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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비가 온 뒤에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따뜻한 옷차림으로 건강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림을 좋아하십니까? 혹시 가지런히 모은 손과 온화한 미소를 가진 그리스의 이상적인 여인을 묘사한 그림을 아십니까? 아니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눈썹 없는 여인을 아십니까? 바로 “모나리자”입니다. 누가 그 그림을 그렸습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렸습니다. 다빈치는 과학자요, 천문학자요, 지리학자요, 기술자요, 식물학자요, 심리학자요, 해부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몹시 불행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엄마는 일찍 죽고 아빠도 없어 할머니 손에서 길러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할머니로부터 위대한 믿음의 유산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그에게 항상 “하나님은 너와 항상 함께 하신단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그 믿음이, 그로 하여금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고, 외롭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당대에 뛰어난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도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함께 하여 주십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서만 함께 하여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디든지 함께 하여 주십니다. 무엇을 하든지 함께 하여 주십니다.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항상 함께 하여 주십니다. 건강할 때에나, 아플 때에나, 물질이 있을 때에나, 물질이 없을 때에나, 사업에 성공했을 때에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에나,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십니다. 홀로 있을 때나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나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여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심을 느끼셨습니까?
일주일동안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라는 고백을 한번 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인도자이시니 나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신다.”는 고백을 해 보셨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입술에서,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계시겠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에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기 위하여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32:10절에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얼굴 중에 이마, 코, 턱보다 더 안전한 곳이 눈동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보호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의 목자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때로는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는 우리가 머물러 있을 곳이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우리가 머물 곳이 아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지나가야 할 곳입니다.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지나와야 하는 곳입니다. 머물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계속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는 지나와야 하는데도, 지나오지 못하고, 매여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반드시 지나와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 정상을 정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추위와 고생, 죽음과의 싸움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한번 올라가라고 하면, 죽으면 죽었지, 안 올라간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산 봉우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산봉우리를 향하여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도 특징이 있습니다. 산 정상에서 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얀 눈으로 덮인 그 봉우리에서 집 짓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머물 곳이 아닙니다. 지나와야 하는 곳입니다. 그곳을 지나야, 멋진 곳을 만날 수 있습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수성찬을 만날 수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멘.
“내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게 하실 뿐만 아니라 원수를 만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우리의 가는 길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제거해 주시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시지 않고, 원수 앞에 나를 세우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상처 가운데 가장 힘들고 아픈 상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일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받는 상처는 우리 마음 속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우리 기억 속에 떠올리는 것조차도 힘겨운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해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신앙으로 살았던 사람에게도 원수가 있었습니다. 내 삶 속에도 아픔과 좌절을 가져오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풍습을 보면, 만약 어떤 사람이 원수에게 쫓기게 되면,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의 집으로 피신을 해야 합니다. 피신을 하게 되면, 원수가 추격해 오다가도, 이제 더 이상 그를 해칠 수 없습니다. 만약 집 안에까지 들어와서 피해를 주게 되면, 그 주인을 대적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도망자를 환대하여, 그에게 식탁을 배설하고, 그의 잔에다가 술을 따라 줍니다. 문 밖에서 도망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원수는 이 사람이 주인에게 귀빈으로 환대 받는 것을 보게 되면, 복수를 포기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강력한 권세를 가진 주인의 보호를 받은 이 사람은, 더 이상 원수에게 쫓길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사람들, 하나님을 피난처로 인정하고, 문제가 생기고 원수에게 쫓길 때, 또는 사람에게 시달릴 때,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고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보장을 해 주십니까? “원수를 박살내 버리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원수가 보는 앞에서 식탁을 배설하고, 잔치를 마련할 것이며, 우리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잔이 넘치도록 환대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원수에게 시달리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주인의 능력과 권력만큼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주님께 피하십시오. 주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의 산성이 되십니다.
시편 18:1-3절을 보면,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7:1-3절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왔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어쩌면 간신히 골짜기를 지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있는 힘을 다 써 버리고 지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골짜기를 빠져나왔는지도 모릅니다. 기력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일어설 힘도 없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원수 앞에서 진수성찬을 차려 주십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 850명을 다 죽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엘리야가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구차하게 도망치기보다는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그리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말하기를 “일어나서 먹으라”고 합니다. 눈을 뜨고 머리맡을 보니,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었습니다. 잠결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차려진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온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진수성찬을 차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진수성찬을 차려 주십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끝까지 순종하십시오. 순종의 아름다운 열매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진수성찬을 차려주시고, 그 다음에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그때 그 당시 중동 지방에서는 최고의 귀한 손님에게만 베푸는 대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이런 대접은, 원수 천만 명보다, 다윗이 더 귀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었지만, 부모마저 인정하지 않는 목동이었지만, 하나님 마음에 들어 왕이 되었고, 그의 집에는 온갖 좋은 것으로 넘쳤습니다.
목자가 양에게 기름을 바를 때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양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파리입니다. 파리가 귀로 들어가거나 코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양은 미쳐 날뛰게 됩니다. 나중에는 너무 견딜 수 없어서 자해하기 시작합니다. 죽기까지도 합니다. 또 해충들이 귀나 코 속을 은신처로 생각해 알을 까놓기도 합니다. 그러면 알이 귀나 코 속에서 기생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면 양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기름에다가 유황을 발라서 얼굴 부분에다 맛사지를 해 줍니다. 그러면 해충들이 이 냄새 때문에, 알을 까지도 못하고, 와서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예방용으로 기름을 발라 줍니다.
또 하나 기름의 용도는 치료용입니다. 상처가 났을 때 열을 식혀 주고 상처를 치료하는 역할을 합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 부음이 필요합니까? 성령의 기름 부음이 우리를 적들로부터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온갖 세상에 더러운 죄악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 기생하기 위해서 늘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 되신 주님은 매일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매일 기름으로 적셔 주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서 기도를 드릴 때마다 “주님 오늘도 내게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령으로 적셔주셔서 해충과 적들로부터 나를 보호하십시오.”라고 기도 드려야 합니다.
또 성령의 기름 부음은 상처를 치료하는 역할을 합니다. 구속의 날까지 우리는 성령의 인침을 통하여 보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적으로 매일 새롭게 기름부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매일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은 사랑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처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적인 사랑과 지지의 결여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기름 부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부터, 우리의 상처는 치료되기 시작합니다. 당당한 삶을 살기를 시작합니다.
맥스 루카이도라는 분이, 시편 23편을 가지고 “짐을 버리고 길을 묻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트리니다드 로비고’라는 조그만 나라의 토바고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한센병 환자(나병환자,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이 환자의 이야기는 그 섬에 전도여행을 갔던 한 단기선교사에 의하여 알려졌습니다. 이 선교사가 선교여행을 끝내기 전날,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가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함께 부르고 싶은 찬송이 있으면, 누구든지 이야기 하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여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여인의 얼굴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주 끔찍한 얼굴이었습니다. 귀도 떨어져 나가 없고, 코도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입술은 다 말려 들어가 있었습니다. 손가락도 다 떨어져 나간 뭉툭한 손을 번쩍 쳐들고 부르고 싶은 찬송가를 요청했습니다.
여러분! 이 한센병 환자가 부르자고 한 찬송가가 무슨 찬송인지 아십니까? 찬송가 429장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찬송이었습니다.
1.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2. 세상 근신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3. 세상 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니 염려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후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선교사님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다 부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제 다시는 그 찬송을 못 부르실 것 같아요”
그때 선교사님은 대답했습니다.
“그럴지 않아요. 다시 부를 수 있을거예요. 그러나 그분과 똑같이 부를 수는 없을 거예요.”
인기와 부를 누리면서, 수십 억 짜리 집에 살면서도, 기쁨과 감사가 없는 사람, 수없이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와 코,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어도, 받은 복을 세어보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도 그렇게 받은 복을 세어보며 찬송하며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축복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멘.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러분! 다윗이 살던 시대에 ‘넘치는 잔’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고대 동양의 집주인들은 잔을 가득 채워줌으로써 손님에게 ‘환영’을 표현했습니다. 잔이 계속 차 있는 손님은, 주인이 자신을 반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니 잔이 빈 채로 그냥 있다면, 어떤 신호겠습니까? “시간이 늦었으니 슬슬 일어나시죠?”라는 주인의 신호입니다.
손님과의 자리가 정말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주인은 잔이 넘치도록 가득가득 채워줍니다. 포도주가 잔 위까지 차올라도 멈추지 않습니다. 잔을 타고 넘어 식탁을 적실 때까지 계속 부어줍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떤 삶을 살아야 넘치는 삶이 될 수 있을까요?
주로 여름철에 보면, 해수욕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듭니다. 발디딜 틈이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입니다. 해수욕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일년 내내 그 자리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아닙니다. 그 짧은 기간,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합니다. 그곳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여름 한 철 벌어서, 1년 내내 먹고 산다고 합니다. 그들은 여름 한 철 돈 벌고 겨울에는 뭘 할까요? 다른 일을 열심히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어느 분들은 여름에는 벌고, 겨울에는 술 마시고, 도박으로 탕진해 버린다고 합니다.
태백에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고랭지 배추입니다. 귀네미라는 곳에 가면, 온통 산비탈에 배추밖에 없습니다. 태백 자체가 고지대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 배추를 심어도, 바로 고랭지 배추입니다. 그러나 그 귀네미라는 곳에서 재배되는 것이 진짜 고랭지 배추입니다. 배추농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배추를 심고, 팔 때에, 때를 잘 만나 잘 팔면, 3년을 놀고 먹어도 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배추 농사로 번 돈을 사북에 있는 카지노에 가서, 다 탕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많은 돈을 벌지만, 잘못된 행위로 인하여, 그 많은 돈을 일순간에 다 탕진해 버립니다. 돈이 아무리 많았다 할지라도, 이러한 삶을 보고, 넘치는 축복을 받은 삶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삶을 살펴보면, 다윗을 방해하고, 죽이고,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고, 죽이고, 상처를 주고,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가난도 때로는 우리에게 원수가 될 수 있고, 우리에게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질병도 때로는 우리에게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께서 우리에게 상을 차려 주신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수를 바라보고, 지레 겁을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가난을 바라보고, 질병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원수 사탄 마귀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 앞에 상을 차려주십니다. 푸짐한 상을 차려 주십니다. 기름으로 부어 주십니다. 그리할 때,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잔을 넘치게 부어주시는 걸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넘치는 잔’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입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고백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은혜와 사랑, 평안이 차고 넘친다는 말입니다.
잔의 맨 위까지 가득 차 올라 넘쳐흐른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잔이 작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담기에, 우리의 잔은 항상 작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잔을 내밀어도 하나님은 더 풍성하게, 더 많이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에 차고 넘칩니다.
미국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님이 교회를 처음 개척할 당시입니다. 목사님이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빚의 목록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절친한 부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 부자 친구는 척 스미스에게 약간의 돈을 부칠테니, 필요한 곳에 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부자 친구가 부친다는 돈의 액수가, 빚보다 조금 더 많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부인을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음 속에서 “스미스야, 네가 왜 덩실덩실 춤을 추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척 스미스는 “예, 친구가 기도 응답으로 돈을 보낸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춤을 춥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렇다면 너는,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도와주고 인도할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에 대해서는 감사해 보았느냐, 춤을 춰 보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보이는 재물, 보이는 사람이 더 좋은 목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재물이, 인간이 목자가 될 때는 언제나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시면 더 이상 부족함이 없습니다. 온 천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그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 주시는데, 어떻게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한 분이시면 족합니다. 그분을 목자로 모시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넉넉합니다. 충분합니다. 참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물가의 여인처럼 헛되고 헛된 것들을 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헛되고 헛된 것들을 찾았던 것처럼, 헤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고 말씀하실 때, 주님께 나옴으로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맘껏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그 넓은 품 안에 안겨,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맘껏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어 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으로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23편을 설교하면서, 두 번째 시간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해 드립니다.
미국의 어느 큰 회사에서 사장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후임 사장님을 모셔야겠는데, 이사회에서는 오랜 시간 숙의 끝에, 아주 파격적인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통인 경우, 부사장이나 전무가 사장이 되는데, 회사의 이사회에서는 수천 명의 사원의 근무 성적을 조회해서 가장 유능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통솔력이 탁월하고, 인간관계가 원만한 청년 사원을, 일약 사장으로 옹립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이보다 큰 출세가 어디 있으며, 영광이 또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사장으로 취임하여, 큰 회사의 사장 자리에 앉고 보니, 밖에서 보던, 그렇게 좋은 자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물건 많이 만들어야만 하고, 또 재고 없이 판매해야지요, 수천 명의 사원 중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지요,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을 쓰다 보니, 밤에 잠도 잘 오지 않고, 밥맛도 없어지고, 의욕이 줄어들고, 자신감이 사라져 결재를 하려하면, 두려움이 앞서서, 사인을 할 때, 손이 떨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 사장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치료의 진전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데, 하루는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이 사장에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제가 최선을 다해 치료해 드리고 있습니다마는 좋은 분 한 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그 분을 만나 뵈면 사장님에게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선생님, 그분이 누구신데요?” “예, 그분은 찰스 알렌이라는 목사님이십니다.”
이 사장님은 정신과 의사님의 소개를 받고 회사 비서실에서 연락을 하여 약속을 받고 약속한 그 날에 회사 자가용 비행기로 텍사스 휴스톤에 있는 감리교 목사 찰스 알렌을 찾아갔습니다.
젊은 사장의 사정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알렌 목사님은 조그마한 종이에 처방을 하나 써 주면서, 말했습니다.
“사장님, 여기 도움이 될 수 있는 처방을 섰는데 성경 시편 23편을 하루에 다섯 번씩 읽으세요, 일어나자마자 한번, 조반 잡숫고 한번, 점심 드시고 한번, 저녁 잡수시고 한번, 그리고 주무시기 전에 한번 읽으세요. 잘 아시는 말씀이니까, 빨리 빨리 읽으실 수도 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마시고, 천천히 한 글자 한 단어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음미해 가면서 읽으세요. 그리고 사장님이 바쁘실 터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좀 시간이 있을 때, 다섯 번 읽으면 되지 않겠나? 하시런지 모르는데, 그렇게 하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가령 하루에 약을 다섯 봉지 먹어야 하는데 식전에, 조반후, 점심후, 저녁후, 취침전에 한 봉지씩 먹어야 할 약을, 바쁜데 그럴 것 뭐 있나 시간 있을 때 먹어야지 하면서, 다섯 봉지의 약을 한 봉지에 털어 넣어 먹고, 물 마시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시키는 대로 반드시 하세요.”
이 젊은 사장은 알렌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일어나자마자 한번, 조반 먹고 한번, 점심식사 하고 한번, 저녁 들고 한번,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번, 이렇게 하루에 다섯 번씩 시편 23편을 정독했습니다. 그랬더니 일주일을 계속하는 동안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음이 평안 하니까, 밤에 잠을 편히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을 잘 자니까, 피곤이 덜해지고, 의욕이 생기고, 밥맛이 좋아지고, 확신이 생기니까, 최종 결정을 해야 할 때, 한번 사인을 할 때도 힘있게 할 수 있어 큰 회사를 잘 운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남모르는 고민이 있습니까? 범사에 자신이 없으십니까? 밤에 잠이 오지 않으십니까? 밥맛이 없으십니까? 의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고, 염려와 근심에 사로 잡혀 있는 분이 계십니까? 찰스 알렌 목사님의 처방을 하번 따라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틀림없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심령이 치료받는 것을 체험하게 되실 줄 미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
저도 이 처방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우선 일주일 동안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 일주일 동안 시편 23편을 복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한번, 아침 먹고 한 번, 점심 먹고 한번, 저녁 먹고 한번, 그리고 잠들기 전에 한번, 정성껏, 때를 맞추어서, 복용해보시기 바랍니다.
목자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 주실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시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도자이시니 나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발라 주시니,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