨리 뛰지 못해서 뒤쳐진다.
대욱 : (헐레벌떡 달려와서) 어떻게 된거야?
자현 : (헬멧을 벗으며) 야 이거 그놈의 고물 오토바이 엔진 때문이야. (차에서 내려 차의 부품들을 살피며 어쩔줄을 몰라하며)
엔진이 마모가 많이 됐는지 힘을 못받길래 알피엠(rpm)을 올렸더니 냉각계통에 무리가 갔나봐.
녹킹(knocking)도 많이 나는거 같고..아무래도 피스톤이 늘러 붙은거 같은데...
대욱 : 그럼 뭐야. 차가 완전히 맛이 갔대는거야?
백곰 : (차를 두들겨보며) 그럼 이거 견인차를 불러야되는 거냐?
자현, 후딱 정교수가 있는 곳을 돌아본다.
보고 있던 정교수, 돌아서서 걷기 시작한다. 그 옆의 승준은 안스러운 듯 자현을 보다가 교수를 따라간다.
대욱 : 엔진 이상이면 이거 첨부터 다시 작업해야 되는 거 아냐?
자현, 들고 있던 헬멧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헬멧을 집어던지더니 정교수를 따라 뛰기 시작한다.
S#40. 캠퍼스 일각
숨가쁘게 정교수를 쫓아온 자현이 그 앞을 가로막으며.
자현 : 엔진이 싸구려였기 때문입니다. 설계에는 이상이 없었어요. 최고속도나 제동거리 테스트, 결과 보셨죠? 모두 최고칩니다.
기록을 했으니까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정교수 : 질문 하나 하지.
자현 : 예 교수님. (자세를 바로 하는데)
정교수 : 도대체 자넨 뭘 보여주고 싶은건가?
자현 : ... 예?
정교수 : 아직까지 자넨 내가 보고싶은 걸 하나도 못 보여주고 있어.
자현 : 물론 제가 뭘 하든 교수님 맘에 안드실 겁니다. 압니다. 그렇지만.. 전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정교수 : 자네 혼자 저 차를 만든 걸 지금 자랑이라고 하는건가?
자현 : (불끈해서) 전 정말 교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좀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정교수 : 자동차라는 건 혼자 만드는 게 아니야. 내가 강의 첫시간에 말하지 않았나.
요즘의 엔지니어 작업은 아무리 천재라도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어.
아무리 똑똑한 학생이라도 팀웍이 없으면 내 랩에선 받아줄 수 없단 얘기야. 이래도 이해가 안가나?
자현 : 그럼.. 그럼 그동안 저혼자 바보같은 짓을 해온겁니까? 웃기는 곰새끼처럼요?
정교수 : 그거라도 알게됐다니 다행이구만.
돌아서 가버린다. 좀 떨어져 다른 데를 보고 있던 승준이 자현을 돌아본다.
승준 : ...내 보기엔 교수님이 널 아주 아끼시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니?
자현 : (바닥만 내려다보는 자세로) 미안하지만 좀 꺼져줄래요?
승준 : (웃고) 나하고 정면 대결을 하고 싶다고 했지? 언제라도 좋아. 기다리고 있을게.
교수가 간 쪽으로 간다.
우두커니 서있는 자현의 저 멀리 뒤에서. 만수가 자현에게로 오려고 하자 민재와 정태가 말리며 만수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남희와 지원네도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고.
멈춰선 자동차 옆에서 백곰이 자동차를 이리저리 보고 있고. 그 옆의 대욱은 자현 쪽을 보고 있다.
자현, 여전히 그 자세로 서있다.
S#41. 이교수 연구실
이교수 차를 타고 있는데.
소리 : (노크소리)
이교수 : 네에.
문이 열리며 자현이 주춤주춤 들어서더니 꾸벅 절을 한다.
이교수 : 어서 와. 자동차 제작은 잘 되가니?
자현 : 아뇨. 완전히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교수 : 그래? (기색을 살피며) 그래서? 더 할말이 있어보이는데.
자현 : (불쑥) 이공계통에서 여자의 위치에 대해 여쭤보러 왔습니다. 교수님이라면 대답해주실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이교수 : (보다가) 차 마실래? 커피 끓여놨는데.
// (경과)
테이블에 놓여있는 빈 잔 두 개. 마주앉은 이교수와 자현.
이교수 : 내가 보기에도 정교수님이 널 특별히 아끼시는 거 같다.
자현 : 그럴..까요?
이교수 : 이공계통에 여자가 귀하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 그만큼 차별을 받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너처럼 여자란 소리 들을 때마다 가시를 세우면 어떻게 되겠니?
자현 : 무지하게 우습겠죠.
이교수 : (미소) 정교수님은 널 제대로 단련시키고 싶으셨던 거 같은데?
자현 : ...(우울..)
이교수 : 나도 비슷한 경험 있어. 여자라서 납땜질 못한다 소리 안들을려고 일주일 내내 납땜만 연습한 적도 있지.
(손을 펴보이며) 여기 어디 그 때 입은 화상이 아직 있는데..
자현 : 교수님께선 차별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하셨어요?
이교수 : 질문이 틀렸어.
자현 : 예?
이교수 : 차별은 받는 게 아니야. 차별을 느끼는 거지.
자현 : (보는)
이교수 : 내 말 이해되니?
자현 : ...예 쫌 이해됩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열받은 내가,
사실은 제일 나를 차별대우하고 있었다는 얘기지요?
이교수 : 머리가 좋구나. (웃는)
자현 : 알겠습니다. 알겠는데요. 그렇지만...
이교수 : 그렇지만 뭐.
자현 : 그래도 역시 분합니다. 자석을 이용한 전기자동차는 제가 먼저 생각해낸겁니다.
제가 4년만 먼저 태어났으면 그 강승준보다는 훨씬 먼저 만들어냈을 겁니다. 벌써 타고 다닐거라구요.
이교수 : 그래?
자현 : 틀림없습니다. 그 생각만 하면 머리루 열이 받치면서 자폭을 해버릴 거 같습니다.
이교수 : 그럼 풀어야지.
자현 : 풀어요? 어떻게요.
이교수 : 영화같은 데 보면 남자들끼린 그냥 붙어버리잖아.
자현 : 붙어요?
이교수 : 결투를 하는 거 말야. 그래서 하루밤낮을 주먹질하면서 싸우고 서로 지쳐 떨어질 때가 되면 맘이 풀어지고 그러든데.
자현 : (으잉? 해서 보는)
이교수 :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보며) 자신 없어?
S#42. 엔진 랩 내부
승준. 학생들 각자 일을 하느라고 바쁜데. 비장한 걸음으로 들어서는 자현. 똑바로 승준의 앞에 가 선다.
자현 : 안녕하십니까.
승준 : 어이. 오랜만이다.
자현 : (들고있던 신청서 종이를 턱 건네준다) 받으시죠.
승준 : (기름때 묻은 손을 바지에 닦으며 받는) 이게 뭔데.
자현 : 결투장입니다.
승준 : 뭐?
옆에서 일하던 몇 학생 돌아본다.
자현 : 결투가 뭔지도 모릅니까? 말 그대로 정면대결을 해보자 이겁니다. 시간은 거기 적혀있습니다.
설마 비겁하게 도망치는 건 아니겠죠? (주위 둘러보며) 여기 계신 선배님들이 증인이 되주셔야겠습니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꾸벅하더니 나가는)
승준 : 야. 어이 잠깐만. 어이..
몇걸음 쫓아나가다가 들고 있던 종이를 본다. 종이에는 [제 4회 KAIST 건강 달리기 대회 참가 신청서]라고 적혀있다.
S#43. 달리기 대회 출발점
대회용 흰 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모여들고 있다. 실제의 달리기 대회 시작 전의 모습들 이것저것 스케치.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달리기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나이 지긋한 교수들도 있고. 정리를 하고 있는 백곰도 보이고.
민재 정태, 만수, 마이클 등도 흰 셔츠를 입고 출발선으로 모여든다.
그러다가 민재가 정태를 툭 쳐서 한 곳을 보게 한다. 마이클도 그 쪽을 보고.
마이클 : 어 누나..
하고 가려는 것을 민재와 정태가 일제히 잡아서 세운다. 그들이 보고 있는 저만치에 흰 셔츠를 입은 자현과 승준이 보인다.
사람들을 헤치고 그 옆으로 다가오는 대욱. 괜히 승준과 자현의 사이로 끼어들어 자리잡는다.
// 출발선...
스타트 권총을 든 진행요원. 긴장하여 선 학생들.. 총이 울리고. 일제히 달려나가는 학생들.
S#44. 달리기 코스 일각
이하 달리기 대회의 여러 모습들. 교수님들이 달리는 모습이나 옆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민재와 정태 등이 다른 학생들 사이에 끼어서 앞을 다투는 모습도 보이고.
저 뒤로 만수가 배를 잡으며 점점 비틀거리며 서는 모습도 보이고..
그리고 그중에 거의 나란히 달려가는 자현과 승준, 대욱의 모습이 보인다.
자현, 옆의 승준을 보며 열심히 달린다. 셋다 기를 쓰고 달리고 있다.
// 캠퍼스 다른 일각
코너를 돌아오는 지점. 대여섯명의 남자애들이 그룹을 만들며 달려오는데 바로 그 뒤를 따라오는 자현과 대욱 승준의 그룹..
이제 모두 숨이 턱에 찬 상태다. 승준 괴로운 얼굴로 자현의 옆으로 붙으며.
승준 : 추자현.
자현 : 바쁜데 말시키지 맙시다.
승준 : (달리느라 헐떡거리며) 그거 아냐? 느네 기계과 몇 년 선배 중에 여학생이 있는데..
그 여학생이.. 달리기 대회에서.. 기계과 전체 우승을 했대.
자현 : 틀렸슴다.
승준 : 애들이 다 알던데.
자현 : 기계과 여!학생이 아니고.. 기계과 학생!이었겠죠. 그럼.. 먼저 갑니다.
자현 속력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대욱 괴로운 얼굴로 그 뒤를 쫓아 나아가며.
대욱 : 어이 좀 천천이 가. 진짜 일등할라고 그러는거야?
자현. 점점 더 앞으로 나아오며.. 뒤의 두 남자와 거리가 벌어지며 소리지른다.
자현 : 상관없어.
대욱 : (달려오며 잘 안들려서) 뭐라고.
자현 : 상관없다고오.
달리는 자현, 괴롭게 헉헉대는 그 얼굴에 점점 미소가 떠오르더니.. 활짝 웃는다.
S#45. 천막 외경 (에필로그 분위기. 음악과 엔딩 타이틀에 묻히며)
천막작업장 밖으로 들려오는 소리.
자현 : (E 답답하다는 듯) 야 양병석!! 이 답답한 놈아. 니네 엔진은 제값을 못하고 있대니까? 서스펜션이 너무 무르단 말야.
이게 안보이냐 이게?
시선, 천막작업장 안을 들려다보는 느낌으로 천막 안으로 들어가면. 자현과 병석이 논쟁중이다.
옆에서 병석이 팀 아이들이 둘의 논쟁을 지켜보고.
자현 : 그니까 앞쪽에 스프링-댐퍼(Spring-Damper)를 달아야된대니까.
병석 : 그러면 오프로드(off road)에서 차가 받는 충격이 커지잖아. 잘못하면 용접부위에 무리가 갈수 있다구.
자현 : 아유 이 꼴통! 그건 내가 계산해 봤는데 문제가 없어. 자 봐라 봐. (하면 종이에 뭔가 적어 내려간다)
병석 : (들여다보다가) 아이구 그게 아니지. (종이를 뺏어든다)
자현 : 내가 맞다니까아.
병석과 서로 종이를 뺏어들려고 실갱이하다가 어어어. 뭔가를 부수며 넘어지는 두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