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김씨(三陟金氏)
삼척김씨의 연원 삼척김씨(三陟金氏)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를 원조로 하여 신라제56대 경순대왕(敬順大王)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삼척군(三陟君)에 책봉(冊封)되어 관향(貫鄕)을 삼척(三陟)으로 하였으며, 김추(金錘)는 김알지(金閼智)의 29세손이다. 본관지 연혁 삼척(三陟)의 옛이름은 실질국(悉直國)이었는데 통일신라 파사왕(婆娑王)때에 항복하여 지증왕(智證王) 6년 실직군주(悉直軍主)를 두었다가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삼척군(三陟郡)으로 하였다. 조선조 태조 2년에는 목조(穆祖:태조고조부) 비(妃)의 외가 고을이라는 이유로 부(府)로 승격시켰고, 태종(太宗) 13년에 도호부(都護府)로 하였다 주요 세거지 경순대왕(敬順大王)이 나라를 고려에 손국(遜國)한 뒤 고려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樂浪公主)와 결혼하여 낳은 여덟째 아들인 김추(金錘)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歷任)하고 삼척군(三陟君)에 봉(封)하여지므로서 세거하게 되었다. 강원도 삼척성(城)을 위시하여 그 일대와 평안도 중원군, 함경도 북청, 경기도 양주군 및 용인군 일원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씨족의 역사 신라 제56대 경순대왕(敬順大王)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삼척군(三陟君)에 봉(封)하여져 자손들이 관향(貫鄕)을 삼척(三陟)으로 하였으며 그의 외아들 위옹(渭翁)이 검교사농경(檢校司農卿) 겸 어사대부(御史大夫),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상주국(上柱國) 좌승상(左丞相)에 이르렀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록(冊祿)되어 실직군(悉直君)에 봉(封)하여졌다가 고려왕실에서 경순대왕(敬順大王)의 후손(後孫)으로는 유일(唯一)하게 실직군왕(悉直郡王)으로 책봉(冊封)되면서 그 일대를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아 지배 하였다. 그의 장남 김자영(金自英)은 배륭교위(陪隆校尉) 차남 자남(自男)은 삼중대광 태사(三重大匡太師)였고, 5세손 복영(僕永)는 관찰사(觀察使), 승련(承鍊)은 사공(司空:정1품)을 지냈고, 6세손 정위(正位)는 동래부사(東來府使), 7세손 자주(自柱)와 10세손 윤성(允成)은 대장군(大將軍), 정휘(正暉)는 도통사(都統使) 대장군(大將軍), 산수(山壽)는 안동부사(安東府使), 11세손 득강(得江)은 간의대부(諫議大夫), 해(偕)는 호부상서(戶部尙書), 응(膺)은 상장군(上將軍) 등을 역임(歷任)하였고, 인궤(仁軌)는 충열왕(忠烈王) 16년(1290년)에 합단적(哈丹賊)의 칩임시 호군(護軍)으로서 왕(王)을 호위(護衛)하여 많은 공(功)을 세워 가야향(加也鄕)을 춘양현(春陽縣)으로 승격(昇格)시켜 주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도 11세손 천봉(天奉)은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13세손 익정(益精)은 이부상서(吏部尙書), 학(鶴)은 전의감(典醫監), 광연(光鍊)은 전리판서(典理判書), 광유(光裕)는 중랑장(中郞將), 14세손 충민(忠敏)은 한성판윤(漢城判尹), 미(美)는 대사간(大司諫), 15세손 성경(成慶)은 안동대도호부사(安東大都護府使) 욱(郁)은 병조판서(兵曹判書), 중순(仲淳)과 계순(季淳)은 상장군(上將軍), 말순(末淳)은 군자정감(軍資正監) 등을 역임하였으며, “삼척김씨(三陟金氏)는 충절의 기개는 조선조에 와서도 이어져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중순(仲淳)은 단종손위(端宗遜位)를 보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려장망혜(藜杖芒鞋)로 여생(餘生)을 마쳤다”는 기록이 상장군(上將軍) 김공묘갈(金公墓碣)에 적혀있다. 삼척김씨(三陟金氏)의 역대 주요인물로서 김병충(金秉忠)을 빼 놓을 수 없다. 중종반정때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과 분의결책(奮義결策)하여 연산군(燕山君)의 혼정(昏政)에 반기를 들어 중종반정을 성공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정국공신(靖國功臣) 107명중의 한분이다. 중종조에 동래부사(東來府使)를 지낸 김양필(金良弼)도 자랑할 만한 인물이다. 삼포왜란(三浦倭亂)때 큰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고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경상도절제사(慶尙道節制使) 겸 동래부사(東來府使)로 부임 그 치적이 주민의 함송(咸頌)하는 바 있었다고 한다. 그의 동생인 김양보(金良輔)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분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중 어가(御駕)를 의주(義州)까지 호송(護送)하였다가 환어(還御)도 함께 한 공(功)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었고, 척주군(陟州君)에 봉(封)해졌다. 조선조(朝鮮朝) 건국 초의 원종공신(原從功臣) 봉열대부(奉列大夫)였던 김성고(金成告), 목릉(穆陵)의 용사역(龍蛇役)에 공(功)을 세워 순충보조공신(純忠補祚功臣)으로 추증(追贈)된 김론동(金論仝)과 임진왜란(壬辰倭亂) 중 왕자사부(王子師傅)로서 왕(王)을 호송(護送)한 공(功)으로 충근정량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으로 책록(冊祿)되어 진성군(眞城君)으로 봉(封)하여진 김기문(金起文) 등을 향사(享祀)하는 삼공신묘(三功臣廟)는 충의(忠義)가 가치기준이 되었던 그 시대의 상징적 존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조를 개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개국2년(開國2年)에 고조부(高祖父)인 이안사(李安社)와 비(妣)를 목조대왕(穆祖大王)과 효공왕후(孝恭王后)로 추존(追尊)하면서 목조대왕(穆祖大王)이 부모와 같이 효공왕후(孝恭王后)의 진외조부인 11세손 김인궤(金仁軌) 가문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으면서 거주(居住)하였던 삼척군(三陟郡)을 부(府)로 승격(昇格)시키면서 고려조(高麗朝)에서 호군(護軍) 전객령(典客令) 전법총랑(典法摠郞), 조현대부(朝顯大夫)를 역임(歷任)하였던 김인궤(金仁軌)를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추봉(追封)하고 삼척시 미로면 노동에 있는 5대 조부(祖父)인 이양무(李陽茂)의 묘(墓)와 미로면 동산리에 있는 비(妣)의 묘(墓)를 준경릉(濬慶陵)과 영경릉(永慶陵)으로 높이고 양릉(兩陵)에 매년 명절시 참례(參禮)하여 제(祭)를 올릴 수 없으므로 친히 사용하던 관복대(官服帶)인 홍서대(紅犀帶)를 삼척부사(三陟府使)에게 하사(下賜)하고 부사(府使)로 하여금 동 홍서대(紅犀帶)를 착복대(着服帶)하여 제(祭)를 대행(代行)케 하여 오다가 영조(英祖) 23년(서기 1747년)에 왕명(王命)으로 홍서대(紅犀帶)를 삼척김씨(三陟金氏) 종중(宗中)에 하사(下賜)하였다. 홍서대(紅犀帶)는 강원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삼척김씨(三陟金氏) 보본단(報本壇) 경내(境內) 보대운한각(寶帶雲漢閣)에 소장(所藏)되어 있다. 또한 태종원년(太宗元年)(서기 1400년)에 왕(王)의 전교(傳敎)로 신라경순대왕(新羅敬順大王)의 후손(後孫)을 대대(代代)로 보살피고 그 자손(子孫)을 녹용(錄用)하며 비록 지서(枝庶)라도 군보(軍保)에 정하지 말며 사태(沙汰)시 동원(動員)하지 말고 고강(考講)할 때 강례(講例)에 들지 않도록 정녕(丁寧)하게 신칙(申飭)하시었다. 그 후에도 선조(宣祖:1567년~1608년) 효종(孝宗:1649년~1659년)왕때도 같은 교지(敎旨)를 하였다고 규장각소장도서(奎章閣所藏圖書 상백고 929.2G429)인 김씨소원록(金氏溯源錄)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항렬표
역대 주요인물 ▲고려조
김 추(金 錘): 문하시중,봉삼척군 김위옹(金渭翁): 삼한벽상공신.사농경.어사대부상주국좌승상.봉실직군 그후 군왕(郡王)으로 책봉(冊封)되었다. 김자영(金自英): 배륭교위 김자남(金自男): 삼중대광 태사 김광립(金光立): 병부시랑 김승련(金承鍊): 사공 김정위(金正位): 지부사 김지서(金之瑞): 시랑 김자주(金自柱): 간의대부 김 명(金 明): 간의대부 김 돈(金 暾): 사간 김 휘(金 暉): 문하시랑 김량좌(金良佐): 병조참정 김중윤(金仲允): 중랑장 김효선(金孝先): 삼사좌윤 김 현(金 鉉): 부정 김리생(金理生): 중랑장 김 보(金 寶): 공조참판 김 중(金 仲): 충열왕.을미.국자제주 김원의(金元義): 중랑장 김양공(金良공): 장군. 김득상(金得祥): 사천병마사 김신기(金神器): 판의금 김 소(金 沼): 중직대부.봉화현감 김광련(金光鍊): 내서사인 김윤성(金允成): 대장군 김정휘(金正暉): 도통사.대장군. 김흥달(金興達): 사직 김부로(金府老): 병조참의(호장) 김 손(金 遜): 병부령. 김산수(金山壽): 안동부사(호장) 김인궤(金仁軌): 조현대부.전법총랑, 전객령.추봉 금자광록대부.문하시중 김의궤(金義軌): 문하시중 호부상서 김 유(金 儒): 함양부사. 합문지후. 김 해(金 偕): 호부상서 김 이(金 理): 지정주사 김 응(金 膺): 상장군 김 충(金 冲): 비순위보승중랑장 김 수(金 隋): 대호군 김천봉(金天奉): 좌군사정 태조개국원종공신 김득강(金得江): 간이대부 김필적(金弼迪): 병부령 김 휴(金 休): 대장군 김수광(金粹光): 중현대부 종부령 김 관(金 琯): 중현대부 위위윤치사 김 경(金 瓊): 시중랑. 호조판장. 김 좌(金 佐): 호조판서 김익정(金益精): 이부상서 김 위(金 偉): 지양주사.진성군 김 학(金 鶴): 중직대부 태의감정 김광연(金光縯): 전리판서 중랑장 김광수(金光粹): 호조판장.지군사. 이조참의 김광유(金光裕): 관창신교위 비순위겸후령 중랑장
▲조선조
김 영(金 泳): 금자광록대부.밀직사. 평장사 김신언(金臣彦): 중정종부령 김 흥(金 興): 상장군. 지양주사 김충신(金忠臣): 전서 김충민(金忠敏): 문과. 한성판윤 김성고(金成告): 원종공신 봉열대부 김성경(金成慶): 문과.안동판관.안동대도호부사 김충경(金忠敬): 직제학 김 욱(金 郁): 병조판서 김 창(金 敞): 문.숙천도호부사 김천주(金天柱): 보공장군 김월주(金月柱): 개성유수 김 구(金 臼): 문주서.일운지부사 김 미(金 美): 단종조 대사간 언사오지좌천 평양.복거상원불복취사. 김승달(金承達): 안동부사 김언필(金彦弼): 충순위 김계손(金繼孫): 보공장군 김 모(金 貌): 문과. 현감.이조정랑 김원윤(金元潤): 문과. 부사. 예빈정 김원신(金元信): 사옹원정 김효기(金孝奇): 가선대부 한성부판윤 김도남(金圖南): 공조참의 한성부판윤 김승준(金承俊): 승정원 우승지 사헌부 지평 김흥도(金興道): 지부사 김서보(金瑞寶): 문과 사재감정 연천현감 김정완(金政琓): 안동부사 김 중(金 重): 평안감사 김수인(金守仁): 무과. 행 단천군수 김순두(金順斗): 선략장군 병마만호 김중순(金仲淳): 상장군 김계순(金季淳): 상장군 김말순(金末淳): 군자감정 김종순(金終淳): 적순부위 김란손(金蘭孫): 정국원종이등공신. 별시어상장군. 김장수(金長壽): 중랑장 김중란(金重蘭): 사복사정 이조참판 김호문(金好文): 충성보리공신. 좌찬성 김자의(金自義): 단종조.장예원판결사 김중강(金重江): 좌승지 겸 참찬관 김백년(金栢年): 조덕랑 김응시(金應時): 예빈정 김 염(金 濂): 조산대부. 주부 김응거(金應거): 효력장군 김언세(金偃世): 어회장군 김 좌(金 佐): 호조판서 김한복(金漢福): 조선 부사 김중신(金重信): 통덕랑 김수영(金水永): 통덕랑, 겸 부총관 김필동(金弼東): 군자감정 김일찬(金一贊): 공조참의 김명숙(金命淑): 한양좌윤 김은철(金殷哲): 어모장군 김존호(金尊鎬): 부승지 김 함(金 涵): 통훈대부 군자감정 김대수(金大守): 공조참의 김종익(金宗益): 통정대부 부호군 김구령(金龜齡): 예조판서 김응벽(金應壁): 통덕랑 김성국(金成國): 통덕랑 김사경(金士慶): 부사 김행직(金行稷): 절충장군 김동귀(金東貴): 중추부 첨지사 김계일(金啓日): 통훈. 군자감정 김직선(金直善): 공조참의 김은만(金銀萬): 가선.한성부좌윤 김 혜(金 혜): 무.선전관, 진무. 원종공신 김 전(金 鐫): 진무.원종공신 금위장군행선전관내금위장 김석조(金錫祚): 의정원 좌승지 김익수(金翼洙): 승정원 좌승지 김상현(金祥炫): 오위장 김시욱(金時旭): 가선 오위장 김영하(金永河): 가선, 절충장군, 행용양위, 오위장 김효범(金孝範): 병절교위 한성부좌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 김익량(金益亮): 통덕랑 김제하(金濟河): 선략장군 김재선(金在善): 선략장군 김태국(金泰國): 죽산현감. 원주목사 김언륜(金彦倫): 진주군수 김한백(金漢伯): 부호군 이효행사 김득례(金得禮): 절충장군 김현탁(金鉉鐸): 군자감정 김취련(金就鍊): 통덕랑 김개진(金介珍): 군자감정 김복립(金復立): 공조참의 김한필(金漢弼): 지평해군사 김명길(金命吉): 숭록대부 예조판서 김 형(金 瀅): 효력교위 김용지(金用砥): 내금위장 김 이(金 怡): 영의정. 좌찬성. 김중항(金重恒): 조선 좌승지 김만적(金萬績): 중추부사 김예순(金禮順): 좌부승지 김명종(金命鍾): 중랑장 김찬정(金粲玎): 좌승지 김 한(金 漢): 좌승지 김용수(金瑢壽): 중추원 의관 김영하(金永河): 오위장 김조원(金潮源): 호조판서 김보순(金普淳): 호조참판 김유순(金裕淳): 호조판서 김병규(金秉奎): 오위장 김상현(金祥炫): 오위장 김일태(金日泰): 조선 통훈.사복사정 김중진(金重珍): 통덕랑 김서정(金瑞鼎): 통덕랑 김근만(金勤萬): 용양위.부호군 김귀업(金貴業): 통덕랑 김종택(金宗澤): 통훈대부 사복사첨정 김중하(金重河): 오위장 김동해(金東海): 중추원의관 김복경(金福景): 공조참의 김현빈(金鉉彬): 호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 김윤돈(金允暾): 선전관. 진무원종공신. 김흥만(金興萬): 통덕랑 김학도(金學道): 조선 한성좌윤 김상노(金相老): 용양위절충장군 김상철(金相喆): 부호호군 김기문(金起文): 문 군수 진위김씨시조. 김경손(金景遜): 조선 공조좌랑 김선광(金先光): 무 절충부사직.임진란순절언 김 학(金 鶴): 삼청수문장, 겸 선전관.군자감부정, 부호군 김상준(金尙俊): 한성부좌윤 김시약(金時躍): 선략장군, 행 용양위사과. 김성모(金星模): 한성부좌윤 김해만(金海萬): 공조참의 김 감(金 鑑): 호조참의 김빙길(金憑吉): 군자감정 김정일(金鼎一): 절충장군 김기방(金起邦): 만호, 훈련원주부 김삼록(金三錄): 만호, 훈련원주부 김여영(金麗英): 조선 군수 김근호(金根鎬): 좌승지 김 벽(金 辟): 선략장군 김찬중(金瓚重): 부호군 김하서(金夏瑞): 장락원정 김양필(金良弼): 조선 경상좌도우후 겸 동래부사 김 훈(金 勳): 사복사첨정 김원길(金源吉): 좌승지 김량보(金良輔): 조선 가선대부. 의금부동지사.호성삼등공신 한성판윤.척추군으로책봉 김 직(金 稷): 중추부 지사 김 열(金 烈): 내금위별장 김응서(金應瑞):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김하중(金夏重): 사복사정 김흥일(金興一): 호조참판 김주호(金周鎬): 공조참판 김원욱(金源旭): 오위장 김수한(金守漢): 부호군 김갑연(金甲演): 조선 절충장군 행 용양위부호군 김지익(金智翊): 부호군 김창익(金昌益): 군자감정 김사운(金士雲): 공조참의 김자정(金自정): 공조참의 김사문(金士文): 형조참의 김임익(金任翼): 승정원 좌승지 김천성(金天星): 절충부호군 김흥도(金興道): 통훈대부 군자감정 김덕윤(金德允): 통정부 호군 김태삼(金泰三): 절충부 호군 김성수(金聲壽): 절충장군. 행 용양위부호군 김 율(金 율):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 김 미(金 亹): 문. 지평. 좌승부 겸 경연참찬관, 첨지중추 부사 김순생(金順生): 어회장군, 훈련원첨정, 임진난때 재공선무 원종공신이등, 공신록권 김 개(金 玠): 온성부사 김론동(金論仝): 부사직 김기문(金起文): 왕자사부. 임진록충근정량효절. 갈성협책. 호성삼등공신.숭록대부 진성군으로 책봉 김응적(金應迪): 조봉대부 김원형(金源衡): 광제원위원 김서흥(金瑞興): 조선 군수 김필중(金弼重): 만호 김긍호(金兢鎬): 오위장 김원목(金源穆): 호조참의 김원업(金源業): 도정 김식중(金湜重): 조선 선략장군, 행 충무위부사직, 사과 김 표(金 彪): 부호군 김봉영(金鳳榮): 조선 승정원 좌부승지 김일표(金日杓): 사복사첨정. 조산대부 김응한(金應漢): 이조참판 겸 승정원 좌부승지 김동탁(金東鐸): 경상도 산성별장 김석호(金奭鎬): 조선 돈영부 도정 김흥수(金興琇): 호조참의 김용조(金龍祚): 절충부호군 김흥빈(金興斌): 오위장 김흥학(金興鶴): 이조참판 김진호(金震鎬): 오위장 김양호(金良鎬): 호조참판 김원도(金源道): 동지중추 부사 김원목(金源睦): 오위장 김준영(金駿榮): 중추원 의관 김기영(金麒榮): 중추원 의관 김준영(金俊榮): 조선 절충부 호군 김점봉(金點鳳): 절충 겸 오위장 김기영(金琪榮): 조봉대부 김종철(金宗喆): 군자감정 김세영(金世榮): 오위장 김문덕(金文德): 오위장 김기복(金起福): 절충장군 김 걸(金 傑): 조선 울진포수군 만호 김락도(金洛度): 오위장 김락준(金洛駿): 통덕랑 김병록(金秉祿): 오위장 김세창(金世昌): 절충부 호군 김필중(金弼仲): 절충부 호군 김 명(金 命): 선략장군, 행 훈련원판관 김구중(金九重): 평해군수 김좌호(金佐鎬): 사헌부 지평 김몽량(金夢良): 중추부 첨지사 김익제(金益濟): 훈련원 첨정 김원식(金源式): 성균관 진사 중추원 의관 김원욱(金源彧): 중추원 의관 김귀영(金貴榮): 중추원 의관 김 선(金 瑄): 건공장군 김 성(金 誠): 장단부사 김덕제(金德悌): 사헌부 지평 김주은(金周殷): 조선 진위장군 김상은(金商殷): 한성판윤 김하은(金夏殷): 진위장군 행 충좌위 부호군 김성탁(金聲倬): 충좌위 부호군 김익창(金益昌): 사복사정 김운태(金雲泰): 사복사정 김춘택(金春澤): 절충부 호군 김필호(金弼鎬): 승정원 좌승지 김석태(金碩泰): 사복사정 김일선(金一善): 공조참의 김막천(金莫天): 조선 군자감정 김원태(金源台): 자. 경백, 호. 석파, 유림학자 효행, 관혼상제 예의문집 6권 편저 김차영(金次永): 공조참의 김형선(金炯善): 숭정동추 김응도(金應濤): 공조정랑 김진학(金鎭學): 감찰 김진록(金鎭祿): 이조참의 김세장(金世章): 조선 절충장군 겸 중추부 첨지사 김천흥(金天興): 공조참의 김성기(金聖基): 용양위 호군 김성우(金聖佑): 호군 김경원(金景元): 부호군 김상구(金相九): 조참의 김덕용(金德用): 부호군 김성순(金聖淳): 좌승지 김광모(金光模): 절충부 호군 김은조(金殷祚): 조참판 김 휴(金 烋): 조선 어회장군 김찬제(金贊濟): 절충장군 김중석(金重碩): 창신교위 김언립(金彦立): 사복사정 김 장(金 章): 조선 영주군수. 군자감정 김숭삼(金崇三): 정선군수 김귀선(金貴善): 여절교위, 용양위 부사과 김만린(金滿麟): 고부군수, 안동부사, 한성부좌윤 겸 내금위장 김광로(金光老): 성리학자 유고 김만홍(金滿弘): 헌군수 김기중(金器重): 통덕랑 김형도(金亨道): 통덕랑 김원관(金源寬): 승정원 좌부승지, 참찬관 김흥수(金興洙): 사헌부 지평. 예조참의, 사헌부 대사헌 겸 동지사 김인호(金仁鎬): 용양위 부사과 오위도총부경력, 대호군 김달호(金達鎬): 사헌부 감찰. 예조정랑 김원탁(金源鐸): 중추원 의관 김한명(金漢明): 절충장군 행 중추원 첨지사 김갱환(金갱桓): 용양위 상호군. 절충장군, 공주. 전주. 상주, 진영장 김재환(金在桓): 정략장군. 훈련원 첨정 김의영(金義榮): 합병일등통역관.초대장성우체국장. 김왈호(金曰鎬): 조선 한성좌윤 김원경(金源慶): 오위장 김치호(金致鎬): 오위장 김원형(金源亨): 중추원 의관 김용호(金鏞鎬): 중추부사 겸 오위장 김한영(金漢榮): 통덕랑 김흥봉(金興鳳): 한성부좌윤 겸 오위도총관 김장교(金章敎): 호조참의 김영교(金永敎): 호조참의 김상하(金尙河): 승지 김구하(金龜河): 동추 겸 오위장 김경하(金敬河): 돈영부 도정 김원만(金源萬): 중추원 의관 김덕하(金德河): 비서승 김좌교(金佐敎): 조선 승정원 부승지 김순호(金順鎬): 오위장 김구석(金龜錫): 군자감정 김구일(金龜日): 통덕랑 김대영(金大榮): 공조참의 김형석(金炯錫): 이조정랑 김내교(金乃敎): 공조참의 김시영(金時榮): 이조판서 김민호(金珉鎬): 이조참판 김성숙(金聖淑): 조선 오위장 김의찬(金義燦): 부호군 김치방(金致芳): 절충부 호군 김경문(金景文): 절충장군 김치봉(金致鳳): 절충장군 김원탁(金源鐸): 절충오위장 김원학(金源學): 동부승지 김흥손(金興孫): 절충장군 김춘영(金春榮): 조선 참의 김영란(金榮鸞): 이조판서 김계흥(金繼興): 통덕랑 김서규(金瑞圭): 절충장군 김의교(金宜敎): 절충장군 김정응(金定膺): 통덕랑 김한규(金漢圭): 선략장군 김의순(金宜淳): 선략장군 김치구(金致球): 도총관 김달근(金達瑾): 통덕랑 김두경(金杜敬): 조선 중추원 의관 김기항(金沂恒): 통덕랑 김사보(金泗輔): 부호군 김구수(金九壽): 조선 오위장 김진각(金鎭珏): 중추원 의관 김진형(金鎭炯): 의관 김수현(金秀賢): 동지중추부사 김무영(金武榮): 선략장군, 행 용양위부사과 김주호(金宙鎬): 호군 김효영(金孝英): 조선 절충부 호군 김운용(金雲龍): 선략장군, 행 훈련원 판관 김덕문(金德文): 절충부 호군 김록영(金祿英): 호조참의 김만영(金萬榮): 예조참의 김문보(金文甫): 비서원비서승 김시동(金時東): 절충부 호군 김수찬(金修贊): 한성부좌윤 김익천(金益千): 이조참의 김시섭(金時燮): 호조참의 겸 좌승지 김상기(金尙琪): 호조참의 김익문(金益文): 절충부호군 김상윤(金尙潤): 통덕랑 김치진(金致振): 통덕랑 김학구(金鶴九): 오위장 김용호(金龍鎬): 병조참판 김경휘(金慶輝): 조선 부호군 김인간(金仁侃): 절충장군 김능호(金陵鎬): 통덕랑 김구간(金九侃): 통덕랑 김진간(金晋侃): 절충장군 김영설(金永卨): 통덕랑 김하징(金河澄): 용양위 부호군 김홍려(金弘麗): 중추동지사 김한정(金漢禎): 정략장군, 행 훈련원첨정 김창업(金昌業): 조선 중추원의관 김학국(金學國): 선략장군 행 의금부도사 김인복(金仁福): 호군 겸 호조참의 김세백(金世伯): 오위장 김윤옥(金潤玉): 호조참의 김일용(金日鎔): 조선 오위장 김성용(金聖鎔): 절충장군 행 부호군 김약려(金若礪): 한성부좌윤 김대윤(金大潤): 조선 통덕랑 김치강(金致康): 통덕랑 김응기(金應基): 승정원 좌승지 겸 오위도총관 김형규(金炯奎): 예조참의 김형준(金炯俊): 오위장 김인호(金寅浩): 통덕랑 김규종(金圭鍾): 통덕랑 김규수(金圭秀): 통덕랑 김맹학(金孟學): 통덕랑 김대영(金大榮): 한성판윤 김해흥(金海興): 군자감정
[등과인명(登科人名)]
김 상(金 尙): 조선 태종(太宗)조 김광수(金光粹): 조선 세종(世宗)조 김 구(金 臼): 조선 문종(文宗)조 김충민(金忠敏): 조선 세조(世祖)조 김 률(金 률): 조선 성종(成宗)조 김 창(金 敞): 조선 성종(成宗)조 김성경(金成慶): 조선 성종(成宗)조 김 모(金 貌): 조선 성종(成宗)조 김원윤(金元潤): 조선 성종(成宗)조 김원효(金元孝): 조선 중종(中宗)조 김 매(金 매): 조선 영조(英祖)조 김도남(金圖南): 조선 중종(中宗)조 김취장(金就章): 조선 중종(中宗)조 김 계(金 啓): 조선 중종(中宗)조 김종갑(金宗甲): 조선 인조(仁祖)조 김병수(金秉洙): 조선 숙종(肅宗)조 김윤성(金允聲): 조선 철종(哲宗)조 김달련(金達鍊): 조선 철종(哲宗)조 김 영(金 영): 조선 인조(仁祖)조 김동일(金東一): 조선 고종(高宗)조
[조선조 급제자 정록]
상(尙) (태종(太宗)5년ㆍ진사과(進士科), 대(碓)(成宗8년ㆍ친시(親試) 을과(乙科), 예(譽)(중종(中宗)17년ㆍ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취장(就章)(인조(仁祖)8년ㆍ식년사(式年試) 을과(乙科), 령(玲)(숙종(肅宗)8년ㆍ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병수(秉洙)철종(哲宗)9년ㆍ별시(別試) 갑과(甲科), 윤성(允聲)고종(高宗)22년ㆍ증광시(增廣試) 을과(乙科), 달덕(達德)고종(高宗)25년ㆍ식년사(式年試) 을과(乙科)
[벌열(閥閱)]
●공신(功臣) : 김양보(金良輔)(선조(宣祖)조 호성3등공신(扈聖3等 功臣), 김기문(金起文)(선조(宣祖)조 호성3등공신(扈聖3等 功臣) ●문형(文衡) : 김양보(金良輔) 선조(宣祖)조 ●호당(湖堂) : 김기문(金起文) ●청백리(淸白吏) : 김기문(金起文) 세종조(世宗朝), 김양보(金良輔) 선조(宣祖)조 ●명륜(明倫) : 자(者) 김형익(金炯翊), 김중영(金重榮) 철종(哲宗)조, 김득형(金得亨) 효행으로 제역(除役), 김원수(金源守). 김원일(金源一) 김태연(金泰淵), 김경순(金烱淳), 김흥일(金興一) 김원태(金源台) (모친 위독시 단지수혈(斷指輸血) 친상시 거려시묘(居廬侍墓) 관혼상제(冠婚喪祭) 예의문집(禮儀文集) 6권 편찬(編纂) 예법전수(禮法傳授), 김원철(金源哲)(효행으로 증 호조참판(贈 戶曹參判) 김리용(金理龍) 김인영(金仁榮) 김동일(金東一) 김치련(金致璉) 김용득(金龍得) 김달연(金達鍊) 김재식(金載植) 김석조(金錫祚) 사문(事聞)에 명정려(明旌閭). 김경노(金慶魯) 김명여(金明汝) 김원정(金源政) 김귀봉(金貴奉) 효행으로 사문(事聞)에 특명 오세제역(五世除役) 김씨(金氏) 이봉범(二鳳範)의 처(妻), 김씨(金氏) 효자(孝子) 동몽교중(童蒙校宮) 장진수(張鎭秀)의 모
분파도(分派圖) 大輔公金閼智(대보공김알지)→勢漢(세한)→阿道(아도)→首留(수류)→郁甫(욱보)→仇道(구도)→ 末仇(말구)→奈勿王(내물왕)→卜好(복호)→習寶(습보)→智證王(지증완)→眞宗(진종)→欽運(흠운)→摩次(마차)→法宣(법선)→義寬(의관)→魏文(위문)→孝讓(효양)→元聖王(원성왕)→禮英(예영)→均貞(균정)→神武王(신무왕)→文聖王(문성왕)→安(안)→敏恭(민공)→實虹(실홍)→孝宗(효종)→敬順王(金傅大王:경순왕)→三陟君 錘(삼척군 추)
역대인물 (歷代人物)
고려시대(高麗時代) ●김위옹(金渭翁):高麗景宗庚辰年誕降(西紀980年), 일명 위웅(尉雄),신라의 종성(宗姓)으로 경순왕 부(傅)의 손(孫)이다. 어사대부지군사(御史大夫知郡事)․검교(檢校)․사농경(司農卿)을 거쳐 은청광록대부상주국좌승상(銀靑光祿大夫上柱國左丞相)의 벼슬을 지냈다.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과 실직군왕(悉直君王)으로 책봉되었고, 후에 군왕(郡王)으로 책봉되었다. ●김윤성(金允成) : 고려시대 무신. 본관은 삼척, 군왕(郡王) 위옹(渭翁)의 후손,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김인궤(金仁軌) : 고려 때 문관. 본관은 삼척. 대장군 윤성(允成)의 아들. 관직은 전법,총랑,호군전객령(典法,總郞,護軍典客令)을 지냈으며 조현대부(朝顯大夫)가 되었다. 원래 가야향(加也鄕)의 사람으로 호군(護軍)의 벼슬에 올라 1284년(충렬왕 10) 공을 세우므로 가야향(加也鄕)을 승격시켜 춘양현(春陽縣)이 되었다. 1393년(태조2) 금자광록대부문하시중(金紫光祿大夫門下侍中)으로 증직(贈職)되었고 왕으로부터 서대(犀帶)를 받았다 ●김의궤(金義軌): 고려 때 문관. 본관은 삼척(三陟). 인궤(仁軌)의 동생. 1347년(충목왕 3)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서 문하시랑(門下侍郞)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다. ●김정휘(金正暉): 고려시대 무신. 본관은 삼척, 윤성(允成)의 동생. 무과에 급제하여 도통사(都統使)를 지냈으며 대장군(大將軍)이다. ●김흥민: 고려때 문관. 본관은 삼척, 悉直郡王 渭翁의 9世孫이며 高麗 禑王元年 1374年~李朝 世宗 20年 1437年까지 生存하신분이며 內侍出身으로 安峽縣監을 지냈다. (1993年 發掘된 墓誌石 江原大學校學史觀에서 保管하고 있다. 이 誌石 內容이 三陟金氏 族譜의 正確性을 意味한다.)
조선시대(朝鮮時代) ●김경언(金景彦): 조선시대 무신. 본관은 삼척, 부장(部將) 희(熙)의 손자.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지냈다. ●김 긍(金 兢): 조선시대 무신. 본관은 삼척, 자는 경중(警仲), 호는 일송(一松), 첨정(僉正) 훈(勳)의 아들. 무과에 급제, 충순위(忠順尉)가 되었다. ●김기영(金麒榮): 본관은 삼척, 자는 순구(舜龜), 호는 만취(晩翠), 동추(同樞) 원욱(源旭)의 아들. 청수(淸秀)의 자질로 태어나 글에 능숙하고 글씨도 잘 썼다. 의관(議官)이 되었고, 죽은 뒤에 예장(禮葬)을 하였다. ●김난손(金蘭孫) : 조선 중종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중랑장(中郞將) 광유(光裕)의 증손. 중종 때 무과에 급제, 오위(五衛)의 부사정(副司正)을 하였다. ●김달준(金達埈) : 조선 고종 때의 문신. 본관은 삼척, 자는 동보(東甫), 군왕(軍王) 위옹(渭翁)의 후손. 1888년(고종 25) 문과에 급제,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가 되고 정자(正字)를 지냈다. ●김몽학(金夢鶴) : 조선시대의 무신. 본관은 삼척, 부장(部將) 희(熙)의 손자.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을 지냈다. ●김병수(金秉洙) : 조선 철종 때의 문신. 본관은 삼척, 자는 성원(聖源), 호는 가은(稼隱), 군왕(郡王) 위옹(渭翁)의 후손. 1858년(철종9) 문과에 장원 급제(壯元及第), 사헌부 사간원(司憲府司諫院)에 근무하다가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에 이르렀다. ●김보영(金寶榮) : 조선 고종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자는 군도(君道), 호는 신암(愼菴),실직군왕 위옹(渭翁)의 후손. 1892년(고종29)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사과(五衛司果)를 지냈다. ●김복경(金福景) : 조선 영조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자는 양원, 호는 송헌(松軒), 삼척군왕(三陟郡王) 위옹(渭翁)의 후손. 1724년(경종 4) 무과에 급제하여 참의(參議)를 지냄. ●김상구(金尙矩) : 본관은 삼척, 자는 치경(致慶),호는 화사(花史), 실직군왕 위옹(渭翁)의 후손. 원래 삼척도호부 호장(戶長)으로 있었다. 1754년(영조30) 삼척부사가 보관하고 있던 태조의 하사품인 홍서대(紅犀帶)를 직접 가지고 가서 왕에게 보였더니 왕은 태조의 유품을 오래도록 보관한 공을 기려 특별히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의 벼슬을 내렸다. 예조의 참봉(參奉), 전옥(典獄)의 참봉(參奉), 부사과(副司果)를 거쳐 안기찰방(安奇察訪)을 지냈다. ●김영순(金永淳) : 본관은 삼척, 자는 사한(士翰), 호는 봉촌(鳳村), 군왕 위옹의 후손. 1856년(철종7)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제수 받았다. 순조와 헌종의 국상을 당하였을 때 6년간 복상을 입고 애도하였으므로 1854년(철종5) 어사 강란향(姜蘭香)이 조정에 알리어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증직되었다. ●김운룡(金雲龍) : 순조 때 무신. 본관은 삼척, 통정(通政) 백려(百礪)의 후손, 1814년(순조14) 무과에 급제 훈판(訓判)을 지냄 ●김원식(金源式) : 본관은 삼척, 자는 숙명(淑明), 호는 국재(菊齋), 중낭장 광유(光裕)의 후손이다. 1879년(고종16)에 진사에 급제하여 음서로 1902년 의관(議官)에 임명되었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903년 영경모 정자각(丁字閣)을 개수할 때 감동관(監董官)을 하였기에 아마(兒馬) 한필을 사급(賜給)으로 받았다. 또 1906년(광무 10) 의릉비각(義陵碑閣)을 세울 때 감동관(監董官)을 하였기에 그 공로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원욱(金源彧) : 본관은 삼척. 자는 숙도(淑度), 진사 원식(源式)의 동생. 1891년(고종 28) 향시(鄕試)에 합격. 1902년(광무6) 함북관찰부주사(咸北觀察府主事)에 임명되었다가 의관(議官)으로 승진하였다. 나이 74세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906년에는 효행이 있어 내협비승(內協秘丞)에 증직되었다. ●김원태(金源泰) : 본관은 삼척, 자는 화여, 호는 돈은(遯隱), 상오(相五)의 아들. 1901년(광무 5) 삼척우체주사(三陟郵遞主事)로 임명되었고, 내부주사(內府主事)를 지냈다. 그리고 품계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유인(金유仁) : 조선시대 무신. 본관은 삼척, 사인 광동의 후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를 지냄 ●김윤성(金允聲) :조선 고종 때의 문신. 본관은 삼척, 군왕(郡王) 위옹(渭翁)의 후손. 1885년(고종2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김인우(金麟雨) : 조선 초기의 무인. 본관은 삼척, 1387년(우왕 13) 삼척 지군사(三陟知郡事)로 남은(南誾)이 부임하자 그의 휘하에 있으면서 왜구를 소탕하는데 전공을 세웠다. 그로 인하여 안인포 만호(安仁浦 萬戶)를 거쳐 장기현사(長岐縣事)를 지냈다. 1416(태종16) 울릉도 안무사(鬱陵島按撫使)가 되어 유리하는 백성이 그 섬으로 도망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 땅을 비워두었다. 이때 복명서에는 「토지가 비옥하고 대나무의 크기가 다릿목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 같고 복숭아의 크기는 됫박 만한데, 모두 물건이 다 이렇다」 하였다. 또 1425년(세종7)에도 울릉도 안무사(鬱陵島按撫使)가 되어 다녀왔다. 그의 자손들은 삼척 도호부 이속(吏屬)이 되어 부중(府中)에 많이 살고 있다. ●김진석(金辰錫) : 조선 고종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자는 사은(仕殷) ,부위(副尉) 당(瑭)의 후손. 1875년(고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사과(五衛司果)를 지냈다. ●김천갑(金天甲) : 조선 인조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자는 응우(應宇) ,통정 긍(兢)의 아들. 인조 때 무과에 합격 수문장(守門將)을 지내고 품계(品階)는 진용교위(進勇校尉)이다. ●김취장(金就章) : 조선 인조 때의 문신, 본관은 삼척, 자는 명숙(明叔) 1564(명종 19) 사마(司馬)에 급제, 1630년(인조 8)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府使)를 지냄 ●김치구(金致求) : 조선 고종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자는 명언(明彦). 1866년(고종3) 무과에 급제 ●김치현(金致賢) : 조선 고종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자는 경오(敬五), 정응(定膺)의 아들. 1893년(고종30년) 증광무과(增廣武科)에 급제,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을 지냈다. ●김학순(金學淳) : 조선 고종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자는 내순(乃淳), 실직군왕 위옹(悉直郡王渭翁)의 후손, 삼척 적노리(積老里)에 살면서 1891년(고종28) 무과에 급제했다. ●김학호(金學鎬) : 조선 고종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자는 학순(學淳), 호는 운남(雲南), 실직군왕 위옹(渭翁)의 후손. 1889년(고종26) 무과에 급제하여 황주병사(黃州兵使) 겸 산산첨사(蒜山僉使)를 지내다가 1894년(고종 31) 피해를 입었다. ●김현하(金顯河) : 본관은 삼척, 자는 경필(敬弼), 호는 우산(愚山), 부위(副尉) 근(瑾)의 후손. 1819년(순조 19) 문과초시에 합격하였으며, 왕으로부터 칠서(七書)를 하사품으로 받았다. 1821년(순조21) 준원전 봉향관(濬源殿奉香官)으로 제수되었다가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에 이르렀다. ●김형진(金炯晋) : 조선 고종 때 무신. 본관은 삼척, 초명은 만제(萬濟), 자는 윤칠(允七), 사과(司果) 보영(寶榮)의 아들. 1889년(고종 26) 무과에 급제, 오위사과(五衛司果)를 지냈다. ●김 훈(金 勳) : 본관은 삼척, 자는 원충(元忠), 호는 신당(新堂), 부사 양필(良弼)의 아들. 첨정을 지내다가 혼탁한 정치에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귀향하여 구호 산정에 만경대를 짓고 그 밑의 구호에서 도롱이와 삿갓 차림으로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술 한 잔에 세상을 잊기도 하고, 시문에도 생각 없이 매일같이 물새, 갈매기와 벗하며 평생을 마쳤다. ●김 희(金 熙) : 조선시대 무신. 본관은 삼척. 일명 공득(公得), 자는 원명(元明), 척주군(陟州君) 양보(良輔)의 아들. 무과에 급제, 훈련부장(訓練部將)으로 있었다. 현대(現代) |